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김형래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

  1. 7시간 전

    [아침마다 지혜 #387] 빚의 수렁을 건넌 스웨덴, 재정 건전성이라는 오래된 지혜

    하루 1조 원씩 불어나는 빚,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국가 부채가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지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가 지난 6월 14일자로 전한 바에 따르면, 영국의 부채는 하루 6억 5천만 파운드(약 1조 3,260억 원)씩 늘어 오는 9월이면 1조 파운드(약 2,0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좀처럼 풀 수 없는 난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위기를 먼저 겪고도 끝내 이를 극복해 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입니다. 500%의 금리를 견디고 빚을 절반 이하로 줄이다 1990년대 초 스웨덴은 외환위기와 은행위기, 재정위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경제 붕괴를 겪었습니다. 2021년까지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스테판 잉베스는 모든 문제가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터졌다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한때 500%까지 끌어올려야 했고, 실업률은 11.2%까지 치솟았습니다. 1995년 스웨덴의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8.9%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에 이르러 이 비율은 35.9%까지 떨어졌습니다(이상 텔레그래프 보도 인용). 같은 기간 영국이 부채를 GDP의 43.5%에서 102.3%로 키운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입니다. 한때 재무장관이 국채를 사 달라며 뉴욕 월가의 젊은 투자자들을 직접 설득하러 다녀야 했던 나라가, 어떻게 이토록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 냈을까요.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거품은 걷어 낸 구조 개혁 핵심은 과감한 구조 개혁이었습니다. 스웨덴은 먼저 예산을 짜는 방식부터 바꿨습니다. 종전에는 부처별 지출을 따로 정한 뒤 그것을 모두 더해 예산을 만들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의회가 전체 지출의 총액 한도를 먼저 정하는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1997년에는 경기 순환 주기 동안 공공 예산이 평균 2%의 흑자를 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강력한 재정준칙도 세웠습니다.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을 정리하고, 연금 제도 역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전면 개편했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그 방식입니다. 스웨덴은 복지의 근간인 보편적 공공서비스 자체에는 함부로 손대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택 보조금처럼 현금을 나눠 주던 선심성 급여를 정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도움이 절실한 곳은 끝까지 지키되, 스스로 설 수 있는 영역에는 책임을 요구한 것입니다. 독일식 표현을 빌리면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의 균형이라 하겠습니다. 세제 개혁도 단호했습니다. 1992년 자국 통화 가치를 시장에 맡기자 통화 가치는 크게 떨어졌지만, 그만큼 수출에 날개를 달아 GDP 대비 수출 비중이 약 30%에서 50%대로 뛰어올랐습니다. 2004년에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2007년에는 부유세를 폐지했습니다.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고 다시 돌아오도록 길을 연 것입니다. 한 스웨덴 경제학자는 자국을 단순한 고복지 국가가 아니라 자본과 투자가 모여드는 나라로 만든 것이 회생의 비결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 결과 1995년 GDP의 10.9%에 이르던 부채 이자 부담은 오늘날 0.7%까지 낮아졌습니다. 빚을 갚는 데 쏟아붓던 돈을, 이제는 국민을 위한 곳에 쓸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 스웨덴의 사례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빠른 고령화 속에서 복지와 연금 지출이 가파르게 늘고, 국가 부채 또한 함께 불어나고 있습니다. 재정준칙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수년째 공전하는 사이, 미래 세대가 짊어질 짐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영국조차 재정 준칙을 1997년 이후 열 차례나 바꿨다는 사실은, 규칙을 세우는 일보다 그것을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특히 스웨덴이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먼저 확보한 대목은, 국민연금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시니어 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 낸 분들입니다. 나라 곳간이 비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의 힘에 떠밀려 강제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얼마나 쓰라린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스웨덴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시장이나 국제기구가 개혁을 강요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손보는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물론 복지를 무작정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켜야 할 것은 끝까지 지키되, 감당할 수 없는 빚만큼은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는 것, 그 균형이야말로 절약과 책임이라는 오래된 미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나는 이유입니다. 곳간을 살피며 살림을 꾸려 온 지혜는, 한 시대를 견뎌 온 시니어가 가장 깊이 아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참고 자료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2026년 6월 14일자 비즈니스 섹션, '스웨덴의 청사진이 빚에 잠긴 영국을 구할 수 있다(Swedish blueprint can save Britain from being sunk by debt)', 멜리사 로포드 기자. 본문은 원문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재구성·요약하였습니다. 환율은 2026년 6월 기준 1파운드 = 약 2,040원을 적용하였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20분
  2. 1일 전

