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물소리

하창완
맑은물소리

맑은물교회 매일 아침 성경묵상 나눔입니다. 큐티 진 "시냇가에 심은 나무(시심)",(IVP)의 진도를 따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눔하는 묵상 도우미입니다. 말씀나눔 도우미는 하창완목사(맑은물교회담임)입니다. 이 팟케스의 말씀나눔은 다음의 경우에 도움이 됩니다. 1. 먼저 개인적 큐티묵상을 한 다음 들으면 제일 좋습니다. 개인묵상를 보충하여 문맥 속에서의 뜻이나 난해한 구절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2. 그날의 큐티묵상을 못했을 때 들음을 통해 말씀의 은혜를 누리게 되고, 다음날 묵상 본문의 문맥을 놓치지 않고 갈 수 있게 됩니다. 3. 그룹에서 함께 큐티나눔을 하는 경우, 혹시 개인적으로 묵상의 훈련이 약한 사람이나 평소 묵상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팟케스트릐 나눔을 들음으로써 그룹 나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자연스럽게 묵상의 훈련으로 이어지도록 도와줍니다. 4. 어떤 경우에는 큐티와 무관하게 그냥 설교말씀을 한 편 듣는다는 생각으로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으로 삼아도 좋겠지요^^

  1. 2023/06/01

    “고치시고, 쫓아내시고, 선포하시고... 바쁘다 바빠 일 번 바빠~~ㅋㅋ”

    “고치시고, 쫓아내시고, 선포하시고... 바쁘다 바빠 일 번 바빠~~ㅋㅋ” 1. 쉬러 가셨다가 만난 일들. * 예수님이 회당에서 떠나신 이유? 배가 고파서 밥 먹으러~~ㅎㅎ * 근처 동네 쪼매 잘 사는 집이 시몬(베드로)의 집이었던 것 같음. 그리로 밥도 먹고 좀 쉬고.. 이럴 량으로 들어가시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아직 베드로가 정식 제자가 되기 전인 것구요). * 근데, 정작 뭐 이것저것 챙겨주고 할 안주인(베드로의 장모)께서 열병으로 드러누워 계신 거라... 참 민망하게 되었단 말예요. * 사람들이 예수님보고 고쳐달라고 청하였고, 예수님은 여인에게 다가가셔서 굽어보시고 열병을 꾸짖어 낮게 하셨고, * 이 여주인(시몬의 장모)은 즉시 일어나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 일행을 대접하고 챙겨드렸는데요~~ * 신기방기, 어떻게 육체의 질병도 꾸짖어 쫓아내냐구요!!! 온 동네 사람들이 소문 듣고 금새 몰려들었죠.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 해질 때가 되자 구름처럼 몰려드는 각종 병자들, 귀신 들린 사람들... * 예수님은 한 사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다 고쳐주시고, 귀신은 쫓아내시고... *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회복의 역사가 예수님과 더불어 쫘악 펼쳐지는 거죠. 깨어진 세상의 대표적인 모습 중의 하나가 온갖 질병으로 고통하는 것과 귀신이 활개 치고 돌아다니는 거니까, 그걸 바로잡으시는 겁니다. 2. 내가 온 목적은 이게 전부가 아닌데.... *** 사람들이 불쌍해서 한 명 두 명 챙겨주고 고쳐주고 하셨던 게 그만 밤새 일 해야 할 지경이 된 거죠. 아... 이건 뭔가 좀 이상해... 잠깐, 멈추자. 잠도 자야 하고 말야... * 예수님은 밤늦게 일을 멈추었고,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홀로 잠시 떠나셨죠(마가복음에 따르면 이때 하나님과 기도하셨다구요^^). * 홀로 마음이 고요해진 가운데,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신 예수님. 하루를 이렇게 살아본 모든 이야기를 다 나누었겠죠. * 그리고 날이 밝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시 어제처럼 일을 반복해달라고, 자기들이 모시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단 말씀. * 예수님 왈, “이건 아니다. 나는 다른 동네도 가 봐야 한다. 거기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내가 온 목적이 바로 그거니까 말야!” *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훌쩍 떠나시는 예수님! * 가야 할 길을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이리 당당하고 아름다운 것인가요?ㅎㅎ 3. 바쁜 일상 속에 침묵과 기도로 삶의 중심을 잡다. * 모든 이들의 필요를 다 맞추다 보면, 그사이에 슬금슬금 무너지는 내 삶의 중심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종종 있죠. * 침묵과 기도는 그런 면에서 나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어디에서 뭐가 조율이 안 된 건지 살펴보고, 눈을 들어 하늘 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알아차리는 시간입니다. * 너무나 바쁜 일상 속에서 같이 흘러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이지만, 새벽,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라도, 아니 점심 먹고 화장실 들르는 그 짧은 시간이라도 잠시 호흡을 깊게 하며 하늘을 주목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고요해지고, 자신을 조율하고, 하늘의 시선으로 나와 환경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게 되는 거죠. * 엄청 바쁜 하루 일과 중에 무리해서라도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가셨고, 당신의 삶을 조율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나의 내면의 조율을 위해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내는 결단과 실천을 해야겠다는... *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왔다.”라고 예수님이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셨듯, 우리 역시 나를 이곳에 생명 주셔서 살게 하신 이유를 분명히 붙잡고 살아가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4. 고침과 나음을 입은 사람들, 그들이 누리는 은혜로 세상을 바라보기. * 한편, 예수님께로 나아와 고침을 받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봅시다. *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삶은 정말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은혜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죠. 완전 대박!!! * 주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모습, 하나님 나라의 삶이 이렇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부어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쁨을, 눈먼 사람에게 눈 뜸을, 억눌린 사람을 풀어주는 참된 해방을 누리게 해주시는 거죠. *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꼭 주 예수의 이름이 아닐지라도 어느 깊은 골짜기, 어느 이름 없는 들판에서든지 사람들은 하늘의 은혜를 입고,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게, 바로 주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깨어진 세상을 회복시키시는 방식인 것 같아요. * 매일매일 때를 따라 돕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음을, 어디선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주님은 은근히 나를 감싸주신다는 것을, 그 은혜를 알아차리기만 해도 행복에 겨워 살겠죠? ^^

