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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은 매일 아침 청취자 분들께 예배와 묵상을 위한 은혜의 말씀을 제공해 드립니다.

장년 안교교과 - 재림교‪회‬ 재림마을

    • Religion & Spirituality

생명의 양식은 매일 아침 청취자 분들께 예배와 묵상을 위한 은혜의 말씀을 제공해 드립니다.

    [5월 14일 화요일 장년 교과] 윌리엄 밀러와 성경

    [5월 14일 화요일 장년 교과] 윌리엄 밀러와 성경

    하나님은 윌리엄 밀러를 통해 재림에 대한 진리를 재발견하게 하셨다. 그는 성실한 연구를 통해 성경의 뜻을 이해하고 예언의 상징을 성경으로 해석하였다.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를 재발견하게 하신 것처럼, 윌리엄 밀러를 통해 예수께서 어떻게 다시 오실지에 대한 진리를 다시 발견하게 하셨다. 밀러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자신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밀러는 성경과 펜, 공책을 들고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여 한 구절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다음 구절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성경 구절들을 비교하면서 성경이 성경을 설명하도록 했다.

    이사야 28:9, 10, 잠언 8:8, 9, 요한복음 16:13, 베드로후서 1:19~21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당신은 성경 해석의 어떤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윌리엄 밀러가 성경 구절을 비교하면서 살펴볼 때 성경의 비밀이 그에게 열렸다. 그는 숨겨진 보물을 구하는 사람처럼 찾았고 풍성한 보상을 받았다. 성령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해 주셨다. 그는 예언의 말씀도 다른 성경 구절을 공부할 때와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열심히 살펴보았다.

    다니엘서 1:17, 2:45, 베드로전서 1:10, 11, 요한계시록 1:1~3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성경의 예언을 이해하는 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예언서의 상징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아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곧 펼쳐질 궁극적인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 윌리엄 밀러는 예언은 그 자체가 최고의 해석자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했다. 예언서의 상징의 의미는 성경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어서) 짐승은 왕이나 왕국을 상징하고(단 7:17, 23), 바람은 파멸을 상징한다(렘 49:36). 물은 민족 또는 국가를 상징하고(계 17:15),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렘 6:2, 엡 5:22~32).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시간 예언도 상징적인 언어로 주어졌는데 예언의 한 날은 실제의 한 해를 나타낸다(민 14:34, 겔 4:6). 이러한 성경 해석의 원칙을 적용해 가면서 윌리엄 밀러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말한다고 여겼던 것에 대해 자신이 발견한 것에 깜짝 놀랐다.

    하나님은 윌리엄 밀러를 통해 재림에 대한 진리를 재발견하게 하셨다. 그는 성실한 연구를 통해 성경의 뜻을 이해하고 예언의 상징을 성경으로 해석하였다.

    예언적 상징은 잘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상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 신앙에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윌리엄 밀러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성경 구절들을 비교하면서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십시오.



    성경의 조화와 영광 – “그는 진리의 완전한 사슬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에는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던 성경이 이제는 온전한 조화와 영광으로 그 앞에 제시되었다. 그는 성경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어떤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다른 부분에 기록된 말씀으로써 그 깨닫지 못하는 말씀을 능히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기쁨으로 바라보고 또한 깊은 존경과 두려움을 가졌다”(살아남는 이들, 357).

    오류가 가득하여 심지어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미혹하려는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말씀을 사모하는 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5월 13일 월요일 장년 교과] 그날을 기다리며

