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누군가가 종이를 흘린 걸까요? 수많은 백지가 허공을 둥둥 떠다닙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말없이 자기 일에 몰두합니다. 신비로운 빨간 계단을 따라 위로 혹은 아래로 향하면, 더 넓은 세계가 펼쳐집니다. 두세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개인 영화관부터 아늑한 만화 코너, 커피 향이 가득한 독립서점, 3D 프린터를 갖춘 스타트업 공간, 그리고 세려된 요리교실까지, 이 모든 것이 한 건물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곳은 지난 2021년 개관한 타이난시립도서관의 신본관입니다. 타이난시립도서관 신본관 로비 - 사진: 안우산 최근 몇년 간, 타이완의 주요 도시들은 ‘문화관광’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공공시설이 지닌 문화성과 예술성은 이제 한 도시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는데요.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의 신축은 물론, 다양한 문화 이벤트도 이어지고 있죠. 그 중심에는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타이완의 고도 ‘타이난’이 있습니다. 건축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 같은 타이난미술관부터, 시민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도서관, 그리고 지난 5월 말 새롭게 문을 연 청핀(誠品)서점 타이난지점까지, 타이난은 ‘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판업의 침체로 도서관과 서점을 ‘구시대의 유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문화관광’이라는 키워드 아래, 이 공간들은 이제 책만 있는 독서 공간을 넘어, 다채로운 콘텐츠가 아우러진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신본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좀 전에 소개한 설치미술 작품 ‘돌풍(Gust of Wind)인데요. 공중에 정지된 수백 장의 백지들, 그 위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방문자의 상상력으로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존 도서관의 폐쇄적인 이미지와 달리, 전체 공간이 탁 트여 있어 마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입니다. 이곳에서 지식은 책 속에만 머물지 않고, 디지털 장치, 영상 콘텐츠, 전시, 토론, 공연, 그리고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도 살아 있습니다. 오늘은 이 모든 것을 품은 ‘지식의 백화점’, 타이난시립도서관 신본관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세련된 빨간 계단 - 사진: 안우산 문화관광 열풍 🖼︎ 신본관은 타이완 교육부가 2009년부터 추진해온 도서관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했습니다. 시민들의 독서 습관을 키우고 보다 좋은 독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타이난시정부는 40여 개의 지역 도서관을 개축하고 설비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왔죠. 그 노력의 결실로 이 새로운 본관이 세워졌습니다. 2013년 타이난시장이었던 라이칭더(賴清德) 현 총통이 제시한 도시계획에 따라, 시정부는 타이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행정구역 ‘융캉(永康)’을 입지로 정했습니다. 융캉은 타이난과학단지와 융캉공업단지, 그리고 타이난 시내에 인접한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신관이 자리잡은 곳은 과거 포병학교 부지였고, 올 하반기에는 융캉 바로 옆에 있는 관먀오(關廟)로 이전될 예정입니다. 건축은 새로 지어졌지만, 타이난시립도서관은 타이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서관인데요. 일본 정부가 1914년 타이베이에 총독부도서관을 세운 지 5년 후, 타이난에도 도서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타이완공회당에 부속된 도서관이었고, 장화(彰化) 루강(鹿港) 출신의 유명 사업가 구셴룽(辜顯榮)의 기부로 새 건물이 세워지며 타이난시립도서관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 시립도서관으로 자리를 지켜오다가, 1975년에는 타이난 기차역 근처 타이난공원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전 자리였던 땅은 위안동(遠東) 그룹에 매각되어 지금은 위안동 백화점 타이난공원지점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기존 도서관은 여전히 공간 부족의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독서의 방식이 크게 달라지면서, 도서관도 변화를 요구받는 시점이 찾아온 겁니다. 홍위전(洪玉貞) 전 타이난시립도서관 관장은 문화예술지 ‘벌스(Verse)’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공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신본관의 토론실 - 사진: 타이난시립도서관 사람 중심의 도서관 📚 그렇다면 새로운 형태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핵심은 ‘책’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한 공간 디자인입니다. 천장을 찌를 듯 높이 쌓인 책꽂이 대신, 사람과 책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넓은 공간, 의자와 책상도 각 코너 성격에 다르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화 코너에는 장시간 앉아도 편한 1인용 소파, 전문도서 코너에는 여러 권의 책을 펼칠 수 있는 넉넉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음식, 동물, 타이난 로컬 문화처럼 주제별로 꾸며진 작은 공간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예술전시를 감상하듯, 책을 새로운 형식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도서관 내부 - 사진: 안우산 남다른 공간 디자인뿐만 아니라, 운영 방식 또한 과감히 바뀌었습니다. 신본관은 24시간 셀프 대출·반납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인력을 줄이면서도 효율을 높였는데요. 홍 전 관장에 따르면, 개관 첫 달 동안 무려 12만 5,000명이 방문했고, 대출된 도서는 17만 7,000권에 달했습니다. 현재는 매달 평균 9만 이상이 찾고, 도서 대출량은 14만 권에 이르며, 타이베이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본관에서는 다양한 서비스 외에, 퀄리티 높은 전시도 만나볼 수 있는데요. 그 이야기에 앞서, 신본관의 폐관 멜로디, 타이난 출신 가수 셰밍유(謝銘祐)의 ‘간다(行)’를 함께 들어보시죠. Rti 청취자 사연 전시회 📮 6월 ‘타이난 인권의 달’을 맞아 타이난에서 벌어진 백색테러 이야기를 다룬 특별전시 ‘빛 하나하나가 독특한 시그니처(每一道磷光都是獨特的署名)’가 신본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타이난 여러 학교에서 발생한 백색테러 사건 15건, 유가족에게 전하지 못한 타이난인의 유서 29페이지, 어두운 역사를 음악으로 재현한 노래 10곡 등 소중한 전시품을 통해, 민주화의 길을 걸었던 선배들의 희생과 용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타이난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으시다면, 4층에서 열리는 상설전시 ‘타이난 명예의 전당’을 함께 들러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인권의 달 특별전시회 - 사진: 안우산 뿐만 아니라, 저희 Rti 청취자 여러분들의 사연도 이곳에서 전시되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지난주 4일까지 열린 ‘Rti를 만난다’ 전시회에서는 ‘자유중국의 소리’부터, ‘아시아의 소리’, ‘타이베이 국제의 소리’, 그리고 지금의 ‘타이완의 소리’까지 수십 년간의 방송 역사와 함께, 전 세계 50개국에서 보내온 총 640개의 청취자 사연 중 일부가 소개되었습니다. 이 중에는 김길홍님, 서철님, 오종원님, 권대근님, 김승수님, 김한수님 등 한국 청취자분의 사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방송을 오랫동안 응원해주신 모든 청취자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Rti를 만난다' 특별전시회 - 사진: 안우산 문화의 도시, 타이난 ✨️ “타이난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일을 하고, 연애와 결혼을 하고, 유유히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다.” 타이난 출신 문학의 대가 예스타오(葉石濤)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신본관은 바로 이 모든 것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죠! 오늘 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李佳芳,「解密台南新總圖:一座超乎想像的新時代圖書館」,Verse。 2. 王振愷,「國際建築、地方特色與『誠品化』:反思臺南市立圖書館新總館與地方圖書館熱」,典藏ARTouch。 3. 王振愷,「【鹽分地帶文學】像一棵大榕樹的圖書館─洪玉貞館長對臺南新總館的想像」,聯合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