    8 分鐘
  2. 2023/05/31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는 예수님, 하나님 나라가 임함”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는 예수님, 하나님 나라가 임함” *** 3일 동안 하나복 사역에 동참하느라 큐티나눔을 못했네요. ㅠㅠ * 그동안 예수님은 세 번째 시험을 마치고 광야에서 나사렛으로 돌아오셔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 이사야 61장(희년이 임하는 모습)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이 메시아로 오셨음을,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 그리고 믿지 않는 그들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1. 가버나움 회당에서 권위 있는 새 교훈으로 가르치시다. *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셔서 옆 동네, 실은 갈릴리 지역의 대도시 축에 들어가는 가버나움으로 가셨고, 거기를 주 활동무대로 삼으셨습니다. *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습니다(뭐 아무나 강론할 수 있었으니, 별 문제는 없었겠죠^^). * 근데, 가르치는 방식과 내용이 상당히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 랍비들은 대부분 과거 어느 랍비가 어떤 말을 했고, 했고, 했고... 각주를 좌~악 달아서 지금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의 근거를 삼았는데, 예수님은 그냥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가르치신단 말씀. * 사람들은 “와~~!! 신기하다.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라고 다들 놀라는 거죠.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이시니, 누구의 권위를 빌려올 필요가 없다는 사실!! (우리는 넘 잘아는 사실인데, 이들에게는 넘 신기한 일이었다는~~^^) 2. 귀신을 내쫓으시는 예수님 * 한편, 그곳에는 악한(더러운) 귀신 들린 힌 사람이 있었는데... * 그가 갑자기 일어나 큰소리로 예수님께 대드는 겁니다. “나사렛 예수야! 왜 우릴 간섭하고 난리냐? 난 네가 누군지 다 안다. 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가 아니냐? 그러니, 우릴 괴롭히지 마라!!” * 귀신이 소리치는 내용이 조금 이상하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거 알면 깨갱~ 할 일이지.. 뭐 괴롭히지 마라!! 이러는 건 또 뭐냐고요? * 이 장면에서 우리는 “너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걸 떠올리면 딱입니다. 혹 삼국지 같은 걸 보면 전쟁하면서 장군끼리 일대일 칼쌈하면서 하는 말이, “난 네놈이 누군지 다 안다! 000 아들 ***가 아니냐? 가소로운 것. 감히 그런 네놈이 나에게 덤벼?” 뭐 이러고 싸우잖아요? 일종의 기싸움인 겁니다. 상대방의 이름을 안다는 건, 그놈이 누군지 다 간파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내가 한 수 위에 있다는 걸 선포하는 거죠. * 바로 귀신이 지금 그런 기 싸움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하신 시점에 이 파장이 더 커지기 전에 차단하려고 덤벼든 거죠. * 근데, 예수님은 한 방에, 그것도 말씀 한마디로 꾸짖었고, “입 닥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귀신은 진짜 깨갱~하고 떠나갔다는 말씀!!! * 귀신 들린 사람은 쓰러졌으나 상처는 없었고~(곧 정신이 회복되었겠죠?ㅎㅎ) * 사람들은 신기방기~~ 엄청 놀랐습니다. 특히나 앞에서 가르치시는 내용의 권위를 자신에게서 두신 예수님을 보았잖아요? 게다가 귀신을 내쫓는데도 뭐 특별한 방법 없이(술수를 쓴다든지, 더 큰 귀신을 불러온다든지..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 그냥 당신의 권위로 말씀하시니 해결~~!! 3. 예수님의 권위와 하나님 나라가 임함. * 누가가 소개하는 예수님의 사역 첫 장면,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는 가운데 놀랍게 드러나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의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라는 질문과 답변. * 요한복음은 아예 대놓고 예수님의 목소리로 이 사실을 선포하죠. “너희가 아들을 공경하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곧 나다”(요8:24). 이건 출애굽 사건 때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이름인데요..ㅎㅎ(출3:14)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않느냐?”(요8:45) * 요한복음에서 선포하신 이런 말씀이 누가의 이 장면 속에서는 조용히 녹아있는 거죠^^ * 게다가 앞서 나사렛 회당에서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폴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억눌린 자들을 해방하고~~” 그러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왔음을 선포하셨잖아요? (눅4:18) 바로 그 실제적인 사건이 처음으로 벌어진 겁니다. 예수님이 오심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으니, 귀신이 내어쫓김을 당하는 건 당연한 이치인 거죠^^ 처음엔 기싸움하려고 덤벼들었으마 한방에 깨갱하고 좇겨난 거죠. 감히 지금 어디서, 누구 앞이라고~~ ㅎㅎㅎ ***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권위가 사라진 시대라고 하잖아요?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며 사는 시대를 살면서 좋은 점은요.. 과거엔 그냥 침묵하던 것에 비하면 잘못된 권위 사용에 대해 저항하고 거부하는 용기를 갖는 건 참 좋은 일이죠. * 하지만, 진리를 만나고 고민하고 붙잡는 일에 있어서조차도 그냥 내 마음에 들면 OK. 아니면 NO 하는 건... 이건 아니잖아요? * 예수님이 오셔서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고, 거기에 함께 살자고 초청하시는데, 그럼 당근,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나의 앉고 서는 것, 주 님 뜻에 있으니, 오 주여, 날 이끄소서~~ ” 라는 찬양처럼, 주님의 권위 앞에 단지 놀라서 오~~ 하고 끝내거나, 거부하거나, 비틀지 않고 그냥 그대로 권위를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순전한 마음으로 그가 다스리는 나라, 그가 펼쳐주시는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면 되는데 말예요.. ^^ 괜히 이 본문의 귀신처럼 되지도 않는 싸움 하지말고, 주님 앞에 걍 바로 순종모드로 고고씽~~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 한편, 귀신들린 사람의 입장에서 가만 본문을 따라가 보면요... * 사실, 그는 지금까지 이 더러운 귀신에게 사로잡혀 사느라 생고생하고 있었단 말이죠. 한 순간 정신이 돌아올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귀신이 끄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모든 정신질환을 다 광범위하게 귀신들렸다고 봤던 시대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귀신이 들린 사람은 분명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단 밀예요ㅠㅠ) * 이런 그가, 어느 날 내 속에 있는 귀신이 예수님을 만나 쫓겨나면서 이제는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단 사실!! * 내 삶의 여러 질고와 질병들, 심지어 귀신들린 상황까지도 주님을 만나 기도하면 고침받고 회복되어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이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 * 이 사실 앞에 그저 아멘!!! 하고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살고 있고, 또 그 행복을 누리고 있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요, 앞으로도 쭈~~욱 그렇게 살길 또 고대하고 소망합니다. * 또 한편, 요즘 우리가 귀신들린 거, 이런 걸 보긴 쉽지 않은데요. 그러나, 귀신하고는 상관 없얻오 꼭 그런 사람처럼, 그런 메카니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진짜 많은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내 마음의 욕심과 정욕이 이끄는 대로, 이 시대의 지배자 어둠의 세력, 사탄이 우리에게 가만히 꼬드기는 대로 따라 사는 사람들(엡21)... 실은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었는데, 주님은 우리 중심에서 이런 것들을 쫓아내시고, 새로운 영을 창조하여주셔서 이렇게 자유롭게 주님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있도록 해주셨으니... 이게 얼마나 큰 은혜요 감격인지요~~룰루갈라~~ㅎ^

