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

생활과 묵상

대한성공회 영성센터 '생활과 묵상'과 함께 하는 복음 묵상 프로젝트~ 이제 시작합니다!!!

  1. 1d ago

    6월 24일 수요일 루가 1:57-66, 80/ 세례 요한의 탄생

    6월 24일 수요일 루가 1:57-66, 80/ 세례 요한의 탄생 엘리사벳은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께서 엘리사벳 에게 놀라운 자비를 베푸셨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과 함께 기뻐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여드레가 되던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왔다. 그리고 아 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가리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 니가 나서서 “안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였다. 사람들은 “당신 집안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하며 아기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 가리야는 작은 서판을 달라 하여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이것을 보 고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바로 그 순간에 즈가리야는 입이 열 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모든 이웃 사람들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 일은 유다 산골에 두루 퍼져 이야깃거리가 되었 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손길이 그 아기를 보살피고 계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기는 날로 몸과 마음이 굳세게 자라났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 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오늘의 묵상: 즈가리야의 침묵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을 때, 침묵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말을 쏟아내고 싶어 합니다. 수많은 소리에 둘러싸일수록, 하느님의 음성은 점점 더 희미해집니다. 그렇게 내 생각과 말이 뒤엉키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천사는 아기 가 태어날 것이라고 믿지 않는 즈가리야의 입을 잠시 봉해 놓습니다. 침묵 속 에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뜻일 겁니다. 열 달의 시간 동안 침묵 속에서 즈가리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기가 태어난 뒤, 할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당시 관습에 따라 아이를 아버 지의 이름을 따 ‘즈가리야’라 부르려 합니다. 그러나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은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짓습니다. 천사가 전해 준, 많은 이들을 다시 하느 님께로 불러올 사명을 담은 이름이었죠. 즈가리야가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 고 받아들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즈가리야는 봉해져 있던 입이 열리 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생각과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 많은 말로 문 제를 가리기보다 잠시 침묵하며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뜻 에 귀 기울이며 고요함을 견디는 용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휘몰 아치던 내 생각과 소리는 어느새 가라앉고, 하느님의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 리는 순간이 오겠지요. 그때 즈가리야처럼 입이 열려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 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침묵 속에서 당신의 뜻을 분별하는 용기를 주소서.

    6 min
  2. 2d ago

    6월 23일 화요일 마태 7:6, 12-14

    6월 23일 화요일 마태 7:6, 12-14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 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 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 오늘의 묵상: 나를 사랑하는 연습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고 하시는데 그럼 저에게 남은 누구 입니까? 나답지 못한 내 안의 ‘나’ 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가까운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힘든 상황이 생겼는데 속은 불편하면서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던 이중적 모습이 떠오르며, 상대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 그 사람의 진 실을 말해 주지 못하고 비겁하게 회피했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비겁하 게 지금 이 상황을 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었는데, 그것 이 부모와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감정을 숨기며 살 아온 습성이라는 마음을 주십니다. 나의 어둠을 빛으로 하나 하나 드러내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시 며 나를 사랑해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두려움의 너울을 벗고 당당하게 두 발로 서서 정직함으로 불편한 상황을 직 시하려 합니다. 내가 나다운 것은 따듯한 동정심과 부드러운 마음이라 하시 며 어떤 처지에서든지 마음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한결같은 사랑으로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랑을 기 억하며 하루를 살게 하소서.

    6 min
  3. 2d ago

    6월 22일 월요일 마태 7:1-5

    6월 22일 월요일 마태 7:1-5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 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 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 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오늘의 묵상: 우리가 판단하는 것들 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싶습니다. 내가 무슨 상처를 주는 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 습니다. 나의 일은 너무도 크게 다가오지만 남의 일은 가벼워 보이기도 합니 다. 내 기준으로 남의 이야기를 얼마나 쉽게 할 수 있는지요. 하느님이 보시기에 너나 잘해라 하실 것 같은 일들을 수없이 많이 저지르 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면서, 뒤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크 게 상처로 다가오는지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오늘도 수없이 많은 오류를 저 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선거철입니다. 수없이 많은 후보들이 서로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있다 면서 상대에 대해서 비난하고 헐뜯는 것을 봅니다. 나와 정치색이 같다 하여 일방적으로 그 사람 편에만 서서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가 더 커 보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님이 주시 는 말씀을 수없이 묵상하고 공부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하루가 되기 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제가 남을 잘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min
  4. 4d ago

