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ㆍ언어

안우산, 노혁이, 진옥순, 여가영, 손전홍, jennifer pai-白兆美, Rti

타이완 문학ㆍ언어

  1. JUN 9

    [작가 부부⓷] 사랑이라는 여정에서… 시와 소설처럼 다른 샹양(向陽)과 팡즈(方梓) 🧳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주변 커플들을 보면,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은데요. 내성적인 사람이 밝은 사람에게 끌리고, 이성적인 사람이 감성적인 사람에게 눈길이 가고, 또 키가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경우입니다. 참 신기하죠.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서 신선함과 긴장감을 느끼고, 그 감정은 결국 설렘이 되어, 사랑의 씨앗이 되곤 하죠.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보상심리’로 설명합니다. 나에게 부족한 점을 가진 사람을 통해 나를 보완하는 마음입니다. 타이완 문단에도 이렇게 상반된 부부 한 쌍이 있습니다. 넓은 태평양을 마주한 화롄(花蓮)에서 태어난 작가 팡즈(方梓, 본명 林麗貞 린리전), 그리고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도시 난터우(南投)에서 태어난 시인 샹양(向陽). 산과 바다를 대표하는 두 사람은 타이베이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 사이의 공통 언어는 ‘문학’이었죠. 그러나 결혼 후에는 두 사람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났는데요. 팡즈는 면을 좋아하고, 샹양은 밥을 좋아하고, 팡즈는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샹양은 자유를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팡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성격이 맞거나 보완되어야 부부가 되잖아요? 우리는 100% 보완 쪽이에요. 의식주부터, 교육관, 독서 취향, 글쓰기 스타일까지 거의 모든 게 다 다르거든요. 마치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서 살고 있는 것처럼요.” 그 차이는 창작 습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 전혀 간섭하지 않습니다. 출판 전에는 원고를 보여주지도 않고, 출판 후에는 의견을 주고받지도 않습니다. 소설이 가득한 팡즈의 서재는 3층, 시집과 논문으로 채워져 있는 샹양의 서재는 5층에 있는데, 서로 바쁠 때는 같은 집에 있어도 마치 따로 사는 것처럼 자기 일에만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요즘 이 부부에게 또 다른 공통 언어가 생겼습니다. 바로 모바일 게임 ‘포켓몬 GO’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함께 비디오게임을 즐겼던 두 사람은 70대가 되어도, 같이 포켓몬을 잡는 것을 하루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여깁니다. 두 사람은 지난 2014년 타이완의 일간지 연합보에서 한 달 동안 공동 연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작가 부부 시리즈의 마지막 시간, 오늘은 이 연재를 바탕으로 팡즈와 샹양의 러브스토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산과 바다가 만났다 🌊⛰️ 고향은 멀지만, 두 사람 모두 농촌 출신입니다. 고등학교까지 고향을 떠나본 적 없이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자라며 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습니다. 그들이 자란 1960년대의 타이완은 아직 남존여비의 관념이 짙게 남아 있던 사회였는데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좋은 집안에 시집가기 위해,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죠. 하지만 팡즈의 부모는 달랐습니다. 요리 대신 공부를, 빨래 대신 독서를 시켰고, 여저도 남자처럼 출세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팡즈는 6살 때 ‘해외’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고, “어떻게 해야 해외에 갈 수 있어요?”하고 아버지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기자가 되면 갈 수 있지”라고 대답했답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을 다잡은 팡즈는 열심히 공부해서 모두가 동경하는 수도 타이베이로 올라가 문화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팡즈는 일본어문학과 4학년 선배 샹양의 시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들어서 직접 시집을 예매했고, 시집을 받은 후에는 책에 적힌 주소로 “잘 받았다”는 짧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주소는 샹양의 집이었습니다. 첫 독자에게서 온 편지를 받은 샹양은 매우 기뻐했고, 어떻게든 답장을 쓸 이유를 찾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다와 산은 만나게 되었습니다. 훗날 팡즈는 샹양의 시보다 시집의 서문에 끌렸다고 고백했는데요. 그 말을 들은 샹양은 “시보다 서문이 더 좋았다니, 시인으로서 얼마나 충격인지 알아요?”하고 농담을 했습니다. 전업주부만은 되지 말자 🤚🏼 팡즈는 어릴 때 스스로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게 출세하지 않아도 괜찮다. 전업주부만은 되지 말자” 하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대학 졸업과 동시에 샹양과 결혼하게 되고, 결국 집안일에 몰두한 주부가 되었습니다. 특히 두 딸을 낳고 샹양이 동아리를 만든 뒤로는 더욱 바빠졌습니다. 팡즈는 하루종일 부엌에서 요리하고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부엌과 서재는 화련과 난터우처럼 같은 나라 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 같았다”고 팡즈는 회상했습니다.  자신만의 일을 펼칠 여유가 없던 팡즈에게 결혼 2년 만에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부간지 편집장을 맡은 샹양은 유명인 100명의 인터뷰 프로젝트를 아내에게 제안한 겁니다. 기자 경험이 전무했던 팡즈에게는 큰 도전이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100편의 인터뷰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판되어, 팡즈에게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난 후, 샹양이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nternational Writing Program, IWP)에 참여하게 되면서, 부부는 함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겨울방학을 보냈고, 마침내 공통된 방향 ‘글쓰기’를 찾았습니다. 미국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두 사람이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노래, 홍샤오차오(洪小喬)의 ‘사랑의 여행(愛之旅)’을 함께 들어보시죠. 미국에서 펼쳐진 새로운 시작 🇺🇸 아이와대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은 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 그리고 타이완 민주화 이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타이완 문학인들과 교류했습니다. 팡즈는 특히 창작 프로그램의 설립자 고 녜화링(聶華苓) 작가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고, 자신만의 인생 목표를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부는 글을 쓰는 한편 미국 곳곳을 여행하며, 시야를 한층 넓혔습니다.  ▲참고자료: ‘타이완 문단의 영원한 어머니’ 작가 녜화링(聶華苓) 99세로 별세 두 사람의 여행 스타일은 꽤 다릅니다. 팡즈는 천천히 걷는 여행을 좋아하고, 카메라로 모든 순간을 기록하기보다는, 육안으로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편입니다. 언젠가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한 도시를 떠올릴 때 나무 한 그루의 기억만 남아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샹양은 사진을 시로 생각합니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고, 휴가보다는 무작정 떠나는 모험을 즐깁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환상적인 여정을 기록했죠. 1985년 녜화링(앞줄 좌) 부부와 샹양(뒷줄 좌), 팡즈(뒷줄 우) 부부 - 사진: 연합보 글쓰기란... ✍️ 글쓰기는 극히 외로운 일입니다. 팡즈와 샹양은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은 늘 함께합니다. 샹양은 13살 때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대표작 《이소(離騷)》를 읽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어 종이에 한 자 한 자 베껴가며 외웠고, 언젠가 이처럼 심오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편, 팡즈는 31살이 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자신만의 언어와 시선을 가진 작가로 자리잡았습니다. 2000년 출판된 에세이집 《채채권이(采采卷耳)》는 20여 가지 야채를 통해 타이완 여성의 삶을 그려내며, 2012년 출판된 장편소설 《화롄항에 간다(來去花蓮港)》는 다른 민족과 세대의 여성 이주자들의 정체성 문제를 섬세하게 풀어냈습니다. 부모의 독특한 교육 방식과 어린 시절의 기억은 팡즈의 창작 세계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는 길은 전혀 달랐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향토 작가'로 분류됩니다. 타이완어로 시를 쓰는 샹양은 사회와 역사에 주목하고 작품의 사회성을 강조합니다. 팡즈는 가부장제 속 여성의 역할과 정체성, 그리고 자연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둡니다. 팡즈는 “글쓰기를 늦게 시작하면 선택의 자유도는 크지만, 좋은 소재는 다 선배들이 써버렸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이에 샹양은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보는 방식과 미학”이라며, “같은 소재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2. JUN 2

