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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날③] 시간을 전시하는 곳, 타이완 첫 박물관을 걷다 🖼︎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 18일 오후, 타이베이에서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거리는 한산했지만, 공원 안에 자리한 박물관은 관람객들로 붐볐는데요. 커다란 공룡 화석 앞에서 눈을 반짝이던 아이들부터 딸에게 타이완의 역사를 차분히 들려주던 아빠, 원주민 전통의상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박물관이란 공간이 이렇게나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이곳은 바로 타이완 최초의 박물관 ‘국립타이완박물관’입니다.

국제 박물관의 날을 맞아 5월 17~18일 이틀간, 타이완박물관의 4개 전시관인 본관, 고생물관, 남문관, 철도부단지가 전부 무료로 개방되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 기회를 틈타 도심 속 박물관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하철로 이동하기도 편한데요. 본관과 고생물관은 타이완대병원역, 남문관은 중정기념관역, 철도부단지는 베이먼역에 위치해 있어, 하루에 4군데를 모두 둘러보는 것도 어렵지 않죠.


지난 5월 18일 국제 박물관의 날을 맞아 관람객들로 붐비는 타이완박물관 - 사진: 안우산

혹시 무료 입장 기간을 놓치셨다고 아쉬워하고 계신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입장료가 굉장히 저렴한 편입니다. 본관과 고생물관은 두 곳을 합쳐 30뉴타이완달러(한화 약 1,380원), 남문관은 20뉴타이완달러(한화 약 920원), 철도부단지는 100뉴타이완달러(한화 약 4,600원), 4곳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통합이용권은 단 130뉴타이완달러, 한화로 6천 원도 안 되는 가격입니다.

게다가 4개 전시관 모두 일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문화유산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본관은 옛 타이완총독부박물관, 고생물관은 일본 간교우 은행(勧業銀行), 남문관은 장뇌와 아편 공장, 철도부 단지는 철도 행정의 중심이었는데요. 건물 자체가 전시품 못지않은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주변 총통부, 2·28평화공원, 타이베이빈관(臺北賓館), 중정기념당까지 함께 구경하면 타이완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멋진 문화 투어가 완성됩니다. 박물관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타이완박물관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타이완박물관 고생물관의 공룡 화석 - 사진: 안우산

일본의 ‘부채’에서 ‘자산’으로 탈바꿈한 타이완 💰️

타이완박물관의 설립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전시 내용도 물론 흥미롭지만, 오늘은 ‘타이완 역사의 목격자’ 박물관 건물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식민지 시대 초기, 거세게 이어진 항일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총독부는 주로 무력으로 다스렸고, 기반 시설은 거의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국회에서는 “타이완을 1억 엔에 프랑스에 팔자”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그만큼 통치의 어려움과 회의론이 컸던 시기였죠. 이 상황은 제4대 총독 고다마 겐타로(児玉源太郎)가 취임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다마 총독은 일본 중앙정부에서 여러 직책을 맡고 있고 러일전쟁에도 참여해서 타이완에 머무는 시간은 매우 짧고, 사실상 총독부를 이끄는 사람은 민정장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였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를 흔히 ‘고다마·고토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죠.

타이완박물관 본관에 전시되는 제4대 총독 고다마 겐타로(児玉源太郎, 우)와 민정장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좌) 동상 - 사진: 위키백과

고토 장관은 약 8년간 재임하면서 타이완의 현대화 기반을 닦는 데 전력했습니다. 철도와 수도, 금융 기관 같은 인프라부터, 아편 금지와 인구 조사 등 제도 마련까지 행정 전반을 정비했습니다. 이 덕분에 1905년 타이완 재정은 자급자족이 가능해졌고, 심지어 일본 본국에 수익을 가져다줄 만큼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타이완은 일본의 ‘부채’에서 ‘자산’으로 탈바꿈했고, 고토 신페이에게도 ‘타이완 개발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타이완 개발의 아버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민정장관 - 사진: 위키백과

통치력을 과시하는 곳 💪

식민 통치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총독부는 1899년 ‘민정부 상품 전시관’을 설립했는데요. 동식물 표본과 공예품 등을 전시하고 타이완의 자원을 소개하는 공간이었죠. ‘고다마·고토 시대’가 막을 내린 이듬해인 1908년, 타이완 서부를 관통하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총독부는 전시관의 이름을 ‘총독부 박물관’으로 바꾸고, 총독부 옆 건물(현 博愛大樓 박애빌딩, 법무부 염정서 소재)에서 박물관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타이완 최초의 박물관은 탄생했습니다.

당시 박물관의 책임자 미야오 슌지(宮尾舜治)는 “이 박물관은 자연과학 박물관으로, 타이완의 동식물과 광물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10년, 20년, 50년이 지나면 학술계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외국인들이 타이베이에 와서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본다면, 이 도시를 과연 존중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좋은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식민 통치자의 발언이지만, 당시로서는 꽤 앞선 안목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타이완박물관 본관은 언제, 어떤 계기로 지금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을까요? 그 이야기에 앞서, 타이완 밴드 ‘소다 그린(蘇打綠)’의 ‘박물관(博物館)’을 함께 들어보시죠.

타이완을 세계에 알리는 쇼윈도 ⭐️

1913년 총독부는 ‘고다마·고토 시대’를 기념하기 위해 두 사람의 기념관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여러 논의 끝에 태풍으로 무너진 마주묘(媽祖廟), ‘타이베이 천후궁(天后宮)’의 위치를 선정했는데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국민 어머니’로 간주되는 마주여신의 절을 철거한 것은 타이완인에게 큰 모욕이자 불경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종교적 탄압보다는 공원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들이 대부분 공원 안에 있기에 총독부도 ‘타이베이 신(新)공원’을 택했습니다. 이 공원은 위안산(圓山)공원에 이어 타이베이의 두 번째 도시공원이라, ‘신공원’이라 불리며, 1996년부터는 2·28사건을 기념하는 평화공원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2년간의 공사를 거쳐 기념관위원회는 1915년 이 건물을 총독부에 기증해 ‘타이완총독부박물관’으로 사용하도록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총독부박물관과 고다마·고토 기념관은 한 공간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원래 박물관이 있던 건물은 분관으로 쓰이다가 1917년 총독부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이후 총독부박물관은 타이완을 세계에 소개하는 쇼윈도 역할을 하고, 전시회 장소로도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1925년과 1935년 시정 기념 박람회 기간에는 모두 주요 행사장으로 사용되었고,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타이완박물관 본관이 위치한 2·28평화공원 - 사진: 위키백과

건축미 뿜뿜 🎨

다양한 전시품 외에, 타이완박물관은 뛰어난 건축미로도 주목받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문화 진흥에 힘썼고, 첫 식민지 박물관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도리스식’ 양식을 바탕으로 신전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로비 천장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압도적이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기만 해도 그 장엄함 앞에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타이완박물관 본관 천장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 사진: 안우산


본관 로비 - 사진: 안우산

타이완을 대표하는 박물관 ✨️

제2차 세계대전 후, 총독부박물관은 중화민국 정부 산하 타이완성립(省立)박물관이 되어 계속 타이베이 도심에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이어 2006년, 문화부는 타이베이의 역사 풍경을 되살리기 위해 일련의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박물관 본관을 중심으로, 앞서 소개된 3개의 전시관을 복원하고 연결하면서 지금의 규모로 확장했습니다.

전시관마다 특별한 테마가 있습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본관은 ‘토지’를 상징하며 타이완의 자연과 역사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