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심집중

하나

안녕하세요. 소소한 이야기가 있는 마음 마실터,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살아가는 이야기와 보고 느낀 이야기, 읽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mail: hananess86@gmail.com

  1. 10/05/2020

    58회. 월간사심 + 사심책방. 김하나 '힘 빼기의 기술'

    안녕하세요.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사심책방에서는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의 일부를 함께 읽습니다. 오늘도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러나 나이가 더 들어서 독립을 하고 나니 '만다꼬'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질문이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또는 사는 게 힘에 부칠 때면 '만다꼬?'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왜 이것을 하는 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나는 이것을 진정 원하나? 아니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 떠밀려서 하는 건가? 내 안에 내재된 '만다꼬?'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게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부분에 쏟고 있던 힘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 사람들은 힘들어하는 이에게 응원의 뜻을 담아 "힘내라!"라고 말한다. 물론 좋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차라리 "힘 빼라!"라고 말해주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안전망은 부실하고 사람들의 힘을 쥐어짜내어 굴려가는 이 폭력적인 나라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치는데 또 힘을 내라니. 도대체 언제까지? 물 속에서 수영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는 "힘내라!"라고 하면 안 된다. 그때는 힘을 더 소모하지 말고 온몸에서 힘을 빼 둥둥 떠 있어야 한다. 계속 힘을 내려다간 결국 가라 앉는다. 힘이 부치는 사람에겐 힘내라고 하기보단 손을 내밀어 나의 힘을 보태고 우리의 힘을 합칠 일이다. - 되도록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고 되도록 아무 생명도 다치게 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삶. 꿈은 클수록이 아니라 다양할수록 좋다고 믿는다. - 하루하루 사는 게 문득 너무 힘들게만 느껴진다면 우리 집의 가훈을 한 번 되새겨보길 권한다. '만다꼬?' 대답을 찾느라 잠시 멈춰 섰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사랑과 매력이란, 전쟁과 권력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힘이다. 주삿바늘 앞에 초연한 엉덩이처럼, 벌레 못 만지는 장수풍뎅이연구회처럼, 힘을 좀 뺀 것들이 세상의 긴장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든다. - "니 도토리가 왜 동그란지 아나? 상수리나무 밑에선 상수리나무가 못 자란단다. 그래서 엄마 나무에서 떨어지면 되도록 멀리까지 굴러갈라꼬 동그랗게 생깄다 카네." 내가 멀찍이 굴러와 자라가는 걸 엄마는 그냥 지켜봐준다. 설거지 할 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지금이 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때라고 말하면서. 나는, 내가 어엿한 상수리나무로 자랐는지는 모르겠으나, 멀찍이 엄마 상수리나무가 기분 좋게 이파리를 떨면서 서 있는 것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 이곳에서 낙천주의자가 되기는 쉬운 일이다. 삼바 축제에서 5년 연속 우승한 망게이라 삼바팀의 대표였던 '지우다'라는 여자가 있다. 지금은 호호 할머니라는데, 이 사림이 옛날에 우승 후 인터뷰에서 했던 말 때문에 큰 인기를 누렸다는 군. "우리는 돈을 버는 법은 모르지만, 인생을 사는 법은 안다. 좋은 날도 지나가고, 나쁜 날도 지나간다.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니, 좋게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것은 해변의 철학. 오늘도 스물일곱 개의 해변으로부터 예술적인 바람이 불어오고, 태양은 작열하며, 사람들은 해수욕을 하고, 야자열매는 익어간다. 인생은 선물이고, 좋고 나쁜 하루들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 리우의 모래톱엔 오늘도 착실히 낙관이 쌓여간다.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hopesung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