    [5월 13일 월요일 장년 교과] 그날을 기다리며

    제자들이 오시는 메시아에 대해 오해한 것처럼 재림에 대한 오해가 세상에 가득하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의 재림에 관련된 사건들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가시적, 가청적이며 실제적인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었지만, 이 진리에 대한 이해는 조금씩 바뀌어 왔다. 19세기의 유명한 설교자들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그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고 평화로운 복 천년이 올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는 영적 무기력과 영적인 가치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메시아가 오시는 일의 본질을 오해했다. 그들은 그분이 로마가 채운 속박의 멍에를 깨뜨리는 정복 장군으로 오실 것으로 여겨, 그들을 죄의 정죄와 속박에서 구원하는 분으로 오신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다. 제자들은 그분이 오시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도행전 1:9~11, 요한계시록 1:7, 마태복음 24:27, 30, 31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주님의 재림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의 구유에 아기로 처음 오셨을 때, 그분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분이 두 번째 오실 때에는 “모든 눈”이 그분이 오시는 것을 볼 것이다. 모든 귀는 그분의 다시오심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들을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사람이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거짓된 주장에 속을 필요가 없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사건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성경에 계시된 가장 엄숙하고 영광스러운 진리는 구원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방황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내쫒긴’(삼하 14:13) 백성들을 본향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귀중하고 기쁨에 넘치는 소망이다. 재림의 교리는 바로 성경의 근본적 주제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슬픈 발걸음을 돌이킨 후부터 믿음의 자녀들은 파괴자의 세력을 깨뜨리고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회복시켜 줄 언약의 구주가 나타나기를 고대해 왔다”(각 시대의 대쟁투, 299).

    (이어서) 초기 재림교회 지도자 루터 워렌(Luther Warren)은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은 매일 준비하고, 또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기별은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영적인 삶을 돌아보라는 긴급한 호소이다. 그것은 경건한 삶을 선택하라는 부름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빛나는 영광의 광채 앞에 중간지대는 없다.

    제자들이 오시는 메시아에 대해 오해한 것처럼 재림에 대한 오해가 세상에 가득하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의 재림에 관련된 사건들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데살로니가전서 5:2~5과 히브리서 9:28을 읽어 보십시오.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방식에 관해 우리를 어떻게 격려합니까?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재림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재림을 위해 준비하라 – “형제자매들이여, 하늘 구름 속에서 강림하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기를 나는 강권하는 바이다. 그대들의 마음에서 날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을 몰아내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친교를 갖는

    [5월 12일 일요일 장년 교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약속

    [5월 12일 일요일 장년 교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약속

    종교개혁자들에게 재림의 약속은 어떤 슬픔과 시련도 흔들 수 없는 그들을 충만케 하는 기쁨이었다. 예수의 다시 오심은 두려움이 아니라 복된 소망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신대륙으로 떠난 개신교 종교개혁자들과 순례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야말로 그들이 열렬히 기다리는 즐거운 사건이었다. 존 위클리프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교회의 소망으로 고대했다. 칼뱅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모든 사건 중에서 가장 복된 사건”이라고 말한 것은 모든 종교개혁자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요한복음 14:1~3, 데살로니가전서 4:13~18, 디도서 2:11~1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이 여러 세기에 걸쳐 기독교인들에게 재림의 소망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믿음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소망과 기쁨을 가져다준 이유는 분명하다. 재림은 더 이상 질병, 고통, 죽음이 없을 것이며 가난, 불의, 압제가 사라질 것을 말한다. 재림은 분쟁과 갈등, 전쟁이 끝나고 평화와 행복, 그리고 그리스도와 모든 시대를 통해 구속받은 자들과 영원토록 교제하는 미래의 세상을 예고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의 희망이 되어왔다. 구주께서 감람산에서 이별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재림의 약속은 제자들의 미래를 밝혀 주었고, 어떤 슬픔도 빼앗아갈 수 없고 어떤 시련도 흐리게 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여 주었다. 박해와 시련 중에서도 ‘크신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이 ‘복된 소망’이 되었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보기를 희망하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그들의 스승인 바울은 구주의 재림시에 있을 부활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이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8)”(각 시대의 대쟁투, 302).

    종교개혁자들에게 재림의 약속은 어떤 슬픔과 시련도 흔들 수 없는 그들을 충만케 하는 기쁨이었다. 예수의 다시 오심은 두려움이 아니라 복된 소망이었다.

    우리 신앙에서 재림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재림의 소망이 없다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겠습니까?

    재림을 고대하며 기뻐하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의 모본을 따르며 주의 다시오심을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습니까?



    바울의 소망은 재림에 집중됨 – “바울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 즉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고 하신 약속을 굳게 붙잡았다. 그의 사상과 소망은 오직 주님의 재림에 집중되었다. 사형 집행인의 칼이 내려오고 순교자에게 사망의 그늘이 덮일 때 그의 마지막 생각은 바로 그 큰 부활의 아침에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릴 복 받은 자들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그를 환영하여 주실 생명의 시여자 그리스도를 뵙는 일이었다”(살아남는 이들, 319).