    [아침마다 지혜 #386] 기계가 모든 것을 더 잘하는 시대, 인간이 끝내 지켜야 할 두 가지

    스페인 철학자의 칼럼이 던진 물음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복잡한 계산과 단백질 합성까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시(詩)를 짓고 논문을 작성하는 영역마저 기계가 넘보는 지금, 많은 시니어 독자께서는 자연스레 한 가지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두려움이 섞인 이 질문에, 최근 한 편의 철학 칼럼이 뜻밖의 차분한 답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난 6월 11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에 실린 철학자 산티아고 알바 리코(Santiago Alba Rico)의 칼럼이 그것입니다.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18개월 된 아기 '안토넬라'와 함께한 일화로 글을 시작합니다. 곱슬머리에 까만 눈동자를 가진 이 어린 승객은 비행 내내 안전벨트를 풀었다 끼웠다 하며 옹알이로 말을 걸어 왔고, 저자는 그 무방비한 사랑스러움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저자의 진단은 냉정합니다. 능력의 경쟁이라면 인류는 이미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계산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일에서 AI는 사람을 앞질렀거나 곧 앞지를 것이라고 그는 인정합니다. 사람이 가르친 모든 것을, 한계가 없는 자원으로 더 잘 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만이 여전히 할 수 있고 기계는 하지 못하는 두 가지가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일'과 '죽음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먼저 어린 시절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그것을 밤의 두려움과 낮의 어른들 사이에서 기쁘고도 수고롭게 '인간의 몸'을 얻어 가는 과정이라 풀이합니다. 지능은 신체와 분리될 수 있어도, 어린아이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은 누군가의 손끝에 만져지고 보살핌을 받는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 연약함의 생생한 현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한계와 취약함이란 고쳐 없애야 할 '오류'가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온전히 피어나기 위한 조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비로소 사람이 세 가지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유와 사랑, 그리고 웃음입니다. 언젠가 끝이 있음을 알기에 깊이 생각하고, 남의 존재를 아프게 마음에 두기에 사랑하며,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약한 이도 강한 이와 동등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계가 없는 지능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자질이라 하겠습니다. 이 통찰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핵심은 '돌봄'입니다. 저자는 여가를 벌어 주는 똑똑한 세탁기는 반길 일이지만, 어떤 사람도 기계도 우리를 대신해 우리 아이를 길러 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단언합니다. 어머니를 로봇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거나 자유로워지지는 않으며, 다만 서로를 보살피는 법을 잊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돌봄 인력의 부족과 기술 도입을 동시에 마주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효율을 이유로 사람의 자리를 기계에 통째로 넘기는 것이 과연 진보인가를 되묻게 하기 때문입니다. 평생에 걸쳐 가족을 돌보고 마을과 공동체를 지탱해 온 시니어 세대야말로, 돌봄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일의 경험과 지혜를 가장 깊이 간직한 분들입니다. 그 경험은 어떤 기계도 단숨에 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자산입니다. 저자가 내놓는 결론은 명료합니다. 증기 기관차가 사람보다 빨리 달리게 된 지 두 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인류는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조깅을 하고 마라톤을 뜁니다. 마찬가지로 AI가 글을 더 잘 쓰게 되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문장을 써 나가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을 여느 동물과 구별 짓는 능력, 곧 '말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편리함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일상의 수고 가운데 일부를 기술에 맡기는 것은 분별 있는 선택입니다. 다만 돌봄과 글쓰기와 말하기처럼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몸짓만큼은 끝내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 ― 이것이 오랜 삶의 질서와 인간의 존엄을 지켜 온 시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분별이라 하겠습니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도, 무비판적 환호도 아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맡길지를 가려내는 차분한 지혜일 것입니다. [출처] 이 칼럼은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 2026년 6월 11일 자 오피니언 면에 게재된 철학자 산티아고 알바 리코의 기고문 'La niña y la IA(소녀와 인공지능)'의 논지를 바탕으로, 캐어유 뉴스의 편집 방향에 맞추어 재구성·해설한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핵심 논지만을 정리하였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20분
  3. 2일 전

    [아침마다 지혜 #385] 나누어주는 삶으로, 다시 품을 선한 ‘이타주의 야망’

