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따스한 햇살이 반기는 4월 마지막 주입니다. 벌써 2025년도 3분의 1이 지나갔다니, 시간이 참 빠르죠. 지난주 수요일 4월 23일, 청취자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책을 좋아하신다면, 이 날을 놓치지 않으셨을 텐데요. 바로 ‘세계 책의 날’이었습니다. 유네스코가 1995년 제정한 이 날은 독서와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뜻깊은 기념일입니다. 4월 23일을 택한 이유는 이 날이 여러 문호들의 생일 또는 기일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돈 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이 날에 별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이 날을 ‘성 게오르기우스의 날’로 기념하기도 하는데요. 전설에 따르면, 성 게오르기우스가 4월 23일 공주를 잡아먹으려던 거대한 용을 물리친 후, 용의 피가 스며든 잔디밭에서 장미꽃이 피어났는데, 성인은 장미꽃을 공주에게 선물했고, 공주는 용기와 지혜를 상징하는 책으로 답례했다고 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날에 책과 장미꽃을 주고받으며, 지식과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참 낭만적이죠.
책과 장미꽃의 축제 '성 게오르기우스의 날' - 사진: lastampa
이 날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는 2000년부터 해마다 ‘세계 책의 수도’를 선정하고 있고, 올해(2025)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2026년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가 그 영광을 안았습니다. 선정되려면 구체적인 독서 진흥 계획을 유네스코에 제출해야 하는데, 리우를 예로 들면, 리우시정부는 시립도서관의 업그레이드, 문학 대회와 전시회의 확대 개최 등을 약속했습니다.
이 같은 책 축제에는 타이완이 빠질 수 없죠. 타이완 문화부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100권의 책을 정선해 ‘독서의 엔도르핀(閱讀˙腦內飛)’ 특별 이벤트를 개최했습니다. 지난 19일부터 27일까지 타이완당대문화실험장(C-Lab)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는 도서 전시 외에도 그림책 음악회, 연극, 뮤지컬, 워크숍, 북 마켓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졌습니다. 오늘은 책 한 권이 전해주는 울림, 그리고 세계 책의 날이 가진 따뜻한 기운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독서의 엔도르핀(閱讀˙腦內飛)' 행사에서 펼쳐진 공연 - 사진: CNA
타이완어로 재해석한 그림책 연극 🎭️
이번 행사에서 타이완어로 진행된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이 중 그림책 《증조할머니, 안녕(阿祖,再見)》을 바탕으로 한 타이완어 연극이 특히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진한 시선으로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며, 타이완의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아이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별의 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명이라는 가치를 배워가는 이야기입니다. 향을 피우고, 연꽃을 접고, 경서를 읽고, 금종이를 태우는 등 장례의식이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증조할머니는 어디로 간 거예요?”, “어땧게 천국에 가요?”, “정말로 다시는 못 보는 거예요?” 어른들은 슬픔을 안고 장례식을 치르지만, 아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달래고, 죽음을 배워갑니다.
《증조할머니, 안녕》은 작가 린보팅(林柏廷)이 아내 가족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인데요. 아내의 외할머니는 무려 아이가 10명이나 있는 대가족의 중심이었고, 식구가 많지만 모두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작가는 외부인의 눈으로 이 가족의 유대를 지켜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 경험을 그림책으로 구현한 거죠. 그림책은 2021년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은 부모들이 작가를 만나기 위해 신간발표회 현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이에 린보팅은 보커라이(博客來)와의 인터뷰에서 “독자와 연결되는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주제를 어떻게 잡느냐보다,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가 먼저 감동하지 않으면 독자도 감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작가의 진심이 묻어나는 말이죠.
그렇다면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증조할머니, 안녕》은 어떴을까요? 타이완어로 재해석된 공연에서 배우들은 원작의 감동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옮겨내어 문학과 예술이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을 창조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공연을 본 관객은 PT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감을 공유했습니다. “사람들은 사망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타이완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공연을 즐겼게 봤다”고 말했습니다. 타이완어를 비롯한 토종 언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이 작품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공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삶과 죽음, 이별과 기억,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는 따뜻한 언어. 《증조할머니, 안녕》은 세계 책의 날에 어울리는 작품이죠.
문학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음악회도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는데요. 현악 사중주, 목관 오중주, 그리고 30인조 현악단이 번갈아 무대에 올라 배우들과 함께 타이완어 그림책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냈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림책 속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공연이었습니다. 음악회 현장의 분위기를 이어가며 타이완어 동요 한 곡을 함께 들어보시죠.
행사 개막식의 음악회 - 사진: 문화부
타이완 문화계의 4번째 금상 '금회장(金繪獎)' 🖌️
지난 19일 행사 개막식에는 리위안(李遠) 문화부 장관도 참석했는데요. 리 장관은 오는 9월 타이중에서 열릴 제1회 ‘타이완 국제 아동‧청소년 도서전’을 소개하며, 그림책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시상식 ‘금회장(金繪獎)’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전했습니다. 국민들의 독서량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의 독서 습관부터 키우는 게 효과적인 시작이죠. 따라서 문화부는 올해부터 매년 한 도시를 선정해, 아이를 위한 전문 도서전을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타이베이국제도서전과 달리, 지방의 개성과 문화를 담은 새로운 독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지금, 이미지가 글을 넘어 콘텐츠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그림책은 문학계의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리 장관이 언급한 금회장이 내년에 성사된다면 타이완 문화계에는 기존의 도서출판상 ‘금정장(金鼎獎)’, 문학상 ‘금전장(金典獎)’, 만화대상 ‘금만장(金漫獎)’에 이은 네 번째 ‘금상’이 생기게 되는 셈입니다. 사실 문화부는 이미 지난해 ‘신예 그림책 작가 장려 프로젝트’를 통해 30명의 작가를 선발했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1년간의 훈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금회장은 이들에게 중요한 데뷔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죠.
행사 개막식에 참석한 리위안 문화부 장관 - 사진: 문화부
타이완 정부는 왜 이렇게까지 그림책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을까요? 이에 리 부장은 “그림책은 문학보다 번역이 쉬워, 만화처럼 글로벌 시장에 보다 빠르게 진출할 수 있는 장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금회장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그림책 전문 교육기관도 설립해 산업 기반을 다질 예정”이라며, “이 모델이 성공한다면 다른 문학 장르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상자에게는 차기작 창작을 위한 60만 뉴타이완달러(한화 약 2,626만 원)의 지원금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세계 책의 날, 그 의미가 더욱 풍성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죠. 타이완 그림책은 지금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있습니다. 산업계의 노력과 정부의 뒷받침이 더해진다면, 이 작은 책들이 타이완 문화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이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2025 世界閱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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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quencyUpdated daily
- Published28 April 2025 at 10:37 UTC
- Season1
- Episode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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