    6월 21일 연중 12주일 마태 10:24-39

    6월 21일 연중 12주일 마태 10:24-39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 없고 종이 주인보다 더 높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만해지고 종이 주인만해지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집 주인을 가리켜 베 엘제불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하겠느냐?”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 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내가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 서 말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육신은 죽 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 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단돈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런 참새 한 마리도 너희의 아버지께서 허 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도 낱낱이 다 세어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다.” 오늘의 묵상: 스승과 제자의 삶 존경하는 고등학교 은사님이 계십니다. 한 교우님께서 우연히 은사님과 제가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지금도 연을 이어가고 있음에 놀라셨던 기억이 납 니다. 그만큼 제가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그 선생님의 선생님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태어나면서 이미 예수쟁이 집에서 자라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 선 독립운동가이신 아버님과 명문대 총장이며 모 대학 재단에 엄청나게 큰 기부 를 하신 형제에 대해 단 한마디 말씀도 없었습니다. 오래전 정부에서 해외 거주 생존 독립운동가들을 초청했었는데 미국에 사시는 언니분도 초청받아 오시면 서 우연히 주변 분들이 온 집안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90세를 바라보는 연 세에 평생 미혼 소녀로 소리 없는 미소와 인자한 모습이 여전하십니다. 오늘 말씀 중 제자가 스승보다 높을 수 없고 스승만해지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하셨습니다. 물론 제 은사님이 예수님만 못하고 제자인 저 역시 선생님만 못함은 너무도 당연하지요. 그럼에도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시고 평생 교직에 헌신 하며 보여 주신 지금까지의 변함없는 그 모습은 평생 예수님을 조용히 따르고 의 지하셨던 선생님의 삶을 더더욱 고고하고 빛나 보이게 합니다. 이 즈음의 뉴스에 서 듣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에서, 평생 예수님 을 사랑하고 따르는 제자의 삶이 어떤 은총과 선물의 삶인지 다시금 생각해 봅 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도 다 알고 계신 예수님의 살핌과 사랑 안 에 저의 발자국을 바르게 맞추어 봅니다. 긴 그림자를 남기며 앞서 가시는 예수 님과 뒤를 따르는 선생님의 그림자를 그려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사한 생각 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예수님을 부모같이 스승같이 따르며 살아오신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심에 감사드 리며, 저도 삶으로 늘 예수님을 바르게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7 min
  5. 4d ago

    6월 20일 토요일 마태 6:24-34

    6월 20일 토요일 마태 6:24-3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 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 울러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 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 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 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 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 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 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 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 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 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 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오늘의 묵상: 다른 주인을 섬길 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하늘의 새 를 먹이시고 들의 꽃을 입히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 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참으로 모든 생명을 아끼고 돌보시는 분이라면, 왜 이 세상에는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이 있고, 추위에 떠는 사람이 있으며,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들이 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하느님의 돌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돌보심 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섬긴다 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다른 주인, 곧 재물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 는 모두를 아끼시지만, 우리는 모두를 아끼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 을 나누시지만, 우리는 재물을 쌓아 두며 안심하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 리가 재물을 주인으로 섬길 때 이웃은 경쟁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부담이 되며, 세상은 각자도생의 경기장이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길 때 우리는 비로소 내 몫을 넘어 이웃의 생명을 보게 됩니다. 염려하지 말라 는 주님의 말씀은 단지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권면이 아니라, 재물에 붙들린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돌보심에 함께 참여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우리가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며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을 아끼시듯 우리도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돌보게 하시고, 먼저 하느님의 나 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으로 돌아서게 하소서.