    12 分鐘
  3. 2023/05/25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과 방법을? 세상에서는 사탄의 법과 방법을?”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과 방법을? 세상에서는 사탄의 법과 방법을?” 1. 실효적으로(현실적으로) 세상의 지배자는 사탄의, 귀가 솔깃한 제안. * 예수님도 알고 사탄도 아는 사실 하나. 현재 실제적으로는 사탄이 현실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요12:31, 예수님 왈,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 * 근데, 예수님은 이 사탄의 실제적 지배를 끝내고 그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임(요것도 사탄도 알고 예수님도 아는 사실임^^). * 사탄은 이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이루어주겠다고 꼬드깁니다. *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이때 살짝 내게 고개 숙여 절하면(경배하면), 그럼 된다고, 나도 자존심이 있는 존재니까. 예수 네가 나에게 “당신은 실제로 지금까지 왕이었습니다”라고. 존경의 의미까지는 아니래도 인정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고개 숙여 절하면, 아니 절하는 척이라도 하면, 그럼 나는 깨끗하게 물러나 줄께! * 어니, 이게 뭐 하자는 걸까요? 사탄이 제안한 방법을 따르면, 사람들하고 예수님이 충돌할 필요도 없고, 마침내 사람들에게 몰려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일도 없고, 사탄 자기가 알아서 사라져 주는.. 정말 손쉬운 방법인 것처럼 보입니다. *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어때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스스로 높아져서 왕인 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인격 하나하나를 노크하고 그들이 전인격적으로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받아들이고 돌이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하고는 거리가 멀어지는 거죠. *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에는 사탄과의 이런 밀거래는 없는 거죠. 죄의 당사자를 사람으로 보시고, 그 사람들과 인격적 결판을 내시기를 원하시는 게 하나님의 뜻인데 말예요. 사람은 그대로 두고, 사탄하고 둘이서 밀약을 통해 세상을 주고받고 거래하자는 건 말인지 빵군지.. * 무엇보다도 설령 사탄이 현재 이곳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하더라도, 그가 하나님과 동격이거나 하나님과 같은 파워나 권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잖아요? 그도 하나의 피조물, 타락한 천사임에 불과한데... 근데 그놈한테 절한다는 건 바로 사탄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거죠. 2. 예수님의 대답 * 예수님은 정확하게 이런 사탄의 의도를 간파하셨습니다. * 그래서 직격탄을 날리죠. “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만 섬기라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셨거든! 썩 물러가라 이놈아~~!!” * 예수님이 계속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계신데, 혹자는 사탄의 유혹을 예수님이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성경 말씀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는...ㅠㅠ 허나, 성경 말씀을 기계적으로 암송한다고 해서 사탄이 깨갱하고 물러나는 건 결코 아니라는 말씀. 뭐 사탄이 드라큐란가욤? 십자가 쫘~악 보여주면 걍 사라지는 것처럼 말씀 쫘·악 읽어주면 뿅 사라지는.. 그런 건 아니죠. 예수님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신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이런 거죠. * 하나님만이 주라는 사실! 비록 현실적으로 네놈이 힘깨나 쬐끔 쓸지 몰라도, 네놈은 하나님의 발새 때만큼도 안 되는 놈이라고! 근데 내가 네 에게 경배를 해? 웃기는 소리!! 게다가 우리 둘이서 살짝, 은밀하게 거래하면 된다고? 그러면 내가 사랑하고 아껴서 지은 저 사람들은 뭐가 되는데? 걔들은 완전 무시하라고? 그게 내가 온 목적이냐? 난 우리 아빠 하나님과 의논해서 결정한 방법(사람들을 돌이키는 방법)대로 네놈한테서 지배권을 회수할 거야. 그때까지 꼼짝 말고 서 있어!! 3.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나는 누구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게 되나? *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명패를 달고(저의 경우에는 목사라는 명함을 내밀며) 세상에 뛰어들면,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뭔가 다른 모습으로 인해 달려와 귀를 기울이고 내가 말하는 바에 존경함을 담아 따르고자 하는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한 밤의 개꿈도 안 되는 이야기인 거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 * 이럴 때 솔직하게 말해서, 세상에는 세상의 방식이 있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면서, 그러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목적과 의도를 이루어 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닐까? 라는 유혹이 찾아오는 게 사실입니다. * 강남의 노른자 땅에 엄청나게 삐까번쩍한 건물을, 최고로 비싼 돈으로 지으면서, 나의 인적자원(세상의 권력을 함께 갖고 있는)을 사용해서 이것저것 편의를 도모해서(줄이면 ‘편법을 써서’^^) 더욱 크게 지으면서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라고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이건 오늘 본문에서 사탄이 예수님에게 한 말, “아무도 안 본다. 나에게 살짝 고개만 한 번 숙여봐라. 그러면 세상은 네가 누리는 영광을 보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말할 거다.”라는 얘기에 속아넘어간 거죠. 아니, 어쩌면 그걸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ㅠㅠ * 한때 기독교계를 휩쓸었던 “고지론”의 맹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슨 수를 쓰던지’ 일단 고지에 올라서고 나서 그때 그 고지의 파워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들을 하면” 그러면 그게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냐고 사탄은 속삭이는 거죠. 사탄은 ‘무슨 수를 쓰던지’는 너와 나만의 비밀. 그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슴에 고이 묻어두라고 말하는 걸 잊지 않겠죠. * 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의도를 그대로 정직하게 진정성 있게 살아가면서 고지에 오를 수도 있고,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무슨 수를 쓰던지’, 일단 고지에 오르고 일단 부자가 되고 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면 된다는, 앞뒤가 바뀐 일들이 현실적으로 비일비재하고, 이때 사탄의 은밀한 속삭임이 함께 한다는 걸 오늘 예수님과 사탄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겁니다. *** 그럼 솔직하게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자본주의적 방식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길을 걸으면서 살아남을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요? * 그러게요...ㅠㅠ 근데 그 어려운 걸 해낼 수 있다고, 그 길을 같이 걸어가자고 용기를 주시면서 실제로 우리 앞서서 하나하나 길을 열어가시는 분이 계신데... 바로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 하나님이시란 말씀!!! * 이 성령님은 우릴 꼬드겨서 걍 현실 속으로 밀어 넣고 사라지시는 분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면서 그 능력으로 우리를 차근차근 이끌어가시는 친구라는 사실!! * 매일매일 성령과 동행하면서 그분께 귀를 기울이고(사탄의 은밀한 속삭임을 분별하면서), 순종하다 보면, 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하나님 나라의 뜻과 그 의를 이루어 가고 있음을 믿고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 * 그러고 보니, “분별력”, 요게 참 중요해지네요. 묵상과 기도, 공동체적 나눔과 영적 멘토와의 꾸준한 만남 등등 개인적 차원,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분별력을 키워나가고(요걸 ‘경건의 연습’이라고 부르잖아요?^^), 특히나 분별력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니까, 매일매일 감각을 훈련해서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기초를 든든히 해서 예수님처럼 멋지게 사탄의 유혹을 빵~ 걷어찰 수 있는 삶이 되어봅시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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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3/05/24

