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교회] 4복음서 같이 보기-75회 완결

221120 더러운 귀신이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 이유 (막 1:21~28)

막 1:21~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이는 가르치시는 권위가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회중이 느꼈던 권위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였습니다. 그렇다면 서기관들의 권위는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사람에게서 왔고 또 그런 권위를 나타내려고 스스로 치장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의 권위를 사람에게 나타내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함에도 예수님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그 회당에 모인 온 회중은 예수님의 권위를 영과 육으로 느꼈습니다. 이제 귀신에 대해 생각하려고 합니다. ‘마침’이라고 기록합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회당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특별한 권위를 느꼈을 때 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칩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예수께서는 그 귀신에게 더 말을 하지 말라 하시고 곧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나오기 싫은 귀신은 그 사람에게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게 하며 나왔습니다. 회당 모든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놀라워하며 소문을 내었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이 귀신에게 형용사를 붙였는데, 바로 ‘더럽다’입니다. 이 단어를 덧붙인 이유는 예수님과 대립을 이루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서 입니다. 헬라어로 ‘아카다르토스’로, 이는 ‘불순한’, ‘더러운’, ‘깨끗치 못한’이란 의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은 절대적으로 ‘깨끗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되었습니까? 절대적으로 깨끗하신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제압하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세상은 귀신과 마귀와 사탄의 도움을 받아 더러움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앞에서 절대적으로 깨끗하고 정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고백했는데,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이고 진실인데 왜 허락하지 않으셨을까요? 첫째는, 거짓되고 속이는 혀로 고백하는 유혹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뱀은 거짓 유혹의 말로 아담과 하와를 꾀어서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그 뱀의 거짓 혀는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자신들도 하나님과 같은 신이 되게 하는 것처럼 속이며 그들에게 우쭐한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서 거짓 유혹의 말을 믿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뱀, 사탄, 마귀, 귀신은 모두 이와 같은 일을 합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금식을 하신 후 성령에 이끌려 사탄의 시험을 받으신 내용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듣는 회중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귀신들린 사람으로 인해 그들의 기억에 복음의 기쁜 소식은 없고, 귀신을 쫓아내신 능력의 예수님만 남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일을 소문내기 시작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에 역효과를 일으킨 것입니다. 예수께서 복음에 집중하라고 더러운 귀신이 하는 말을 허락지 않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목적으로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예언을 말하는 것으로 성도를 인도합니다. 성도는 이런 교회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다만 복음 위에 서는 신비주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복음서에서 귀신을 쫓아내시며 그들이 하려는 말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부흥신학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곳에는 특별한 은사적 증거들이 나타난다고 외치는 전도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일에 대해 신비주의라고 하며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이런 능력을 나타내려고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그의 백성을 너무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나타내신 일입니다. 눅 4:42, 43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여러분, 오늘 주일 예배드리러 갑니다. 누구의 가르침과 권위를 보려고 갑니까? 여러분의 교회 담임목사님의 말씀과 그분의 권위를 보려고 갑니까? 전에 이런 자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담임목사님의 눈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고… 그 목사님의 권위와 그 힘이 눈빛으로부터 나와서 쳐다보기 두려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정도면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권위를 느끼려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권위를 자랑스럽게 사람들 앞에 내세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자신의 겸손과 온유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우주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계시지만, 연약한 사람들 앞에서 그 힘과 능력을 자랑하지 않으시고, 오직 겸손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주일 예배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말씀의 권위를 예배 중에 느끼고 마음에 품고 또 한 주간을 힘차게 주님의 제자로 또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 더러운 귀신의 거짓 유혹의 말이 가득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네이버 카페 바로가기 https://cafe.naver.com/deupul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