    오늘날 가장 명석하고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자신의 삶을 어디에 쓰고 있을까요. 이름난 대학을 나온 인재들은 사람들이 광고를 한 번이라도 더 누르게 할 방법을 궁리하고, 가장 영민한 두뇌들은 복잡한 금융 상품을 설계하는 데 젊음을 바칩니다. 정작 기후와 빈곤, 불평등처럼 우리 모두의 삶을 좌우하는 문제 앞에서는 좀처럼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새 책을 통해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시간과 재능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헛되이 흘려보내는 자원이 아니냐는 물음입니다. 그는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과, 인간 본성의 선함을 재조명한 《휴먼카인드》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입니다. 미국의 한 유력 일간지는 그를 두고 한층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의 대중 지식인이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신간에서 내놓는 화두는 《모럴 앰비션(Moral Ambition, 선한 야망)》입니다. 더 높은 연봉과 안정된 자리를 좇는 대신, 자신의 능력과 자원을 가장 시급하면서도 방치된 문제를 푸는 데 쏟겠다는 의지를 가리킵니다.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까닭은 구호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예제 폐지에 일생을 바친 한 영국인은 본래 라틴어 논문 공모전의 영예를 노리다 노예무역의 참상에 눈을 떴고, 그 참상을 끝낼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을 계기로 세계적 규모의 말라리아 퇴치 단체를 일군 평범한 회사원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소비자 운동가는 젊은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2,500주, 길어야 3,000주에 지나지 않는다며 재능을 헐값에 팔지 말라고 일갈합니다. 저자는 선한 야망이 마치 전염되듯 번진다고 말합니다. 책에 인용된 한 사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어느 마을에서 공동체가 존경하던 인물이 도움을 청하자 요청받은 이의 96퍼센트가 행동에 나섰다고 합니다(책에 소개된 일화로, 별도의 확인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재능 있는 이들은 어찌하여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에는 좀처럼 뛰어들지 않을까요. 저자는 그 원인을 더 높은 보상과 안정된 경로가 주는 강력한 끌림에서 찾습니다. 동시에 선함을 맹목적 희생이나 소극적 자선쯤으로 여기는 오랜 통념도 한몫합니다. 브레흐만은 이 통념을 뒤집습니다. 명석하고 재능 있는 사람일수록 그 능력을 이타적 목적에 연결할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참된 성공은 무엇을 쌓아 올렸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세상에 보탰느냐로 가늠된다는 명제가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참된 성공은 '무엇을 세상에 보탰느냐?' 이 화두는 한 가지 점에서 시니어 독자께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인생의 적지 않은 길을 이미 걸어오신 분들에게, 남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이냐는 물음은 한결 더 무겁게 내려앉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경험, 사람과의 인연, 더러는 모아 온 재산까지, 평생에 걸쳐 쌓아 오신 것이 적지 않습니다. 저자의 시선을 빌리면, 인생의 후반은 기력이 저무는 내리막이 아니라 그동안 쌓은 것을 비로소 세상에 돌려주는, 기여가 가장 환하게 빛나는 계절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공동체가 우러르는 어른의 한마디는 그 어떤 호소보다 멀리, 그리고 깊이 번집니다. 세월이 쌓아 준 신망과 분별을 지닌 시니어야말로 선한 야망을 가장 넓게 퍼뜨릴 수 있는 자리에 서 계신 까닭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일러두고자 합니다. 이 책이 본래 겨냥한 독자는 평생의 직업적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는, 이제 막 진로를 설계하는 세대입니다. 소개되는 사례도 대개 미국과 유럽의 인물들입니다. 그러니 시니어 독자께서는 ‘하던 일을 바꾸라’는 권유를, ‘내게 남은 시간과 지혜와 자원을 이제 어디에 다시 쓸 것인가’라는 자신의 물음으로 바꾸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그 한 번의 옮겨 읽기만 더하신다면, 단 한 번뿐인 삶을 무엇에 바칠 것인가라는 이 책의 질문은 어느 세대보다 지금 이 시기에 절실하게 울립니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선의에도 효율과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균형 감각입니다. 재능과 야망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핵심이라는 지적은 냉정하고 또 옳습니다.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며, 한정된 시간과 힘을 가장 절실한 곳에 합리적으로 배분할 때 비로소 선한 야망은 결실을 맺습니다. 이는 오랜 질서와 공동체의 안녕을 지켜 온 시니어 세대의 분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 중한지를 가려내는 안목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일 것입니다. 안목을 넘어 실천하는 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21분
  4. 3일 전