    “예수님의 첫 번째 시험, 육신의 필요와 구겨진 자존심 앞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시험, 육신의 필요와 구겨진 자존심 앞에서” 1. 성령이 충만하신 예수님, 광야에서 40일을 거하셨는데... * 왜요?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v2 * 그럼, 시험받으러 일부러 굶고 40일을 버틴 거임? 설마 그럴 리가? * 그렇죠. 설마 시험받으려고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거고. * 성령에 이끌려서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홀로 밥도 먹지 않을 만큼 뭔가에 집중했다는 말씀. * 배고픔에 대해 사탄이 돌로 빵 만들어 먹어~ 라고 말할 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그 단서가 있는데.. 바로 “사람이 빵 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다)”-신8:3-라고 하신 말씀. 아멘! *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교제를 나누고 계시느라 먹는 것도 잊을 만큼 집중하셨다는 거라~~. * 뭔 말씀을 그리 긴하게 하셨을까요? * 아마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체성에 관한 질문, 뭘 하시러 왔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이루실 건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셨을 거라는 짐작이 되긴 합니다만.. (요건 앞으로 두 번의 시험 속에서 충분히 묵상합니당^^) 2. 배고픔, 육신의 필요 앞에서 *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되셨단 말씀. 그니까 당근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잠이 오면 자야 하는 사람. 근데 40일을 굶었으니... 쯧 * 사탄은 요걸 걸고넘어진 거라. 아마 사탄이 눈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마음속의 생각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뭐 그를 수도 있다고 짐작해봅니다. * 예수님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순간 떠오르는 거죠. 지금 내가 뭐한다고 지금 이렇게 굶고 있남? 먹고 해도 되잖아? 광야라서 먹을 게 없다고? 난 하나님의 아들인데. 까짓거 돌들로 빵이라도 만들어 먹으면 되지... * 그러다가 다시 순간 마음을 정돈하고, 아냐. 먼 생각을 그리하누.. 지금 난 아버지랑 엄청 중요한 얘기를 하는 중!!! 배가 고프기야 하지. 하지만 이 시간을 다 마치고 그담에 먹어도 되잖아? 지금은 내가 아버지께 집중할 때라고. 자! 집중~~ 아자!!! *** cf.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했던 일들이 떠오르네요. * 그들은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면서 이집트를 탈출했는데.. 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떠나게 하셨고, 우릴 어디로 가게 하시는가? 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ㅠㅠ * 대신 눈앞에서 배고프면 배고파 죽겠다고 원망하고 소리치고,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선동이나 하고... *** 먹고 사는 것, 참 중요한데.. 거기에 막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이 이 땅을 살아가는 의미를 들려주시고, 그 길을 가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가는 걸 하지 못하고 산다면... * 너무 바쁘게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말씀 묵상은 커녕 이 큐티나눔을 들을 시간조차 없이 산다면, 잠시 짬을 내어 하늘을 우러러 주님~ 하고 불러볼 여유조차 없이 산다면... * 스스로에게 외쳐야겠죠.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잖아? 하나님을 좀 만나고 살아야지!!!” * 한편,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너무 많은 목회자들이 돈 때문에 (그것도 돈이 없는 교회가아니라 엄청 많은 큰 교회에서), 뭘 더 많이 움켜쥐려다가 뽀롱나고 욕먹고 쫓겨나고, 뉴스에 나고... 이런 시대를 살면서 부름받은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데 돈이 주는 유혹 앞에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외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구겨진 자존심 앞에서 * “네가 하나님의 아들 맞아? 그렇게 쫄쫄 굶으면서도 이 돌 하나 빵으로 만들지도 못하면서?” * 이제 막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려는 예수님의 자존심 팍팍 무너뜨리는 소리를 해대는 사탄! * 이게 눈앞의 필요와 맞물리게 될 때, 더욱더 구차해지고 자존심 상하고...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서 질러버리는 경험들...ㅠㅠ * 근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상하거나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이런 모습이 전혀 안 보입니다. 오히려 매우 고요한 가운데 평화를 누리며 당당하면서도 힘 있게, 어깨를 쫙 펴고 말씀하시는 거죠. “내가 누구냐고? 당근 난 하나님의 아들이쥐!! 지금 이런 게 없다고, 배 고프다고, 모자란다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게 아니거든!” 아멘!! ^^ * 필요한 건 하나님이 분명히 채워주실 거야. 가장 좋은 것을 위해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 우리도 이렇게 당당하게, 아니 고요하게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해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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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23/05/23