    [작가 부부②] 글쓰기도 DNA? 작가 아빠, 번역가 엄마, 그리고 문학하는 딸들 🧬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아버지와 딸 셋, 그리고 사위까지 모두 작가이고, 어머니는 번역가, 손자는 영화 작가라고 하면, 과연 어떤 집안일까요? 방 안 가득한 책들이 삼대째 문학인을 길러낸 집, 바로 타이완 문단의 명문가 ‘문학 주가(文學朱家)’입니다. 문학계에서는 그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정작 본인들은 조용히 살아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고고한 일가족’이라는 별명도 따라붙었습니다.  그들의 신비로운 베일은 지난 2022년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드물게 벗겨졌는데요. 타이완 문학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 시리즈 ‘그들이 섬에서 글을 쓴다(他們在島嶼寫作)’입니다. 문학과 다큐멘터리, 듣기 만해도 박스오피스에서 살아남기 힘든 조합이죠. 하지만 이 시리즈는 지난 10여 년간 무려 18편의 작품, 20명의 작가 이야기를 기록해 왔습니다. 제작사 ‘피스피사 미디어(目宿媒體, Fisfisa Media)’의 투자자, 타이완 IT기업 페가트론(和碩)의 퉁즈셴(童子賢) 회장은 시즌3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는데요. “타이완에 반도체, 메인보드, 컴퓨터만 남는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사회가 되겠는냐”며, “문학은 수학, 물리처럼 우리 정신문화의 중요한 일부”라고 했습니다. 주가의 이야기는 시즌3에 수록된 과 라는 두 작품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전자는 아버지 주시닝(朱西甯)과 어머니 류무사(劉慕沙), 후자는 장녀 주톈원(朱天文)과 차녀 주톈신(朱天心)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주가에게는 시즌1부터 출연 제안이 들어왔었는데, 시즌3에서야 참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의 연출을 맡은 주톈원은 연합보와의 인터뷰에서 “2017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가 봤던 그 시대를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임을 깨달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자매들은 아버지의 일기와 편지를 꺼내 밤을 지새우며 읽었다고 합니다. 주톈신은 다큐멘터리에서 “주가는 마치 외로운 늑대 몇 마리가 억지로 한 지붕 아래 사는 것 같다”며, “현실 세계에 집중하기보다는 삶의 조각들로 자신만의 소설 세계을 만드는 데 바쁘다”고 묘사했습니다. 과연 주시닝과 류무사는 어떻게 이런 독특한 문학 집안을 만들어낸 걸까요? 부부 작가 시리즈 두 번째 시간, 오늘은 타이완 문단의 이 레전드 부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을 위해 세상과 등을 진 소년소녀 💌 1955년, 28살의 군인 주시닝과 20살의 여고 졸업생 류무사는 사랑을 위해 세상과 등을 졌습니다. 텅 빈 군인 기숙사에는 침대 하나와 포탄 상자로 만든 책상이 전부였는데요. 풍족한 삶을 포기한 소녀 류무사는 늘 삿갓을 쓰고 부엌에서 요리하며, 앳된 얼굴은 열기로 붉게 물들었지만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대립이 팽팽했던 그 시절, 두 사람의 결합은 오직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결혼하기 6년 전인 1949년, 애국청년 주시닝은 중화민국 장군 순리런(孫立人)의 호소에 응하여 군에 입대하고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식 장비와 훈련을 표방한 이른바 ‘신식 군대’는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가족도 애인도 없는 낯선 섬에서 그는 오직 문학을 통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고향 애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테니스 선수를 발견했는데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편지를 보냈고, 결국 다른 사람으로 확인되었지만, 어쩌다 그 선수의 파트너, 바로 류무사와의 편지가 이어졌습니다. 나이, 신분, 그리고 본성인과 외성인의 차이를 뛰어넘은 두 사람은 문학과 이상을 이야기하며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류무사는 신주(新竹) 명문가 출신입니다.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외성인을 몹시 싫어했고, 외성인에다 가난한 군인인 주시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가족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류무사는 라켓 하나, 합창단 악보 한 묶음만을 들고 집을 나가, 단 네 번밖에 만나지 않았던 주시닝에게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학 주가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주 뜨겁고 청춘다운 로맨스였죠. 부부가 만든 문학 살룽 🥂 출신 배경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외형적으로도 매우 대조적인 커플이었는데요. 마르고 길쭉한 주시닝은 대나무 같았고, 둥근 얼굴에 늘 웃음을 띤 류무사는 동안의 소유자였습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사랑만큼은 둘 다 똑같이 강렬했습니다. 비록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작은 집을 문학 살롱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주시닝은 전쟁과 민족, 그리고 전란 속 작은 인물들에 대한 소설을 많이 썼고, 같은 군 출신 작가인 스마중위안(司馬中原), 돤차이화(段彩華)와 함께 ‘군중 삼총사(軍中三劍客)’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항상 주가에 모여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열띤 토론도 벌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늘 여주인 류무사가 있었는데요. 그녀는 손님들을 위해 아낌없이 요리를 준비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그 따뜻한 식탁과 치열한 대화 속에서 세 딸은 문학을 꿈꾸기 시작했죠. ▲참고자료: [납량특집] 인류의 수요에서 비롯된 타이완 요괴문학! 이어 가족에 대한 열망을 담은 노래, 판메이천(潘美辰)의 ‘집이 있었으면 해(我想有個家)’을 띄워드립니다.  문학 주가. 좌로는 막내딸 주톈이(朱天衣), 류무사, 주시닝, 장녀 주톈원(朱天文), 차녀 주톈신(朱天心) - 사진: Fisfisa Media 문학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방주 ⛵ 그렇다면 류무사는 어떻게 번역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을까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일본식 교육을 받은 그녀는 학교에 남아 있던 일본어판 명작들과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삼촌들이 건네준 책들을 통해 탄탄한 일본어 실력을 쌓았습니다. 또한 학창시절부터 글쓰기에 매료되어 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혼과 출산 이후 집중력을 요하는 창작을 잠시 접고, 비교적 틈틈이 작업할 수 있는 번역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통속적인 소설만 번역하다가 점차 실력을 키워, 노벨문학상의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작품까지 번역했습니다. 주톈원은 연합보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나란히 책상에 앉아 한 사람은 작업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옆에서 조언을 건네는 모습을 “초등학생처럼 보였다”고 회상했습니다. 류무사의 번역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써내려간 또 하나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죠. 이 1999년  발표한 ‘20세기 중국어 소설 100선’에 주시닝의 《철장(鐵漿)》, 주톈원의 《세기말의 화려함(世紀末的華麗)》, 주톈신의 《고도(古都)》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에 소설가 지지(季季)는 류무사를 ‘타이완 문단의 최강 어머니’로 묘사했습니다. 세 딸을 길러내고 가족의 삶을 굳건히 떠받친 사람이 바로 그녀였죠. 류무사는 〈가정의 다양성〉에서 “집은 가쇄일수도, 감옥일수도, 낙원일수도, 인생의 피난처일수도 있다. 집은 개인의 사적 영역이자 파트너들의 방주다”라는 말을 남겼는데요. 그녀가 만든 주가는 문학이라는 바다 위에 가장 튼튼한 방주입니다. 삶의 의미 🌟 주시닝이 1998년 폐엄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류무사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갔습니다. 번역 작업을 지속하는 한편, 매일 테니스를 치고 합창단 활동을 하며, 오히려 소녀 시절의 열정으로 돌어가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톈신은 천하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류무사가 어느 날 19살 때 주시닝에게서 받은 편지를 다시 읽고 크게 울었다고 전했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서로를 맞춰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어쩌면 네가 내 앞을 달려갈 수도 있고, 내가 뒤에서 달려가 너를 앞지를 수도 있다. 너는 나를 기다리지 않고, 나도 너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게 바로 인생이죠. 한 사람이 먼저 떠나더라도, 남은 사람은 묵묵히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  2017년 류무사가 별세한 후, 두 사람은 타이베이 양민산의 꽃장 묘역에 합장되었습니다. 막내딸 주톈이(朱天衣)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는 것은 어머니가 가장 바랐던 일이자 우리 세 자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생을 함