    58 min
  2. 08/22/2020

    57회. 월간사심 + 사심책방.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안녕하세요.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사심책방에서는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일부를 함께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 인간은 신체를 훼손당할 때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에 큰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개인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 특유의 욕망과 선호, 희망, 자율성으로 구성되는 개별적 인격성을 인정 받지 못할 때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 당한다. 장애, 질병, 빈곤 등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단으로 삼아 철저히 익명화(기호화)하는 방식으로 연출하는 공연은 결국 이들을 실격당한 존재로 만든다. -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은 실재를 공유하면서 그 존중을 강화한다. 모르는 척 해주는 익명의 대학생이 고마워서 그를 존중하며, 자신을 존중하려 애쓰는 자폐아 부모의 노력을 아는 대학생은 더더욱 무심한 척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 -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 우아함을 확보하기, 예컨대 1.8초에 한번씩 휠체어 밀기다. 그 밖에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사심없이 바라보며 관조하는 정신을 갖기. 몸의 한계와 더불어 나에게는 자원도 부족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우아하고 품격있게 살아가는 인간이 되려면 일정한 자원이 필요하다. - 질병과 장애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질병과 장애를 안은 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되고 기록된다. - 하지만 만성적인 질병, 늘 약을 먹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고, 때로는 빨리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질병이나 우발적인 사고로 갖게된 '장애'라는 몸상태는 한 사람에게 고유한 이야기가 된다. 내 몸이 가진 이 속성, 흔적, 경험으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정체성이란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장애를 정체성으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선택이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과 역사를 내 자아의 중대한 부분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장애가 있는 몸,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신체를 수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혐오나 피해의식에 기초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이 구축해놓은 외모의 위계질서에 종속되지 않으며, 앞으로의 삶을 외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 혹은 피억압자로서의 의식과 트라우마에 짓눌리지 않은 채 살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 우리는 우리 몸의 볼품없는 어떤 특성, 나이들고 병들고 장애를 가진 내 자녀의, 친구의, 연인의, 그리고 나의 몸을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수용'해야 한다. - 아픈 사람이 자신의 질병을 자기 서사의 중심에 놓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질병을 나름의 방식으로 납득해야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우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을 납득하기 위해 그것을 해명하는 이야기(신화) 또는 이론(기상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역사학, 사회학 등)을 필요로 했다. 우리 개개인도 자기 인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론을 만든다. - 자기 이야기를 자율적으로 써 내려가는 자기 인생의 저자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와 관점을 가진 개별적인 존재임을 강조한다. - 내귀씨는 나에게 말했다. "저에게는 무척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이 친구를 그렇게 들여다보지 않고 누가 감히 그 사람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는 윤광의 초상화를 그릴 능력이 있는 (아마도 유일한) 화가였던 셈이다. - '매력차별금지법'은 불가능하지만 '아름다울 기회 평등법'은 가능하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한 학교에서 오랜 시간 함께하기, 어떤 중증의 장애인이라고 거리에 나오기 편한 환경 만들기, 이들이 자기 서사를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하고 그 말을 듣는 시간을 배정하기, TV프로그램에서 구체적이로 섬세한 감정과 표정을 드러내는 장애인 캐릭터를 만날 기회 제공하기(그 캐릭터는 조인성보다는 정말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 연기해야 할 것이다), 공식적인 회합뿐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도 가급적 모든 사람이 소외되지 않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상호작용의 기술을 공유하고 의사소통 규범을 준수하기, 장애아의 부모, 형제자매, 연인, 친구, 이웃이 쓴 글을 진지하게 읽고 정치적 목소리에 힘을 싣기. - 우리는 누구나 홀로 아무런 의미망과도 연겨로디지 못하는, 도움의 손길조차 없어보이는 수직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듯한 절망의 순간을 겪을 때가 있다. 하지만 수직으로만 파고 내려가는 줄 알았던 굴 속에서 어떤 사람은 조금 방향을 트는데 성공한다. - 자신을 수용하고 돌보려 노력하지만 결코 완전하지는 못할 이 '취약함'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 집단에 속해있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일 것이다. - 존엄의 순환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 순환 속에서 존엄은 더 구체화되고, 더 강해지고,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 그 과정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더 깊이 사랑하고 관용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hopesung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

    2h 29m
  3. 04/26/2020

    55회. 사심책방.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2)