    “예수님의 메시아 출정식 & 하나님의 아들로 출발하는 오늘 우리의 하루”

    “예수님의 메시아 출정식 & 하나님의 아들로 출발하는 오늘 우리의 하루” 1. 예수님의 족보 * 사실, 우리에게는 지겨운? 이 족보, 왜 필요했을까? 이런 질문이 드는데요.. * 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는 내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이런 걸 아는 게 매우 중요했던 것 같아요. 우리도 왜 옛날에는 족보, 이런 거 많이 따졌잖아요? 특히나 이스라엘은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반복했으니까 가문을 확인하는 게 중요했을 거라는.. * 근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족보가 엄청 다르단 말예요(하나는 내림차순, 하나는 올림차순), 겹치는 사람도 다윗, 아브라함 근처에서 몇 명이고, 완전 다른 인물들로 채워져 있는데요. * 음... 이건 대부분 족내혼이었던 과거에 혈통의 계보를 강조하기 따라 다양한 인물들을 대표로 내세우다 보니 서로 다른 계통의 족보가 여럿 존재했을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도 될 것 같구요. * 한편, 동정녀 탄생인 예수님에게 요셉의 족보가 뭔 소용이 있냐는 질문은... 음.. 좀 생각해볼 가치가 있기는 하죠^^ 우선, 사람들 사이에서 요셉의 아들(양아들?)로 분명하게 인정되었으니(v23) 아버지 족보를 따르는 게 맞는 거는 분명한 거 같고(옛날에 엄마 성을 따르는 경우가 없었으니), 또 한편으로는, 구약의 예언 중에 다윗의 계보를 좇아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걸 증명하는 데 이 족보가 중요했을 것 같고... * 근데, 누가는 독특하게도 마지막 근원을 아담, 하나님에게로 연결시켰단 말씀! * 이를 통해서 누가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 같다는 느낌 같은 느낌이 들긴 합니다. * 뭐, 암튼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데는 이런 족보가 그닥 중요하진 않지만 말예요.. ㅎㅎ 2. 세례요한이 증거 하는 예수님(v16,17) * 한편,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앞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말했던 내용을 한 번 떠올려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임(cf. 자신은 물로 세례를 줌) * 자기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손에 키를 드심. 알곡은 곳간에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임. ***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신다는 것을 강조한 거임. 동시에 성령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하실 것임을 암시함. 3.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 죄 없으신 예수님이 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까? 질문하게 되는데요.. * 음... 먼저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과 동일시하신 모습으로 볼 수 있겠죠. 그만큼 깊이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이시라는... * 다음으로는 세례가 꼭 회개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일종의 기름 부음. 대관식 같은 역할을 했다는 걸 생각해볼 수 있어요. 뒤에 하나님이 “이는 내 아들이요~~”라고 선포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세례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거죠^^ * 세례요한은 길잡이답게 예수님 앞에서 빵빠레를 울려주는 거구요. 왕의 대관식에서도 왕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그 누군가가 왕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주잖아요?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것도 그런 의미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예수님의 세례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하나님이 하신 말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가 널 기뻐하지롱~~” *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이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말이 어디 있을까요? * 게다가 성령님이 나타나실 때, 비둘기처럼 임하는 것도 시각효과 짱~~ * 한편,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고 암송하고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사야42:1~을) 반복하고 있는 건데요. 이사야42장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어떤 사역을 하실 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거든요(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 눈먼 사람 눈뜨게 하고 갇힌 사람 이끌어 내고...) * 바로 예수님이 이런 일을 하실 메시아임을 분명하게 선포하는 선포식, 메시아 출정식인 셈이죠^^ *** 이 현장에 모여 있었던 사람들, 하늘로부터 들리는 소리를 듣고서 다들 정신이 뿅~~ 나갔을 거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는 모습에 황홀감에 빠져들었을 거라~~ * 또 예수님 당신도 이제 출정식을 가지면서 얼마나 고무되고,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힘이 났을까? 성령이 부어주시는 힘을 엄청 느꼈을 거고. * 이걸 집례하고 있던 요한도 완전 기쁨 충만이었을 거고... *** 우리도 그 자리를 상상해보고, 거기에 가만 머물러 봅시다. 겸손함 가운데 기쁨으로 충만한 세례요한의 얼굴도 한 번 쳐다보고, 무엇보다도 성령이 충만하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 가운데 우리 마음 역시 얼마나 기뻐 뛰는지 한 번 느껴봅시다.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된 우리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란다. 내가 널 얼마나 기뻐하는데~~”라고 말씀하시는 게 들리지 않나요?^^ * 이렇게 하나님이 지지해주시고,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우리에게 임하시면서, 동시에 우리 를 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초대해주신 예수님과 더불어 오늘 내 하루를 같이 시작하는 거죠^^. 이 얼마나 멋진 일이요, 놀라운 은혜인지요~~ 룰루랄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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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23/05/22

    “세례요한, 가야 할 길을 알고 가는 사람의 아름다운 뒷모습”

