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사심책방에서는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일부를 함께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 인간은 신체를 훼손당할 때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에 큰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개인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 특유의 욕망과 선호, 희망, 자율성으로 구성되는 개별적 인격성을 인정 받지 못할 때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 당한다. 장애, 질병, 빈곤 등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단으로 삼아 철저히 익명화(기호화)하는 방식으로 연출하는 공연은 결국 이들을 실격당한 존재로 만든다. -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은 실재를 공유하면서 그 존중을 강화한다. 모르는 척 해주는 익명의 대학생이 고마워서 그를 존중하며, 자신을 존중하려 애쓰는 자폐아 부모의 노력을 아는 대학생은 더더욱 무심한 척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 -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우아함을 확보하기, 예컨대 1.8초에 한번씩 휠체어 밀기다. 그 밖에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사심없이 바라보며 관조하는 정신을 갖기. 몸의 한계와 더불어 나에게는 자원도 부족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우아하고 품격있게 살아가는 인간이 되려면 일정한 자원이 필요하다. - 질병과 장애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질병과 장애를 안은 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기록된다. - 하지만 만성적인 질병, 늘 약을 먹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고, 때로는 빨리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질병이나 우발적인 사고로 갖게된 '장애'라는 몸상태는 한 사람에게 고유한 이야기가 된다. 내 몸이 가진 이 속성, 흔적, 경험으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정체성이란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장애를 정체성으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선택이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과 역사를 내 자아의 중대한 부분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장애가 있는 몸,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신체를 수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혐오나 피해의식에 기초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이 구축해놓은 외모의 위계질서에 종속되지 않으며, 앞으로의 삶을 외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 혹은 피억압자로서의 의식과 트라우마에 짓눌리지 않은 채 살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 우리는 우리 몸의 볼품없는 어떤 특성, 나이들고 병들고 장애를 가진 내 자녀의, 친구의, 연인의, 그리고 나의 몸을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수용'해야 한다. - 아픈 사람이 자신의 질병을 자기 서사의 중심에 놓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질병을 나름의 방식으로 납득해야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우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을 납득하기 위해 그것을 해명하는 이야기(신화) 또는 이론(기상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역사학, 사회학 등)을 필요로 했다. 우리 개개인도 자기 인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론을 만든다. - 자기 이야기를 자율적으로 써 내려가는 자기 인생의 저자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와 관점을 가진 개별적인 존재임을 강조한다. - 내귀씨는 나에게 말했다. "저에게는 무척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이 친구를 그렇게 들여다보지 않고 누가 감히 그 사람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는 윤광의 초상화를 그릴 능력이 있는 (아마도 유일한) 화가였던 셈이다. - '매력차별금지법'은 불가능하지만 '아름다울 기회 평등법'은 가능하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한 학교에서 오랜 시간 함께하기, 어떤 중증의 장애인이라고 거리에 나오기 편한 환경 만들기, 이들이 자기 서사를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하고 그 말을 듣는 시간을 배정하기, TV프로그램에서 구체적이로 섬세한 감정과 표정을 드러내는 장애인 캐릭터를 만날 기회 제공하기(그 캐릭터는 조인성보다는 정말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 연기해야 할 것이다), 공식적인 회합뿐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도 가급적 모든 사람이 소외되지 않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상호작용의 기술을 공유하고 의사소통 규범을 준수하기, 장애아의 부모, 형제자매, 연인, 친구, 이웃이 쓴 글을 진지하게 읽고 정치적 목소리에 힘을 싣기. - 우리는 누구나 홀로 아무런 의미망과도 연겨로디지 못하는, 도움의 손길조차 없어보이는 수직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듯한 절망의 순간을 겪을 때가 있다. 하지만 수직으로만 파고 내려가는 줄 알았던 굴 속에서 어떤 사람은 조금 방향을 트는데 성공한다. - 자신을 수용하고 돌보려 노력하지만 결코 완전하지는 못할 이 '취약함'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 집단에 속해있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일 것이다. - 존엄의 순환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 순환 속에서 존엄은 더 구체화되고, 더 강해지고,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 그 과정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더 깊이 사랑하고 관용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hopesung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