  3. MAY 26

    [작가 부부①]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사랑, 궈숭펀(郭松棻)과 리위(李渝) 👩‍❤️‍👨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연예인 부부 현빈과 손예진, 뮤지션 부부 이효리와 이상순, 그리고 운동선수 부부 오타니 쇼헤이와 다나카 마미코.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누게 되는 경우가 많죠. 집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대부분 직장이니, 거기서 인생의 반쪽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사고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관심사와 취미까지 공유한다면, 서로에게 끌리는 것도 시간문제겠죠.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는 2012~2021년 인구통계를 분석해 동종 직업의 결혼 비율을 발표했는데요. 상위 5개 직업군을 보면, 의사 부부가 18.5%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교수와 식당 매니저(13.9%), 농업인(13.3%), 법조계 종사자(13%), 치과의사와 약사(11.1%)의 순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고학력이고 업무 강도가 높은 직업일수록, 직장 밖에서 연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합니다. 비록 이 보도에서 문학계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타이완 문단에는 생각보다 많은 ‘작가 부부’들이 존재하는데요. 지난주 ‘백색테러 기억의 날’을 맞아 소개된 소설가 부부 궈숭펀(郭松棻)과 리위(李渝)도 그렇고, 시인 샹양(向陽)과 작가 팡즈(方梓) 부부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주부터는 타이완 문학계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 부부들을 차례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만나볼 커플은 21세기 가장 뛰어난 소설가 중 두 명으로 평가받는 궈숭펀과 리위 부부입니다. 동화에 가까운 사랑 💌 “부부가 같은 일을 하면 싸우기 마련이고,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궈숭펀과 리위는 어쩌면 동화에 가까웠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에게 배우며, 서로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하던 두 사람은 그야말로 소울메이트였습니다. 얼마나 깊은 관계였냐면, 궈숭펀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나도록, 리위는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감정은 이토록 끈끈했고, 문학만큼이나 치열했습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60년대 타이완 최고 명문대 타이완대 외국어문학과에서였습니다. 졸업 후 모교에서 교편을 잡은 궈숭펀이 재학 중이던 후배 리위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1966년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대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모더니즘이 타이완 문단을 휩쓸던 당시, 개인감정, 내면세계, 인간의 어두운 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품들은 그들의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죠. 소설을 썼지만, 문장은 시적이고 여백은 과감하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이에 리위는 연합문학과의 인터뷰에서 “글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독자의 상상력이 작가 생각보다 좋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말할 필요는 없다. 소리 없는 것이 소리 있는 것보다 강할 수 있듯이, 비워둔 공간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9년 궈숭펀과 리위 부부의 가족이 두 사람의 원고와 장서를 타이완대에 증정했다. - 사진: CNA 댜오위다오는 우리땅! 🏝️ 두 사람이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시기, 타이완,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영토분쟁이 벌어졌습니다. 문제의 땅은 타이완 북동쪽, 오키나와섬 남서쪽에 있는 무인도 ‘댜오위다오(釣魚臺列嶼)’입니다. 비록 무인도지만 댜오위다오는 타이완과 중국 어민들의 어장이고, 게다가 해저에는 대규모 유전이 있어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인데요. 예로부터 중국의 일부로 여겨져 왔지만, 1971년 미국과 일본이 ‘오키나와 반환 협정’을 체결하면서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류큐 열도의 소유권은 일본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화민국 주권에 대한 침해로 간주되며, 미국에 있는 타이완 유학생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유학생들은 반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수호라는 깃발 아래 유엔 본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미국과 일본에 항의하는 한편, 중화민국 정부에도 보다 적극적인 주권 수호를 촉구했습니다. 궈숭펀과 리위 역시 운동에 참여했죠. 두 사람은 한동안 문학 창작을 멈추고, 홍콩과 타이완의 정치 잡지에 수많은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궈숭펀은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박사학위까지 포기했습니다. 운동 규모가 점점 커지자 타이완 캠퍼스에서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댜오위다오는 우리땅(保釣運動)’ 운동은 어느새 단순한 정치 이슈를 넘어서 양안 주민 전체의 민족적 관심사로 떠오랐습니다. 당시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을 대신해 유엔의 중국 대표 자리를 차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중국’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운동의 흐름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는데요. 반미, 반일의 외침은 양안 통일을 향한 열망으로 변질되었고, 중국 공산당이야말로 중국인의 민족 정신을 지킬 수 있는 정권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상을 품은 궈숭펀과 리위는 1974년 직접 중국을 방문해 저우언라이(周恩來) 국무원 총리까지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문화대혁명은 사회 전반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가난과 쇠락뿐이었습니다. 훗날 궈숭펀은 한 인터뷰에서 이 경험을 “악몽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댜오위다오 - 사진: 위키백과 다시 시작하는 문학의 길 🌼 변질된 운동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 방문은 결국 대가를 남겼습니다. 중화민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두 사람은 1987년 타이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오랜 세월을 타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창작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궈숭펀은 공산중국에 대한 환멸과 타이완의 기억을, 리위는 유학생활과 운동에 대한 반성을 써내렸습니다. 지난주 소개된 궈숭펀의 〈월인(月印)〉과 리위의 〈야금(夜琴)〉은 바로 이 시기, 즉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1980년대에 발표된 거죠. ▲관련 프로그램: [백색테러 기억의 날] 그날의 침묵, 오늘의 목소리! 백색테러 시리즈 소설 《기억을 지금으로》 이어서 두 사람이 마침내 타이완으로 돌아올 수 있는 1987년, 이 해에 발표된 한 곡을 함께 들어보시죠. 왕제(王傑)의 ‘게임 하나, 꿈 하나(一場遊戲一場夢)’입니다. 옥처럼 얌전한 아내의 글, 그리고 광란한 남편의 글 ✍️ 오랜 해외 체류와 정치 활동으로 인한 창작의 공백 때문에 두 사람의 작품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복잡하고도 치열했던 삶이 오히려 작품에 더 깊은 은유와 울림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문학 연구자 덩안치(鄧安琪)는 석사논문에서 두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전쟁 속에서 태어나 평생 유토피아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자기 내면으로 돌아가 스스로의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유토피아는 많이 달랐습니다. 리위는 1944년 중국에서 태어나 5살 때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그가 자란 곳은 타이완대와 사범대 교수들이 모여 살던 거리 ‘윈저우제(溫州街)’, 문학과 예술의 향기가 흐르던 동네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리위의 글에는 언제나 이 거리의 풍경이 깃들어 있습니다. 또한 예술을 공부한 그는 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필치로 가족과 꿈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반면, 철학을 전공한 궈숭펀이 바라본 유토피아는 늘 붕괴의 문턱에 있고, 질병, 절망, 무너지는 인간관계 같은 어두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섭니다. 따라서 문학평론가 왕더우이(王德威) 교수는 리위의 글은 “옥처럼 얌전하다(溫靜如玉)”, 궈숭펀의 작품은 “광란하고 황량하다(狂暴荒涼)”고 평가했습니다. 1938년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서 태어난 궈숭펀은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양친이 모두 화가였고, 특히 아버지는 일본 식민지 시대의 대표 화가 궈쉐후(郭雪湖)입니다. 하지만 시대는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궈쉐후의 그림은 식민지 색채가 짙다는 이유로 타이완 미술계에서 배척당했고, 결국 그는 대부분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는 궈숭펀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 아버지는 늘 부정적인 존재로 등장하고, 반대로 여성은 고난을 견