    “세례요한, 가야 할 길을 알고 가는 사람의 아름다운 뒷모습” *** 음... 5월부터 시심이 누가복음 묵상을 시작했습니다. 좀 지났지만, 우선 누가복음의 전체적인 배경을 소개하고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겠습니다. 1. 누가복음의 저작 배경 * 저자는 바울의 동료이자 선교여행의 동반자인 누가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음(제일 정확한 정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알게 되겠죠^^). * 저작 연대는 대략 AD60-70년 사이쯤? * 저작 목적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자료들을 모아 보다 분명한 기록을 남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v3 * 어쩌면 바울과 동행해서 선교여행을 하다 보니, 전파되는 지역은 넓고, 이야기꾼들을 통해 입으로 전파되는 가운데 예수님의 이야기가 왜곡될 가능성도 보았고, 특히나 AD66~70년에는 유대전쟁기간이라(로마에 반란을 일으켜 전쟁하다 완전 폭망함), 유대에 살고 있는 증인들이 사라질 위험(?). 뭐, 이런 것으로 인해 누가가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거고~~ * 암튼, 누가는 직업이 의사였고, 자칭(?) 역사가라, 꼼꼼하게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역사적인 기록물로 남겼음. 2. 누가복음의 내용상 특징 *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전기를 충실하게 전하고자 함. 예수님의 어린 시절 얘기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 또한 누가는 예수님 얘기가 초대교회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술을 남기고자 했는데... 그래서 “누가복음-사도행전”이라는 연작을 남겼다고. * 누가는 줄곧 “구원”과 “복음 선포”를 강조한다. 눅19:10에서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핵심(cf. 마가복음에서 주로 강조했던 게 “하나님 나라”였죠^^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왔다.” 막1:15) * 누가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지 못한 사람들을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에게 포커스를 많이 맞춥니다. * 누가는 제자도를 매우 강조함.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등등 *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연작이라 그런지, 누가복음에서는 교회가 어떤 모습일지 이미 내포되어 있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3. 선지자 세례요한의 분명한 자기 인식 * 많은 유대인들이 오실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던 상황, * 그러던 중에 그동안 끊겼던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선지자가 나타났고, 그가 물로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선포하자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 게다가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엄청 강력한 것이라. “나면서부터 너희는 택함을 받았다고? 착각하지 마라.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하나님이 도끼를 이미 나무뿌리에 가져다 놓으셨다. 좋은 열매가 없음, 걍 찍어버리실 거다.” *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선 자연스럽게 그가 메시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 * 이 소문을 들은 세례요한, 단호하게 “아니오. 난 그분의 길을 예비하러 온 사람이오. 난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사람이오.” * 이어지는 그분의 사역에 대한 예고 발언과 자신의 사역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였으니~~ *** 사람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말예요. * 조금 유명해지면 금방 자기가 누구인지 삶의 소명과 목적을 잊어버리고 금새 교만해져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게 되는 게 일반적인데.. ㅠㅠ * 특히나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근거해서 사람들을 비판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입장이니까, 더더욱 자신을 하나님처럼 착각하기 쉬운 상황이라, 그의 이 겸손함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 가만 생각해보면, 왜 교만해질까?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그게.. 음..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저와 같은 목사, 혹은 교회 리더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은근히 교만이 유혹하고 “내가 전하는 말씀=나”라고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나 역시 나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회개하고 돌이키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임을 늘 새기지 않으면, 또 내가 말씀을 나누는 성도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나와 똑같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성도임을 새기지 않으면 금방 교만해지는 거란 말씀. (그래서 이 큐티 나눔을 ‘설교’라 하지 않고, 그저 ‘나눔’이라고 부르는 거구요..^^) * 한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믿지 않는 분들 앞에서 갖고 있는 묘한 우월감 같은 거 있잖아요? 이거 진짜 위험한 건데... 암튼, 세례요한의 이 겸손함 앞에서 이것도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 나는 그저 한 발짝 먼저 주님을 만났을 뿐, 너와 내가 결코 다르지 않는 똑같은 죄인인데... 라는 마음이 일어야 정상인데... ‘난 벌써 의인, 넌 여전히 지옥 갈 죄인’이라는 등식을 먼저 떠올리니... 쩝. “당신이 메시아 맞죠? 그쵸?” “아뇨. 난 그분의 길을 닦는 청소부예요. 난 그분의 신발 끈조차도 풀기에 벅찬 사람이라구요..” 4. 세례요한의 용기 있는 사역 * 한편, 세례요한은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용기 있게 진행하였으니... * 헤롯왕에게 그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괴씸죄로 투옥되었다는 말씀. ㅠㅠ (헤롯은 제수씨와 불륜관계였다가, 제수씨가 동생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는 일을 저질렀음) * 마치 선지자 엘리야랑 비슷한 상황이네요.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쫓겨서 그릿 시냇가에 숨어 살아야 했잖아요(왕상17장)? * 당시 헤롯은 아버지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불렸던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이었어요. 그래서 성전 재건에 집착했고, 과거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고, 포로귀환 이후에도 지도자들이 성전을 재건했던 것처럼 자신도 인정받고 싶었던 건데... * 세례요한은 그가 도덕적으로도 잘못됐지만,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게 완전 엉터리, 사기꾼이라고 고발하는 거죠. *** 요즈음도 여전히, 계속, 뭐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대형교회 목사님들 가운데 몇몇 분들이 대형 사고를 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데 말예요. 근데, 그 교회 앞에서 피겟 시위하고 끈질기게 고소하고... 더러는 현장에서 소리치다 끌려 나가기도 하고, 또 교회의 비리를 파헤쳐서 가감 없이 보도하는 매체도 있구요. * 혹자는 그분들에게 “교회를 꼭 세상처럼 생각하고 시끄럽게 한다. 교회는 은혜롭게 조용히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 등등의 말을 많이 하죠. 하지만 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지자들인 거란 말씀. * 이 시대에 참 선지자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역시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괴심죄로 인해 투옥된 것처럼, 비난과 수모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의 정책과 방향, 의와 공평, 사랑과 진실, 평화를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현실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외치듯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바담감도 팍팍 들구요. * 암튼, 다시 세례요한에 주목해봅시다요.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어디로 걸어가야하는지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신 나이스 가이!! * 우리 역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길잡이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로서의 소명을 잘, 제대로 감당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증언은 예수님의 세례와 같이 내일 더 깊이 묵상하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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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23/04/13

