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보는 복음 (길가에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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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매일 오전 5시30분, 장소:길가에교회 소예배실 인도:장수현 담임목사(화,수,금,토) 석광호 목사(월,목) 매일 새벽을 여는 성경 말씀 묵상과 기도를 연재하며 목사님들과 성도님들 사이에 나눴던 성경 공부방 이야기

  1. 1D AGO

    스가랴 14:1~11절 - " 여호와의 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_ 장수현 목사

    [슥]14: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네 가운데에서 나누이리라 [슥]14:2 내가 이방 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당하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슥]14:3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슥]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슥]14:5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슥]14:6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슥]14:7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슥]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슥]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슥]14:10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슥]14: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스가랴 14장의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여호와의 날입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이것을 좀더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여호와께 속한 날이 왔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날이 이미 이르렀다는 의미지요. 그런데 실재 역사속에서 아직 이 날은 이르지 않았지요. 그런데 왜 이미 이르렀다고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그 여호와의 날에 대한 몇가지 특징을 말합니다. 첬째, 1~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방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결과 성읍이 함락되고 가옥이 약탈되고 부녀가 욕을 당하여 성읍 백성 절반이 사로잡혀 가지요.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여호와의 날은 고난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뿐만 아니라 3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직접 이방 나라를 치시는데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왕의 전쟁의 날이란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던 것을 말합니다.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치신 것, 여호수아 때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태양을 멈추게 하고, 큰 우박을 내리셔서 적군을 치셨던 것들이지요. 이때 이스라엘이 한 것이 없었지요.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볼뿐이었고,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특별한 방법으로 싸워주시고 승리를 주신 것이지요. 계속해서 스가랴서는 그날에 대해 묘사를 이어갑니다. 4,5절에서 그날에 그의 발은 예루살렘 앞 동쪽 감람산 위에 서실 것인데 그의 강림으로 감람산은 동과 서로 반으로 쪼개져 큰 골짜기가 되는데 그곳은 백성들의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6절에서는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단순히 특이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우주적인 격변과 세상의 빛이 무력화되는 것을 말합니다(요엘2:31절 참조) 인간이 의지하는 세상 질서가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의 빛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7절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7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날은 여호와만이 아시는 날이고, 기존의 세상이 어두워 갈때에 새로운 빛이 임하게 되지요. 그 빛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게21:23절은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8절도 같은 의미로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2:1~2절도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 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결론으로 9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원래가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유일한 왕이셨지요. 단지 인간들이 여호와를 배척하고 심판을 당하게 되지요. 이제 다시 회복케 하심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유일한 왕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땅을 그것을 인정하게 되지요. 그래서 마지막 10.11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온 땅이 아라바 같이 평평하게 되고 예루살렘을 높이 들리게 됩니다(10절) 그리고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게 됩니다(11절) 이 예루살렘은 이전의 예루살렘이 아니지요. 계시록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새예루살렘으로 마침내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힘겨운 삶속에서도 소망중에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때, 여호와의 날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만이 홀로 우리의 왕이심을 선포하면서, 오늘도 우리 마음과 삶가운데 그분의 임재을 바라며 만왕의 왕되신 주님의 인도하심과 승리케 하심이 오늘의 삶가운데, 그리고 마침내 이루실 하나님의 때에 경험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16 min
  2. 1D AGO

