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여행ㆍ엔터테인먼트ㆍ라이프

‘국민 어머니’ 마주여신 생일 파티의 현장으로 🎂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완사람들의 일상에서 ‘신앙’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디서든 절을 만날 수 있고, 신도가 아니더라도 절 앞을 지나갈 때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아 절하는 게 몸에 밴 습관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 많은 신들 중 특히 바다의 수호신 ‘마주여신(媽祖)’은 타이완사람들에게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존재로 깊은 존경을 받고 있는데요. 중국 푸젠(福建)에서 시작된 마주 신앙은 한족의 이주와 함께 바다를 건너 타이완, 동남아, 일본으로 전해졌습니다. 2009년 유네스코에 의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타이완에서 마주 신앙의 열기가 얼마나 뜨겁냐면, ‘마주에 열광하다(瘋媽祖)’는 표현이 있을 정도입니다. 일 년 내내 다양한 경축행사가 이어지는 것은 물론,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인들이 어김없이 마주묘(媽祖廟)를 찾아가 지역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실제로 2020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왕진핑(王金平) 전 입법원장과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회장이 잇달아 “꿈에서 마주여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국민당 당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2023년 10월 신베이 반차오(板橋)에 있는 마주묘 '츠후이궁(慈惠宮)'을 방문한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 - 사진: CNA

마주여신 생신 x 부활절 x 곡우 ☔

지난 4월 20일, 음력으로 3월 23일은 마주여신의 생신이었습니다. 이 날을 맞아 타이완 전역의 마주묘에서 성대한 순례행사가 열려 축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신도들은 마주여신을 태운 가마를 따라 행진하며 올 한 해의 행운과 평안을 기원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마주여신의 생신이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과 같은 날이었다는 건데요. 이 때문에 마주묘뿐만 아니라, 교회와 성당에서도 성대한 행사가 펼쳐져 타이완 특유의 다원적인 종교 풍경을 잘 보여줬습니다.

절기로 봐도 이 날은 의미가 깊습니다. 바로 봄비가 곡식을 적신다는 뜻의 ‘곡우(穀雨)’였는데요.  실제로 타이베이에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습한 날씨를 보였습니다. 이 날을 두고 “마조파우, 대도공풍(媽祖婆雨,大道公風)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마주여신과 의술의 신 ‘보생대제(保生大帝, 대도공 大道公)’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보생대제는 마주여신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까지 했지만 거절당했고, 분노한 그는 마주여신의 생일마다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러자 마주여신도 이듬해 보생대제의 생일인 음력 3월 15일에 맞춰 바람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마주여신 생신엔 비가 오고, 보생대제 생신엔 바람이 분다고 믿게 된 거죠. 만약 날씨가 밝으면, 두 신이 화해한 징조라고 생각하죠. 이렇듯 마주여신의 생신은 단순한 종교 기념일을 넘어, 타이완 민간신앙의 정서와 스토리가 깃든 특별한 날입니다. 그럼 오늘은 마주여신의 ‘생일 파티’ 현장으로 떠나볼까요?


2025 타이중 다자(大甲) 전란궁(鎮瀾宮)의 마주여신 순례행사 - 사진: CNA

바다의 여신에서 전국민의 여신으로 🧚‍♀️

마주여신, 과연 어떤 신일까요? 사실 신으로 추앙받기 전부터 이미 신력을 가진 총명한 여성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깊은 존중을 받았습니다. 960년 중국 북송 시대 푸젠의 바닷가 마을에서 여섯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 후, 한 달이 되어도 울지 않아 묵묵하다는 뜻의 ‘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애칭으로 ‘묵낭(默娘)’이라 불렀고, 성이 임씨였기에 ‘임묵낭(林默娘, 린모냥)’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촌에서 자란 목낭은 어릴 적부터 바다에 대한 경외심이 남달랐고, 어부들의 고된 삶에도 깊은 공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날씨를 예측하는 신력이 있어 실제로 많은 어민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가장 유명한 전설은 풍랑 속에서 위기에 처한 아버지와 오빠를 직접 구해냈다는 겁니다. 이처럼 남다른 신력과 착한 마음씨로 목낭은 점차 신격화되었죠. 결국 28세의 나이에 ‘우화등선’, 즉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후 목낭을 기리는 절이 세워지면서 마주신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송나라부터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까지 무려 14명의 황제로부터 ‘천비(天妃)’, ‘천후(天后)’ 등의 칭호를 하사받아 국가 차원의 숭배 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타이난의 임묵낭 공원 - 사진: 타이난시정부

