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향한 두 가지 반응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이보다 더 많은 표적을 행하시겠느냐”고 말하며 예수님을 믿는 무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잡으려는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있다. 같은 예수님의 표적을 두고도 누군가는 그분이 누구신지를 향해 나아가지만, 누군가는 오히려 그분을 제거하려 한다. 예수님의 행위는 그의 메시아적 정체성을 증언하지만, 그 증언 앞에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표적은 믿음을 낳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완악한 자들의 적대감을 더 드러내기도 한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신앙을 정면으로 비춘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도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보다, 오히려 내 기준과 질서가 흔들린다는 이유로 불편해할 수 있다. 예수님이 내 삶을 위로하고 도와주실 때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그분이 내 생각과 계획을 깨뜨리실 때는 마음속에서 그분을 밀어내려 한다. 결국 문제는 예수님의 표적이 부족한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예수님의 행위가 드러내는 그분의 정체를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내 기준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거부하느냐에 있다. 그런 적대감 앞에서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신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아랫사람들을 보내 예수님을 잡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운명은 사람들의 음모나 종교 지도자들의 체포 시도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간은 인간의 분노와 계획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안에서 움직인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기준을 준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의 반응과 상황의 압박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나를 반대하는지, 어떤 환경이 나를 막는지, 어떤 문제가 나를 붙들고 있는지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손에 붙들려 끌려가는 분이 아니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 안에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사람의 시선과 상황의 위협보다, 하나님이 정하신 뜻과 때를 더 신뢰해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동시에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무한정 열려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듣지 않고, 지금 예수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 믿지 않으면, 나중에는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하는 시간이 올 수 있다. 예수님을 거부한 자들은 결국 예수님이 계신 곳, 곧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나중에”라는 말이다. 나중에 회개하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순종하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겠다고 말한다. 본문은 예수님을 미루는 것이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불신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실 때 듣고, 지금 부르실 때 반응해야 한다. 믿음은 언젠가의 결심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계신 예수님께 응답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이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에게 가서 가르치려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신다는 계시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땅의 차원에서만 예수님을 이해했다. 예수님의 정체는 그의 이동 경로나 출신을 따진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이 오해는 오늘 우리에게도 반복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분을 땅의 차원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을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 내 종교적 안정감을 지켜 주는 분, 내 필요를 채워 주는 분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충분히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계시자이시며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내 양심을 찌르기에 마음속에서 그분을 밀어내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께서 지금 부르실 때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언젠가 다시 찾으면 된다고 미루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을 땅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려 하는가, 아니면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예수님은 인간의 계획에 붙들리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내 생각과 기준 안에 가두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들어야 하고,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미루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지금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믿음이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미루지 않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How? 1) 믿음의 동역자와 선배들과 대화하며 하나님에 대한 식견 넓히기 1)-1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것 2) ‘나중에 해야지’ 대신 “오우 이거 개꿀잼이네?”하고 지금 시작하기 2)-1 개꿀잼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말하고 시작하는 것 3)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위해 매일 아침 기도와 말씀으로 시작하기 3)-1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 한 가지 적고 실천하기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Ⅱ)』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브라운, 레이몬드 E. 『요한복음 I: 표적의 책』 최흥진 역. 앵커바이블 (서울: CLC, 2013).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폽케스, 엔노 에드자르트. "요한복음."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ultmann, Rudolf. The Gospel of John: A Commentary. Translated by G.R. Beasley-Murray. Edited by R.W.N. Hoare, J.K. Riches. Philadelphia, PA: Westminster Press, 1971. de Boer, Martinus C.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Vol. 1, London, New York, Oxford, New Delhi, Sydney: T&T Clark, 2025. Martyn, J. Louis. History and Theology in the Fourth Gospel. The New Testament Library 3 ed.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3. Meeks, Wayne A. The Prophet-King: Moses Traditions and the Johannine Christology. Supplements to Novum Testamentum 14; Leiden: E.J. Brill, 1967.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