  4. MAY 19

    [백색테러 기억의 날] 그날의 침묵, 오늘의 목소리! 백색테러 시리즈 소설 《기억을 지금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최근 입법원에서 ‘기념일 및 명절 시행 조례’가 통과되면서 타이완의 법정 공휴일이 기존 11일에서 16일*로 늘어났습니다. 근로자의 휴식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공휴일 관리를 담당하는 내정부는 해당 조례에 타이완의 민주주의와 다원성을 드러내는 기념일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오늘, 5월 19일 ‘백색테러 기억의 날’입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전국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새로운 법정공휴일로는 9월 28일 ‘공자탄신일’, 10월 25일 ‘타이완광복 및 진먼 구닝터우 대첩 기념일’, 12월 25일 ‘헌법 시행기념일’, 섣달 그믐날 전날 ‘소년야(小年夜)’ 등 4일이 추가되었습니다. 5월 19일은 타이완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날인데요. 1949년 5월 19일,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백색테러’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억압에 맞선 저항도 같은 날짜에 시작되었습니다. 1986년 5월 19일, 타이베이 룽산사(龍山寺)에서 국민당에 반대하는 ‘당외인사(黨外人士)’들이 ‘5·19 녹색행동’을 벌이며 민주화를 촉구했고, 이듬해 같은 날에는 국부기념관에서 제2차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1987년 7월 15일, 국민들의 외침 속에서 38년간 지속되었던 계엄령이 마침내 해제되었으며, 타이완 민주주의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습니다. 1986년 5월 19일, 타이베이 룽산사(龍山寺)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5·19 녹색행동’ - 사진: 위키백과 백색테러 기억의 날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되새기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새롭게 지정된 기념일었습니다. 이로써 2월 28일 평화기념일, 4월 7일 표현의 자유 기념일, 7월 15일 계엄령 해제 기념일에 이어 타이완 민주화를 상징하는 네 번째 국가 기념일이 되었죠. 정치학자 우나이더(吳乃德) 교수는 기억의 사회화에는 두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작업,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해석. “현재 타이완의 이행기 정의는 아직도 두 번째 단계에서 사회적 충돌을 겪고 있다”며, “문학과 예술을 통해 보다 넓고 깊은 시선으로 역사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국가인권박물관의 천쥔홍(陳俊宏) 전 관장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분석하는데요. “역사의 비극을 민족의 부채로만 남겨두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이행기 정의의 목표”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인권박물관과 춘산(春山)출판사는 지난 2020년 《기억을 지금으로, 타이완 백색테러 소설 시리즈(讓過去成為此刻:臺灣白色恐怖小說選)》를 출판했는데요. 1947년 2·28사건부터 계염령 해제 이후 사회에 남은 상처까지, 지난 70년 동안 발표된 30편의 소설을 한데 모은 타이완 최초의 백색테러 문학 선집입니다. 백색테러 기억의 날인 오늘, 이 책을 함께 펼쳐봅시다. 기억을 지금으로 만드는 작업 ✨️ 책 제목 ‘기억을 지금으로’는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의 시 〈코로나(Corona)〉에서 따온 건데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시인은 “돌이 꽃이 필 때”, “시간의 가슴이 뛸 때”라는 시어를 통해 과거가 지금으로 되살아야 할 때가 왔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백색테러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도 마찬가지였죠. 그 순간엔 그것이 고통인지조차 알지 못했고, 이후엔 정부의 감시와 단속 때문에 말조차 꺼낼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아픔은 마음 깊숙이 묻혀 응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춘산출판사의 좡루이린(莊瑞琳) 편집장은 이러한 과정을 ‘이중적인 사망’이라고 표현하는데, 첫 번째 사망은 육체의 죽음, 두 번째 사망은 사회 기억에서 사라지는 죽음. 기억이 지워지면 그 사람의 존재 역시 사회에서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억을 지금으로 만드는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실해집니다. 편집자 후수원(胡淑雯)과 통우이거(童偉格)는 그 절박한 마음을 담아 30편의 소설을 4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1권은 정부가 반정부 인사를 대거 체포하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격동의 시대 속 타이완인의 모습을 비춥니다. 2권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들입니다. 1권이 ‘현장감’과 ‘첫 경험’을 강조한다면, 2권은 문학의 언어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다음으로 3권은 국가폭력이 개인의 몸과 정신에 남긴 상처, 그리고 “왜 동상 앞에서 경례해야 했는지”, “왜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해야 했는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타이완 사회에 남겨진 권위주의의 흔적을 짚어봅니다. 마지막 4권은 백색테러가 단지 지나간 과거가 이니라, 지금도 다른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간 백색테러 문학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함께 실어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이 역사적 상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이로 인해 4권은 편집자의 의도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권이라고 평가됩니다. 기억이 지금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관점이 아닌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어 시리즈에 수록된 작품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백색테러 피해자들에게 바치는 노래, 정이농(鄭宜農)의 ‘우리 피 속에 남아 있는(留佇咱的血內底)’을 띄워드립니다. 가수 정이농은 최근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른 후,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 조각을 무대 아래로 뿌려 관객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본성인과 외성인 눈에 비친 백색테러 ⚪️ 백색테러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1권에는 타이완 문단의 대표적인 부부 작가, 궈숭펀(郭松棻)과 리위(李渝)의 작품이 나란히 실려 있는데요. 두 사람은 삶에서도 문학에서도 서로의 짝이자 소울메이트였습니다. 작가 주유우쉰(朱宥勳)은 1권의 첫 편과 마지막 편에 실린 궈숭펀의 〈월인(月印)〉과 리위의 〈야금(夜琴)〉을 ‘커플댄스’로 비유하며, 함께 읽으면 더욱 가슴에 와닿는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두 소설 모두 아내의 관점에서 남편이 2·28사건과 이에 따른 백색테러의 소용돌이에 빠진 모습을 담고 있지만, 작가의 시선은 전혀 다른데요. 왜냐하면, 궈숭펀은 타이베이 출신의 본성인, 리위는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외성인이기 때문입니다. 1965년 궈숭펀, 리위 부부 - 사진: 국가문화기억뱅크 궈숭펀의 작품 속 일본 교육을 받은 본성인은 일본의 패배와 함께 갑작스럽게 ‘중국인’이 되어야 했는데, 그들에게 2·28사건과 백색테러는 또 하나의 전쟁처럼 느껴졌고, 꿈 많던 청춘은 그렇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리위의 작품은 이 모든 혼란을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의 연장선으로 바라봅니다. 직접 전쟁을 겪고 온 외성인인 만큼, 오히려 본성인보다 한 발 물러선 노련함을 보여주죠. 편집자가 두 작품을 실은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는 다양한 시선을 통해 보다 다채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 이 시리즈가 타이완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의 씨앗입니다. 백색테러의 이야기는 문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닿고, 마침내 모든 타이완인의 집단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이 비극을 자신의 기억처럼 받아들이는 것,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죠. 다음주는 계속해서 궈숭펀과 리위 부부의 이야기를 보다 자세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王承中,「立院三讀增『4+1』放假日 今年教師節光復節全民放假」,中央社。 2. 「政院核定5月19日為「白色恐怖記憶日」 陳揆:形塑公共記憶、反省威權歷史 邁向轉型正義新階段」,行政院。 3. 童偉格,「童偉格導讀──讓過去成為此刻:白色的賦格」,報導者。 4. 簡義明,「書評》在希望與恐懼之間:評《讓過去成為此刻–台灣白色恐怖小說選》」,OEPNBOOK閱讀誌。 5. 莊瑞琳,「在虛空中掘墓──關於「臺灣白色恐怖小說」的編選與如何閱讀《讓過去成為此刻》」,OKAPI。

