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제자’ 혹은 ‘제자의 조건’입니다. 한국 교회에 오랜 전통처럼 내려오는 믿음의 사람의 바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일일 것입니다. 그 혜택을 입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제자 혹은 제자의 조건 또는 제자도에 관해 생각해야만 합니다. 막 1:16~20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반복이 되는 내용이나 문장 그리고 단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보시니', '이르시되(부르시니)', '버려 두고', '따라가다(따르다)', '곧'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신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는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본래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아무나 제자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먼저 예수께서 보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일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셨고, 배에서 그물을 깁는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시면 그때부터 그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물을 버려두고…..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따라가니라' ‘버려두다’의 헬라어는 ‘아피에미’입니다. 그 뜻은 ‘보내다’, ‘버리다’, ‘떠나다’, ‘포기하다’, ‘용서하다’, ‘곧’ 등입니다. 저는 이 한글 본문에서 ‘버려 두고’를 ‘포기하고’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자기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있다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두고’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목적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드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큰 위로를 주시려는 목적도 아닙니다. 세속에 속한 큰 부나 명예를 주시려는 목적도 아닙니다. 세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목적도 아닙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십니까? 혹시 제자가 되어 세속에서 많은 것을 누리려고 믿으려 하는 것은 아닙니까? 복 준다니까…. 취직을 시켜 준다니까…. 가고 싶은 대학에 입학 시켜 주실 것 같아서…. 혹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실 것 같아서…. 믿는 것은 아니냐는 말입니다. 혹은 부르심 받았다는 의미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완전한 믿음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모두 다 틀렸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신 이유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세속에 관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본문 18절 ‘따르다’는 ‘함께 같은 길에 있다’, ‘동행하다’, ‘따르다’입니다. 본문 ‘따라 가니라’의 본래 의미는 ‘뒤에서 출발하다’, ‘후에 떠나다’ 등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께서 가신 그 길에 동행자가 되고, 또 뒤에서 그 자취를 따라 떠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로 부르신 목적에서 그들이 취해야만 하는 행동은 바로 ‘곧’입니다. ‘즉시’라는 뜻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어떤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까? 무엇을 지체하면 안 됩니까? 자기 것을 버리고 포기하는 일입니다. 자기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 위해 떠나는 일을 곧 실천해야만 합니다. 마 16:24(막 8:34; 눅 9:23)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신 33:9 9 그는 그의 부모에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부인하다’는 ‘아주 거절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가진 것, 갖고 싶은 것, 본 것, 보고 싶은 것, 들은 것, 듣고 싶은 것, 신뢰한 것, 신뢰하고 싶은 것, 맛본 것, 맛보고 싶은 것, 기대한 것, 기대하고 싶은 것, 소망한 것 등등…..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에 응할 수 있습니다. 제자에서 사도로 임명을 받고 세상 속으로 보내심을 받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마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 12:32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신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시는 사람은 몇 몇 특정인이 아닌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길에 서라고, 예수님의 뒤에서 곧 출발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중에는 가룟인 유다와 같은 인물도 있습니다. 요 13:10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뜻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롤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오늘 예배에 참석한 사람과 참석하지 못한 사람 모두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과 같은 길에 서자고….. 누가 자기 것을 모두 포기하고 예수님과 동행하시겠습니까? 오늘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 믿음의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신 부름에 ‘예’하고 대답하기 위해서 예배에 참석하는 날입니다. 그 제자의 부름에 즉시 자기 것 모두 포기한다는 약속을 하려고 예배에 참석하는 날입니다. 제자로 부름을 받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미 모든 사람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배의 날, 주의 날에 모든 성도는 왜 한 자리에 모입니까? 여러분은 왜 예배에 참석하십니까?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려고 가십니까? 유튜브나 인터넷에는 좋은 설교가 넘쳐납니다. 왜 예배에 참석하십니까? 그리고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소원을 빌려고 참석하십니까? 뭔가 모인 사람들 속에서 기도하면 잘 들어 주실 것 같아서 예배에 참석해서 자신의 소원을 기도하려고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자 혹은 제자의 조건 그리고 제자도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왜 제자를 필요로 하셨고 또 부르셨는지 정확하게 알아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사람들 만나는 일이 즐거워 교회에 출석하면 안 됩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해서 무슨 기도를 하려고 합니까? 오늘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하려고 합니까? 저와 여러분은, '주님, 당신을 따르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라고 고백의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네이버 카페 바로가기 https://cafe.naver.com/deupul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