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눈부신 햇살처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오늘 5월 5일은 한국의 어린이날이죠. 타이완의 어린이날은 한 달 전인 4월 4일이었지만,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아동 교육 복지 단체 ‘신이기금회(信誼基金會)’가 주최하는 ‘유아문학상’ 수상 명단이 발표되었는데요. 그림책 부문에서는 정쉬안졔(鄭萱婕) 작가가 최신작 《지구어 매뉴얼(來,我跟你說-地球人聽話指南)》로 대상을 수상했고, 아동문학 부문에서는 안타깝게도 대상 수상작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구어 매뉴얼》은 지구로 이주한 외계인들이 지구 거류증을 받기 위해 언어센터에서 지구어를 배우는 이야기인데요. 첫 수업은 “자, 들어봐봐”라는 한마디로 시작해, 외계인의 시각에서 언어의 복잡성과 재미를 드러냈습니다. 같은 말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지는 것을 위트 있게 보여줬죠. 심사위원단은 작품의 신박한 발상과 뛰어난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며, 시리즈로 발전할 가능성도 언급했습니다. 사실 이번 수상은 정쉬안졔의 다섯 번째 유아문학상 수상이지만, 대상 수상은 처음입니다. SF소설 같은 설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언어와 대화의 소중함을 전하는 동시에, 남다른 예술적 감각으로 그림책 세계를 보다 풍부하게 채웠습니다.
정쉬안졔(鄭萱婕) 작가와 그의 수상작 《지구어 매뉴얼(來,我跟你說-地球人聽話指南)》 - 사진: 신이기금회
아동 교육 하면, 언어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지난 2주 동안 소개해 드린 세계명작의 타이완어판 번역 열풍, 그리고 타이완어 그림책의 인기 역시, 언어 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습니다. 타이완어를 비롯한 토종 언어는 가정교육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집에서 중국어만 사용하게 되면 토종 언어를 접할 기회가 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가정 이외의 교육은 매우 중요하죠. 또한 대부분의 토종 언어는 오랫동안 구전으로 이어져 오다, 19-20세기에 되어야 로마자 표기법이 정착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양칭추(楊青矗) 작가인데요. 그가 1992년 편찬한 《타이완어-중국어 사전(台華雙語辭典)》은 타이완어 교육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후속 교재 출판을 위해 든든한 기초를 다졌습니다. 타이완어 교육뿐만 아니라, 양칭추는 ‘노동자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고, 타이완 사회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는 데 능합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자났지만, 오늘은 타이완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양칭추 작가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
“문학은 예술이지만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고, 사회의 불공평과 고통을 써야 한다” 양칭추는 자유시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창작 철학은 그의 성장 배경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1940년 타이완 최대 염전지대인 타이난(台南) 치구(七股)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라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년공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한문을 가르친 ‘사숙(私塾)’에서 계속 공부하고,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죠. 당시 그는 사숙에서 타이완어로 한문을 낭송했는데, 남들로부터 “저속한 언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바로 이 경험이 훗날 타이완어로 소설을 쓰게 된 씨앗이 되었습니다.
12살 때, 온 가족이 생계를 위해 가오슝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소방관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1961년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칭추는 유가족 신분으로 아버지가 근무했던 가오슝 정유공장에 입사해 노동자의 삶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1년 후 타이완의 최전방, 외딴섬 진먼(金門)에서 군 복무를 하며, 여유시간을 틈타 책을 읽고 인생의 첫 에세이를 완성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정유공장에서 계속 일하면서 노동자와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1969년 대표작 〈재실남(在室男)〉을 발표해 문단을 깜짝 놀랍게 했습니다.
〈재실남〉은 양복점 견습생인 18살 소년과 술집에서 일하는 21살 여성이 얽히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부유한 남성에게 아이를 낳아 돈을 벌려는 여자의 절실함, 그리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년의 갈등. 양칭추는 타이완어로 서민들의 희노애락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그의 소설은 생활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에, 더욱 진한 현실감을 품고 있죠. 하지만 이처럼 타이완어 대사를 대거 소설에 담는 것은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요. 당시 문학계를 주도했던 모더니즘과 달리,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은 저급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칭추는 끝까지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학의 힘을 믿었습니다.
〈재실남〉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경제성장률이 10%가 넘은 1960-70년대, 양칭추의 눈에 비친 진정한 영웅은 이름 없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어 노동자의 슬픔을 그대로 쓰는 동시에,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위해 싸웠습니다. 소설이 발표되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정부 인사들까지 주목했는데요. 공장 측은 양칭추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도록 월급을 올려주거나 승진을 제안했지만, 어떤 것도 그의 창작 열정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이어 노동자의 마음을 노래한 예치톈(葉啟田)의 ‘노력해야 성공한다(愛拼才會贏)’를 함께 들어보시죠.
노동운동자에서 사회운동가로 ✨️
노동자의 처우를 보다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양칭추는 1978년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는데요. 그는 국민당을 맞서는 ‘당외세력(黨外勢力)’의 핵심 인물 황신제(黃信介)와 손잡고 선거운동에 나섰습니다. 타이완 곳곳을 돌며 연설했고, 뜨거운 지지를 받았죠. 하지만 미국과 중화민국의 단교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징궈(蔣經國) 총통은 선거를 중단시켰습니다. 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졌다면, 양칭추는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그는 1979년 당외인사들이 설립한 《메이리다오 잡지(美麗島雜誌)》 가오슝 지사의 주임을 맡았습니다. 같은 해 연말, 잡지사가 주최한 민주시위가 경찰과 충돌하면서 잡지사 관계자들이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타이베이 출장 중이었던 양칭추는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체포되었고, 결국 징역 4년 2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음에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물론, 소설 창작도 계속했습니다. 검열을 통과해야 했던 이 글들은 교도관들마저 감동시켰고, 출소 후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습니다.
▲관련 프로그램:
[세계 인권의 날] '포르모사의 봄'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
1987년 계엄령의 해제와 함께 타이완은 드디어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토종 언어의 부흥운동도 왕성한 기세로 시작했습니다. 양칭추는 이 기회를 잡아 타이완어 사전 편찬에 착수해 6년의 긴 세월 끝에 《타이완어-중국어 사전》을 완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표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글자 시스템까지 만들어 거의 전 재산을 잃었지만, 이를 시작으로 고체시와 불경 번역 등 타이완어 출판에 헌신했습니다.
문단에서 묵묵히 노력해온 양칭추는 2004년 총통부 자문으로 임명되었고, 2009년 70세의 나이로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메이리다오 행진곡(美麗島進行曲)》를 발표했습니다. 노동자 권익 운동부터 민주화운동, 타이완어 부흥 운동까지, 평생을 타이완에 바쳤습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계급 차별은 완화되고, 독재정권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도 점점 걷혀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참 행복하죠. 그럼, 더 나은 미래를 꿈구며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陳彥明,「報導》第37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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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quencyUpdated daily
- Published5 May 2025 at 10:30 UTC
- Season1
- Episode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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