  5. MAY 12

    [어머니날] 부드러운 글, 강인한 마음… 에세이의 거장 린원웨(林文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의사가 어머니에게 침대에서 일어나 활동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부쩍 연약해지셨다. 우리를 지켜주던 어머니의 대담한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직접 어머니의 몸을 닦아드렸다. 처음엔 우리 둘 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어머니는 “딸이 목욕을 시켜주다니, 민망해서 못하겠다…”라고 중얼거리셨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점점 긴장을 풀고, 조용히 내 손길에 몸을 맡기셨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도 이렇게 다정하게, 조심스럽게 나를 씻겨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노쇠한 어머니는 내 품에 안긴 아기처럼 느껴졌다. 마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한 모성애가 가득 차올랐다. 타이완 대표 에세이 작가 린원웨(林文月)의 에세이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 드리기(給母親梳頭髮)〉중 한 대목입니다. 평생 머리를 자르지 않았던 어머니가 땅에 닿을 만큼 길고 검은 머리를 빗는 모습은 린원웨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얇고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어머니의 머리칼을 부러워했고, 때로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어머니는 청춘을 딸에게 바치고 서서히 늙어갔습니다. 새까맣던 머리는 흰색으로 변했고, 풍성했던 숱도 절반도 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점점 작아진 과정에서 린원웨의 모성이 깨어났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딸이 되고, 딸은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어제가 바로 어머니날이었죠. 따슷한 봄 햇살 속, 카네이션의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5월 둘째 주 일요일. 역사학자 롄헝(連橫)의 외손녀로 잘 알려진 린원웨는 중문학자, 번역가, 평론가 등 다양한 신분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부드럽고 두터운 에세이는 오늘까지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글은 세대를 뛰어넘어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어머니날마다 다시 꺼내 읽히는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린원웨는 2023년 5월,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2주기를 앞두고, 오늘은 ‘타이완 문단의 영원한 재원’ 린원웨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마이웨이' 걷는 여자 💃 타이완 최고 명문 타이완대 중국어문학과에서 ‘린 선생’이라 하면, 누구나 린원웨를 떠올립니다. 그의 작품은 중화 문화의 깊은 뿌리, 그리고 에세이라는 장르가 가진 가장 순수한 본질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12살까지 일본인으로 살았는데요. 1933년 상하이의 일본 조계에서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았으며, 1945년 쇼와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듣고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타이완 광복 이후 가족과 함께 타이베이로 이주했고, 일본인도, 중국인도, 타이완인도 아닌 어딘가에 떠 있는 존재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어 한 마디도 못했던 그는 표기법부터 배웠고, 머릿속에서 중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해가며 공부했습니다. 오랜 노력 끝에 마침내 타이완대에 합격했습니다. 1952년의 타이완, 대학은 오직 최우수 학생들만 갈 수 있는 지식의 궁전이었습니다. 이 중 외국어문학과는 여학생들의 1순위 전공이었는데, 실제로 린원웨의 반 친구 50명 중 48명이 외국어문학과를 지원했을 정도입니다. 린원웨는 바로 그 2명의 하나였죠. 어릴 적부터 문학의 꿈을 품었던 그는 지원서의 ‘외국’ 두 글자를 지우고 ‘중국’으로 고쳐 썼습니다. 결국 타이완대에서 고전문학을 깊이 연구하여 탄탄한 학문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1958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타이완대에서 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죠. 타이완대에서 수업하던 린원웨 - 사진: 타이완대도서관 결혼과 출산을 마친 후, 1969년 정부의 장학지원을 받아 일본 유학길에 올랐는데요. 이 선택은 린원웨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토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연구하면서 교토에서의 생활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취미였지만, 점점 글쓰기에 매료되어 1971년 첫 에세이집 《교토 1년(京都一年)》을 출판했습니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이 작품은 타이완 3대 신문의 하나인 《중국시보(中國時報)》 주최의 시보문학상, 그리고 국가문예상과 타이베이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린원웨도 에세이 작가로서 정식 등단했습니다. 생활의 단상부터 여행의 기억, 음식의 이야기까지, 그는 이후 50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에세이를 쓰며 삶의 철학을 글에 담아냈습니다. 글쓰기의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과 세상을 관찰하고, 그 감정을 진지하게 써내려가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겐지 모노가타리》 역자 ✍🏽 린원웨의 일본어 실력은 단지 유학 생활이나 에세이 창작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일본 책을 번역해온 그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소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1972년 자신이 일본어로 작성한 논문을 중국어로 번역해 학술지 《중외문학(中外文學)》에 발표했는데, 그 안에 실린 《겐지 모노가타리》 일부 번역이 독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았습니다. 이후 《중외문학》출판사 책임자였던 후야오헝(胡耀恆) 타이완대 외국어문학과 교수는 린원웨에게 《겐지 모노가타리》의 번역 연재를 제안했습니다. 사실 린원웨가 정식으로 일본어를 배운 것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은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죠. 하지만 그는 끝내 해냈습니다. 5년 동안 마라톤 같은 시간을 거쳐, 이 천년 고전은 마침내 온전한 번역본으로 타이완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유명 작가 바이셴융(白先勇)은 린원웨의 글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맑고 온화하며 세상의 슬픔과 기쁨을 담백하게 풀어내고, 문장 안에는 지혜의 빛이 숨어 있다” 이어 린원웨의 또 다른 대표작을 소개하기에 앞서,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담은 곡, 함께 들어보시죠. 타이완을 대표하는 가수 저우제룬(周杰倫)이 어머니의 이름 ‘예후이메이(葉惠美)’를 따서 만든 앨범에 수록된 곡, ‘맑은 날(晴天)’을 띄워드립니다. 어머니에 대하여... 〈흰머리와 탯줄〉👩‍👧 린원웨의 작품 중 어머니를 주제로 한 또 하나의 대표작이 있습니다. 바로 1986년 발표된 〈흰머리와 탯줄(白髮與臍帶)〉인데요. 작가가 별세한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과 다섯 자녀의 탯줄을 발견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이 두 물건을 통해, 생명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깊은 감정을 담아냈습니다. 앞서 언급된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 드리기〉가 노쇠한 어머니를 바라보며 모성애를 느낀 작품이라면, 〈흰머리와 탯줄〉은 탄생과 이별을 모성애라는 따뜻한 감정으로 풀어낸 글입니다. 이 작품은 린원웨가 화장대 서랍 정리를 두려워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장녀인 그는 어머니의 옷장에서 발견된 다섯 남매의 탯줄과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을 작은 상자에 곱게 담아, 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비록 이승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지만, 어머니와 아이 간의 감정은 상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거죠. 그러나 상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던 린원웨는 오랫동안 그것을 서랍 깊숙이 넣어둔 채 꺼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어머니를 닮아갔습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성격까지도 똑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몸 안에서 어머니를 본 순간, 그는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와 딸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 즉 어머니의 생명을 더 빛나게 하려면, 딸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꺼내 먼지를 닦고, 다시 서랍에 넣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축복을 받고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55년 22살의 린원웨 - 사진: 타이완대도서관 "나는 먼저 사람이다" ✨️ “나는 먼저 사람이고, 그 다음이 여자이며, 그 다음이 작가와 번역자이다” 린원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는데요. 직업보다 먼저는 가족, 가족보다 먼저는 사람. 자신의 삶을 잘 살아야 가족을 돌볼 수 있고, 가족을 잘 챙겨야 비로소 사회적 역할에 충실 할 수 있다는 철학이죠. 린원웨의 작품은 본인처럼 담담하면서도 강인하고, 마음 깊숙이 여운을 남기는 힘

