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연예인 부부 현빈과 손예진, 뮤지션 부부 이효리와 이상순, 그리고 운동선수 부부 오타니 쇼헤이와 다나카 마미코.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누게 되는 경우가 많죠. 집 다음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대부분 직장이니, 거기서 인생의 반쪽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사고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관심사와 취미까지 공유한다면, 서로에게 끌리는 것도 시간문제겠죠.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는 2012~2021년 인구통계를 분석해 동종 직업의 결혼 비율을 발표했는데요. 상위 5개 직업군을 보면, 의사 부부가 18.5%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교수와 식당 매니저(13.9%), 농업인(13.3%), 법조계 종사자(13%), 치과의사와 약사(11.1%)의 순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고학력이고 업무 강도가 높은 직업일수록, 직장 밖에서 연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합니다.
비록 이 보도에서 문학계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타이완 문단에는 생각보다 많은 ‘작가 부부’들이 존재하는데요. 지난주 ‘백색테러 기억의 날’을 맞아 소개된 소설가 부부 궈숭펀(郭松棻)과 리위(李渝)도 그렇고, 시인 샹양(向陽)과 작가 팡즈(方梓) 부부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주부터는 타이완 문학계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 부부들을 차례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만나볼 커플은 21세기 가장 뛰어난 소설가 중 두 명으로 평가받는 궈숭펀과 리위 부부입니다.
동화에 가까운 사랑 💌
“부부가 같은 일을 하면 싸우기 마련이고,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궈숭펀과 리위는 어쩌면 동화에 가까웠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에게 배우며, 서로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하던 두 사람은 그야말로 소울메이트였습니다. 얼마나 깊은 관계였냐면, 궈숭펀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나도록, 리위는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감정은 이토록 끈끈했고, 문학만큼이나 치열했습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60년대 타이완 최고 명문대 타이완대 외국어문학과에서였습니다. 졸업 후 모교에서 교편을 잡은 궈숭펀이 재학 중이던 후배 리위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1966년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대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모더니즘이 타이완 문단을 휩쓸던 당시, 개인감정, 내면세계, 인간의 어두운 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품들은 그들의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죠. 소설을 썼지만, 문장은 시적이고 여백은 과감하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이에 리위는 연합문학과의 인터뷰에서 “글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독자의 상상력이 작가 생각보다 좋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말할 필요는 없다. 소리 없는 것이 소리 있는 것보다 강할 수 있듯이, 비워둔 공간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19년 궈숭펀과 리위 부부의 가족이 두 사람의 원고와 장서를 타이완대에 증정했다. - 사진: CNA
댜오위다오는 우리땅! 🏝️
두 사람이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시기, 타이완,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영토분쟁이 벌어졌습니다. 문제의 땅은 타이완 북동쪽, 오키나와섬 남서쪽에 있는 무인도 ‘댜오위다오(釣魚臺列嶼)’입니다. 비록 무인도지만 댜오위다오는 타이완과 중국 어민들의 어장이고, 게다가 해저에는 대규모 유전이 있어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인데요. 예로부터 중국의 일부로 여겨져 왔지만, 1971년 미국과 일본이 ‘오키나와 반환 협정’을 체결하면서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류큐 열도의 소유권은 일본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중화민국 주권에 대한 침해로 간주되며, 미국에 있는 타이완 유학생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유학생들은 반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수호라는 깃발 아래 유엔 본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미국과 일본에 항의하는 한편, 중화민국 정부에도 보다 적극적인 주권 수호를 촉구했습니다. 궈숭펀과 리위 역시 운동에 참여했죠. 두 사람은 한동안 문학 창작을 멈추고, 홍콩과 타이완의 정치 잡지에 수많은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궈숭펀은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박사학위까지 포기했습니다.
운동 규모가 점점 커지자 타이완 캠퍼스에서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댜오위다오는 우리땅(保釣運動)’ 운동은 어느새 단순한 정치 이슈를 넘어서 양안 주민 전체의 민족적 관심사로 떠오랐습니다. 당시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을 대신해 유엔의 중국 대표 자리를 차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중국’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운동의 흐름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는데요. 반미, 반일의 외침은 양안 통일을 향한 열망으로 변질되었고, 중국 공산당이야말로 중국인의 민족 정신을 지킬 수 있는 정권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상을 품은 궈숭펀과 리위는 1974년 직접 중국을 방문해 저우언라이(周恩來) 국무원 총리까지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문화대혁명은 사회 전반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가난과 쇠락뿐이었습니다. 훗날 궈숭펀은 한 인터뷰에서 이 경험을 “악몽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댜오위다오 - 사진: 위키백과
다시 시작하는 문학의 길 🌼
변질된 운동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 방문은 결국 대가를 남겼습니다. 중화민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두 사람은 1987년 타이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오랜 세월을 타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창작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궈숭펀은 공산중국에 대한 환멸과 타이완의 기억을, 리위는 유학생활과 운동에 대한 반성을 써내렸습니다. 지난주 소개된 궈숭펀의 〈월인(月印)〉과 리위의 〈야금(夜琴)〉은 바로 이 시기, 즉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1980년대에 발표된 거죠.
▲관련 프로그램:
[백색테러 기억의 날] 그날의 침묵, 오늘의 목소리! 백색테러 시리즈 소설 《기억을 지금으로》
이어서 두 사람이 마침내 타이완으로 돌아올 수 있는 1987년, 이 해에 발표된 한 곡을 함께 들어보시죠. 왕제(王傑)의 ‘게임 하나, 꿈 하나(一場遊戲一場夢)’입니다.
옥처럼 얌전한 아내의 글, 그리고 광란한 남편의 글 ✍️
오랜 해외 체류와 정치 활동으로 인한 창작의 공백 때문에 두 사람의 작품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복잡하고도 치열했던 삶이 오히려 작품에 더 깊은 은유와 울림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문학 연구자 덩안치(鄧安琪)는 석사논문에서 두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전쟁 속에서 태어나 평생 유토피아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자기 내면으로 돌아가 스스로의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유토피아는 많이 달랐습니다.
리위는 1944년 중국에서 태어나 5살 때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그가 자란 곳은 타이완대와 사범대 교수들이 모여 살던 거리 ‘윈저우제(溫州街)’, 문학과 예술의 향기가 흐르던 동네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리위의 글에는 언제나 이 거리의 풍경이 깃들어 있습니다. 또한 예술을 공부한 그는 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필치로 가족과 꿈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반면, 철학을 전공한 궈숭펀이 바라본 유토피아는 늘 붕괴의 문턱에 있고, 질병, 절망, 무너지는 인간관계 같은 어두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섭니다. 따라서 문학평론가 왕더우이(王德威) 교수는 리위의 글은 “옥처럼 얌전하다(溫靜如玉)”, 궈숭펀의 작품은 “광란하고 황량하다(狂暴荒涼)”고 평가했습니다.
1938년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서 태어난 궈숭펀은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양친이 모두 화가였고, 특히 아버지는 일본 식민지 시대의 대표 화가 궈쉐후(郭雪湖)입니다. 하지만 시대는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궈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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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quencyUpdated daily
- Published26 May 2025 at 10:37 UTC
- Season1
- Episode190
- RatingCl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