    무너지는 세상이 아니라 회복하시는 예수님께 소망을 두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세상에서 경험하는 고난과 실망을 아시오니

    [5월 11일 안식일 장년 교과] 두 증인

    [5월 11일 안식일 장년 교과] 두 증인

    두 증인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중세 교회의 핍박과 일치한다. 말씀은 타버린 잿더미 같은 상황에서도 다시 빛을 발하며 어려움 가운데서도 승리했다. 가장 악의적인 프랑스 혁명의 공격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서 말씀을 따르는 사람의 마음에 생명력을 주었다. 대적의 방해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며 말씀을 따르는 이들은 영원한 승리를 얻을 것이다.

    연구 범위: 계 11:3~6, 슥 4:14, 계 12:5, 6, 14, 15, 단 7:25, 사 54:17, 시 119:89, 계 11:15~18

    기억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

    수세기 동안 하나님의 말씀은 난도질 당하고, 의심받고, 폐기되었다. 성경은 수도원에 격리되거나, 광장에서 불살라지고, 갈기갈기 찢겼다. 신자들은 조롱, 모욕, 투옥을 겪고 심지어 순교 당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했다.

    중세 교회는 성경을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을 비추었다. 압제와 박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영국의 성경 번역자 윌리엄 틴들은 종교재판에 회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더럼(Durham)의 주교”라고 대답했다. 틴들을 심문하던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틴들은 그 주교가 자신의 성경 번역본을 사 모아서 공개적으로 불태운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교는 성경을 없애기 위해 평소보다 비싼 값에 성경을 구입했다. 그 덕에 틴들은 그보다 더 많은 성경을 인쇄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진리의 길을 크게 도왔다는 사실을 당시에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잿더미가 되었던 진리가 다시 일어나 꺼지지 않는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이번 주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장 악의적이었던 공격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거리는 피로 물들었다. 광장에는 단두대가 설치되었고 수천 명이 학살당했으며 무신론이 국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꺾이지 않고 계속 증거되었다.

    TMI Time*학습 목표

    깨닫기: 사탄은 대적하며 공격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생명력을 나누어 준다.

    느끼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며 말씀하신 대로 승리하는 것을 느낀다.

    행하기: 약속하신 영원한 승리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의 편을 선택한다.

    TMI 안으로:  안교 소그룹이 함께 서로를 돌보고 연합함

    1.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을 환영합니다.

    2. 출석과 공부를 확인하고 안교헌금을 드립니다.

    3. 결석자와 구도자를 확인하고 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TMI 위로

    1. 성경을 처음 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성경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2.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렘 5:14)

    3. 1,260년 동안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은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계 11:3)

    4. 두 증인이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까?(계 11:7)

    5. 그 증인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다시 들어간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계 11:11)

    6. 일곱째 나팔의 승리는 무엇을 위해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까?(계 11:15)

    7. 두 증인이 죽은 것 같이 된 것은 교회에도 어떤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결론 두 증인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중세 교회의 핍

    [5월 10일 금요일 장년 교과]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5월 10일 금요일 장년 교과]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종교개혁자들은 불굴의 목적과 죽음 앞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내면의 평화가 있었다. 그들은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약속을 사모하며 자유를 경험했다. 사탄은 앞길을 가로막고 진리를 곡해하며 핍박하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대쟁투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도이며 예수의 은혜는 우리를 구속하기에 충분하다.

    “성경이 종교와 세속의 권세에 의하여 추방되었을 때, 성경의 증거가 곡해되고, 사람들과 악마들이 성경으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고자 온갖 연구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성경의 거룩한 진리를 대담하게 증거하는 사람들이 수색당하고, 배신당하고,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하거나 깊은 산속과 땅속의 동굴에 도피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그 충성된 증인들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일천이백육십년의 전 기간을 통하여 증거하였다. 그들은 그처럼 가장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열성을 다한 충성된 사람들이다. 충성된 그 종들에게는 그 전 기간에 하나님의 진리를 선언할 지혜와 능력과 권위가 부여되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267).

