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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름 모를 차력‪사‬ 조선연예인 비사(祕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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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 주연의 영화 색즉시공에서는 차력 공연이 나온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철근 구부리기나 못을 휘는 걸 보면 누구나 눈길을 떼지 못할 것이다. 추재기이에서 파석인(破石人)에 관한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조선시대에도 차력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짧은 기사였지만 몹시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름 모를 차력사에 대해서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떤 외모를 가졌을지 부터가 궁금했다. 대머리에 강인하고 험상궂은 인상일까? 아니면 작지만 차돌처럼 단단하게 생겼을까? 추재기이에 나온 차력사의 공연은 차돌깨기였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은 차력사가 짊어지고 온 검은 빛깔의 차돌을 하나씩 꺼내놓으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사람들이 충분히 모였다 싶으면 차력사는 공연을 시작했다. 왼손의 둘째와 넷째 손가락 위에 차돌을 올려놓고 엄지손가락으로 위를 감쌌다. 그리고 오른손 주먹으로 내리치면 차돌 한 가운데가 쩍 갈라져버렸다. 수십, 수백 번을 하도 실패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탄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간혹 의심을 한 구경꾼들이 차력사의 차돌을 가져다가 끌이나 도끼로 내리쳐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렇게 한바탕 실력을 보여주고 난 후에 부서진 차돌들을 챙겼는데 어떤 것들을 가져가고 어떤 것들은 남겨 놨다. 그러면 사람들은 차력사가 돌을 끓여먹기 위해 가져간 것이라고 수근 거렸다. 도교의 신선 술 가운데 돌을 끓이는 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 한 것 같다. 이 사람이 30년 전까지 길거리나 시장 통에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한바탕 차력 쇼를 하고 정체불명의 약을 팔던 이들의 조상임이 분명하다.

18세기의 조선, 특히 한양에서는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길거리 스타들이 존재했다. 재담꾼과 구기꾼, 전기수를 비롯해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들까지 제각각 실력을 뽐내면서 삶에 지친 백성들에게 자그마한 즐거움을 안겨줬다. 차력사의 공연은 앞서 얘기한 이들과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안겨줬을 것이다. 기록으로만 보면 차력사가 길거리에서 차돌만 부수고 간 것으로 보이지만 아마 여러 명이 팀을 이룬 채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생계유지를 위해서 약이나 다른 물건들을 팔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차력사들의 공연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들이 파는 약이 가짜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이들의 신기한 능력에 감탄한 나머지 신선 술을 쓰는 신기한 능력자로 봤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조선 후기의 문집들을 많이 읽어봤지만 차력사를 다루는 것은 현재로서는 추재기이가 유일하다. 그것은 다른 공연보다 더 거칠고 험악했기 때문에 점잖은 양반들로서는 다루기 어려웠을 수 도 있고, 차력사 자체가 다른 공연을 하는 이들보다 희귀했을 수 도 있다. 어쨌든 조선의 다양한 길거리 공연들 중에서 차력사가 한 자리를 차지했으며 구경꾼들로 하여금 신선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임창정 주연의 영화 색즉시공에서는 차력 공연이 나온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철근 구부리기나 못을 휘는 걸 보면 누구나 눈길을 떼지 못할 것이다. 추재기이에서 파석인(破石人)에 관한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조선시대에도 차력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짧은 기사였지만 몹시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름 모를 차력사에 대해서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떤 외모를 가졌을지 부터가 궁금했다. 대머리에 강인하고 험상궂은 인상일까? 아니면 작지만 차돌처럼 단단하게 생겼을까? 추재기이에 나온 차력사의 공연은 차돌깨기였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은 차력사가 짊어지고 온 검은 빛깔의 차돌을 하나씩 꺼내놓으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사람들이 충분히 모였다 싶으면 차력사는 공연을 시작했다. 왼손의 둘째와 넷째 손가락 위에 차돌을 올려놓고 엄지손가락으로 위를 감쌌다. 그리고 오른손 주먹으로 내리치면 차돌 한 가운데가 쩍 갈라져버렸다. 수십, 수백 번을 하도 실패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탄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간혹 의심을 한 구경꾼들이 차력사의 차돌을 가져다가 끌이나 도끼로 내리쳐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렇게 한바탕 실력을 보여주고 난 후에 부서진 차돌들을 챙겼는데 어떤 것들을 가져가고 어떤 것들은 남겨 놨다. 그러면 사람들은 차력사가 돌을 끓여먹기 위해 가져간 것이라고 수근 거렸다. 도교의 신선 술 가운데 돌을 끓이는 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 한 것 같다. 이 사람이 30년 전까지 길거리나 시장 통에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한바탕 차력 쇼를 하고 정체불명의 약을 팔던 이들의 조상임이 분명하다.

18세기의 조선, 특히 한양에서는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길거리 스타들이 존재했다. 재담꾼과 구기꾼, 전기수를 비롯해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들까지 제각각 실력을 뽐내면서 삶에 지친 백성들에게 자그마한 즐거움을 안겨줬다. 차력사의 공연은 앞서 얘기한 이들과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안겨줬을 것이다. 기록으로만 보면 차력사가 길거리에서 차돌만 부수고 간 것으로 보이지만 아마 여러 명이 팀을 이룬 채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생계유지를 위해서 약이나 다른 물건들을 팔았을 것이다. 오늘날은 차력사들의 공연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들이 파는 약이 가짜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이들의 신기한 능력에 감탄한 나머지 신선 술을 쓰는 신기한 능력자로 봤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조선 후기의 문집들을 많이 읽어봤지만 차력사를 다루는 것은 현재로서는 추재기이가 유일하다. 그것은 다른 공연보다 더 거칠고 험악했기 때문에 점잖은 양반들로서는 다루기 어려웠을 수 도 있고, 차력사 자체가 다른 공연을 하는 이들보다 희귀했을 수 도 있다. 어쨌든 조선의 다양한 길거리 공연들 중에서 차력사가 한 자리를 차지했으며 구경꾼들로 하여금 신선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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