    [아침마다 지혜 #384] 비영리법인의 미래를 묻다 — '허가주의' 한 문장, 60여 년 만에 헌법의 시험대에 오르다

    한국 7개월 대 아시아 평균 4개월… 미국·영국·프랑스·독일·북유럽·일본이 걸어온 길을 함께 살핍니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작 그 일을 시작하는 출발선에서 가장 높은 문턱을 마주합니다. 시민단체 하나를 법인으로 세우는 데 한국은 약 일곱 달이 걸리는데, 이는 아시아 17개국 평균인 넉 달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비영리 종사자들은 관련 법과 제도를 이해하고 따르기가 어렵다고 답한 비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이 문턱의 뿌리는 1958년 제정된 우리 민법 제32조에 있습니다.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야 법인이 될 수 있다고 정한 이 한 문장이, 60여 년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채 2026년 들어 헌법재판소의 판단대에 올랐습니다. 마침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는 오는 6월 17일 서울 성수동에서 비영리 법인 설립의 미래를 주제로 공개 포럼을 엽니다. 아시아 17개국의 공익활동 환경을 비교한 국제 연구 두잉 굿 인덱스(Doing Good Index) 2026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제도가 서 있는 자리를 짚는 자리입니다. 먼저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단체가 법적 인격을 얻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른데,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행정청의 재량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주의(許可主義), 법이 정한 요건만 갖추면 등기로 자동 인정되는 준칙주의(準則主義), 그리고 등기조차 필요 없는 자유설립주의(自由設立主義)입니다. 여기에 요건을 갖추면 행정청이 반드시 승인해야 하는 인가주의(認可主義)가 중간에 자리합니다. 한국 제도의 핵심은 바로 그 허가라는 두 글자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대법원은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행정청의 정책적 판단에 따른 재량행위로 보아 왔습니다. 어떤 요건을 갖추면 허가를 내주어야 하는지 법이 명확히 정해 두지 않은 탓에, 법인이 될 수 있는지가 사실상 담당 공무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청소년의 사회 참여를 목표로 활동해 온 한 단체가 2024년 설립 허가를 거부당했고, 서울행정법원은 2025년 12월 민법 제32조 자체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대형 법무법인 열두 곳의 변호사 예순여섯 명이 공익 대리인단으로 참여한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한 법학자는 비영리법인 설립에 허가주의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요. 가장 자유로운 쪽에는 북유럽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비영리 결사는 법인격을 얻기 위해 정부에 등록할 의무 자체가 없으며, 세 사람 이상이 모여 정관을 채택하고 이사회를 꾸리는 순간 결사로 인정됩니다. 프랑스는 1901년 결사법에 따라,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관청에 신고하기만 하면 법인격을 가진 결사가 됩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은 또 다른 공통점을 보입니다. 법인이 되는 일과 공익성을 인정받는 일을 분리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비영리단체를 세우는 일은 영리회사 설립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간단하지만, 기부금 세제 혜택을 받는 501(c)(3) 자격은 연방 국세청의 까다로운 심사를 따로 거쳐야 합니다. 신청 수수료만 600달러(약 89만 원)에 이르고 심사에도 수개월이 걸립니다. 진입 문턱을 낮춘 미국에는 약 180만 곳의 비영리단체가 활동하며, 이 부문이 고용하는 인원만 1,280만 명으로 제조업에 맞먹습니다. 독일 역시 관할 지방법원 등기소에 등기하면 법인격이 생기되, 세제 혜택과 직결되는 공익성은 세무서가 별도로 판단합니다. 등록 비용은 75유로(약 13만 원)에 불과합니다. 영국은 자선위원회라는 독립 기구가 등록과 감독을 한곳에서 맡아 비영리 부문을 일관되게 관할합니다. 특히 눈여겨볼 나라는 일본입니다. 같은 대륙법 전통에서 비슷한 민법으로 출발했지만, 일본은 2008년 공익법인 제도를 개혁하며 주무관청의 설립 허가주의를 폐지하고 준칙주의로 전환했습니다. 동시에 공익성 인정은 부처 공무원이 아니라 전문가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가 맡도록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설립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재단에 평의원회를 의무화하는 등 운영의 책임성은 오히려 강화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줄을 세워 보면 흐름이 분명해집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설립의 문은 객관적 요건만으로 폭넓게 열어 두되 공익성과 세제 혜택은 별도의 단계에서 엄격히 심사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고, 한국만이 설립 단계에서부터 행정청의 재량이 작동하는 허가주의의 한쪽 끝에 홀로 가까이 서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허가주의의 문제는 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해서가 아니라, 그 판단이 예측하기 어려운 행정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명확한 법적 기준 없이 행사되는 재량은 법치의 본령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설립의 문턱을 객관적 기준으로 바꾸는 일은 규제를 푸는 것이라기보다, 자의적 권한을 법의 틀 안으로 되돌리는 일에 가깝습니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그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는 만큼, 개정의 폭과 시기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원칙은 굽힐 수 없습니다. 문을 넓힌다고 해서 책임까지 가벼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설립은 자유롭게 열되 평의원회와 재무 기준으로 운영의 건전성을 다잡은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방향도 설립은 더 자유롭게, 운영은 더 책임 있게라는 두 축의 균형입니다. 자유로운 진입과 투명한 감독은 맞바꿀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짝입니다. 무엇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일수록 돌봄과 복지, 지역 공동체를 떠받치는 비영리의 역할은 더욱 커집니다. 비영리법인이 더 쉽게 태어나고 더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제도는, 결국 우리 사회가 시니어 세대를 비롯한 이웃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끝으로 시니어 독자께 실용적인 당부를 덧붙입니다. 은퇴 이후 동호회나 봉사 모임, 작은 단체를 꾸리려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단체를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비영리법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법인 설립과 공익단체 등록, 기부금 영수증 발급 자격은 절차가 각각 다릅니다. 또 어느 단체에 기부하실 때는 그곳이 공익법인으로 정식 등록되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인지 국세청 공시 자료 등으로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차가 까다로운 사안일수록 혼자 판단하기보다 중간지원조직이나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작은 모임에서 출발하더라도, 제도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그 뜻을 오래도록 든든하게 이어 갈 수 있습니다. 출처: 법률신문; 두잉 굿 인덱스(Doing Good Index) 2022·2026, 아름다운재단·CAPS;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더나은미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국 국세청(IRS); 미국 재단협의회; 영국 자선위원회; 프랑스 공공서비스; 독일 민법전; 노르웨이 브뢰뇌이순 등록소; 스웨덴 비영리 안내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23분
  5. 4일 전