이민사회인 타이완에서 마주신앙은 더욱 강하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오려면 험난한 타이완해협을 지나야 했는데, 많은 이민자들이 마주여신의 신상을 갖고 타이완에 와서 이곳저곳에 마주묘를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가 타이완의 정씨왕국을 공격하던 당시, 마주여신이 신력으로 해상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어줬다는 설화가 있어 청나라 정부는 타이완 전역에 마주신앙을 적극 홍보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이 일본 식민지였던 타이완을 폭격했을 때도, 많은 타이완사람이 마주여신의 보호 아래 구조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바다의 수호신으로 시작된 마주여신은 점차 바다를 넘어 모든 타이완사람을 수호하는 ‘국민여신’이 되었고, 중국대륙과는 또 다른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마주신앙이 타이완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느껴보기 위해, 타이완 힙합 밴드 ‘차오툰인아(草屯囝仔)’의 ‘마주(媽祖)’를 함께 들어보시죠.

타이완 최초의 마주묘 '펑후천후궁' 👈︎

정부 통계에 따르면, 타이완에는 등록된 마주묘만 해도 500곳이 넘는데, 등록되지 않는 곳까지 포함하면 1,000곳이 훌쩍 넘을 수도 있습니다. 타이완 최초의 마주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유력한 곳은 1604년 이전 외딴섬 펑후(澎湖)에 세워진 ‘펑후천후궁’입니다. 푸젠 지역의 어민과 상인들이 펑후에 올 때 돈을 모아 세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청나라 시대 이후 중국과 타이완 사이를 잇는 배들이 펑후를 자주 거치면서, 천후궁은 현지 인사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규모가 점점 커졌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검은색 신상을 모시는 대부분 마주묘와 달리, 여기의 마주 신상은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건데요. 이는 청나라 강희제가 하사한 것으로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금으로 만들어진 펑후천후궁의 마주 신상 - 사진: 위키백과

타이완의 가장 오래된 마주묘로서 마주여신의 생신을 그냥 지나칠 수 없죠. 매년 음력 3월 11일, 마주여신 생신을 앞두고는 여신의 신상을 배를 태워 펑후 주변 해역을 순례하고, 타이완 본섬에 있는 20여 개의 마주묘와 함께 축제를 개최합니다. 이어 생신 당일에는 성대한 제사를 지내 타이완 각지에서 온 우호 사찰들의 신들과 한 자리에 모입니다. 제사상의 가장 중심에는 펑후천후궁의 마주여신이 자리하고, 다른 신들은 ‘관직’에 따라 순서대로 착석합니다. 마치 신들의 직장 회의로 볼 수 있죠.


펑후천후궁 - 사진: 내정부 타이완종교문화지도

타이완의 정치, 사회, 일상까지 깊숙이 스며든 마주 신앙. 마주여신은 국민의 어머니처럼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아까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주여신의 수양딸이나 수양아들, 이른바 ‘계자녀(契子女)’가 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다음에 타이완을 방문하신다면, 타이완인의 ‘국민 어머니’, 마주여신을 모시는 마주묘에 한 번 둘러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魯永明,「媽祖生日、耶穌復活節明天巧合同日慶祝 還逢節氣『穀雨』」,聯合新聞網。
2. 楊登嵙,「為何媽祖出巡一定下雨,大道公出巡會颳風?他揭2神明間的愛恨情仇,背後竟藏不為人知的愛情故事」,風傳媒。
3. 澎湖天后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