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최근 입법원에서 ‘기념일 및 명절 시행 조례’가 통과되면서 타이완의 법정 공휴일이 기존 11일에서 16일*로 늘어났습니다. 근로자의 휴식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공휴일 관리를 담당하는 내정부는 해당 조례에 타이완의 민주주의와 다원성을 드러내는 기념일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오늘, 5월 19일 ‘백색테러 기억의 날’입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전국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새로운 법정공휴일로는 9월 28일 ‘공자탄신일’, 10월 25일 ‘타이완광복 및 진먼 구닝터우 대첩 기념일’, 12월 25일 ‘헌법 시행기념일’, 섣달 그믐날 전날 ‘소년야(小年夜)’ 등 4일이 추가되었습니다.
5월 19일은 타이완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 날인데요. 1949년 5월 19일,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백색테러’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억압에 맞선 저항도 같은 날짜에 시작되었습니다. 1986년 5월 19일, 타이베이 룽산사(龍山寺)에서 국민당에 반대하는 ‘당외인사(黨外人士)’들이 ‘5·19 녹색행동’을 벌이며 민주화를 촉구했고, 이듬해 같은 날에는 국부기념관에서 제2차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1987년 7월 15일, 국민들의 외침 속에서 38년간 지속되었던 계엄령이 마침내 해제되었으며, 타이완 민주주의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습니다.
1986년 5월 19일, 타이베이 룽산사(龍山寺)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5·19 녹색행동’ - 사진: 위키백과
백색테러 기억의 날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되새기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새롭게 지정된 기념일었습니다. 이로써 2월 28일 평화기념일, 4월 7일 표현의 자유 기념일, 7월 15일 계엄령 해제 기념일에 이어 타이완 민주화를 상징하는 네 번째 국가 기념일이 되었죠.
정치학자 우나이더(吳乃德) 교수는 기억의 사회화에는 두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작업,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해석. “현재 타이완의 이행기 정의는 아직도 두 번째 단계에서 사회적 충돌을 겪고 있다”며, “문학과 예술을 통해 보다 넓고 깊은 시선으로 역사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국가인권박물관의 천쥔홍(陳俊宏) 전 관장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분석하는데요. “역사의 비극을 민족의 부채로만 남겨두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이행기 정의의 목표”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인권박물관과 춘산(春山)출판사는 지난 2020년 《기억을 지금으로, 타이완 백색테러 소설 시리즈(讓過去成為此刻:臺灣白色恐怖小說選)》를 출판했는데요. 1947년 2·28사건부터 계염령 해제 이후 사회에 남은 상처까지, 지난 70년 동안 발표된 30편의 소설을 한데 모은 타이완 최초의 백색테러 문학 선집입니다. 백색테러 기억의 날인 오늘, 이 책을 함께 펼쳐봅시다.
기억을 지금으로 만드는 작업 ✨️
책 제목 ‘기억을 지금으로’는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의 시 〈코로나(Corona)〉에서 따온 건데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시인은 “돌이 꽃이 필 때”, “시간의 가슴이 뛸 때”라는 시어를 통해 과거가 지금으로 되살아야 할 때가 왔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백색테러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도 마찬가지였죠. 그 순간엔 그것이 고통인지조차 알지 못했고, 이후엔 정부의 감시와 단속 때문에 말조차 꺼낼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아픔은 마음 깊숙이 묻혀 응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춘산출판사의 좡루이린(莊瑞琳) 편집장은 이러한 과정을 ‘이중적인 사망’이라고 표현하는데, 첫 번째 사망은 육체의 죽음, 두 번째 사망은 사회 기억에서 사라지는 죽음. 기억이 지워지면 그 사람의 존재 역시 사회에서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억을 지금으로 만드는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실해집니다.
편집자 후수원(胡淑雯)과 통우이거(童偉格)는 그 절박한 마음을 담아 30편의 소설을 4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1권은 정부가 반정부 인사를 대거 체포하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격동의 시대 속 타이완인의 모습을 비춥니다. 2권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들입니다. 1권이 ‘현장감’과 ‘첫 경험’을 강조한다면, 2권은 문학의 언어로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다음으로 3권은 국가폭력이 개인의 몸과 정신에 남긴 상처, 그리고 “왜 동상 앞에서 경례해야 했는지”, “왜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해야 했는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타이완 사회에 남겨진 권위주의의 흔적을 짚어봅니다. 마지막 4권은 백색테러가 단지 지나간 과거가 이니라, 지금도 다른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간 백색테러 문학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함께 실어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이 역사적 상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이로 인해 4권은 편집자의 의도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권이라고 평가됩니다. 기억이 지금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관점이 아닌 다양한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어 시리즈에 수록된 작품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백색테러 피해자들에게 바치는 노래, 정이농(鄭宜農)의 ‘우리 피 속에 남아 있는(留佇咱的血內底)’을 띄워드립니다. 가수 정이농은 최근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른 후,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 조각을 무대 아래로 뿌려 관객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본성인과 외성인 눈에 비친 백색테러 ⚪️
백색테러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1권에는 타이완 문단의 대표적인 부부 작가, 궈숭펀(郭松棻)과 리위(李渝)의 작품이 나란히 실려 있는데요. 두 사람은 삶에서도 문학에서도 서로의 짝이자 소울메이트였습니다. 작가 주유우쉰(朱宥勳)은 1권의 첫 편과 마지막 편에 실린 궈숭펀의 〈월인(月印)〉과 리위의 〈야금(夜琴)〉을 ‘커플댄스’로 비유하며, 함께 읽으면 더욱 가슴에 와닿는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두 소설 모두 아내의 관점에서 남편이 2·28사건과 이에 따른 백색테러의 소용돌이에 빠진 모습을 담고 있지만, 작가의 시선은 전혀 다른데요. 왜냐하면, 궈숭펀은 타이베이 출신의 본성인, 리위는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외성인이기 때문입니다.
1965년 궈숭펀, 리위 부부 - 사진: 국가문화기억뱅크
궈숭펀의 작품 속 일본 교육을 받은 본성인은 일본의 패배와 함께 갑작스럽게 ‘중국인’이 되어야 했는데, 그들에게 2·28사건과 백색테러는 또 하나의 전쟁처럼 느껴졌고, 꿈 많던 청춘은 그렇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리위의 작품은 이 모든 혼란을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의 연장선으로 바라봅니다. 직접 전쟁을 겪고 온 외성인인 만큼, 오히려 본성인보다 한 발 물러선 노련함을 보여주죠. 편집자가 두 작품을 실은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즉,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는 다양한 시선을 통해 보다 다채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
이 시리즈가 타이완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의 씨앗입니다. 백색테러의 이야기는 문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닿고, 마침내 모든 타이완인의 집단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이 비극을 자신의 기억처럼 받아들이는 것,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죠.
다음주는 계속해서 궈숭펀과 리위 부부의 이야기를 보다 자세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王承中,「立院三讀增『4+1』放假日 今年教師節光復節全民放假」,中央社。
2. 「政院核定5月19日為「白色恐怖記憶日」 陳揆:形塑公共記憶、反省威權歷史 邁向轉型正義新階段」,行政院。
3.
Informations
- Émission
- FréquenceTous les jours
- Publiée19 mai 2025 à 10:37 UTC
- Saison1
- Épisode189
- ClassificationTous publ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