    스가랴(슥 13:1-9 절) " 정결의 샘과 연단의 은혜" _ 천유성 목사

    [슥]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슥]13: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슥]13:3 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그를 찌르리라 [슥]13:4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환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슥]13:5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슥]13:6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슥]13: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슥]13: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슥]13: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우리가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지만, 우리 인생은 때때로 죄로 인해 더럽혀지고, 죄의 흔적 때문에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모습, 세속적인 가치관 속에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죄의 근원을 끊어 주시며, 시련을 통해 우리를 정금같이 만들어 가십니다. 오늘 스가랴 13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보호하시며,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여기서 말하는 샘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죄와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는 은혜의 원천입니다. 구약에서 제사는 죄를 일시적으로 덮었지만, 완전한 씻음은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예언하셨습니다. 곧 메시아가 오셔서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실 날입니다. 신약에서 그 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누구든 그 피를 믿는 자마다 정결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이 샘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주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와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는 은혜의 샘입니다. 혹시 지금, 과거의 죄 때문에 눌려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직도 과거의 죄책감에 묶여 있지는 않으십니까? 스스로 씻으려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이미 샘을 열어 주셨어요. 그 샘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의 피보다 크지 않습니다. 언제든, 담대히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 샘물로 씻으시기 바랍니다.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단지 우리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죄의 근원을 제거하십니다.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진정한 회개는 기도하면서 단순히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죄의 뿌리, 우상과 거짓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죄의 뿌리까지 제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속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사람의 인정입니까? 오늘날 교회 안의 가장 큰 우상은 ‘자기 자신’일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인 되어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태도, 그것이 가장 큰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우상과 죄의 근원을 끊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 가운데 우상을 끊고, 거짓된 생각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깨끗하게 하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조금 무겁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칼아 깨어 내 목자를 치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이는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목자가 베임으로 양들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하나님은 남은 자, 삼분의 일의 백성을 불 속에서 연단하시고 정금같이 만드십니다. 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불 가운데서 연단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믿음을 정금 같이 단련 하시려는 것입니다. 연단의 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너는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은혜를 보았습니다. -주님이 열어 주신 정결의 샘으로 깨끗해집니다. 죄책감에 눌리지 말고 십자가 보혈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안의 우상과 거짓을 제거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성경과 다른 가르침을 과감히 버리십시오. -시련과 연단 속에서도 우리를 정금같이 변화시키십니다. 시련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너는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는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정결하게 하는 샘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가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고, 우상, 죄의 근원을 끊어내고, 연단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들며 정금같은 믿음으로 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2 min
  3. 3D AGO

    스가랴(슥 12:1-14절) " 은총과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_ 천유성 목사

    [슥]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슥]12: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 [슥]12:3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슥]12:4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고 모든 민족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슥]12:5 유다의 우두머리들이 마음속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라 [슥]12:6 그 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 [슥]12: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슥]12:8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슥]12:9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슥]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12: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슥]12: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슥]12: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슥]12: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사람은 누구나 위기 앞에서 자신의 힘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가정이 흔들릴 때, 개인의 삶이 무너질 때,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입니다. 스가랴 12장은 예루살렘이 큰 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온 세상의 민족들이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소망을 선포하십니다. 바로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주셔서, 백성으로 하여금 참된 회개와 구원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 말씀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 이 말씀을 듣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여러나라 들이 침략하는 데도 이스라엘 보존되고 그 뿐 아니라 영광에 이르는 것, 곧 여러나라를 물리치고 승리하게 된다는 것은 당시 백성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힘만 가지고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절을 시작하며, 여호와 곧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라!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우리 안에 심령을 지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오늘 우리 성도들 또한 반드시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떠함, 우리 자신의 어떠함을 능히 극복하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체험할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를 약속하시고, 이루실 분은 바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심령을 지으신 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지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그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생명의 주로 고백하는 자가 살아갈 합당한 삶의 자세 입니다. 계속해서 2절 말씀을 보면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말씀 하십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오히려 대적자들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을 뜻합니다. 또 3절에서는 “무거운 돌” 비유가 나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그것을 드는 모든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예루살렘을 들어 올리려는 자마다 오히려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무너뜨리려는 세상의 세력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나님은 약한 백성이라도 친히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9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오늘 우리 삶에도 수많은 대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조롱, 영적 공격, 삶의 위기… 그러나 우리가 의지할 분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반드시 지켜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하나님은 단순히 외적 승리만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은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주셔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진실하게 돌아오게 하십니다.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란,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게 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사죄의 은총을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신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회개하기에 이르는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본다”는 말씀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찔리실 것을 바라보며, 처절한 애통이 있게 될 것임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자기 죄를 깨닫고 애통하게 됩니다.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은 바로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부어지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심령에 은총와 간구의 영이 부어져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찌른 죄를 인하여, 애통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성령의 역사로 새롭게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지키실 뿐 아니라, 은총와 간구의 영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은 “그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하리라”는 말씀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통회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교회를 회복시키시며, 민족을 살리실 것입니다.

    14 min
  4. 4D AGO

    스가랴(슥 11:1-17절) "참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라" _ 천유성 목사

