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128: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시]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시]128: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시]129: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시]129: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시]129:3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시]129:4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시]129:5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시]129:6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시]129:7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시]129:8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시편 128편과 129편을 한가지 주제로 묶으면 아마도 복으로 묶을 수 있을겁니다. 이땅의 많은 사람들은 복을 구하는데, 믿음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지요. 기복신앙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는 복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기복신앙으로 인해 자기 중심성이 강해져서는 안됩니다. 복을 구하되 그 복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들과 나누려고 한다면 복을 누리면서도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기복이 자기중심성을 강화하지 않으려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걸으면서 복을 구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궁극적인 복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것임을 잊지 않는 것이지요.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의식함으로 더 조심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지요. 요셉을 생각해보세요. 그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이겨낸 것은 단순히 자신의 의지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인식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으려 한 것이지요. 이렇게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는데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손이 수고한대로 열매를 얻고, 그 열매를 먹고 사는 것,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축복이지요. 인간이 타락했을 때는 인간이 수고하여도 땅이 소산물이 아니라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수고해서 무엇인가 얻었다고 해서 내 힘만으로 이룬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 우리는 그제서야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내것으로만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것을 잘 흘려보낼 때 더 풍성히 채우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자기가 수고한 것 그 이상을 얻으려하고, 그것을 자꾸 쌓아두려하지요. 여기에서 다툼과 갈등이 시작되고 점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가지요. 잘먹고 잘누리되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함께 나눌 때 그 축복은 계속될 것입니다. 3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3절을 읽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화목함이지요. 물질이 많고 적음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 때문이지요. 5,6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어떤 사람이 이런 복을 누릴까요? 4절에서 말하듯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이같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129편을 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집니다. 분명히 시인은 믿음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을 경외했을겁니다. 그런데 그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1절-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컷는지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3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아마 시인이 잘못한 것이 아닐겁니다. 그가 신실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가 고통당하는 현실에 놓여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이 땅의 삶입니다. 그냥 이유없이 어려움과 아픔과 고난을 당하기도 하지요. 여전히 이땅은 한계와 죄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지요. "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나를 이기지 못했따는 것은 그들이 이기지못한 것도 있지만, 시인 스스로가 그런 고난과 핍박에 무너지지 않은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들 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키신다는 믿음이지요. 이것이 성도들이 가진 강함, 믿음에서 생긴 강함입니다. 4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4절,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이것은 이미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고백만이 아니라 아직은 그렇지 않지만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다는 믿음의 고백이지요. 그러기에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그 결과 5절에서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가고 6절에서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이 자라기 전에 마르게 될 것을 말합니다. 9절에서 어느 누구도 그들을 위해 여호와의 복을 구하지 않고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악인들의 최종모습입니다 . 우리 삶에는 고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악인들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 또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땅에서의 믿음의 사람의 삶의 여정이 쉬울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러한 고난속에서 절망하고 무너지기보다 오히려 극복하며 이겨나가길 원하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회복력입니다. 이러한 힘이 어디에서 올가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그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단순히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목표까지 힘차게 노를 저어가게 될 것입니다.
Informations
- Émission
- FréquenceTous les jours
- Publiée27 août 2025 à 00:19 UTC
- Durée13 min
- ClassificationTous publ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