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

생활과 묵상

대한성공회 영성센터 '생활과 묵상'과 함께 하는 복음 묵상 프로젝트~ 이제 시작합니다!!!

  1. 22h ago

    8월 26일 수요일 마태 23:27-32

    8월 26일 수요일 마태 23:27-32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 이다. 너희는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옳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 을 단장하고 성자들의 기념비를 장식해 놓고는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 더라면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이는 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떠들 어댄다. 이것은 너희가 예언자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 토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 오늘의 묵상: 살아 있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시다’라고 제 나름 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제 도덕적 기준과 판단들, 사회에서 정한 규범들 속에서 주님의 뜻과 일을 가둬 놓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종종 제 기대를 벗어나십니다. 제가 기대하지 않은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저를 이끄실 때마다 깨닫게 됩 니다. 신앙은 제가 이미 알고 있는 하느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항상 새로운 말씀을 주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 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은 제게 그저 교훈의 말씀이 아니라 제 신앙생활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너는 과거에 들었던 말씀들, 해 왔 던 신앙생활들만 붙들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지금 새롭게 살아 있는 하느 님의 말씀을 전하는 나를 만나고 있느냐?” 오늘 하루, 익숙한 신앙의 틀을 넘어서 보려 합니다. 저의 기대와 다르게 안내하시는 주님, 제 기준과 판단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제 마음을 열어 놓으려 합니다. 그 음성이 때로는 저를 불편하게 하고 가기 싫은 길로 인도할 지라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기꺼 이 순종해 보려 합니다. 오늘의 기도: 지금 이 순간 제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2. 1d ago

    8월 25일 화요일 마태 23:22-26

    8월 25일 화요일 마태 23:22-26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 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 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눈먼 인도자들아,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 은 깨끗이 닦아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 이 눈먼 바리 사이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 다.” 오늘의 묵상: 겉과 속을 깨끗이 하여라 오늘 말씀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혼내는 말씀 같습니다. 특히,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중요한 가치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율법의 세 를 바치는 일에는 열심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율법의 본 질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 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여쭈어 봤더니 ‘작은 것에는 집착하 면서 큰 것은 소홀히 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저희들도 그러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큰 것은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집착하는 것은 본질을 잘 모르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겉은 깨끗이 닦아 놓지 만,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비판 으로만 일관하지 않고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으라고 권면의 말씀도 주십니 다. 주님이 저에게 이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도 “겉과 속을 깨끗이 하여라” 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앞에서 저는 어떠한 모습인지 여쭈어 볼 때, 주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겉과 속을 달리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의 어 려운 상황으로 인하여 마음이 분산되는 것은 주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 니다. 속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은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하 게 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주님, 바깥 상황이 저를 지배하지 않도록 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의 기도: 주여, 저희가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게 하소서.

  3. 2d ago

    8월 24일 월요일 루가 22:24-30 / 사도 바르톨로메오

    8월 24일 월요일 루가 22:24-30 / 사도 바르톨로메오 제자들 사이에서 누구를 제일 높게 볼 것이냐는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것 을 보시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백성의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중에서 제일 높은 사 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 식탁에 앉은 사람과 심부름하는 사람 중에 어느 편이 더 높 은 사람이냐? 높은 사람은 식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심부 름하는 사람으로 여기에 와 있다.” “너희는 내가 온갖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 견디어 왔으니 내 아버지 께서 나에게 왕권을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주겠다. 너희는 내 나 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묵상: 당연한 것을 의심하면서 살기 지금에서야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개념이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지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은 왕답게 군림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답게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의 질서였 습니다. 그것이 당시 사람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으십니다.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처럼,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가 치가 지위와 권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 속에서 말입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시 세상의 ‘상식’에 어긋나는 삶 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세상의 ‘상식’과는 다르게 살아가라고,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상의 ‘상식’ 을 거슬러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요? 여전히 지위와 권력으로 사람 의 급을 나누는 이 세상 속에서 낮아질 용기, 먼저 섬길 용기가 우리에게 있 을까요? 세상의 상식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며,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배가 아니라 섬김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세상의 질서와 다른,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따르며 살아가는 용기를 주소서.