    [아침마다 지혜 #383] 끊기 어렵게 설계된 가공식품, 그 뿌리에 담배 회사가 있었습니다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자칩 한 봉지를 끝내 비우고, 탄산음료와 달콤한 과자에 자꾸 손이 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의지가 약한 탓이 아니라, 애초에 멈추기 어렵도록 설계된 제품 때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더 뜻밖의 사실은 그 설계의 상당 부분이 한때 담배를 팔던 바로 그 회사들의 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에 실린 의사 리아나 S. 웬(Leana S. Wen)의 기고문은, 미국 공중보건 저널(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이 2026년 6월 3일 내놓은 특별 논문 묶음을 인용해 이 문제를 짚었습니다. 수십 명의 연구진이 참여한 이 작업은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의 확산과 거대 담배 산업 사이에 분명한 연결선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담배에서 식품으로 옮겨온 기술 연구를 이끈 미국 캔자스 대학교의 중독 연구자 테라 파지노(Tera Fazzino) 부교수에 따르면, 1980년대 담배 판매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당시 최대 담배 기업이던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와 R.J. 레이놀즈(R.J. Reynolds)는 식품 산업으로 사업을 넓혔습니다. 두 회사는 크래프트(Kraft), 나비스코(Nabisco), 델몬테(Del Monte)와 같은 굵직한 브랜드를 잇따라 사들였고, 한때 식품 사업은 두 회사 자산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할 만큼 그 중심에 놓였습니다. 연구진이 과거 소송에서 공개된 100건이 넘는 내부 문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은 담배를 만들며 쌓은 노하우를 식품에 그대로 옮겼습니다. 더 긴 담배를 팔기 위해 등장한 킹사이즈 개념은 대용량 음료와 과자로, 건강을 걱정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라이트·저지방 발상은 그대로 식품 광고로 이어졌습니다. 방대한 색소와 첨가물 자료를 갖추고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화학 조합을 정밀하게 찾아내던 기법까지 식품에 동원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연구자들이 고기호성(hyper-palatable) 식품이라 부르는 제품입니다. 지방과 설탕, 나트륨에 여러 첨가물을 자연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조합으로 섞어,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게 설계한 식품을 가리킵니다. 짧고 강렬한 만족감이 빠르게 사라지도록 만들어 소비자가 더 많은 양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평생 가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어린 소비자를 일찍 사로잡는 전략 역시 식품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식탁의 70퍼센트, 그러나 신중한 해석 이 전략은 실제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파지노 부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기호성 식품은 현재 미국 식품 공급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며(이 수치는 연구진의 추정치입니다), 이는 비만과 당뇨병을 비롯한 만성 질환이 크게 늘어난 시기와 맞물립니다. 담배 회사들은 2000년대 들어 식품 사업에서 차례로 손을 뗐지만, 그들이 남긴 방식은 업계 전반의 표준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이 대목에서 신중한 태도를 지킵니다. 담배 회사들이 이를 의도했는지는 확보한 자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공식품과 만성 질환의 관계는 인과를 확정하기보다 강한 연관성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연구진은 과거 담배 규제에서 효과를 본 방식, 곧 어린이를 겨냥한 광고를 제한하고 경고 문구를 붙이는 등의 방안을 식품에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언합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의 사례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1인 가구 증가와 바쁜 일상 속에서 간편식과 가공식품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특히 당뇨와 고혈압, 비만처럼 식습관과 밀접한 만성 질환을 관리해야 하는 시니어에게는 무엇을 먹느냐가 곧 건강의 질을 좌우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식품이 단순히 입맛에 맞는 수준을 넘어, 멈추기 어렵게 만들어진 제품일 수 있음을 알아 두는 것입니다. 알고 마주하는 것과 모르고 끌려다니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작은 습관만으로도 휘둘리는 정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우선 먹는 동안 머리는 더 원하는데 배는 이미 충분한 상태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 곧 멈출 수 있는 지점입니다. 제품 뒷면의 영양성분표를 확인하는 습관도 권해 드립니다. 지방과 당류, 나트륨이 동시에 높은 제품일수록 한번 손대면 멈추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끼니의 중심은 가능한 한 가공을 덜 거친 재료로 옮겨 보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지은 밥과 국, 제철 채소와 과일이 가장 든든한 대안입니다. 완전히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비중을 조금씩 줄여 가자는 권유입니다. 만성 질환이 있으시다면 식단 조정은 주치의나 영양 전문가와 상의해 정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좋은 식습관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한 끼 한 끼의 작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오늘 저녁상부터 한 가지만 바꾸어 보셔도 충분합니다. 출처: The Washington Post 2026년 6월 10일자 오피니언 면에 실린 리아나 S. 웬(Leana S. Wen)의 기고문을 바탕으로,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특별 논문 묶음(2026년 6월 3일 게재), 미국 캔자스 대학교 테라 파지노 부교수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라 슈미트(Laura Schmidt) 교수의 연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를 종합해 재구성하였습니다. ※ 본 칼럼은 원문을 직역하지 않고 내용을 재해석하여 새롭게 작성하였으며, 의학 관련 내용은 단정적 표현을 피하고 연관성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만성 질환 관리와 식단 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19분
  6. 5일 전