    “널려있는 가짜들 사이에서, 진짜 복음 전하고 살아내는 사람”

    “널려있는 가짜들 사이에서, 진짜 복음 전하고 살아내는 사람” ** 1장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칭찬을 열심히 하던 바울은 2장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단 지금 자신들이 모함받는 주제에 대한 해명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미 앞서 고린도후서를 묵상하면서 이 장면을 많이 만났더랬습니다. ㅠㅠ 1. 가짜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교사 노릇하는 세상에서 * 1세기 헬라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자칭 철학자들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강의하고 돈을 벌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유랑극단이 아니라, 유랑철학자, 유랑교사들이라고~~ * 로마사람들은 매우 실용적 문명을 제국 내에 퍼뜨렸고, 인문학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인문학적 자원이 풍부한 그리스지역 사람들이 제국 내에 자신들의 문화를 퍼뜨리고 있었죠. 그 주된 통로가 바로 이 유랑교사들이었는데. * 이들 중 더러는 참된 철학자, 인문학자도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이 돈벌이 수단, 그저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 돈을 벌려면 청중들의 귀가 솔깃한 주제들을 말솜씨 좋게 들려주어야 했고, 대개 이야기 말미에 강연료를 거두어들였고, 더러는 개인교습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일정 기간 그 집에 머물며 돈을 벌기도 했고, 심지어 그럴듯한 속임수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 이런 상황 가운데,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지역을 떠돌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해볼 때 당근 유랑철학자 정도였을 거라. * 바울 일행이 강연하고 있을 때, 사람들 가운데 더러 이 사람들이 언제쯤 돈을 달라할까? 뭐 이런 걸 유심히 보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했을 때 그들을 걍 바울의 개인교습을 받는 무리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을지도 모르고.. 뭐, 암튼 그랬을 거라. 2. 우리와 우리가 전한 복음이 이런 차원이 아니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 바울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비난한다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충분히 변호해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하였고, 그 마음을 지금 전하고 있습니다. * 우선, 데살로니가로 오기 전에 빌립보에서 있었던 이야기만 생각해봐도(행16-18장), 그토록 심한 박해를 받았는데도 굴하지 않고 계속 같은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은, 단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는 증거! * 다음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복음을 전한 대가를 요청한 적이 있었냐고~~ 한 번도 없었잖냐? 그러니, 우린 단지 직업으로 이걸 하는 게 아니라고!! * 그럼, 뭔 동기로 하냐고? 바로 우리 하나님이 보내셨고, 그분께 검증을 받아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라는~· * 그러니, 내가 사람들에게 아첨할 이유도 없고, 하지도 않았고, 단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춰 살고 있는 거라고~~~ *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바로 데살로니가 교인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의 증인이라고~~ 3. 목사가 단지 먹고사는 직업의 하나요, 교회가 돈벌이의 수단(기업)으로 전락한 시대를 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 목사는.. * 결코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과 목사 전부가 이런 게 아니라, 정말 일부 몰지각한 미꾸라지 같은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겠지만... * 세상 사람들은 목사 전부와 교회 전체가 그런 줄 알고, 저희 친척 중 믿지 않는 누군가도 제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 “이제 점포하나 차렸어?”라고 얘기할 정도였으니,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 바울이 당한 거랑 어떤 면에선 참 비슷하기도 하네요. 뭐 물론 우린 우리 스스로 판 무덤에 묻힌 거지만 말예요..ㅠㅠ *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성 있는, 진실한 그리스도인, 교회, 또 저의 경우엔 목사로 산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 보냄 받았음을 분명하게 붙잡고, 하나님의 검증을 날마다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씀!! * 순간순간 찾아오는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의 유혹을 내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물리치는 삶을 사는 것 외에는 노답인 거죠. * 생각해보면, 예배 시간, 목사에게 주어진 ‘설교’라는 시간은, 어떻게 보면 무소불위의 시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주장하고 선포하는 시간이잖아요? 만약, 한 끗만 삐끗하면, 사람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조종하고, 조작하고, 자신의 이익과 탐욕의 도구로 몰아갈 수도 있는 시간이거든요.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다음 전해야하는 시간인지... * 사실, 적지 않은 목사라는 사람들이 그 한 끗 삐끗해서 교묘하게 왜곡하고 조작하고 성도들을 후려치고 있는 게 현실이라. 그러다 보면 원투쓰리를 찍고 있는 거죠. 진짜로... * 무엇보다도 설교 시간에 성경 본문의 이야기를 풀어서 들려주는 게 진짜 중요하다구요. 근데 너무나 많은 경우, 성경은 그저 읽고 지나가고 설교 시간엔 자기 이야기를 냅다 풀어놓고, 심지어 극우 태극기 부대 주장만 잔뜩 늘어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진짜 이건 아니잖아요? 성경 이야기를 전후 문맥과 역사적 맥락을 살펴서 들려주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그 다음으로는 설교 시간에 풀어놓은 이야기를 성도들과 더불어 같이 나누고, 서로 피드백하고 적용하고.. 이런 시간을 가져야만 이게 공동체가 함께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건강함이 있는 거죠. * 임튼, 오늘 바울이 전하는 이 자기 증언 앞에서, 저는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제가 받은 이 직분을 또다시 생각하고, 주님 앞에 서 있게 되네요. 이 사명을 다하는 날까지 날마다 기도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걸어야 하는 이 길이기에. * “주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아버지께만 있음을 삶으로 살게 하소서...” * 근데 이게 어디, 오늘 이 말씀이 목사들에게만 해당되겠습니까? 한 끗만 삐끗하면 종교를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도깨비방망이로 사용하기 쉬운 시대를 살면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날마다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하며 살아야 하지 않나요? * 그래서, 우리 모두 같이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죠. 특히나 요즘처럼 교회와 성도의 삶에서 공공성이 강조되는 시대는 더더욱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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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23/04/12

    “도대체 이게 뭔 난리여~?”

