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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날①] 유장(有章)박물관에서 만난 ‘모두의 엄마’ 천메이링(陳美玲) 👩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박물관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반가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다가오는 5월 18일 ‘국제 박물관의 날’을 맞아 타이완 전역 50곳이 넘는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관, 과학관이 다채로운 이벤트를 선보일 예정인데요. 타이베이의 경우, 고궁박물원, 국립타이완박물관, 국립역사박물관, 타이베이시립미술관, 국가인권박물관 등 주요 박물관들이 18일 당일 무료로 개방됩니다. 자세한 정보는 중화민국박물관학회 페이스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국제 박물관의 날은 국제박물관회의(ICOM)가 1977년 제정한 기념일로, 박물관의 사회적 역할을 알리고 대중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올해 주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 박물관의 미래(The Future of Museums in Rapidly Changing Communities)’로,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박물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건데요. 이번 주부터는 색다른 매력을 지닌 타이완의 박물관들을 하나씩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2025년 국제 박물관의 날 포스터 - 사진: ICOM

타이완예술대 유장예술박물관 🖼️

지난 일요일, 5월 11일은 국제 어머니날이었습니다. 이날, 신베이시 반차오(板橋)에 있는 타이완예술대 유장(有章)예술박물관에서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전시회 ‘천메이링(陳美玲)’이 마지막 전시일을 맞이했는데요. 어머니날에 딱 어울리는 따뜻한 전시 내용, 그리고 공립미술관에 견줄 만큼 완성도가 높은 전시품으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박물관 시리즈’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이곳, 유장예술박물관입니다!

타이완예술대는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대학으로, 공연예술,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창작 등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해 왔습니다. 대학의 예술적 색깔을 보여주고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옛 행정빌딩을 개조해 2008년 예술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했습니다. 2011년 전시관 신축을 위한 기금이 마련되면서 기증자 랴오유장(廖有章)의 이름을 따서 ‘유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죠. 참고로 랴오유장은 세계 최대 발포 폴리스티렌(EPS, 스티로폼 핵심 원료) 젠룽(見龍)화학의 창립자입니다. 규모가 비교적 작은 캠퍼스 미술관이지만, 예술대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전시회를 꾸준히 선보이며, 예술대 학생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학교 내부의 재정 문제로 인해 신축 계획은 지난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유장박물관 - 사진: 안우산

“엄마는 꿈이 없어요?” 천메이링 전시회 👩‍👧

이어서 최근 타이완 SNS에서 화제를 모은 ‘천메이링’ 전시회로 가볼까요? 비싼 식사나 선물 대신, 이 전시는 가장 순수한 언어로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어머니날 선물입니다. ‘천메이링’은 1960년대에 흔했던 여성 이름이자, 큐레이터와 그의 어머니 이름에서 따온 상징적인 이름입니다. 글자는 다르지만 고 영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의 이름도 메이링이죠. 또한 한국의 김씨처럼 타이완에선 ‘천(陳)’씨가 가장 많은 성씨입니다. 따라서 전시 속의 천메이링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50-60대 타이완 여성들이죠. 큐레이터 두이링(杜依玲)은 아티스트 9명과 함께 회화, 다큐멘터리, 극장, 예술장치 등 다양한 형식으로 ‘천메이링’이라는 캐릭터를 그려냈습니다. 그녀는 방직공장 여공이기도 하고, 성노동자, 공무원, 주부, 어머니이기도 하며, 한 시대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품은 인물입니다.

이 전시는 두이링이 어머니에게 던진 질문 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는 꿈이 없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처럼 꿈이 있는 건 아니야. 그냥 가정을 꾸리고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는 걸 알아줘.” 오로지 꿈을 좇는 딸, 그리고 가정과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내려놓은 어머니. 어머니의 대답이 이해되지 않은 두이링은 전시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죠.

그는 2023년부터 서로 다른 출신과 혼인 상태를 지닌 60-70대 여성  8명을 인터뷰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천메이링’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작가 가오보룬(高博倫)과 함께 천메이링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 《검은 참새(黑麻雀)》을 완성했고, 2023년 연말 이 소설을 기반으로 ‘천메이링의 방’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올해 전시의 프로퀄처럼 결혼 전 소녀였던 천메이링의 방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2023년 '천메이린의 방' 일부 전시품 - 사진: 안우산

그럼 2025년의 천메이링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 안동(安董)의 ‘엄마가 말한다(媽媽說)’을 함께 들어보시죠.

구역①👉︎ 천메이링이 직면한 외부 현실 

2023년 전시가 꿈을 품고 있던 소녀 천메이링의 단면이라면, 2025년 전시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일 수 있는 천메이링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이번 전시는 건물 층마다 구성이 다른데, 1층에서는 초상화, 다큐멘터리, 사진 등을 통해 천메이린이 직면한 외부 세계, 즉 사회와 가족, 경제적 현실을 조명합니다. 이어 2층은 천메이린의 내면 세계로, 기쁨, 외로움, 후회, 기억, 그녀가 감추고 눌러왔던 감정들을 다양한 예술장치와 배우의 퍼포먼스로 섬세하게 구현했습니다.

전시는 큐레이터 두이링의 어머니가 남긴 인사말로 시작됩니다. 혈연이지만 가치관이 너무나도 다른 1960년대생 어머니와 1990년대생 딸. 이 전시를 통해 진정한 대화와 이해가 시작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어 등장하는 작품은 눈빛이 반짝이는 여인의 초상화입니다. 그 주인공은 큐레이터가 인터뷰했던 셰수진(謝淑錦) 여사인데요. 남존여비의 가정에서 차별을 받으며 자랐지만,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찬란한 삶을 살아낸 여성입니다. 그러나 결혼 후 시어머니의 괴롭힘과 남편의 사업 실패, 세 아이를 책임지는 고단한 현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시대 여성들의 현실입니다. 아티스트는 이를 통해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강조합니다.


화가 시더진(席德進)이 그린 셰수진(謝淑錦)의 초상화 - 사진: 안우산

1988년 타이베이 비엔날레에 전시된 ‘포르모사 호텔(寶島賓館)’도 볼 만합니다. 1997년 타이베이시장이었던 천수이볜(陳水扁)이 공창(公娼) 제도를 폐지하자 성노동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는데요. 아티스트 우마리(吳瑪悧)는 이에 응답하듯 미술관에 매춘소를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남성은 성노동자의 몸과 노동을 향유하지만, 그들의 권익을 철저히 외면했던 현실을 강하게 꼬집은 작품이죠.


성노동자 권익을 호소한 우마리의 ‘포르모사 호텔’ - 사진: 안우산

구역👉︎ 천메이링의 내면 세계

1층 전시를 모두 관람한 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울리는 핸드폰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관람객은 전화를 받아 ‘천메이링’과 직접 영상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전화 속의 그녀는 관람객을 아이로 여기며, 요즘 뭐 하는지 왜 전화를 안 받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화를 끊고 2층에 도착하면 방금 통화한 ‘천메이링’을 실제로 만나게 됩니다. 한 배우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고, 마치 아이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장면에서 누구나 자기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겁니다. 

계단에 있는 핸드폰 - 사진: 안우산


전시된 핸드폰으로 '천메이린'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 사진: 안우산


천메이린을 연기한 배우 - 사진: 안우산

이번 전시에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들은 액자, 무대, 티비 같은 틀을 활용해 사회가 바라보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도, 그 틀을 넘어 살아있는 천메이링을 구현했습니다. 목소리를 나누고 눈을 마주친 후, 천메이링은 더 이상 이상화된 여자가 아니라, 감정도 있고 상처도 있는 존재로 다가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