    [아침마다 지혜 #382] 가장 아픈 사람이 가장 오래 기다린다는 역설

    영국 응급실 장기 대기와 연관된 사망이 10년 새 거의 열 배… 빠르게 늙어 가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병이 위중하여 응급실을 찾았는데, 정작 그 문턱에서 오래 기다리다 끝내 명을 달리하는 일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의료 선진국으로 꼽혀 온 영국에서 그러한 우려가 거듭 통계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나이 들어 가는 우리 사회에도 결코 가볍게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닙니다. 10년 새 거의 열 배로 영국 왕립응급의학회(Royal College of Emergency Medicine, RCEM)가 최근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잉글랜드에서 응급실의 긴 대기와 연관된 것으로 추산되는 초과 사망이 2025년 한 해 1만 5,860명에 이르렀습니다. 한 주에 약 305명, 한 달에 1,300명가량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추산한 2015년 수치가 1,657명이었던 점과 견주면, 10년 만에 거의 열 배로 불어난 셈입니다. 다만 직전 해인 2024년 1만 6,644명보다는 소폭 줄었습니다. 배경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요가 자리합니다. 지난해 잉글랜드 주요 응급실을 찾은 이는 약 1,700만 명으로 역대 최다였으나, 도착 후 4시간 안에 입원이나 퇴원 등으로 처리된 환자는 60.5퍼센트에 그쳤습니다. 영국이 정한 기준선 95퍼센트에 한참 못 미칩니다. 12시간 넘게 기다린 환자가 174만여 명, 24시간 이상 머문 환자도 48만 9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숫자보다 ‘경향’을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 사망자 수는 개개인의 사인을 ‘대기 탓’이라고 일일이 확인한 것이 아니라, 대규모 환자 자료에 통계 모형을 적용해 보수적으로 추산한 ‘연관 추정치’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과거 영국 보건 당국이 이런 방식의 추정에 이견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정 숫자에 놀라기보다, 대기가 길어질수록 위험이 커진다는 경향에 무게를 두고 차분히 읽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사실에 근거하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태도가 이런 사안일수록 더욱 긴요합니다. 가장 아픈 환자가 가장 오래 기다리는 구조 문제의 본질은 자원의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RCEM 회장은 응급실이 가득 차 정작 도움이 절실한 중증 환자가 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통계를 조금 개선하려고 비교적 가벼운 환자에게 자원을 몰아주라는 요구가 따르는 상황도 우려했습니다. 환자가 복도에서 진료받는 이른바 복도 진료(corridor care)를 없애겠다는 약속은 환영하나, 입원을 기다리는 중증 환자를 먼저 살피지 않는 한 본질은 풀리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대기의 그늘은 응급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자기공명영상이나 컴퓨터단층촬영, 각종 암 검사 등 진단검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192만 명으로 사상 최대에 이르렀습니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꼴이 권고 기준인 6주를 넘겨 기다립니다. 진단이 늦어지면 치료의 첫 단추부터 어긋날 수 있습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오랜 대기를 “용납할 수 없는 일”로 규정하고, 응급실의 부담을 덜기 위해 당일 응급진료 및 긴급치료센터 40곳에 2억 1,550만 파운드(한화 약 4,433억 원)를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임시방편이 아니라 병상과 간호 인력, 1차 의료와 지역 돌봄까지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장의 한결같은 목소리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국의 사정은 우리에게도 거울이 됩니다. 우리 역시 받아 줄 병상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표류와 의료 인력 수급의 진통을 겪어 왔습니다. 우리나라 응급실은 도착 순서가 아니라 증상의 위중함에 따라 진료 순서를 정하는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체계(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KTAS)를 적용합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먼저 진료받는 까닭에, 가벼운 증상으로 찾은 분은 한참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가장 아픈 사람이 가장 오래 기다린다’는 영국의 역설과 맞닿은 대목입니다. 기다림을 줄이는 일은 공동체의 책무입니다 의료 접근성은 한 사회가 그 구성원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여 주는 척도입니다. 시니어가 살아온 세월만큼 쌓은 경험은 공동체의 자산이며, 그 자산을 지키는 일은 곧 사회의 질서와 안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국가는 충분한 병상과 인력으로 든든히 떠받쳐야 하고, 우리 또한 응급 의료를 아껴 정작 절실한 이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절제를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지원과 책임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기다림의 그늘은 옅어집니다. 시니어 여러분께는 평소의 준비를 당부드립니다. 가벼운 증상이라면 응급실 대신 야간진료 병원이나 심야 약국을 먼저 찾으시고, 늘 드시는 약과 지병, 알레르기 정보를 한 장으로 정리해 지갑이나 휴대전화에 넣어 두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응급실의 실시간 상황은 보건복지부 응급의료포털 이젠(E-Gen, www.e-gen.or.kr)이나 119, 보건복지상담센터 129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병을 일찍 찾아내는 가장 든든한 길은 정기 검진입니다. 국가건강검진을 빠짐없이 챙기시고, 궁금한 점은 국민건강보험공단(1577-1000)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이 나타나면 망설이지 마시고 즉시 119에 연락하셔야 합니다. 건강에 관한 판단은 늘 의료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에 담긴 통계와 정보는 현황을 이해하는 참고 자료일 뿐, 개인의 진료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 칼럼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2026년 6월 8일 자 보도를 바탕으로, 영국 왕립응급의학회와 영국 정부 발표 자료 등을 추가로 확인해 시니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한 것입니다. 원문을 직역하지 않고 의역하였으며, 모든 인용은 간접 인용으로 옮겼습니다. 환율은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 기준 2026년 6월 5일 1파운드 약 2,057원을 적용했습니다.

