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중국 여행하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은 기분이 강해지는 바람에 중국 만두를 먹기 직전 잠에서 깼다. 아쉬워라. 눈 뜨자마자 보인 건 찐만두처럼 부푼 얼굴. 인상을 쓰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이 사람. 아휴, 어쩜 이렇게 못생겼을까? 난 참 비위도 좋지. 잠자는 그의 면전에 손가락질하며 “후후후” 비웃어주고 냉큼 오줌을 싸러 갔다. 난방이 잘 되는 요즘 아파트에서도 자다가 화장실 가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데,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집 밖의 화장실까지 가기 얼마나 성가셨을까. 나라도 요강을 썼을 거야. 가벼워진 방광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다가, 그의 양팔을 억지로 벌려 그 사이에 옴짝하게 안겼다. 그는 “으으” 거부하듯 싫은 소리를 내면서 헤드락처럼 성의 없이 안아주었다. 잠결에도 ‘귀찮아 죽겠네, 해주면 될 거 아니야’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아유, 한결같은 사람. “어머, 눈 온다!” “으으?” “어머 자기 깼구나? 아니야, 자. 자.” 발치의 창문 밖으로 뽀얀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 좋아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신랑의 귀여움이 돋보이는 크리스마스가. 그를 처음 봤을 때 앗, 저렇게 못생긴 남자는 어떻게 장가 가지?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걱정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내가 결혼해주었으니까. 그는 예나 지금이나, 흑백 사진으로 유명한 포토그래퍼다. 그리고 난 3년 전만 해도 그의 작품을 간간이 스크랩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는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을까. 네이버에 이름을 검색해 봐도 그의 포트폴리오만 나올 뿐, 얼굴은 베일에 가려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랑이 똑똑했던 것이다. 가릴 건 가려야지. 아무튼 내가 근무하는 홍보팀에서 어느 날 우리 회사의 광고 사진을 멋들어지게 찍자는 의견이 나왔고,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를 섭외했다. 회의실에서 처음 인사하며 그의 실물에 놀랐지만 (심지어 옷도 몇 년 전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그래도 사진 퀄리티는 좋을 테니, 담당자로서 열심히 일해보자 의욕을 다졌다. 열심히 일하는 나와 열심히 촬영하는 그, 우리 사이에 동료애가 싹텄다. 마음 맞는 동료들이 그러하듯 맥주도 몇 번 마셨고, 그래, 이 정도로 함께 열심히 살면 인생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싶어 동맹을 맺듯 연애했다. 처음으로 자취방에 그를 초대했던 2년 전 크리스마스,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나는 소파에서 안절부절하다가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다. 초록색 카디건을 입은 그가 무뚝뚝한 얼굴로 화분을 들고 서있었다. “내가 이 집에 온 몇 번째 남자죠?” 저런 뻔한 농담을 안 하면 더 좋아해 줄 텐데, 생각하면서도 난 부끄러운 척 얌전히 웃었다. 그날은 엄마에게 얻은 전복을 굽고, 차돌박이와 감자를 넣어 된장찌개를 끓였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이니 고추는 생략. 그렇다. 찌개에 청양고추 넣는 것을 포기할 만큼, 나는 그를 위해 입맛까지 희생하고 있었다. 야수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내가 미녀가 아니어서 미녀와 야수는 아니지만, 여자와 야수 정도는 되었다. 그는 도무지 호감 가는 인상이 아니었고, 그렇다면 옷을 잘 입거나 다정한 맛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나의 기똥찬 찌개를 먹은 후에도 맛있다는 칭찬조차 제대로 안 하는 남자였다. 기껏해야 “코오오”하는 감탄사를 조그맣게 들려줄 뿐. 그건 코 고는 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들 알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의 장점은 전부 다 대단해 보이고, 그의 단점은 모조리 귀여워 보인다는 것을. 고로 그가 사진을 촬영할 때면 언제고 대단해 보였고, 그 외의 시간에는 언제고 귀여워 보였다. 내가 그를 귀여워하는 만큼 그가 나를 귀여워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귀여워하니까 밤을 꼴딱 새운 날 아침에도 나를 보러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2년 전 크리스마스에,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는 그가 해주었다. 싱크대가 낮아 다리를 시옷자로 쩍 벌리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우리는 소형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천장에 영화를 쏘았다. 