    “악인들과 악마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계획하여 오던 그대로 하나님의 율법으로 제재를 받지 아니하는 나라를 세운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 이러한 반역을 선택한 자들은 글로써 도저히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죄악이 땅에 충만하여질 때까지 그 반역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실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황폐된 지방과 폐허가 된 도시들로부터 무서운 부르짖음, 곧 가장 쓰라린 고통의 부르짖음이 들렸다. 프랑스는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종교, 법률, 사회적 질서, 가정 제도, 국가, 교회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한 불의한 손에 의하여 무너졌다”(각 시대의 대쟁투, 286).

    “교회가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를 좇지 않고 모든 빛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제시된 모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종교는 다분히 형식화되어 버리고 생명력이 넘치는 경건의 정신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316).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프랑스 혁명에는 대쟁투의 어떤 모습이 나타나 있는가?

    2. 어떤 이는 신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세울 수 있고, 금지된 것이나 제한 없이 지적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썼다. 신을 거부하는 동기가 “금지된 것이나 제한” 때문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르쳐 주며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설명해 주는가?

    3. 요한이 성소의 환상을 본 것은 마지막 때의 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온라인에서 침례까지

    저는 디지털 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디지털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채식, 절제에 관한 내용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채식과 절제에 관한 책을 리뷰하는 채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림교회의 가치관과 매우 비슷한 책들을 소개하기에 혹시 재림교인이 아닌가 하여 댓글을 남겼습니다. 교회에 다니시냐고 물으니 다닌다고 답을 하셨고 혹시 안식일 교인이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순복음 교인이지만 안식일이 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당신이 리뷰

    [5월 9일 목요일 장년 교과] 승리한 진리

    [5월 9일 목요일 장년 교과] 승리한 진리

    적의 공격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영광스러운 절정에 이를 것이다. 악은 멸망할 것이지만 변함없는 말씀의 반석 위에 서 있는 자는 영원한 승리를 얻을 것이다.

    적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영광스러운 절정에 이를 것이다.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계 14:6)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는 그리스도께서 음부의 권세를 완전히 깨트리심으로 마쳐질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악을 이기고 승리할 것이며, 죄는 우주에서 영원히 뿌리뽑힐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교회를 파괴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없애려는 사탄의 시도로 시작하지만, 악의 정사와 권세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이 장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위해 불같은 시련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요한계시록 11:15~1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 따르면,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마지막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 세상의 왕국이 우리 주님의 왕국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시고 악은 멸망한다. 사탄은 패하고 의의 강물이 흐르며 진리가 다스린다. 우리는 다음 권면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사람의 권위 위에 세워진 것은 무엇이나 전복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변함이 없는 말씀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은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288).

    요한계시록 11:19을 읽어 보라. 요한은 하늘에 무엇이 열리는 것을 보았는가?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본 것은 무엇인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요한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가 지성소를 바라볼 때 거기 있는 언약궤를 보았다. 하늘의 장엄한 원형을 본뜬 모형인 구약 시대의 성소에는 언약궤의 덮개에 아름답게 세워진 천사의 모습 사이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나타났다.

    (이어서) 법궤 안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만,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지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의 율법은 심판의 근거와 기준이다(약 2:12). 이 사실은 마지막 때에 더욱 중요하고 실제적이다(계 12:17, 계 14:12 참조).

    적의 공격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영광스러운 절정에 이를 것이다. 악은 멸망할 것이지만 변함없는 말씀의 반석 위에 서 있는 자는 영원한 승리를 얻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보여준 불경건과 요한계시록 11장에 묘사된 영광스러운 절정 사이의 뚜렷한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1장의 고난과 영광은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거기서 구속받은 사람들은 그들을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께로 인도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연합하여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같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을 찬양하게 된다. 대쟁투가 끝났다. 모든 고난과 투쟁은 끝났다.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둘러설 때 온 하늘은 승리의 노래로 충만해진다. 모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구원해 주신 ‘어린 양이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고 기쁜 노래를 부른다”(치료 봉사, 506).

    주의 말씀이 승리하고 그 영광에 참여할 자를 부르는 그 날에 주님 앞에 충성된 종으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실수 많고 연약한 종이지만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셔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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