    안녕하세요.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사심책방에서는 지난 회에 이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의 일부 '봄'과 '맺는말'을 읽습니다. 봄날에 떠오르는 노래 봄눈도 불러봤어요. 감사합니다. - "봄비의 부름을 받고 풀들은 처음으로 싹튼다."하고 어느 옛 사람은 말했지만, 언덕마다 풀들이 봄 불처럼 타오르는 모습이 마치 대지가 돌아오는 태양을 맞기 위해 내부의 열을 발산하는 것만 같다. 그 불길의 색깔은 붉은 색이 아니고 초록색이다. 영원한 청춘의 상징인 풀잎은 흙에서 솟아올라 기다란 푸른 리본처럼 여름속으로 환히 피어나지만 겨울 추위의 제지를 받고는 시들어버린다. 그러나 봄이 다시 오면 뿌리속에 간직한 싱싱한 생명의 힘으로 지난해의 마른 잎의 끝을 치켜들며 또다시 뻗어 오르는 것이다. - 각 계절은 그때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하여 봄이 온 것이 마치 혼돈에서 우주가 창조되고 황금시대가 실현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 부드러운 이슬비가 한 번 내리면 풀밭은 한층 더 푸르러진다.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지리라. 우리가 항상 현재에서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애통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 아픈 사람에게 의사는 현명하게도 공기와 장소를 바꾸어 볼 것을 권한다. 여기 이곳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니 천만다행한 일이 아닌가? - 살아있는 개는 죽은 사자보다 나은 것이다. 자기가 왜소한 피그미족에 속했다고 해서 가장 큰 피그미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가서 목을 매야 한단 말인가?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천성에 맞는 여러 여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대신 끌어다 댈 수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헛된 현실이라는 암초에 우리의 배를 난파시켜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애를 써서 머리위에 청색 유리로 된 하늘을 만들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그런 것은 없다는 듯이 그 훨씬 너머로 정기에 가득찬 진짜 하늘을 바라볼 것인데. - 우리가 어떤 사물에 부여하는 어떠한 표면도 진실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오직 진실만이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 대체로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거짓된 입장에 있다. 천성의 어떤 약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사정을 지레짐작하고 우리를 그 속에 맞추어 넣어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사정에 처해 있으며,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두배나 어려운 것이다. 정신이 온전할 때 우리는 사실만을, 즉 실제로 존재하는 사정만을 응시한다. 당신의 의무감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지 말고 진실로 내부에서 느끼는 것을 말하라. 어떤 진실도 거짓보다는 낫다. -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역시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 독자 여러분들 가운데는 단 한사람도 인간의 한평생을 다 살고 난 사람은 없다. 지금은 인류의 역사에서 봄의 계절에 불과한지 모른다. - 우리의 눈을 감기는 빛은 우리에게 어두움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동이 틀 날은 또 있다.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hopesung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

    1h 34m
  4. 04/26/2020

    54회. 월간사심 + 사심책방.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1)

    안녕하세요.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월간사심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심책방에서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의 일부 '고독'을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나는 갑자기 대자연 속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 또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모든 경치 속에 너무나도 감미롭고 자애로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공기 그 자체처럼 무한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이었다. 이웃에 사람이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모든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느겼고 그 후로는 그런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솔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에게 혈연적으로 가장 가깝거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반드시 어떤 인간이거나 어떤 마을 사람이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가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합니다." -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 우리는 너무 얽혀 살고 있어서 서로의 길을 막기도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렸다. - 자연은(해와 바람과 비, 그리고 여름과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워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준다.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슬퍼한다면 온 자연이 함께 슬퍼해줄 것이다. 태양은 그 밝음을 감출 것이며 바람은 인간처럼 탄식할 것이며 구름은 눈물의 비를 흘릴 것이며 숲은 한 여름에도 잎을 떨구고 상복을 입을 것이다. 내가 어찌 대지와 교제를 갖지 않겠는가? 나 자신의 일부분이 그 잎사귀이며 식물의 부식토가 아니던가!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hopesung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