  6. MAY 5

    노동의 손끝에서 피어난 문학가 양칭추(楊青矗) 🔧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눈부신 햇살처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오늘 5월 5일은 한국의 어린이날이죠. 타이완의 어린이날은 한 달 전인 4월 4일이었지만,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아동 교육 복지 단체 ‘신이기금회(信誼基金會)’가 주최하는 ‘유아문학상’ 수상 명단이 발표되었는데요. 그림책 부문에서는 정쉬안졔(鄭萱婕) 작가가 최신작 《지구어 매뉴얼(來,我跟你說-地球人聽話指南)》로 대상을 수상했고, 아동문학 부문에서는 안타깝게도 대상 수상작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구어 매뉴얼》은 지구로 이주한 외계인들이 지구 거류증을 받기 위해 언어센터에서 지구어를 배우는 이야기인데요. 첫 수업은 “자, 들어봐봐”라는 한마디로 시작해, 외계인의 시각에서 언어의 복잡성과 재미를 드러냈습니다. 같은 말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지는 것을 위트 있게 보여줬죠. 심사위원단은 작품의 신박한 발상과 뛰어난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며, 시리즈로 발전할 가능성도 언급했습니다. 사실 이번 수상은 정쉬안졔의 다섯 번째 유아문학상 수상이지만, 대상 수상은 처음입니다. SF소설 같은 설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언어와 대화의 소중함을 전하는 동시에, 남다른 예술적 감각으로 그림책 세계를 보다 풍부하게 채웠습니다. 정쉬안졔(鄭萱婕) 작가와 그의 수상작 《지구어 매뉴얼(來,我跟你說-地球人聽話指南)》 - 사진: 신이기금회 아동 교육 하면, 언어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지난 2주 동안 소개해 드린 세계명작의 타이완어판 번역 열풍, 그리고 타이완어 그림책의 인기 역시, 언어 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습니다. 타이완어를 비롯한 토종 언어는 가정교육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집에서 중국어만 사용하게 되면 토종 언어를 접할 기회가 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가정 이외의 교육은 매우 중요하죠. 또한 대부분의 토종 언어는 오랫동안 구전으로 이어져 오다, 19-20세기에 되어야 로마자 표기법이 정착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양칭추(楊青矗) 작가인데요. 그가 1992년 편찬한 《타이완어-중국어 사전(台華雙語辭典)》은 타이완어 교육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후속 교재 출판을 위해 든든한 기초를 다졌습니다. 타이완어 교육뿐만 아니라, 양칭추는 ‘노동자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고, 타이완 사회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는 데 능합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자났지만, 오늘은 타이완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양칭추 작가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 “문학은 예술이지만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고, 사회의 불공평과 고통을 써야 한다” 양칭추는 자유시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창작 철학은 그의 성장 배경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1940년 타이완 최대 염전지대인 타이난(台南) 치구(七股)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라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년공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한문을 가르친 ‘사숙(私塾)’에서 계속 공부하고,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죠. 당시 그는 사숙에서 타이완어로 한문을 낭송했는데, 남들로부터 “저속한 언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바로 이 경험이 훗날 타이완어로 소설을 쓰게 된 씨앗이 되었습니다. 12살 때, 온 가족이 생계를 위해 가오슝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소방관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1961년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칭추는 유가족 신분으로 아버지가 근무했던 가오슝 정유공장에 입사해 노동자의 삶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1년 후 타이완의 최전방, 외딴섬 진먼(金門)에서 군 복무를 하며, 여유시간을 틈타 책을 읽고 인생의 첫 에세이를 완성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정유공장에서 계속 일하면서 노동자와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1969년 대표작 〈재실남(在室男)〉을 발표해 문단을 깜짝 놀랍게 했습니다.  〈재실남〉은 양복점 견습생인 18살 소년과 술집에서 일하는 21살 여성이 얽히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부유한 남성에게 아이를 낳아 돈을 벌려는 여자의 절실함, 그리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년의 갈등. 양칭추는 타이완어로 서민들의 희노애락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그의 소설은 생활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에, 더욱 진한 현실감을 품고 있죠. 하지만 이처럼 타이완어 대사를 대거 소설에 담는 것은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요. 당시 문학계를 주도했던 모더니즘과 달리,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은 저급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칭추는 끝까지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학의 힘을 믿었습니다. 〈재실남〉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경제성장률이 10%가 넘은 1960-70년대, 양칭추의 눈에 비친 진정한 영웅은 이름 없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어 노동자의 슬픔을 그대로 쓰는 동시에,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위해 싸웠습니다. 소설이 발표되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정부 인사들까지 주목했는데요. 공장 측은 양칭추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도록 월급을 올려주거나 승진을 제안했지만, 어떤 것도 그의 창작 열정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이어 노동자의 마음을 노래한 예치톈(葉啟田)의 ‘노력해야 성공한다(愛拼才會贏)’를 함께 들어보시죠. 노동운동자에서 사회운동가로 ✨️ 노동자의 처우를 보다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양칭추는 1978년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는데요. 그는 국민당을 맞서는 ‘당외세력(黨外勢力)’의 핵심 인물 황신제(黃信介)와 손잡고 선거운동에 나섰습니다. 타이완 곳곳을 돌며 연설했고, 뜨거운 지지를 받았죠. 하지만 미국과 중화민국의 단교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징궈(蔣經國) 총통은 선거를 중단시켰습니다. 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졌다면, 양칭추는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그는 1979년 당외인사들이 설립한 《메이리다오 잡지(美麗島雜誌)》 가오슝 지사의 주임을 맡았습니다. 같은 해 연말, 잡지사가 주최한 민주시위가 경찰과 충돌하면서 잡지사 관계자들이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타이베이 출장 중이었던 양칭추는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체포되었고, 결국 징역 4년 2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음에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물론, 소설 창작도 계속했습니다. 검열을 통과해야 했던 이 글들은 교도관들마저 감동시켰고, 출소 후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세계 인권의 날] '포르모사의 봄'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 1987년 계엄령의 해제와 함께 타이완은 드디어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토종 언어의 부흥운동도 왕성한 기세로 시작했습니다. 양칭추는 이 기회를 잡아 타이완어 사전 편찬에 착수해 6년의 긴 세월 끝에 《타이완어-중국어 사전》을 완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표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글자 시스템까지 만들어 거의 전 재산을 잃었지만, 이를 시작으로 고체시와 불경 번역 등 타이완어 출판에 헌신했습니다.  문단에서 묵묵히 노력해온 양칭추는 2004년 총통부 자문으로 임명되었고, 2009년 70세의 나이로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메이리다오 행진곡(美麗島進行曲)》를 발표했습니다. 노동자 권익 운동부터 민주화운동, 타이완어 부흥 운동까지, 평생을 타이완에 바쳤습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계급 차별은 완화되고, 독재정권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도 점점 걷혀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참 행복하죠. 그럼, 더 나은 미래를 꿈구며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陳彥明,「報導》第37屆信誼幼兒文學獎揭曉:年年有成,碩果累累!!」,OPENBOOK。 2. 李欣如,「台灣文學苑─工人作家楊青矗 寫你最熟悉的故事」,國立公共資訊圖書館。 3. 《在室男》,楊青矗。 4. 吳聲賢,「勞工之聲-用文字弭平階級所帶來的差距-楊青矗」,新台灣和平基金會。