    [슥]11:1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슥]11: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슥]11: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슥]11: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슥]11: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슥]11:6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슥]11: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슥]11: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슥]11: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슥]11: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슥]11: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슥]11: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슥]11: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슥]11: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슥]11: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슥]11:16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슥]11: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입니다. 목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양의 생명과 안전이 좌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 속에서 늘 목자를 필요로 했습니다.하나님은 때마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과 같은 목자들을 세우셔서 백성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욕심만 채우고 양을 이용하는 거짓 목자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스가랴 11장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 목자를 거절한 이스라엘이 어떤 결과를 맞게 되었는지, 거짓 목자를 따를 때 어떤 심판이 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문의 시작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1절) 아름답고 견고한 백향목이 불에 타는 장면은,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힘과 영광이 무너지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어서 잣나무와 상수리나무까지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지도자들과 강대국들이 함께 멸망하는 것을 묘사합니다. 5절을 보시면 더욱 충격적입니다.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목자라면 마땅히 양을 지켜야 하는데, 오히려 양을 잡아먹고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즉, 거짓 목자를 따르는 백성은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심지어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양 떼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거짓된 인도자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달콤한 말을 따라가지만, 그 끝은 파멸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말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선한 목자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는 두 지팡이를 가지는데, 이름은 은혜와 연합입니다.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그는 두 지팡이를 가졌는데, 하나는 ‘은총’, 다른 하나는 ‘연합’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가지 큰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은총과 연합을 거부했습니다.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이는 하나님께서 당시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심판하셨음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백성은 여전히 참 목자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이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백성을 언약적 보호로 지켜주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어 14절에서 ‘연합’이라는 지팡이마저 꺾으시니, 형제 사이의 연대와 공동체가 붕괴됩니다. 14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오늘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은총의 지팡이를 스스로 꺾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가볍게 여기고, 형제와의 연합을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은가? 선한 목자를 따르지 않은 탓에 이번에는 ‘악한 목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상한 양을 찾지 않고, 어린 양을 돌보지 않고, 건강한 양마저 잡아먹는 자입니다. 양을 살려야 할 목자가 오히려 양을 해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결코 거짓 목자를 오래 두지 않으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양을 위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리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짓 목자를 반드시 심판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선한 목자 예수님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면서 우리 삶에 세 가지 적용을 나눕니다. - 거짓 목자를 분별하라.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습니다. 성공을 보장한다는 가르침, 물질적 번영만 강조하는 설교,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지혜를 앞세우는 가르침, 이것들은 모두 영혼을 망칩니다. 우리는 말씀을 기준으로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합니다. - 참 목자를 바라보라. 예수님은 스스로를 ‘선한 목자’라 부르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이십니다. - 참 목자를 따르라. 목자를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따라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이 필요합니다. 참 목자를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은총과 연합의 지팡이를 다시 세우시는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른다.” 우리는 누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세상의 소리입니까, 아니면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의 음성입니까? 우리 모두가 참 목자이신 주님을 따름으로 은총과 연합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4 min
  5. 6D AGO

    스가랴(슥 9:9-17절) "기뻐하라, 요새로 돌아오라, 빛나리라" _ 진원미 목사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슥]9: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슥]9: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슥]9: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슥]9:13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슥]9:14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나타나서 그들의 화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 남방 회오리바람을 타고 가실 것이라 [슥]9: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슥]9: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슥]9:17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 어제는 광복 80주년이었는데,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하루 보내셨나요? 80년 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광복’을 이루었을 때, 하루 아침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남쪽에는 미군, 북쪽에는 소련군이 주둔하며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그토록 꿈꿨던 광복은 이루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이웃나라들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 스가랴서는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바벨론 이후 바사의 포로 정책으로 백성들은 이스라엘에 돌아왔습니다. 특히 9장에서는 이웃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예언이 나오고 있는데요. 바사를 떠나 몸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바사의 통치를 받고 있었고, 주변에는 강한 이웃 나라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이웃 나라의 존재는 여전히 직면해야 할 삶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이들보다도 강하신 하나님께서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방식, 곧 평화와 구원으로 이들을 건져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시는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기쁨과 소망이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9장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웃나라를 벌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루어진 것이 없는데도, 이 약속을 받은 것만으로도,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기뻐하라’라고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와 겸손으로 구원하실 것이고, 땅끝까지 화평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확실한 약속이기에, 하나님께서 분명 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기에 이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뻐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로 이미 우리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그 화평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나 세상 곳곳 전쟁이 그치지 않고, 약한 자들을 향한 폭력이 끊어지지 않는 모습들, 인간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시키고도 이것을 멈추지 못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볼 때, 우리는 자주 ‘기쁨’을 잃습니다. 오늘 기도의 자리에 여러 문제를 가져오셨을 텐데요. 우리가 이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 원합니다. 공의를 이루어가실 하나님, 우리를 겸손으로 구원하시며 평화를 이루어가실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을 고백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기쁨을 지키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요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새로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슥9:12) 구원을 베풀 왕, 곧 메시아는 이스라엘에게 “요새로 돌아오라!”라고 외칩니다. 이들은 그저 백성 전체가 아니라,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였습니다. 요새는 전쟁할 때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튼튼하게 만들어놓은 방어 시설’로, 이곳에 들어가면 안전했습니다. 지금 구원을 베풀 왕은 소망을 품은 백성들에게 이 안전한 요새에 들어오라고 하고, 이제는 본인이 싸움에 나서 그동안 억울했던 일 힘들었던 일들을 다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요새’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하는 일상의 자리보다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곧 말씀과 기도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세상의 공격이 미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평안이 우리를 둘러싸는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망으로 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평안을 되찾아주시고, 우리가 씨름했던 관계와 여러 문제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기도의 자리에 머물며, 하나님의 요새에 돌아와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을 품는 우리이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이 빛날 것입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슥9:16)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 소망을 품고 요새에 돌아온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은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날 것”이라고 합니다. 흙먼지 속에 묻혀 있던 보석이 주인의 손길로 빛을 되찾듯,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영광으로 빛나게 하십니다.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할 때, 어두운 직장에서 정직을 지킬 때, 그 순간 우리는 왕관의 보석처럼 빛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우리를 통해, 우리가 아닌 하나님으로 인한 형통함과 아름다움이 온 땅에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를 강건하게 하실 주님의 손길이 빛나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 빛을 들고 세상 가운데 담대하게 나아가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스가랴는 여전히 이웃나라 사이에서 시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소망을 품고 요새로 돌아오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15 min
  6. AUG 14

