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47분

[80화]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 2019‪)‬ 뒷방상영관

    • TV 및 영화

지금 제 앞에는 한 장의 사진이 놓여있습니다. 하얀 눈의 숲 속에 동그마니 서있는 나무 우체통 하나. 지난 겨울 홀로 훌쩍 떠난 삿포로에서, 저는 하얀 모자를 뒤집어쓴 그 우체통을 만났습니다.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멈춰서서, 이내 필름에 그 풍경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시간이 흘러 이런 모양의 글이 되었습니다.

꾹꾹 눌러쓴 한 글자마다 진심이었던 마음들
하얀 새벽이 자기를 잊어버리게
떨리는 손 끝에서 번져나간 검은 밤의 춤들이
지금은 잊혀졌을지라도, 어느 영원한 겨울의 숲에는
어제가 오늘처럼 소리없이 쌓여가는 눈
전해지지 못한 채로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음
단 한 번의 눈길
녹지 않는 눈

그리고 1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저는 를 만났습니다. 바로 그 눈의 나라에서 편지를 쓴 이와 편지를 받는 이가 만나게 되는, 이 영화를요.
이 영화를 보는 여러분도 영화 속 눈의 풍경처럼 하염없이 아득해지는 애틋한 마음을 느끼셨을까요. 차갑지만 반드시 따뜻하고야 말아버리는 눈의 품에 폭, 안기셨을까요. 지나온 계절, 바람에 실어보냈지만 코끝에 여전히 짙게 남아 꿈 속에서 영영 서성이게 만드는 향기를 기억하셨을까요. 눈 내리는 바다 곁을 지나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채 창 밖으로 스쳐가는 필름들을 마음으로 꾹, 꾹 짚어가며 덜컹거리셨을까요. 하얀 빛을 받아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연기 속에서 차마 불러보지 못했던 이름들을 조심스레 불러보고, 연기 끝이 희미하게 사라질 때쯤엔 고갤 들어 환한 보름달을 바라보셨을까요.

어느 영원한 겨울의 숲 속에 전해지지 못했던 편지 속에 담긴 마음이, 에선 긴 긴 시간을 건너 마침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외롭지만 따뜻한 심장을 가진 눈사람들의 손길이 이어진 덕분입니다. 어서와 안기라는 대담한 몸짓보다도, 어정쩡하게 서서 두 팔을 반쯤 벌린 채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람. 운동장에 버려진 흙 묻은 장갑을 필름카메라에 담는 사람. 그리고 그 장갑을 주워 기워서 사랑하는 이의 목덜미에 얹어주는 사람. 이 눈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시간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서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을 이어주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참 다행이다, 홀로 빈 거리를 서성이던 눈빛들이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외로운 사람 곁의 외로운 사람 곁의 외로운 사람, 우리는 어쩌면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어쩌면 자주, 차가운 뒷모습을 마주한 채 아린 가슴을 움켜쥐고 울며 잠든 밤들이 있었을지라도, 이 영화 속에서 우린 그 마음마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송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 눈송이가 아롱 아롱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우리는 이불처럼 그 품에 안겨 오늘은 눈물이 얼룩진 자리에 예쁜 달을 닮은 웃음 한 자락을 얹어놓고 고운 잠에 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어딘가에는 여전히, 홀로 서리를 맞으며 밤을 지새울 편지들이 남아있겠지요. 발자국조차 남지 않는 숲 속의 나무 우체통에, 고스란히 쌓여가겠지요. 그 마음들에, 저는 조심스레 를 띄웁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도 언제 그칠지 모를 이 눈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어느 환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다시, 외롭지만 따뜻한 눈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그 영원한 겨울 숲 속의 편지들이 꿈의 바다를 건널 수 있기를요.

추신. 눈이 내리는 풍경 속엔 항상 당신이 있습니다.


(written by 라임)

지금 제 앞에는 한 장의 사진이 놓여있습니다. 하얀 눈의 숲 속에 동그마니 서있는 나무 우체통 하나. 지난 겨울 홀로 훌쩍 떠난 삿포로에서, 저는 하얀 모자를 뒤집어쓴 그 우체통을 만났습니다.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멈춰서서, 이내 필름에 그 풍경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시간이 흘러 이런 모양의 글이 되었습니다.

꾹꾹 눌러쓴 한 글자마다 진심이었던 마음들
하얀 새벽이 자기를 잊어버리게
떨리는 손 끝에서 번져나간 검은 밤의 춤들이
지금은 잊혀졌을지라도, 어느 영원한 겨울의 숲에는
어제가 오늘처럼 소리없이 쌓여가는 눈
전해지지 못한 채로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음
단 한 번의 눈길
녹지 않는 눈

그리고 1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 저는 를 만났습니다. 바로 그 눈의 나라에서 편지를 쓴 이와 편지를 받는 이가 만나게 되는, 이 영화를요.
이 영화를 보는 여러분도 영화 속 눈의 풍경처럼 하염없이 아득해지는 애틋한 마음을 느끼셨을까요. 차갑지만 반드시 따뜻하고야 말아버리는 눈의 품에 폭, 안기셨을까요. 지나온 계절, 바람에 실어보냈지만 코끝에 여전히 짙게 남아 꿈 속에서 영영 서성이게 만드는 향기를 기억하셨을까요. 눈 내리는 바다 곁을 지나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채 창 밖으로 스쳐가는 필름들을 마음으로 꾹, 꾹 짚어가며 덜컹거리셨을까요. 하얀 빛을 받아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연기 속에서 차마 불러보지 못했던 이름들을 조심스레 불러보고, 연기 끝이 희미하게 사라질 때쯤엔 고갤 들어 환한 보름달을 바라보셨을까요.

어느 영원한 겨울의 숲 속에 전해지지 못했던 편지 속에 담긴 마음이, 에선 긴 긴 시간을 건너 마침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외롭지만 따뜻한 심장을 가진 눈사람들의 손길이 이어진 덕분입니다. 어서와 안기라는 대담한 몸짓보다도, 어정쩡하게 서서 두 팔을 반쯤 벌린 채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람. 운동장에 버려진 흙 묻은 장갑을 필름카메라에 담는 사람. 그리고 그 장갑을 주워 기워서 사랑하는 이의 목덜미에 얹어주는 사람. 이 눈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시간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서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두 사람을 이어주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참 다행이다, 홀로 빈 거리를 서성이던 눈빛들이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외로운 사람 곁의 외로운 사람 곁의 외로운 사람, 우리는 어쩌면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어쩌면 자주, 차가운 뒷모습을 마주한 채 아린 가슴을 움켜쥐고 울며 잠든 밤들이 있었을지라도, 이 영화 속에서 우린 그 마음마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송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 눈송이가 아롱 아롱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우리는 이불처럼 그 품에 안겨 오늘은 눈물이 얼룩진 자리에 예쁜 달을 닮은 웃음 한 자락을 얹어놓고 고운 잠에 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어딘가에는 여전히, 홀로 서리를 맞으며 밤을 지새울 편지들이 남아있겠지요. 발자국조차 남지 않는 숲 속의 나무 우체통에, 고스란히 쌓여가겠지요. 그 마음들에, 저는 조심스레 를 띄웁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도 언제 그칠지 모를 이 눈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어느 환한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다시, 외롭지만 따뜻한 눈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그 영원한 겨울 숲 속의 편지들이 꿈의 바다를 건널 수 있기를요.

추신. 눈이 내리는 풍경 속엔 항상 당신이 있습니다.


(written by 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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