    25분
  7. 6일 전

    [아침마다 지혜 #381] 삶을 ‘최적화’하다 즐거움을 잃는 사람들

    — 측정의 시대, 시니어의 지혜를 다시 묻습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재는 시대 요즘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잠자는 시간과 먹는 음식과 하루 걸음 수까지 숫자로 기록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나’를 향해 자신을 다듬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손목에 찬 기기가 밤새 수면의 질을 채점하고, 아침이면 오늘의 컨디션 점수를 보여 줍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의 기계처럼 측정하고 관리하는 이른바 자기 최적화(self-optimization)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부지런한 자기 관리가 정작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멈추어 물어볼 때가 되었습니다. 한 칼럼니스트의 진단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의 칼럼니스트 제미마 켈리는 이 풍조를 정면으로 짚었습니다. 칼럼에 따르면, 인기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한 30대 방송인은 술을 끊었다가 다시 마셔 본 경험을 두고 마치 실험을 하듯 비교 측정(A/B 테스트)을 했다고 말합니다. 와인 두 잔에 취하지도 않았으나 그날 잠을 설친 탓에 사흘을 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과정을 자신이 후원받는 건강 측정 기기로 일일이 기록했다고 자랑하듯 덧붙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측정 만능주의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한 방송 진행자는 모든 것을 끝없이 최적화하고 측정하다 보면 목표에 조금만 못 미쳐도 비참해진다며, 최적화가 즐거움을 죽이고 있으니 이에 맞서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무엇도 기록하지 말며 그저 즐겁게 보내라고 권했습니다. 켈리는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더 보탰습니다. 임종을 앞둔 이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행복할 기회를 주지 못한 일, 그리고 지나치게 일만 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호스피스 현장의 기록을 토대로 널리 인용되는 보고로, 표본과 측정 방식은 연구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손목의 기기는 우리가 너무 늦게 잠들었다고 알려 줄 수는 있어도, 그날 우리가 배꼽을 잡고 웃었는지, 평생의 인연을 만났는지는 결코 기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왜 자신을 숫자에 가두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자신을 숫자에 가두게 되었을까요. 무엇이든 효율과 성과로 환산하려는 후기 산업사회의 사고방식이 그 뿌리에 자리합니다. 삶을 ‘잘’ 사는 문제는 제쳐 두고 오직 목표 수치만을 좇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측정을 손쉽게 만들어 주는 기술과, 그 기술을 팔아야 하는 산업의 이해관계가 맞물립니다. 앞서 소개한 방송인이 자랑한 측정 기기가 사실은 그가 후원과 투자를 받는 회사의 제품이었다는 대목은, 이 열풍의 상업적 속내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건강과 자기 계발이라는 선의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으나,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더 사고 더 측정하라는 부추김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 시니어에게 던지는 물음 이 문제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시니어 사이에서도 건강 관리 열풍은 뜨겁습니다. 스마트워치로 심박과 걸음을 확인하고, 영양제를 챙기며, 작은 수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건강을 돌보는 일은 분명 소중하고 마땅한 책임입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검사 결과 한 줄에 마음이 흔들리고 즐거움을 자꾸 뒤로 미루는 건강 염려로 기울면, 정작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만남과 웃음과 여유를 놓치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갈지를 스스로 정하는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의 핵심은, 수치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기준으로 하루를 선택하는 데 있습니다. 절제와 즐거움 사이, 중용의 지혜 다만 이 글이 절제 없는 향락을 권하는 것으로 읽혀서는 곤란합니다. 측정에 매몰되는 삶이 공허하듯, 건강을 함부로 방치하는 삶 또한 지혜롭지 못합니다. 우리 선현이 일러 온 중용(中庸)의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되, 그것을 삶의 목적이 아니라 더 오래 더 즐겁게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균형입니다. 한 영국 작가는 요양원에서 몇 해를 더 연명하자고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할 까닭은 없다고 했습니다. 다소 과장된 말이지만, 삶의 길이만큼이나 그 깊이와 온기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새길 만합니다. 수십 년의 풍파를 건너온 시니어 세대는 무엇이 정말로 남는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숫자가 일러 주지 못하는 그 지혜야말로, 측정에 지친 이 시대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입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오래 보지 못한 벗에게 안부 한마디 건네 보시기를 권합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 오피니언, 제미마 켈리(Jemima Kelly) 칼럼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인용된 발언은 원문 보도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 옮긴 것이며, 직접 인용이 아닌 요약·재진술입니다. 임종 전 후회에 관한 내용은 호스피스 현장 기록에 근거한 다수의 보고를 종합한 것으로, 표본과 방법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14분
  8. 6월 8일