  4. 3d ago

    8월 23일 연중 21주일 마태 16:13-20

    8월 23일 연중 21주일 마태 16:13-20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의 아들을 누 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 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 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 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 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오늘의 묵상: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 ‘주님! 저에게 주신 천국 열쇠는 무엇인가요?’ 하고 여쭈었더니 ‘모름’, 즉 알지 못함으로 앉아 있는 물음의 자리가 쉼과 평화를 일구는 것이라는 말씀 해 주십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 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말 씀과 한뜻으로 다가옵니다. 옳고 그름의 시각으로 자신과 남을 판단하고 남 과 나를 비교하며 저울질하고 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하십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를 기분 좋게 축하하면서도, 문득 나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때가 있었습니다. 울적 한 마음에 기도도 게을러지고 감정과 생각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댔는데 ‘너 도 너답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았어’ 하는 위로의 말씀을 떠오르 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연약하고 나약한 나를 용서하시고 힘을 주시듯이, 나 또한 나를 용서하고 품어 주며 사랑으로 감싸 주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깊은 사랑 안에 머무는 은총의 오늘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유롭고 너그 럽게 나 자신을 품어 주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5. 4d ago

    8월 22일 토요일 마태 23:1-12

    8월 22일 토요일 마태 23:1-12 그 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 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 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 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 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 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 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 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 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 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오늘의 묵상: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남들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고, 더 많은 것을 보여 주어야 하며, 내 목소리 를 높여야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자 신을 포장하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더 높아지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요구에 응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높이게 되고 마음에는 교 만과 불안 차오릅니다. 반면에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마음의 그릇을 비워 둔 사람입니다. 나의 연 약함을 알고 겸손히 고개를 숙일 때 비어 있는 그 마음의 그릇에 주님은 영 적인 풍요로움을 채워 주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높이지 않아도 낮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면, 삶의 향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나를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오늘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만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면, 나를 한 뼘만 낮출 수 있다면, 그리고 낮아진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섬길 수 있다면, 주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흔들려 나를 드러내고 높아지려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묵묵히 뿌리를 내리는 나무 처럼, 겸손히 나를 낮추어 주변을 둘러보고 어려운 이들을 섬기는 삶이 되기 를 희망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나를 낮추고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하소서.

  6. 5d ago

    8월 21일 금요일 마태 22:34-40

    8월 21일 금요일 마태 22:34-40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 리사리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 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오늘의 묵상: 사랑의 계명 사랑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마음먹고 열심히 노 력하면 목표를 이루는 삶을 산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입으로 사랑해 야 한다고 말해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면 저절 로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이 느껴지고 보입니다.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을 맴돌며 예수님께 걸어 들어오지 못하고, 보이지 않 는 마음의 거리 너머에서 관망만 하며 지켜보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 다. 그러나 저 역시도 예수님과 동행하고 산다고 노력한다면서도 진정으로 하나 되는 믿음 안에 있는가? 자문해 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 고 뜻을 다하여” 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으나 멈추 어 바라보는 제 모습은 주변의 시선과 규범 안에 긴장하곤 합니다. “네 이웃 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나, 그 마음은 물 위에 떨어진 낙엽처럼 하염없이 흔들립니다.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이기적이고 진실하지 못하며 우유부단한 저와 마주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들이 지키는 굳건한 율법 정신은 제 자신의 약하고 흔들리는 믿음의 부끄러운 모습을 거 울에 비추듯 바라보게 합니다. 그럼에도 너무도 감사한 것은 주님의 말씀 안 에 제가 속하여 머물러 있으며 제 스스로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는 사실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주기적인 묵상으로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 기며 주님 안에 머무는 잠깐씩의 기도는 제 신앙의 발걸음을 바르게 인도하 는 등불입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의 삶이 주변의 이웃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하고 신실한 삶으로 거듭나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는 기도가 제 마음에서 울려 나올 때 비로소 주님과 하나 되 는 기쁨을 누리게 되겠지요. 제 기쁨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7. 6d ago