  7. APR 28

    [세계 책의 날] 그림책이 전하는 ‘독서의 엔도르핀’ 🧠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따스한 햇살이 반기는 4월 마지막 주입니다. 벌써 2025년도 3분의 1이 지나갔다니, 시간이 참 빠르죠. 지난주 수요일 4월 23일, 청취자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책을 좋아하신다면, 이 날을 놓치지 않으셨을 텐데요. 바로 ‘세계 책의 날’이었습니다. 유네스코가 1995년 제정한 이 날은 독서와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뜻깊은 기념일입니다. 4월 23일을 택한 이유는 이 날이 여러 문호들의 생일 또는 기일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돈 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이 날에 별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이 날을 ‘성 게오르기우스의 날’로 기념하기도 하는데요. 전설에 따르면, 성 게오르기우스가 4월 23일 공주를 잡아먹으려던 거대한 용을 물리친 후, 용의 피가 스며든 잔디밭에서 장미꽃이 피어났는데, 성인은 장미꽃을 공주에게 선물했고, 공주는 용기와 지혜를 상징하는 책으로 답례했다고 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날에 책과 장미꽃을 주고받으며, 지식과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참 낭만적이죠. 책과 장미꽃의 축제 '성 게오르기우스의 날' - 사진: lastampa 이 날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는 2000년부터 해마다 ‘세계 책의 수도’를 선정하고 있고, 올해(2025)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2026년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가 그 영광을 안았습니다. 선정되려면 구체적인 독서 진흥 계획을 유네스코에 제출해야 하는데, 리우를 예로 들면, 리우시정부는 시립도서관의 업그레이드, 문학 대회와 전시회의 확대 개최 등을 약속했습니다. 이 같은 책 축제에는 타이완이 빠질 수 없죠. 타이완 문화부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100권의 책을 정선해 ‘독서의 엔도르핀(閱讀˙腦內飛)’ 특별 이벤트를 개최했습니다. 지난 19일부터 27일까지 타이완당대문화실험장(C-Lab)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는 도서 전시 외에도 그림책 음악회, 연극, 뮤지컬, 워크숍, 북 마켓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졌습니다. 오늘은 책 한 권이 전해주는 울림, 그리고 세계 책의 날이 가진 따뜻한 기운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독서의 엔도르핀(閱讀˙腦內飛)' 행사에서 펼쳐진 공연 - 사진: CNA 타이완어로 재해석한 그림책 연극 🎭️ 이번 행사에서 타이완어로 진행된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이 중 그림책 《증조할머니, 안녕(阿祖,再見)》을 바탕으로 한 타이완어 연극이 특히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진한 시선으로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며, 타이완의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아이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별의 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명이라는 가치를 배워가는 이야기입니다. 향을 피우고, 연꽃을 접고, 경서를 읽고, 금종이를 태우는 등 장례의식이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증조할머니는 어디로 간 거예요?”, “어땧게 천국에 가요?”, “정말로 다시는 못 보는 거예요?” 어른들은 슬픔을 안고 장례식을 치르지만, 아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달래고, 죽음을 배워갑니다. 《증조할머니, 안녕》은 작가 린보팅(林柏廷)이 아내 가족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인데요. 아내의 외할머니는 무려 아이가 10명이나 있는 대가족의 중심이었고, 식구가 많지만 모두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작가는 외부인의 눈으로 이 가족의 유대를 지켜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 경험을 그림책으로 구현한 거죠. 그림책은 2021년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은 부모들이 작가를 만나기 위해 신간발표회 현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이에 린보팅은 보커라이(博客來)와의 인터뷰에서 “독자와 연결되는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주제를 어떻게 잡느냐보다,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가 먼저 감동하지 않으면 독자도 감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작가의 진심이 묻어나는 말이죠. 그렇다면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증조할머니, 안녕》은 어떴을까요? 타이완어로 재해석된 공연에서 배우들은 원작의 감동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옮겨내어 문학과 예술이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을 창조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공연을 본 관객은 PT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감을 공유했습니다. “사람들은 사망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타이완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공연을 즐겼게 봤다”고 말했습니다. 타이완어를 비롯한 토종 언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이 작품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공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삶과 죽음, 이별과 기억,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는 따뜻한 언어. 《증조할머니, 안녕》은 세계 책의 날에 어울리는 작품이죠. 문학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음악회도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는데요. 