    [아침마다 지혜 #380] 마음의 건강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습니다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마음의 풍경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도 마음의 건강을 둘러싼 사정은 나라마다 사뭇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의 소비자 인사이트(Consumer Insights)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우울감과 스트레스, 불안과 같은 마음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한 성인의 비율이 나라별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조사는 2025년 4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세계 주요 10개국의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나라마다 1천 명에서 8천6백 명에 이르는 만 18세부터 64세까지의 응답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수치를 보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42퍼센트)이었고 미국(41퍼센트)이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습니다. 캐나다(39퍼센트)와 영국(37퍼센트)이 그 뒤를 따르며 북유럽과 북미, 영어권 국가가 대체로 높은 편이었습니다. 이어 브라질(32퍼센트)과 독일(31퍼센트)이 중간 수준을 보였고, 인도(26퍼센트), 프랑스와 일본(각각 22퍼센트)이 그 아래에 자리했으며, 가장 낮은 곳은 중국(16퍼센트)이었습니다. 숫자가 높은 나라가 더 아픈 나라일까요 다만 이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번 결과는 의료기관의 정식 진단이 아니라, 응답자 스스로가 그러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밝힌 비율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수치가 높은 나라가 곧 마음이 더 병든 나라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에 거리낌이 적은 사회일수록 그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정신 건강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태도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마음의 병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남아 있어, 실제로 힘들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결과는 마음의 병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지도인 동시에, 사람들이 그 문제를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는지를 함께 비추는 거울로 읽는 편이 옳습니다. 조사에서 빠진 65세 이상, 그러나 마음의 무게는 더합니다 시니어 독자께서 특히 유념하실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번 조사의 대상은 만 18세부터 64세까지, 곧 경제 활동을 하는 연령층이었습니다. 만 65세 이상 시니어 세대는 처음부터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므로, 위의 수치를 시니어의 마음 건강으로 그대로 옮겨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건강이 소중하다는 사실에는 나이의 구분이 없습니다. 도리어 은퇴와 사별, 신체 기능의 변화, 사회적 관계의 축소처럼 인생의 후반기에 마주하는 변화들은 마음에 적지 않은 무게로 다가오곤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시니어 세대의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은 오래도록 관심이 필요한 과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마음의 병은 결코 의지가 약한 탓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먼저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마음이 가라앉고 의욕이 사라지거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평소 즐기던 일에도 흥미를 잃는 상태가 2주 넘게 이어진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시기를 권합니다. 이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병원을 찾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현명한 선택입니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는 부담 없이 두드릴 수 있는 도움의 창구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힘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떤 상담 전화와 제도도 끝내 대신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입니다. 가까이 사는 가족과 주고받는 한 통의 안부 전화, 동네 복지관과 경로당의 작은 모임에 한 발 내딛는 일, 이웃과 나누는 인사 한마디가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든든한 힘입니다. 사회가 마련한 제도가 울타리가 되어 준다면, 그 울타리 안을 따뜻하게 채우는 것은 결국 우리 곁의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힘든 날, 부디 혼자 끌어안지 마시고 곁의 누군가에게, 그리고 전문가에게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그 한 걸음이 곧 회복의 시작입니다. 자료 출처: 스타티스타 소비자 인사이트(Statista Consumer Insights) 조사 및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보도를 참고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조사 기간은 2025년 4월부터 2026년 3월까지이며, 세계 주요 10개국의 만 18세부터 64세 성인(국가별 응답자 1천 명에서 8천6백 명)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15분

소개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