요즘이야, 그가 눕자마자 그의 허리를 쿠션 삼아 다리를 척 걸쳐두지만, 그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침대에 누우면 에로틱해질 수 있으니 딱딱한 거실 바닥에 누워 천장의 영화를 감상했다. 그 사람의 연애 공백기가 길었던 것에 비해 나는 이래저래 넉넉하게 연애해봤지만, 어쩌면 이 사람하고는 결혼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에 오히려 모든 스킨십을 천천히, 아끼고 싶었다. 더불어 첫 크리스마스인 만큼 섹기하기보다 순수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빔을 천장에 쏘지 말고 벽에 쏠걸, 후회하는데 그가 내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붙였다. 입을 맞출 듯한 공기. 난 벌떡 일어나 냉동고에서 하드바 두 개를 꺼냈다. 나란히 바밤바를 우적대며 키스를 미뤘다. 물론, 그때도 이미 그와 몇 번 키스를 해본 상태였지만, 뭐 그리고 사실 잠자리도 한 번 한 상태였지만, 자취방에서 저질러버리면 뭔가 엄청나게 불탈 것만 같았다. 솔직히 자취방에 초대한 첫 남자이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상대방과 대략 어느 시기에 어느 수위의 스킨십에 이르는 게 좋겠다는 계산을 하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무조건 순결한, 알퐁스 도데 스타일의 밤을 보내고 싶어 속옷조차 새하얀 것을 입고 있었다. 그럴 거면 집에 초대하질 마! 라고 남자들은 충고하고 싶겠지. 후후훗. 하지만 그렇게 자취방에 나란히 누워서도 아무 일 없었던 순진한 추억은 연애 초기가 아니면 만들기 어렵다. 그런 추억이 있다면 부부가 되어서 평생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 정도로, 나도 모르게 야수와의 미래를 꿈꾸었다. 영화는 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빙판에 눕자, 마치 우리의 모습이 천장에 비친 듯했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자기, 스킨십은 새해에 새 마음으로 시작합시다, 오늘은 아이처럼 순수하게 있고 싶어요”라고 말할까 고민했는데, 그가 긴장한 목소리로 먼저 말했다. “오늘 우리 커플룩이네요.” 나의 빨간 원피스, 그의 연두색 카디건.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귀여운 크리스마스 커플룩. 그는 덧붙였다. “우리 어떻게 원피스랑 카디건 색을 똑같은 것으로 골랐을까?” 그리고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영화에 집중했다. 나는 두 가지에 놀랐다. 그가 드디어 미소를 지었다는 것과, 그의 발언에 대해. 그의 발언 때문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왜 빨간색과 녹색이 같은 색일까 의아해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조명을 끄긴 했지만 식사 시간에는 환했으니 내 옷을 봤을 텐데. 아니면 내가 오늘 빨간색이라고 착각하고 녹색 옷을 입었나. “우리가 같은 색 옷을 입었다구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날 그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방심한 듯 행복한 웃음을 흘려서 나는 질문을 스킵하고, 마주 웃었다. 일주일 정도 후. 새해를 맞아 이번엔 그의 집에 떡국을 먹으러 놀러 가던 길, 횡단보도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다가 퍼뜩 떠올렸다. “……적록색약?” 명암 대비가 확실한 흑백 사진을 잘 찍는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가 비서처럼 붙어 다니는 것도 어쩌면 색상을 확실하게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해서일까. 운전면허도 그래서 없는 걸까? 신호등의 빨간불과 초록불을 구별하지 못 해서. 그럼 이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색 대신 다른 사람들이 철새처럼 무리 지어 건너는 것을 따라 건너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가슴이 꽉 찰 정도로 만족스러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를 챙겨줄 수 있는 핑계가 생겼다. 그 해 여름 예식장을 잡을 때까지도 그는 내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실은 지금까지도. 나는 오른쪽과 왼쪽을 헷갈리는 어린아이를 놀리듯, 종종 빨간색이나 초록색을 가리키며 “어머 여보 이건 무슨 색일까?”하고 물었다. 그럼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얼굴이 벌게져서 툴툴 거렸다. “알면서 뭘 물어?” 한 번은 시어머니 댁에 인사드리러 가서 그가 담배 피우러 나간 틈을 타 슬쩍 여쭤봤다. “이이가 색약인 거 어머니는 언제 아셨어요?”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그의 단점이 어머니에게는 귀한 자식의 가슴 아픈 단점인지 놀란 얼굴로 말씀하셨다. “어떻게 알았니?” “어쩌다 알았어요.” “우리도 저 녀석 고3 때 처음 알았지. 색약이어서 미술대학에서 입학 자격을 박탈 당했거든. 녀석도 그제야 본인이 색약인 걸 알고 어찌나 충격을 받던지. 하도 울어서 시력을 잃겠다고 걱정했을 정도였다니까.” 나는 남편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떠올렸다. 보들보들한 아기 얼굴로 슬피 울었구나. 장난쳐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