현악 사중주, 목관 오중주, 그리고 30인조 현악단이 번갈아 무대에 올라 배우들과 함께 타이완어 그림책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냈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림책 속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공연이었습니다. 음악회 현장의 분위기를 이어가며 타이완어 동요 한 곡을 함께 들어보시죠. 행사 개막식의 음악회 - 사진: 문화부  타이완 문화계의 4번째 금상 '금회장(金繪獎)' 🖌️ 지난 19일 행사 개막식에는 리위안(李遠) 문화부 장관도 참석했는데요. 리 장관은 오는 9월 타이중에서 열릴 제1회 ‘타이완 국제 아동‧청소년 도서전’을 소개하며, 그림책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시상식 ‘금회장(金繪獎)’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전했습니다. 국민들의 독서량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의 독서 습관부터 키우는 게 효과적인 시작이죠. 따라서 문화부는 올해부터 매년 한 도시를 선정해, 아이를 위한 전문 도서전을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타이베이국제도서전과 달리, 지방의 개성과 문화를 담은 새로운 독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지금, 이미지가 글을 넘어 콘텐츠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그림책은 문학계의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리 장관이 언급한 금회장이 내년에 성사된다면 타이완 문화계에는 기존의 도서출판상 ‘금정장(金鼎獎)’, 문학상 ‘금전장(金典獎)’, 만화대상 ‘금만장(金漫獎)’에 이은 네 번째 ‘금상’이 생기게 되는 셈입니다. 사실 문화부는 이미 지난해 ‘신예 그림책 작가 장려 프로젝트’를 통해 30명의 작가를 선발했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1년간의 훈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금회장은 이들에게 중요한 데뷔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죠.  행사 개막식에 참석한 리위안 문화부 장관 - 사진: 문화부 타이완 정부는 왜 이렇게까지 그림책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을까요? 이에 리 부장은 “그림책은 문학보다 번역이 쉬워, 만화처럼 글로벌 시장에 보다 빠르게 진출할 수 있는 장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금회장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그림책 전문 교육기관도 설립해 산업 기반을 다질 예정”이라며, “이 모델이 성공한다면 다른 문학 장르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상자에게는 차기작 창작을 위한 60만 뉴타이완달러(한화 약 2,626만 원)의 지원금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세계 책의 날, 그 의미가 더욱 풍성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죠. 타이완 그림책은 지금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있습니다. 산업계의 노력과 정부의 뒷받침이 더해진다면, 이 작은 책들이 타이완 문화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이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 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2025 世界閱讀日。 2. 「教科書組織指定拉巴特為2026年世界圖書之都」,UNESCO。 3. 李采珊、沈志明,「響應4/23世界閱讀日 文化部推9天跨界活動」,公視新聞網。 4. 王寶兒,「迎接世界閱讀日 李遠盼積極爭取辦理金繪獎」,中央社。 5. 林柏廷,《阿祖,再見》。 6. 吳文君,「不被既定規矩限制,就是開啟『兒童觀點』的第一步。」──專訪繪本

  8. 2024-09-21

    天下沒有不散的筵席_천하몰유불산적연석, 後會有期_후회유기

    아리송한 표현 해결사  -2024.09.21. -어떠한 만남이든 언젠가는 헤어지게 된다는 의미의 ‘천하몰유불산적연석’과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임을 기약하는 의미의 ‘후회유기’.–   天下沒有不散的筵席 천하몰유불산적연석-톈쌰메이요우부싼더옌시 뜻: 세상만사가 무상하여 사람은 만나면 헤어질 날이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의 모든 만남과 더불어 헤어짐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쓰임. 출처: 명ㆍ붕몽룡(馮夢龍, 생몰: 1574년-1646년)  *출처는 민간전설ㆍ역사전기ㆍ필기소설 등 이야기를 담아 당시의 사회 상황을 반영하였다는 ‘목탁을 울려 세상을 깨우치게 한다’는 라는 의미를 서적 명칭 으로 쓴 책 내용에서 유래하였다고 봄. *천하무불산지연석,취합상일천년,소부득유개분개일자.天下無不散之筵席,就合上一千年,少不得有個分開日子。   발음: 주음부호/한어병음/한국어(괄호 안은 성조) 天:ㄊㄧㄢ/ tiān/ 톈(1) 下:ㄒㄧㄚˋ / xià/ 쌰(4) 沒:ㄇㄟˊ/ méi/ 메이(2) 有:ㄧㄡˇ/ yǒu/ 요우(3) 不:ㄅㄨˋ/ bù/ 부(4) 散:ㄙㄢˋ / sàn/ 싼(4) 的:˙ㄉㄜ/ de/ 더(0) 筵:ㄧㄢˊ/ yán/ 옌(2) 席:ㄒㄧˊ/ xí/ 시(2)   後會有期 후회유기-허우훼이요우치 뜻: 재회할 때가 또 있다는 말로 나중에 다시 또 만나자는 기약하는 말로도 쓰임. 출처:  남송~원(南宋~元).교화부(喬夢符, 생몰: 1280년-1345년)   이 밖에 원나라 시대 소설가 나관중(羅貫中, 생몰: 약 1330년-약 1400년)의 에서도 ‘후회유기’라는 말이 나온다.   발음: 주음부호/한어병음/한국어(괄호 안은 성조) 後:ㄏㄡˋ/  hòu/ 허우(4) 會:ㄏㄨㄟˋ/ huì/ 훼이(4) 有:ㄧㄡˇ/ yǒu/ 요우(3) 期:ㄑㄧˊ/ qí/ 치(2)   오늘의 한 마디(괄호 안은 한국어 발음): 雖然今天別離,但相信將來後會有期。 (쉐이란 진톈 뼤리, 딴샹신 쟝라이 허우훼이요우치) 뜻: 오늘은 비록 헤어지지만 나중에 다시 또 만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雖然쉐이란 今天진톈 別離뼤리,但相信딴샹신 將來쟝라이 後會有期허우훼이요우치。) 진행: 뤼쟈잉, 노혁이, 백조미 해설: jennifer pai 알리는 말씀: 여가영, 노력이 두 작가님은 사업으로 바빠 앞으로 고정 출연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9월21일) 프로그램을 마지막으로 가 종료되며 다음주(9월28일)부터 매주 토요일 동일 시간대에는 와 을 비정기적으로 번갈어가며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를 애청해 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백조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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