    1h 11m
  5. 03/19/2020

    53회. 월간사심+ 사심책방.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안녕하세요.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심책방에서는 한수희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의 일부를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 거대한 것과 시시콜콜한 것을 동시에 바라보며 살고 싶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책임해지지 않으면서 하루하루의 생활도 잘 살아나가고 싶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매일매일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들고, 또 새것 같은 하루를 기대하면서 눈을 뜨고 싶다. 살다보면 좋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좋은 날을 즐기는 법과 그렇지 않은 날을 견디는 법을 배우며 살고 있다. 이 책에 쓴 이야기들은 모두 그런 이야기들이다. - 우선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다. 익숙해질때까지 기다려주고, 기다려주고,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준다. 한번에 다 될리가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 - "저는 천천히 일해요." 그렇지. 천천히 해야 오래할 수 있다. - 글은 그냥 쓰면 된다. 누가 읽어주건 말건, 누가 좋아하건 말건 그건 다음 문제다. - 바다 건너에까지 회자될만큼 말솜씨가 뛰어난 일본의 배우 겸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2만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던 것이라고. - 문득 내가 죽을 때면 이런 시간이, 이런 풍경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이 아름다운 것들을 두고 가야한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고 아쉽고 또 화가 날 것이다. 가장 완벽한 순간에 나는 언제나 가장 절망적인 상상을 한다. - 나는 천성적으로 남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남과 보조를 맞추지 않아도 되니 이제야 사는게 편해졌다. -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 나는 늘 더 뛸 수 있을 것 같을 때, 한 바퀴 정도 더 뛰어도 될 것 같을 때 멈춘다. - 그저 오래오래, 혼자서, 조금씩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 - 20대에는 별일이라곤 없는 내 인생이 망작 같기만 했는데, 중년이 되어버리고 나니 별일 없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별일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 사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누군가의 잔소리가 아니라 스스로 실패해본 경험에서다. - 지금 돌이켜보니 그 기간은 어쩌면 수련의 기간이었을수도 있겠다 싶다. 기다리는 일,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 그런 것에 나는 좀처럼 소질이 없었다. 그런데 카페의 주인이던 그때, 나는 지금 기다리는 일을 배우고 있는짇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게 무슨 때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말이다. - 그건 그냥 사람이 인생에서 겪게되는 한 시기였을 뿐이다. -그 시절 내가 푹 빠져 있던 드라마는 / 특히 나는 이 대사를 듣고 이 드라마에 마음을 내주게 되었다. 연기 못하는 여배우가 중년 아저씨들로 가득 찬 동네 술집에 와서 눈치 없이 하는 대사였다. "여기 있는분들 다들 망했잖아요. 그래서 존경해요. 사람들은 망하는 걸 제일 무서워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있는 분들은 다 망했는데 잘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안심이 됐어요. 아, 망해도 괜찮구나. 망해도 되는구나." - "생각해보니 그렇다. 젊어서도 사는 게 쉽진 않았어." - 삶은 피멍이 들도록 부딪쳐오는 수많은 장애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걸 이제는 안다. 돈으로, 가짜 행복으로, 일시적인 위안물들로 가리려고 해도 가려지지 않는다. - 뭐, 그래도 괜찮지. 망해도 괜찮지. 망해도, 망한 후에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hopesung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

    1h 19m
  6. 02/07/2020

    52회. 2019 정산+ 사심책방. 이동귀 '서른이면 달라질 줄 알았다'

    안녕하세요.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지난해 사심집중을 찾아와 주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심책방에서는 이동귀의 '서른이면 달라질 줄 알았다:지금 그대로도 좋은 당신을 위한 하루 심리학'의 일부를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 인본주의 심리치료자 칼 로저스는 사람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지를 평가할 때 그 근거를 자신에게 두지 않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두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누구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야 행복한 법인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때 타인의 인정이나 사랑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불안해져서 행복감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로저스는 이를 타인의 인정이나 사랑에 조건화된 자기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진로선택에 대한 고민으로 혼란스러워하거나 선택한 진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불안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일시적 실패에 대해 자신을 자책하거나 주변사람을 원망하기 보다 시도하고 노력했던 자신을 격려하라고 말입니다. - 그러니 딱 일정한 만큼의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동안에만 충분히 실망스러워하세요. 그러나 그 이후에는 이를 떨쳐버리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미래의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표를 위해 충실하게 노력했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그 힘든 과정을 견뎌온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고 격려해주세요. 마라톤과도 같은 긴 인생길에서 남보다 조금 늦는다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습니다. - 다만 삶이 마라톤과 같다는 점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해봤다는 후회는 없을테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느 때 살아있다고 느끼며 어느 때 행복한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경우에서 얻는 경험 중 그 어떤 것도 버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hopesung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

