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아침마다 지혜 #074] 향기로 포장된 진실: 우리가 사랑한 브랜드의 민낯

- 존슨앤드존슨 이야기에서 배우는 소비자 감시의 중요성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이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부드러운 아기 피부, 달콤한 파우더 향기, 그리고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 수십 년 동안 이 기업은 ‘사랑’과 ‘신뢰’라는 단어를 광고보다 더 강력한 무기로 삼아 우리 곁에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간된 《눈물은 그만: 존슨앤존슨의 어두운 진실(No More Tears: The Dark Secrets of Johnson & Johnson)》은 이 기업의 이미지 뒤에 감춰진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저자 가디너 해리스(Gardiner Harris)는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을 거친 베테랑 탐사보도 기자로, 그의 시선은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브랜드’가 어떻게 소비자의 감정과 규제 당국의 허점을 활용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때로는 진실을 은폐하며 생명을 위협하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쳤습니다.

향기의 전략, 감정의 마케팅

존슨앤존슨의 대표 제품인 베이비파우더는 단순한 위생용품이 아니었습니다. 이 제품은 전 세계 200여 가지 향료를 조합해 만든 ‘세계에서 가장 인지율이 높은 향기’를 무기로 삼아,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유대감을 연상시키는 감정 마케팅의 정점이었습니다.

그 향기는 인간의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를 자극하여, ‘엄마의 사랑’이라는 이미지와 기업 브랜드를 강하게 결합시켰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생아는 출생 직후부터 냄새를 통해 애착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존슨앤존슨은 이 생물학적 본능을 정교하게 이용해, ‘향기=사랑=존슨앤존스(J&J)’라는 등식을 구축한 셈입니다.

진실 너머의 신화

이 회사는 1982년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당시 신속하고 투명한 대응으로 ‘기업 윤리의 교과서’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모든 신입사원에게 이 사례를 소개하며, 회사의 윤리적 정체성을 강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선한 이미지’는 내부적으로 잘못을 정당화하는 면허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책에 따르면 일부 직원들은 “우리는 본질적으로 선한 회사”라는 믿음 아래, 불편한 데이터를 무시하거나 위기를 축소하는 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회사는 탈크(활석)가 포함된 베이비파우더가 특정 암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부에서 오랫동안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유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아왔습니다.

신뢰는 소비자의 몫일까, 기업의 책임일까?

우리 시니어 세대는 ‘좋은 회사’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브랜드에 대한 감정적 애착이 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뢰는 맹신과 다릅니다. 아무리 오래된 브랜드라도, 감정적 이미지가 진실을 가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은 존슨앤드존슨이라는 하나의 회사를 넘어서, 우리가 의료, 제약, 소비재 기업과 맺는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신뢰는 소비자가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시니어의 역할, 감시자이자 교육자로

의료비 지출이 급증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 시니어 세대는 제약과 의료 산업의 핵심 소비자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비판적 시선과 소비자 감시의식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녀와 손주 세대에게도, 광고보다는 사실을, 감정보다는 정보에 근거한 소비를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은 단지 한 기업의 내부 고발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소비자 교육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브랜드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 그것이 바로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출처: 캐어유 뉴스 https://www.careyou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