    8 min
  6. 5d ago

    6월 19일 금요일 마태 6:19-23

    6월 19일 금요일 마태 6:19-23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어라. 거기서 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며 네 눈 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 마음의 빛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오늘의 묵상: 어떻게 보아야 할까 “몸이 100냥이면 눈이 90냥이다.” 유명한 속담입니다. 눈이 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아주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지 만, 그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각적 정보입니다. 단순히 정보 의 차원을 넘어, 보는 것은 믿음과 신뢰로도 연결됩니다.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봐도 실제로 보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각적 기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본 것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눈을 통해 시각적 정보를 얻는 것이 물리적인 시각 능력 이라면, 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심리적인 시각 능력이라고 할 수 있 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은 것을 봐도 전혀 다른 이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곳에 있는 어둠을 보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빛나는 희망을 봅니다. 들어온 시각적 정보가 같아도 이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그가 본 것은 달라집니다. 물론 본 것에 따라 이어지는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무엇을 보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 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희망을, 사랑을, 기쁨을 보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 눈을 밝히시어 우리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게 하시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 을 보게 하소서.

    4 min
  7. Jun 17

    6월 18일 목요일 마태 6:7-15

    6월 18일 목요일 마태 6:7-1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 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 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 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 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 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 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우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 최근 교회의 재정을 목회자 마음대로 사용한 일, 외도를 오랫동안 숨긴 일, 자신의 권력으로 성도를 가스라이팅한 일 등의 소식 때문에 꽤 낙심했습 니다. ‘오래 기도하고 목회한 분들이 이 정도면 나라고 별수 있나.’라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읽은 ‘주의 기도’는 잘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반복하여 읽던 중,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앞부분인 ‘하 느님께 관계된 간구’와 뒷부분인 ‘우리에게 관계된 간구’가 연결되는 것 같았 습니다. 이 기도를 매개로 하늘과 땅을, 하느님의 일과 우리의 일을 연결하시 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왜 기도의 앞부분을 하느님의 이 름과 뜻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하느님께 초점을 맞춘 후 우리의 상황과 고민을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시는 것 같 았습니다. 우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하 는지, 우리가 어디에서 시작하며, 궁극적으로는 기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 지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일차적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복음을 항구적인 실 체로 인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 우리의 믿음을 구속의 결과인 인간 의 선함에 두면 시험이 올 때 실패하게 됩니다. … 바울로는 자기 성품에 과 도한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바울로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개의치 않고 하느님이 자신을 택정하신 한 가지 목적, 즉 하느님의 복음 을 선포하는 일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매일 묵상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의 거룩함이 아니라 당신의 복음이, 저의 결심이 아니라 당신의 나라가 흔들리지 않 는 자리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6 min
  8. Jun 16

    6월 17일 수요일 마태 6:1-6, 16-18

    6월 17일 수요일 마태 6:1-6, 16-18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 다.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 을 상을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 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 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하고 다닌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단식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 라라. 그리하여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진실한 나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 가야 하는지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나에게 ‘보여 주기 위한 삶’ 에서 ‘진실한 나로서의 삶’에 집중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무엇이든 잘 해내는 사람’이 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들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 쓰며 살아온 나를 마 주하게 됩니다. 때로는 주님 앞에 내어 놓는 나의 기도가 위선과 겉치레적인 형식에 얽매여서 진심을 올려 드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어 기도 후에 오 히려 더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는 말씀으로 하느님과 나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세상의 소음, 타인의 판단, 사회적 가면을 모두 벗어 던진 ‘진실한 나’를 만나라 하십니다. 나의 내면의 상처와 결핍을 오히려 타인에게 위선과 자랑으로 치장하여 전시하거나 보상 받으려 하기보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게 쏟아 놓는 진심의 기도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 닫힌 문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은 숨은 일도 보시는 분이시니, 제 고통과 애씀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눈 물을 알고 계시는 주님을 통한 위로와 치유가 제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길 원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칭찬은 달콤하지만 금방 사라집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상은 내면의 평화 와 영적인 성숙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 오늘도 제 삶의 방향이 저의 내면을 바라보며 주님을 마주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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