    스가랴 8:14~23절 -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_ 장수현 목사

    [슥]8:1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슥]8: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슥]8: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슥]8: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금식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슥]8:1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슥]8:1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슥]8:20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슥]8:21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슥]8: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슥]8:23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어제에 이어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1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과거에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여호와를 격노하게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돌이키지 않습니다. 14절에서 뉘우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감정적인 후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였다는 말로 이미 결정한 심판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15절에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로 마음먹었따고 말합니다. 왜 하나님은 뜻을 돌이켰을까요? 단순히 변덕일까요? 아니면 이스라엘이 잘 했을까요? 여전히 이스라엘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먼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은혜로 이스라엘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부모가 자녀를 때리고 징계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징계가 끝나면다시 싸매시고 치료하시고 맛있는 것도 먹이시지요. 잘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사랑하기에, 앞으로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것이지요. 하나님도 비록 이스라엘의 잘못으로 징계했지만, 지금은 싸매시고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달라지기를 기대하시는 것이지요. 16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면서 행할 것을 알려주십니다. "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을 행하지 말라고 하면서 4가지를 말씀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고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구원해주겠다는 것이 아니지요. 이미 너희를 구원했고 자녀로 삼았으니, 마땅히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이렇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4가지를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것들이 말과 관련된 것이 많음을 기억하면서 오늘 하루 우리의 입술의 말을 더욱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18절부터는 7장에서의 벧엘사람들의 금식과 관련된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줍니다. 19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4번의 금식을 행했는데, 모두 고통과 고난으로 인한 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 애통의 금식의 날을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로 바꾸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단순히 절기만이 아니라 모든 시간을 기쁨의 시간으로 바꾸어주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면서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많은 백성들과 강대한 나라들을 예루살렘으로 와서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23절을 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바르게 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요. 오늘날 기독교가 믿음의 사람들이, 심지어 하나님이 믿지 않는 이들로부터 조롱당하시는 시대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진리와 화평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익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느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한번 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가? 싫어하고 미워하시는가? 그러면서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기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모든 관계속에서 입술을 경계함을 통해 진실함과 진리가운데 든든히 서고 이웃들과 화평을 이루어가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이땅가운데 드러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16 min
  7. AUG 13

    스가랴 8:1~13절 - "하나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우리 손을 견고케 하소서." _ 장수현 목사

