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같이 나눌 말씀은 헌물에 관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헌물은 중요한 의미가 있죠. 성경 말씀에 직접적으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가 큰 문제입니다. 이번에 이 주제를 선택한 것은, 한국에 갔을 때 곧 사회인이 되는 한 청년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는데 청년으로서 고민되는 부분이고, 또한 예민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같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헌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또한 어떠한 자세입니까? 그다음 부수적으로 나눌 내용은, 헌물을 어디에다 하십니까? 이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저도 아주 조심스럽게 전하는데요, 아무튼 이곳은 저의 영역이고 공간이기 때문에 제가 책임감 있는 마음으로 대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헌물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죠. 가장 먼저 십일조, 감사헌금, 생일, 입학, 취업, 돌, 백일, 임직감사헌금, 여러종류의 꽃꽂이 헌금, 떡헌금 등 여러가지 헌물들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헌물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하는지, 교회에서 시키니까 하는 것인지, 거기에는 분명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먼저 성경에서 십일조에 대한 개념이 첫 번째로 나와 있는 건 아브라함 때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있는 여러 왕들에 의해 잡히게 됩니다. 그를 구원해내면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전쟁의 승리에 대한 대가로 십일조를 드리게 됩니다. 두 번째로 드려지게 된 게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이 하란으로 장자의 축복권을 빼앗아 달아나는 상황에서 잠을 자는데 하늘에 닿는 사다리 꿈을 꾸죠. 꿈을 꾸고 난 이후에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나의 길과 여정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바로 앞에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증거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십일조, 또한 모든 헌물을 이해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셨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시다, 그분이 내게 역사하신다, 그분이 내 삶에 간섭하신다, 나와 그분과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라는 그 증거, 증표로 드리는 것이 바로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내 삶에 함께하셔서 나를 지켜주시므로 감사합니다’라고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엉뚱하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주면 받는 걸로, 십 분의 일을 드렸기 때문에 십 분의 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본 분들 중에, 주재원으로 해외에 나와 계시는 분인데, 한국에 돌아가실 때가 되어 연말정산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십일조를 미리 먼저 내겠다고, 거기에 대한 영수증을 달라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가서 헌금한 것에 대한 세금 공제를 받겠다는 거죠. 그건 헌물에 대한 기본 자세도 아니며, 제가 성경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가당치 않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밖에는 없습니다. 신명기 16장 16절에 보면, 너희 가운데 있는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화와께 오는데 빈손으로 오지 말고 헌물을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12:6, 11, 21절에 보면, 여호와의 명하신 곳, 자기 이름을 두신 곳에 와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구요, 민수기서 18장 24, 26, 28절에 보면 십일조의 사용용도가 나와 있습니다.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자손은 원래 땅의 기업이 없거든요. 이 땅의 기업을 대신해서 헌물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레위기서 27장 32절에 보면 소와 양의 십일조가 나오고, 27장 30절에서는 땅의 곡식의 십일조와 과실의 십일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도 분명히 십일조에 대한 요구를 명시화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당연히 이 말씀에 따라서 십일조를 해야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근데 십일조에 대한 절대적 요구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적으로 요구하셨던 것이고, 우리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 율법의 조항을 준수할 절대적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내 확신의 증표, 하나님께서 내게 이 모든 삶을 누리게 하셨다는 여김에 대한 표로 드리는 십일조라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적 요구의 십일조는 사실 의무감이 없습니다. 이 부분을 여러분이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내고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미 우리는 받을 수 있는 모든 축복의 조건들을 다 받았습니다. 단지 저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복의 조건이 아닐 뿐이지, 이미 우리는 받을 수 있는 복을 다 받았고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십일조는 그에 대한 감사의 증거로 확인시켜드리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이해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내용을 앞으로 몇 번에 걸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신앙이 바람직하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율법을 들었고, 율법에 대한 실천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간 3년 후부터 지켜지게 되는데요, 그 내용에 관해서, 또 절기에 관해서 짚어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드렸던 십일조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