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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물맛을 감별하다. 수‪선‬ 조선연예인 비사(祕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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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에 살던 평범한 백성이 물의 신선이 된 과정과 이유는 다소 서글프다. 어릴 때 부모와 일가친척을 모두 잃은 그는 품팔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신분제도가 크게 흔들렸다. 특히 노비들의 이탈이 두드러졌는데 이런 현상은 1801년 공노비를 혁파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결국 노비들을 대체할 고공(雇工)이라는 일종의 임금 노동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머슴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노비가 아니라 고공이었다. 과천의 백성도 머슴이나 고공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순조 14년인 1814년, 대기근이 들었다. 안동 김씨의 세도가 이어지던 시기 유독 큰 가뭄과 흉년이 자주 들었는데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이는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이때도 흉년에 쌀값이 크게 뛰고 일거리가 없어지자 가난했던 그는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보통은 이판사판으로 칼을 들고 도적이 됐지만 그는 심성이 착했는지 그냥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사는 걸 포기하고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조용히 죽기로 결심한 그는 관악산으로 들어갔다. 그가 간 곳에는 맛이 좋기로 유명한 샘물이 두 개 있었다.

계곡으로 들어간 그는 두 개의 샘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산 아래로 내려와서 바람과 햇빛을 쬐었다. 그리고 빈 집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는데 그를 불쌍하게 여긴 사람들이 밥을 주면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흉년이 들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에 밥을 구걸하는 이들도 한 둘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샘물로 달려가는 일을 반복했다. 번갈아가면서 물을 마셨는데 신기하게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다. 사람들을 물만 먹고도 멀쩡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그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그가 물로 배를 채우면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크게 풍년이 들면서 곡식 값이 떨어지고 일거리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여유가 생기면서 그에게 일거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전에는 먹는 일로 크게 고생을 했다가 각곡방(却穀方)을 배워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어찌 다시 품을 팔아서 고생을 하겠습니까?”
여기서 그가 말한 각곡방은 벽곡법이라고도 불리는 도교의 수련법으로 곡식 대신 솔잎 같은 것을 먹는 수련법을 말한다. 그가 산 속에서 도인을 만나서 깨우침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물을 마시다가 그리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물로 배를 채우고 굶주림을 느끼지 않았는데 언뜻 보면 얼토당토않지만 최근에도 술이나 특정 음식만 먹는 기인들이 있는걸 보면 무작정 거짓말로 치부하기는 애매하다. 어쨌든 이렇게 물로 배를 채우는 동안 본의 아니게 능력이 하나 더 생겼는데 바로 물맛을 감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물을 마시면 이게 우물에서 퍼온 것인지 샘에서 떠온 건 지, 아니면 강물을 가져온 것인지 귀신 같이 맞춘 것이다. 고기나 김치도 아니고 물에 맛이 있다는 얘기가 상당히 낯설게 들리겠지만 물들도 토질에 따라서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의 신기한 능력을 본 사람들은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바로 물의 신선이라는 뜻의 수선(水仙)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능력자에 대한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가 마침내 한양의 어느 판서 귀에까지 들어

과천에 살던 평범한 백성이 물의 신선이 된 과정과 이유는 다소 서글프다. 어릴 때 부모와 일가친척을 모두 잃은 그는 품팔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신분제도가 크게 흔들렸다. 특히 노비들의 이탈이 두드러졌는데 이런 현상은 1801년 공노비를 혁파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결국 노비들을 대체할 고공(雇工)이라는 일종의 임금 노동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머슴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노비가 아니라 고공이었다. 과천의 백성도 머슴이나 고공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순조 14년인 1814년, 대기근이 들었다. 안동 김씨의 세도가 이어지던 시기 유독 큰 가뭄과 흉년이 자주 들었는데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이는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이때도 흉년에 쌀값이 크게 뛰고 일거리가 없어지자 가난했던 그는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보통은 이판사판으로 칼을 들고 도적이 됐지만 그는 심성이 착했는지 그냥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사는 걸 포기하고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조용히 죽기로 결심한 그는 관악산으로 들어갔다. 그가 간 곳에는 맛이 좋기로 유명한 샘물이 두 개 있었다.

계곡으로 들어간 그는 두 개의 샘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산 아래로 내려와서 바람과 햇빛을 쬐었다. 그리고 빈 집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는데 그를 불쌍하게 여긴 사람들이 밥을 주면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흉년이 들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에 밥을 구걸하는 이들도 한 둘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샘물로 달려가는 일을 반복했다. 번갈아가면서 물을 마셨는데 신기하게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다. 사람들을 물만 먹고도 멀쩡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그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그가 물로 배를 채우면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크게 풍년이 들면서 곡식 값이 떨어지고 일거리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여유가 생기면서 그에게 일거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전에는 먹는 일로 크게 고생을 했다가 각곡방(却穀方)을 배워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어찌 다시 품을 팔아서 고생을 하겠습니까?”
여기서 그가 말한 각곡방은 벽곡법이라고도 불리는 도교의 수련법으로 곡식 대신 솔잎 같은 것을 먹는 수련법을 말한다. 그가 산 속에서 도인을 만나서 깨우침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물을 마시다가 그리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물로 배를 채우고 굶주림을 느끼지 않았는데 언뜻 보면 얼토당토않지만 최근에도 술이나 특정 음식만 먹는 기인들이 있는걸 보면 무작정 거짓말로 치부하기는 애매하다. 어쨌든 이렇게 물로 배를 채우는 동안 본의 아니게 능력이 하나 더 생겼는데 바로 물맛을 감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물을 마시면 이게 우물에서 퍼온 것인지 샘에서 떠온 건 지, 아니면 강물을 가져온 것인지 귀신 같이 맞춘 것이다. 고기나 김치도 아니고 물에 맛이 있다는 얘기가 상당히 낯설게 들리겠지만 물들도 토질에 따라서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의 신기한 능력을 본 사람들은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바로 물의 신선이라는 뜻의 수선(水仙)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능력자에 대한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가 마침내 한양의 어느 판서 귀에까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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