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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절] 심판도, 상금도 없는 싸움! 이란(宜蘭) 얼룽(二龍) 드래곤보트 축제 🛶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지나고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름 하면 물놀이와 수상 스포츠죠. 지난 31일 단오절 당일엔 타이완 곳곳에서 용이 살아난 듯한 ‘드래곤보트 축제’가 열렸습니다. 햇볕은 쨍쨍, 북소리는 둥둥! 선수들은 용 모양의 배 위에서 물살을 가르며, 승리를 의미하는 깃발을 향해 힘차게 노를 저었습니다. 관중석에서도 “힘내라!” 외치는 응원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드래곤보트는 ‘용주(龍舟)’라고도 하는데요. 보통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행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단오절에 멱라강(汨羅江, 미뤄강)에 몸을 던진 후, 사람들은 물고기가 그의 시신을 먹지 못하도록 배를 저어 물살을 흔들었다고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드래곤보트는 초나라 이전부터 존재했고, 지역마다 유래와 의미도 조금씩 다른다고 합니다. 꼭 굴원을 위한 행사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죠.

▲관련 프로그램:
삼각주먹밥? 향주머니? 이상한 풀? 타이완의 단오절 풍경

타이완 원주민도 보트 경기가 있다니!? 🚣‍♂

유래가 어떻든 중요한 것은 이 문화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 중화문화에서 용은 제왕의 상징이자 비를 부르는 신으로, 아주 상서로운 존재인데요. 따라서 드래곤보트는 경기 외에도, 비와 풍년, 평안을 기원하는 제의적인 행사로 여겨졌습니다. 청나라 시대 한족의 이주와 함께 타이완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사실 타이완의 원주민 문화에도 비슷한 전통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아메이족(阿美族)의 ‘고기잡기 축제(捕魚祭)’, 조상을 기리고 마을 사람들의 화합을 다지는 행사, 그리고 거마란족(噶瑪蘭族)의 ‘바다의 축제(海祭)’, 악귀를 쫓고 망자의 넋을 달래는 의식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신앙과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드래곤보트는 타이완의 독특한 여름 풍경이 되었죠.

그렇다면 타이완에서만 볼 수 있는 드래곤보트 축제는 어디일까요? 바로 이란(宜蘭) 자오시(礁溪)에 있는 마을 ‘얼룽촌(二龍村)’입니다. 이곳 경기는 심판도, 정해진 출발선과 출발 시간도 없고, 모두 선수들끼리 합의해서 결정합니다. “이건 좀 불공정한데?” 싶으면, “다시 해!” 하면 됩니다. 그래서 한두 번이 아니라, 열 번 넘게 경기를 다시 하는 일도 흔하답니다. 오늘 우리가 향할 목적지는 바로 얼룽의 드래곤보트 현장입니다! 지금 당장 노 젓는 소리 들리시죠?


원주민 거마란족(噶瑪蘭族) - 사진: 위키백과

강의 신을 달래는 의식 💧

이란 북부에 위치한 얼룽촌은 인구 1,5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로, 대부분이 논밭입니다. 원래는 거마란족이 살던 곳이고, 모래섬이라는 뜻의 ‘치우란(淇武蘭)’이라고 불렸습니다. 마을 가운데에는 ‘얼룽허(二龍河)’라는 강이 흐르는데, 자오시의 명소 ‘우펑치 폭포(五峰旗瀑布)’에서 시작해 터우청(頭城)을 거쳐 태평양으로 흘러갑니다.

한족이 이주해오기 전, 거마란족은 얼룽허에서 배를 타고 시합을 하곤 했습니다. 다만 그 배는 용 모양이 아니라, 일상적인 이동이나 화물 운반을 위한 작은 배였습니다. 다시 말해, 단오절과는 전혀 무관한 원주민의 전통이었죠. 또한 당시 마을은 지금처럼 평탄한 땅이 아니라, 강가의 모래톱이었고, 주민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덫을 놓아 사냥하며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강이 자주 범람하면서 사람들을 위협하자, 강의 신을 달래고자 하는 의미로 정기적으로 배 시합을 열었죠.

마을 대 마을의 자존심 대결 🥊

그 뒤로 토사 침적에 따라 새로운 땅이 생겨났고, 18세기 한족의 이주와 함께 중국의 단오절 문화는 이란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렇게 거마란족의 전통 배 시합과 한족의 드래곤보트 축제가 하나로 어우러져, 얼룽촌만의 독특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얼룽촌은 크게 얼룽허 위쪽에 있는 원래 마을 ‘치우란(淇武蘭)’, 그리고 아래쪽에 새 마을 ‘저우자이웨이(洲仔尾)’로 나뉘었습니다. 배 시합도 자연스럽게 ‘마을 대 마을’의 자존심 대결로 발전했습니다.

마을의 평안과 직결된 행사인 만큼, 처음에는 무려 12일 동안 이어졌고, 제1기 벼 수확 전에 두 마을의 협상을 거쳐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행사에는 제사와 축제, 공연, 시합, 그리고 신에게 보답하는 의식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춘절 못지않은 대행사였죠. 그러나 일본 식민지 시대에 들어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타이완인의 단합을 막기 위해 민속 행사를 통제했고, 드래곤보트 축제도 6일로 줄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미군의 폭격으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60년대부터는 비용과 주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오절 하루만 간소하게 진행하는 식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얼룽촌의 오랜 역사가 담긴 드래곤보트 축제,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시죠? 현장 분위기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기 위해, 단오절 노래 한 곡을 띄워드립니다.

총통의 방문 🙋‍♂

지난 2003년, 얼룽 드래곤보트 축제 현장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바로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입니다! 200년 넘는 역사 동안, 이곳을 직접 찾은 첫 번째 국가원수입니다. 천 전 총통은 이 자리에서 “이 축제는 거마란족에게 조상과 대자연에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고, 한족에게는 일상 속에서 전통문화를 실천하는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2006년에는 이 축제가 이란현정부로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상금없는 대결 💸

이곳의 배는 우리가 익숙한 드래곤보트와는 조금 다릅니다. 용 머리 대신에 태극 문양과 전설의 동물 ‘기린’이 그려져 있습니다. 양과 음의 조화, 그리고 평안을 의미하는 상징물이죠. 노 젓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거나 서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일반 경기와의 가장 큰 차이는 상금이 없는 건데요. 오로지 명예를 위한 경기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명예 때문에 마을사람들의 경쟁심도 만만치 않죠. 특히 제사를 마치고 술이 오가는 저녁이 되면 갈등이 격화됩니다. 1967년에는 선수끼리 칼부림이 벌어지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이 치열함과 갈등은 축제의 중요성을 충분히 보여주죠.

요즘은 시대 변화에 따라 축제가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단오절만 되면, 이 조용한 작은 마을은 갑자기 활기를 되찾습니다. 젊은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경기에 참여하고,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전통을 물려줍니다. 이제 얼룽 드래곤보트 축제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타이완의 뿌리이자 공동체 정신을 지탱하는 소중한 문화가 되었죠.  앞으로도 400년, 그 이상 이어지길 함께 기대해봅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蔡文婷,〈二龍演義〉,光華雜誌。
2. 徐元民、鄭國銘、卓旻怡、陳藝文,〈台灣龍舟競渡文化之傳承〉,行政院體育委員會。
3. 「總統參加宜蘭縣『礁溪二龍競渡』」,總統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