    [슥]8: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슥]8: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슥]8:3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슥]8: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슥]8:5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슥]8: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슥]8:7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백성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슥]8:8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진리와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슥]8: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날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슥]8:10 이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원수로 말미암아 평안히 출입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모든 사람을 풀어 서로 치게 하였느니라 [슥]8:1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옛날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슥]8:12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슥]8:13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스가랴서 8장은 7장의 벧엘 사람의 금식에 관한 질문에 책망하신 후에 주어지는 여호와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에 근거하여 예루살렘에 주어질 축복을 약속합니다. 특별히 그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사실을 계속하여 강조합니다. 먼저 2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질투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이름이지요. 특히 사랑의 속성중에서 배타적인 사랑을 강조할 때 이 질투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마치 부부간의 사랑처럼 관계의 절대성을 강조합니다. 이 질투하심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크게 두가지를 행하시는데, 긍정적으로 시온을 축복하는 일이고, 부정적으로 시온을 괴롭히는 자들을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시온을 위한 일중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3절에서,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첬째, 이로인해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불리우게 될 것입니다. 둘째, 거리에 늙은 남녀가 넘쳐나고 그 성읍거리에서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게 뛰어놀것입니다. 이것은 고대의 가장 큰 축복인 장수와 출산의 복, 그리고 평화의 복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시온을 사랑하시기에 시온을 괴롭히는 자들을 징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7,8절에서, 그 징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땅을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고 그들을 인도하여 내사 다시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시고 하나 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인정한다면 이스라엘의 마땅한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9절과 13절에서 너희 손을 견고히 하라고 말씀합니다. 손을 견고히 하라는 것은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을 힘써 완성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지금 하고 있는 성전건축을 어려움속에서도 그것을 끝까지 완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제 이방의 저줏거리가 아니라 복이 되게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10,11절을 보면 이전에는 수고하나 소득은 없고, 외부의 적로 인한 고난을 당하고, 경제적 어려움속에서 서로를 탓하며 분열하고 갈등 했지만 이제는 축복을 약속합니다. "12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하늘은 이슬을 내리고 땅은 산물을 내고,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고 이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고 그 일상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지극히 당연한 것 같은 이같은 일이 심판의 시기에는 당연하지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축복이 성전 재건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성전재건이라는 것이 단지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지요. 그 성전을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가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이런 은혜와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지금 폐허가 된 이스라엘 땅, 거기에서 성전을 재건하는 것조차 힘든상황이고 외부의 공격을 이겨낼 힘조차도 없는데 이런 은혜를 상상조차 할수 있을까요? 그래서 6절에서 이런 일들이 사람들에게는 기이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눈에는 전혀 기이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소망입니다. 오늘도 그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다시 우리 손을 견고히 하면서 마땅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힘써 감당하길 바랍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회복케 하심과 축복하심이 넘쳐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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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AUG 11

    스가랴 7장 1-14절 -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_ 장수현 목사

    [슥]7:1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슥]7:2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슥]7:3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슥]7:4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슥]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슥]7: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슥]7:7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슥]7:8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슥]7: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슥]7: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슥]7: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슥]7: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슥]7: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슥]7:14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스가랴 6장까지 8가지 환상이 마무리되고오늘 본문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절에서 그때가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이라고 말합니다. 스가랴가 예언을 처음 시작한 때가 다리오 왕 2년 여덟번째 달이었으니까 그때부터 만 2년이 지난 시점으로 주전518년입니다. 이때는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가 포로로 끌려간 때로부터 계산하면 예레미야가 선포한 70년 바벨론 포로기의 종결이 임박한 시기였습니다. 이때 벧엘사람들이 사례셀 레겜메렉과 그의 부하들을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게 질문을 합니다 3절,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여기서 5월 중에 울며 근신한다는 것은 5월 금식일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주전 587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불탄 것을 기억하며 금식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이들이 바벨론 포로로 있는 동안 그러니까 거의 70년동안 이 날을 기억하며 금식을 했을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70년 포로기의 종결이 임박한 상태에서 그들이 하던대로 성전 파괴를 기념하는 애도의식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어떤 종교적인 행위, 율법적인 행위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중심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다시한번 이전에 선지자들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겉모습만, 종교적인 행위만 열심히 하지말고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는 행위를 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말씀을 듣기 싫어하여 등을 돌리고,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마음을 돌이키지 않지요(11,12절) 그러면서 지금 그들은 금식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묻는 것이 참 우습지요. 우리도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십일조를 해야 합니까? 하지말아야 합니까? 꼭 주일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모든 날이 주의 날인데 아무 때나 드려도 되지 않나요? 꼭 교회에 나와야 합니까? 집에서 영상으로 드리면 안됩니까? 성경에는 술먹지 말라는 말이 없는술을 먹어도 됩니까? 안됩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마음 중심은 어떨까요? 진짜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그런 질문을 할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금식, 구제, 봉사, 심지어 예배까지... 이것이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하여 하는 것인가? 어떻게 이것을 점검할 수 있을까요? 그것으로 인해 나의 삶을 어떻게 변했는가를 살펴보면됩니다.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것들은 잘 하는데, 나의 삶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일뿐이지요. 반대로 그것들이 나머지 삶에도 영향을 주어,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게 한다면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 진실함으로 살아가고, 모든 이들에게 인애과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고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서로를 높여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때 우리의 말씀묵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며, 이 말씀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오고, 우리를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갈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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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매일 오전 5시30분, 장소:길가에교회 소예배실 인도:장수현 담임목사(화,수,금,토) 석광호 목사(월,목) 매일 새벽을 여는 성경 말씀 묵상과 기도를 연재하며 목사님들과 성도님들 사이에 나눴던 성경 공부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