    8월 20일 목요일 마태 22:1-14

    8월 20일 목요일 마태 22:1-14 예수께서 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어느 임금 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칫상도 차려놓고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하고 일 렀다.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금은 몹시 노하여 군대를 풀어서 그 살 인자들을 잡아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나서 종들에게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지만 전에 초청받은 자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 이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 라.’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 나가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 이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리하여 잔칫집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를 보고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 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쫓 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부르심을 받은 사 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오늘의 묵상: 사랑이라는 예복 임금은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모두 잔치에 불러들입니다. 악한 사람 도 선한 사람도 초대를 받습니다. 그런데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잔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처음에는 한없이 너그러워 보이던 임금이 왜 고작 ‘예 복’ 하나를 두고 그토록 야박하게 구는지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어느 교부의 말처럼, 하늘 나라 혼인잔치의 예복은 다름 아닌 ‘사 랑’입니다. 그러므로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고도 사랑을 입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고린토인들에게 보 낸 첫째 편지 13장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말을 하 고, 깊은 지식을 알고, 큰 믿음을 가졌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 라고 하셨지요. 하늘 나라의 잔치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우리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그에 합당한 예복, 곧 사랑으로 변화 된 삶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그리스도라는 사랑의 예 복을 입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느님, 우리를 하늘 나라의 혼인잔치로 불러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사랑 의 예복을 입혀 주시어, 당신의 잔치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8. Aug 18

    8월 19일 수요일 마태 20:1-16

    8월 19일 수요일 마태 20:1-16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 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돈 한 데나리온 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아홉 시쯤에 다시 나가서 장터에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당신들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그러면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니 그들도 일하러 갔다. 주인은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에 다시 나가보니 할 일 없 이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 기만 하오?’ 하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 시오.’ 하고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 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차례로 품삯 을 치르시오.’ 하고 일렀다. 오후 다섯 시 쯤부터 일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 온씩을 받았다. 그런데 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품삯을 더 많이 받으려니 했 지만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밖에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돈을 받아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막판에 와서 한 시 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그러자 주인은 그 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 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 오?’ 하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오늘의 묵상: 알맞게 주어지는 은총 공평함, 평등함은 정의로운 가치로 여겨집니다. 물론 모두가 평등해야하 고, 같은 기회를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공평함과 평등 함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잣대로 사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공평과 평등은 모든 것을 획일화 시키는 것과는 다릅니다. 다 똑같이 책정 되어야 하는 것, 모두가 완전히 같은 셈에 의해 보상을 받는 것, 누군가가 누 리는 것은 나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현대 사회의 공평과 평등은 어디까지 나 개인이 만든 기준일 뿐입니다. 처음 포도원에 간 이들은 하루를 일하고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합니다. 이 들은 아마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일하는 것을 생각했겠지요. 그렇게 아침 일찍 부터 해 떨어질 때 까지의 자기 노동력이 한 데나리온임에 만족했습니다. 문제는 자기보다 적게 일하고 자신과 똑같이 받아가는 이들의 존재를 알 게 된 이후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력과 늦게 온 이들의 노동력 에 대한 품삯이 공평하게 책정되지 않음에 분개합니다. 그 마음 안에는 ‘한 시간 일한 사람이 나와 같은 몫을 받는다면, 나도 더 받을 수 있는 것이지!’ 라는 자기 기준, 자기만의 공평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주인은 말합니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냐고 요. 여기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주인도 아니고,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사람도 아닙니다. 바로 다른 사람의 몫을 함부 로 넘보고, 그것을 자기 몫과 비교하여 자신이 만족하며 얻기로 했던 몫을 스스로 하찮게 만든 바로 그 일꾼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은총은 받는 이에게 가장 알맞게 주어집니다. 하느님은 기계적 평등이 아 니라 진짜 공평과 평등의 절대 기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바르게 판정하시는 주님, 받은 은총에 감사하며, 알맞게 허락하심에 또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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