    1h 19m
  7. 01/16/2020

    51회. 새해사심+ 사심책방.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안녕하세요. 늦은 지난해 마무리 인사와 새해 안부를 전합니다. 사심책방에서는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의 일부를 읽습니다. 잊지 않고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그 텅 빈 부분을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해도. 그건 슬픈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 그렇게 우리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도넛과 같은 존재니까, 이제 다시는 이런 책을 쓰는 일은 없을테니까.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 -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쓸데없다고 핀잔준다 해도 내 쓸모란 바로 거기에 있는 걸 어떡하나. - 언젠가는 지리산 남원 쪽 실상사는 아직 늦겨울이었는데, 산너머 하동 쌍계사는 봄이었던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고 지리산 관통도로를 넘어왔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그건 봄나라로 입국하는 절차처럼 느껴졌었다. 일단 그렇게라도 봄을 느끼고 나면 이제 겨울은 한동안 찾아오지 않는다.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 봄을 여러차례 겪으면 그처럼 기다리지 않으면 봄이 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봄이 지나가고 나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울지 않으면, 꽃이 피기까지 찬란한 슬픔의 봄을 아직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직은 이 생에서 졸업할 생각이 없으니까 삶이 뭔지 모두 알고 싶은 욕망은 없지만, 젊은 날의 순정을 빼앗기고 나니까 그 정도 깨달음은 내게도 생기게 됐다. - 봄을 기다릴 때, 내가 읽은 책들은 주로 시집들이다. 봄에 읽는 시의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당시다. 시인들이란 모자란 것, 짧은 것, 작은 것들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니 계절로는 덧없이 지나가는 봄과 가을을 지켜보는 눈이 남다르다. - 성실한 직장인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아침에 출근하느라 지하철을 탈 때면 나는 늘 경이로움을 느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있기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할 수 있단 말인가! 가끔은 숙취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한 3년 가까이 나는 그런 경이로움을 잃지 않았다. 그 3년동안 아는 세상에는 이다지도 많은 직업이 있는데, 다른 일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글을 써야만 하는가라는 문제로 고민했었다. 아마도 소설을 거의 쓰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할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 그렇다면 왜 쓰는가?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문학을 쇄신하기 위해?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질문과 부정은 계속됐지만, 그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 그렇게 한 달 정도 썼을 때 쯤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 바라본 밤하늘을, 그때 느꼈던 따뜻한 고독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를 닮은 재벌 3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문학을 한다. 그 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 있다. -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 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 '벽'이란 병이 될 정도로 어떤 대상에 빠져 사는 것. 그게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이라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역시 사람답게 살기위해서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 산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 영혼을 팔아치울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다면,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그 괴로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할 지경이었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완전히 던지는 일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나섰을 것이다. 나는 운명도, 운도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오직 내 몸과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인간이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씌어진 여러 낙서 중에 'Ten Days of Happiness'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hopesung.blog.me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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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09/27/2019

    50회. 월간사심+ 사심책방. 최민영 '아무튼, 발레'

    안녕하세요.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주로 읽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심책방에서는 최민영 작가의 '아무튼, 발레'의 일부를 함께 읽습니다. - 플리에는 스스로를 높이겠다는 마음으로는 스스로 높아지지 않는 삶과 참 많이 닮았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 내려올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올라갈 수 있는 힘도 나오지 않는다. - 누구나 인생에 '플리에'의 순간이 있는게 아닐까. 낮아지고, 떨어지고, 주저앉는 순간들 말이다. - 그저 각자의 '플리에'를 하는거다. 높이 뛰어오르는 순간이 있으려면 플리에를 꼭 거쳐야 하고, 내려와야 할 순간에도 플리에는 꼭 필요하니까. 그래서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에는 '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곤 한다. 플리에 같은 그 시기를 잘 지난다면, 인생의 속근육도 자라는 것이겠지. - 고백하자면 나는 힘빼기를 두려워했다. 나 자신이 소진될 정도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늘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기 때문이다. 늘 긴장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기자라는 직업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어릴 때 이미 그런 마음의 습관이 들었던 것 같다. - 물론 노력하는 건 좋죠. 하지만 세상에 자기 자신을 소진시킬 만큼 중요한 직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 삶의 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하길 그치고, 매일 만나는 소소한 순간들을 세상의 모든 게 첫 경험인 아이처럼 즐기기로 했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한계도 인정했다. 애당초 그런 부담감은 사실 누구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강한 자기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돌아보게 됐다. 난생 처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발레에서 아름다움의 핵심은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것이다. 그건 우아함의 본질이기도 하다. 격렬한 감정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꼭꼭 씹어서 소화한 뒤 한 단계 승화하는 것이다. e-mail: hananess86@gmail.com 블로그: http://hopesung.blog.me 트위터: http://twitter.com/hananess86

    1h 2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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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소한 이야기가 있는 마음 마실터, 하나의 사심집중입니다. 살아가는 이야기와 보고 느낀 이야기, 읽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mail: hananess8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