    “도대체 이게 뭔 난리여~?” 1. 회심한 직후에 만난 환란(핍박?)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갖고 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v6) *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들이 믿음을 갖자마자 곧바로 주변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가해진 핍박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는데, 한 번 상상과 유추 등등을 해본다면, 음.. *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는 그리스문화의 본거지라, 왜, 그리스로마신화의 산실이잖아요? 그니까 얼마나 유명한 신들이, 그것도 엄청나게 많을 거란 말씀. 근데 그 모든 신들을 다 거절하고, 듣보잡 유대인들의 신을 믿는다는 게 말이 되냐구요. 뭐, 이런 소문과 여론, 따가운 눈초리, 시비 걸기 등등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고. * 한편 로마가 지배하고부터는 로마 황제(죽은 선왕들부터 지금 살아있는 황제까지)를 신으로 숭상하는 중인데, 이것도 거절하고서, 저 어디 유대 촌구석에서 유행하는 신을 유일신이라 주장하는 건, 까딱 잘못하면 시국사범으로 붙잡힐 거란 말씀. * 암튼, 이런저런 핍박이 있었다는데, 그런 와중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기쁨의 삶을 살고 있었으니, 그것도 열심히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중에 사도들이 남기고 간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었다는 얘기라~~ * 이건 성령이 주신 선물이요, 담대함 일 수밖에 없는 거죠^^ 2. 주님의 말씀이 두루두루 전파되고 믿음의 소문이 날개 돋친 듯 날아다니는 상황(v8-10) * 핍박하다가 안 되면 사람들은 관심을 갖게 되는 법. * 도대체 이 사람들이 뭘 믿기에 이렇게, 맨날 웃고 다니는 거냐고? 도대체 그 하나님이란 게 어떤 신이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게 뭔 말인지 들어나 봐야겠다고 질문해오는 상황이 벌어진 거라~~ 할렐루야!! * 더 나아가 관심의 포커스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 바울과 그 일행들에게로 쏠리게 되었으니... “도대체 그 냥반들이 뭘 가르쳐 준 거야? 뭔 짓을 했기에 너희들이 그동안 믿던 신들(우상들)을 싹 다 내버리고 이 난리인겨?” * 게다가 최근엔 교회 성도 중 누가 죽었을 때, 모두들 지금까지의 장례식하고는 좀 다른 분위기, 음.. 그니까, 주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다시 내려오실 그때, 우리가 세상을 향한 심판을 면하고 다시 살아난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슬픔을 견뎌내는 게, 넘 신기방기한 거라. * “도대체 이게 뭔 난리여~?”라고 질문하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3.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범으로~~(v7) * 지금 바울은 여러 지역에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라, 곳곳에 편지며 사람들을 보내고, 또 자신도 직접 다니며 성도들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이러는 중이잖아요? * 그 가운데 가장 모범사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얘기 인 거죠^^ * 근데, 더 놀라운 건, 그들이 겨우 믿은 지 1년 정도 된 새가족들로 구성된 교회라는 거라. 진짜 도전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 *** 그러게요.. 교회가 교회답게 살아갈 때, 우리에게 들려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살아가기만 해도 사람들은 이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질문한다는 거, 이게 진실인 거죠, * 거꾸로, 사람들이 내 삶을 보고서 “도대체 이게 뭔 난리여~?”라는 질문은 한 번도 하지 않는다면, 이건 정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 되는 거구요. ㅠㅠ * 그 시대의 가장 일반적이고 상식적이었던 온갖 신들과,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황제숭배를 과감하게 던져버린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이 무모함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을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 “도대체 이게 뭔 난리여~?”라는 질문을 할 거라는 거!! * 말은 이렇게 할 수 있어도, 그렇게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쉽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오히려 겁나서 더 못하고, 주춤거리는 내 모습. 그래서 더 어떤 땐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더 냉소적이 되고, 또 어떤 땐 마음은 움직이지 않은 체 머리와 입으로만 조잘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는 거. ㅠㅠ * 암튼, 오늘 말씀이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되어 내 가슴을 누르는 걸 느낍니다... * 그러면서도, 그래도, 내가 가서 하소연할 데가 우리 주님밖에 없어서.. 주님께 나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사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자기 힘으로 이렇게 산 게 아니라, 주님 주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 수 있었으니까, 우리도 주님께 나아가는 거죠. *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게 용기를 더해주시고, 이 시대를 거슬러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게, 아니, 한 발짝이라도 옮길 수 있는 힘을 더하여 주소서... * 사람들이 사회적 범죄의 현장, 눈살 찌푸리는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이름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도대체 이게 뭔 난리여~?”라고 말하는 대신에, 정의를 세우고 사랑을 드러내고, 묵묵히 오늘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을, 아니 나를 발견하고 “도대체 이게 뭔 난리여~?”라고 말할 수 있게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하고, 오늘 한 걸음, 아니 단 1센티라도 그 길을 따라 걸었음에 기뻐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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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介

맑은물교회 매일 아침 성경묵상 나눔입니다. 큐티 진 "시냇가에 심은 나무(시심)",(IVP)의 진도를 따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눔하는 묵상 도우미입니다. 말씀나눔 도우미는 하창완목사(맑은물교회담임)입니다. 이 팟케스의 말씀나눔은 다음의 경우에 도움이 됩니다. 1. 먼저 개인적 큐티묵상을 한 다음 들으면 제일 좋습니다. 개인묵상를 보충하여 문맥 속에서의 뜻이나 난해한 구절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2. 그날의 큐티묵상을 못했을 때 들음을 통해 말씀의 은혜를 누리게 되고, 다음날 묵상 본문의 문맥을 놓치지 않고 갈 수 있게 됩니다. 3. 그룹에서 함께 큐티나눔을 하는 경우, 혹시 개인적으로 묵상의 훈련이 약한 사람이나 평소 묵상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팟케스트릐 나눔을 들음으로써 그룹 나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자연스럽게 묵상의 훈련으로 이어지도록 도와줍니다. 4. 어떤 경우에는 큐티와 무관하게 그냥 설교말씀을 한 편 듣는다는 생각으로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으로 삼아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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