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

생활과 묵상

대한성공회 영성센터 '생활과 묵상'과 함께 하는 복음 묵상 프로젝트~ 이제 시작합니다!!!

  1. 1H AGO

    3월 11일 수요일 마태 5:17-19

    3월 11일 수요일 마태 5:17-19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미국 농구 NBA 선수 중에 샤킬오닐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빈민가에서 자란 오닐은 너무 가난했고 비정상적으로 큰 몸 때문에 늘 헤진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때 그를 유일하게 감싸안아 준 사람은 낡은 양복점 사장이었는데요. 사장은 소년의 졸업식 날, 그가 돈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소년에게 딱 맞는 정장을 만들어 주며 말했습니다. “돈은 됐다. 너는 훗날 더 큰 사람이 될 거다.” 20년이 흘러 NBA의 위대한 선수가 된 오닐에게 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때 그 사장님이 월세를 내지 못해서 폐지를 줍고 있다는 소식이었지요. 오닐은 단숨에 달려가 양복점의 모든 옷은 물론, 건물까지도 사 주겠다고 말하지요. 그가 받은 정장 값의 수천 배가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장님은 그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이 말한 ‘큰 사람’의 의미 는 다른 것이었지요. 농구 스타로 성공했지만 ‘큰’ 사람이 되지 못한 오닐의 그런 태도가 오히려 사장님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하느님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곤 합니다.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의 골자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느님의 사랑이 더 작고 약한 곳을 향해 흐르듯, 우리의 삶도 그 사랑과 함께 흐르기를 기도합니다. 낮지만 거룩한 곳으로.... 오늘의 기도: 세상에서 말하는 큰 사람이 되기보다 당신께 기억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6 min
  2. 1D AGO

    3월 10일 화요일 마태 18:21-35

    3월 10일 화요일 마태 18:21-35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 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 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오늘의 말씀: 자비를 기억하는 사람 비유의 말씀 속 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갚을 수 없었고,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자리에서 그는 오직 자비로 풀려났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자비가 무엇인지, 은총이 무엇인지 그 역시 몸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비는 오래 기억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 앞에서, ‘받았던 자비’가 아니라 ‘당했던 불편함’을 기준으로 행동합니다. 그 순간, 관계는 무너집니다. 이 비유 안에서 저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비를 기억하지 않는 순간, 저 역시 너무도 쉽게 심판자가 됩니다. 제가 얼마나 큰 용서를 받으며 살아 왔는지는 잊은 채, 누군가 제게 진 작은 빚은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 그때 저는 은총 안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계산과 판단 안에 머무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께서 이 비유에서 가장 아프게 지적하시는 것은 그 종의 냉혹함이 아니라 망각임을 깨닫습니다.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 감해 주지 않았느냐?” 자비는 조건이 아니라 기억 위에서 살아야 할 태도입니다. 제가 누구였는지, 어디에서 건져 올림을 받았는지, 어떤 은총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지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신앙의 출발임을 생각합니다. 자비는 약함이 아닙니다. 자비는 상처를 알면서도 끊어 내는 용기이며, 관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비는 하느님을 닮아 가는 방식입니다. 저는 선택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채 옳음을 주장하며 살아갈 것인 지, 아니면 받은 자비를 기억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지. 주님은 제게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그렇게했듯, 너도 그렇게 살 수 없겠니?”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받은 자비를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자비로 사람을 대하게 하소서.

    8 min
  3. 2D AGO

    3월 9일 월요일 루가 4:24-30

    3월 9일 월요일 루가 4:24-30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잘 들어라. 엘리야 시대에 삼년 반 동안이나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고 온 나라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보내시지 않고 다만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에 사는 어떤 과부에게만 보내주셨다.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나병환자가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단 한 사람도 고쳐주시지 않고 시리아 사람인 나아만만을 깨끗하게 고쳐주셨 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오늘의 묵상: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할 때, 처음 느낀 감정은 ‘예수님은 왜 굳이 고향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씀을 하셨을까?’였습니다. 사실, 목수 요셉의 아들을 어렸을 때부터 본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님과 그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고, 광야에서 금식하고, 공생활을 시작하여 타지에서 명성을 얻고 있던 목수의 아들이 자기 고향 회당에 와서 설교를 하자, 평소와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고향만을 위한 특별한 무언가를 행하지 않을까 기대했을 것 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인간적인 기대에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분노했고,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복음 장면을 관상하고 그 시선을 오늘 우리에게로 돌립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각종 연줄을 등에 업고 특권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교회 안에서도 관계의 끈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관계나 신분에 따라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응답하고 따르는 가운데 받는 선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의 기도: 구원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앙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안에서 늘 새로워지는 신앙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7 min
  4. 3D AGO

    3월 8일 사순 3주일 요한 4:5-42

    3월 8일 사순 3주일 요한 4:5-42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의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셨다. 이 동네는 옛날에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인데 6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가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웠다. 7 마침 그 때에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내에 들어가고 없었다. 9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10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시자 11 그 여자는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그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12 이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13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 15 이 말씀을 듣고 그 여자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16 ¶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17 그 여자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없는 말이다. 18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19 그랬더니 그 여자는 “과연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그런데 우리 조상은 저 산에서 하느님께 예배 드렸는데 선생님네들은 예배 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22 너희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 드리는 분을 잘 알고 있다.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24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25 ¶ 그 여자가 “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겠지요.” 하자 26 예수께서는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 그 때에 예수의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무엇을 청하셨는지 또 그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28 ¶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돌아가 사람들에게 29 “나의 지난 일을 다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가서 봅시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렸다. 30 그 말을 듣고 그들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 모여들었다. 31 ¶ 그러는 동안에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무엇을 좀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예수께서는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33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누가 선생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을까?” 하고 수군거렸다. 34 그러자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 35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온다.’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내 말을 잘 들어라.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이미 다 익어서 추수하게 되었다. 36 거두는 사람은 이미 삯을 받고 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알곡을 모아들인다. 그래서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 37 과연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는 속담이 맞다. 38 남들이 수고하여 지은 곡식을 거두라고 나는 너희를 보냈다. 수고는 다른 사람들이 하였지만 그 수고의 열매는 너희가 거두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9 ¶ 그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맞히셨다고 한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40 예수께서는 그들이 찾아와 자기들과 함께 묵으시기를 간청하므로 거기에서 이틀 동안 묵으셨는데 41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리고 그 여자에게 “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하고 말하였다. 오늘의 묵상: 예배의 은총 안에 살아가기 원합니다 사순절을 맞아 매일 감사성찬례를 드립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감사성찬례를 드리다가 매일 감사성찬례를 드리려니 삶이 분주해지고, 새로운 루틴을 만들기까지 무언가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려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예배를 대하는 제 태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지려는 갈망과 다르게 점점 삶은 분주해지고, 평소에 잘해 오던 신앙의 생활마저 흐트러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품고 침묵 가운데 머무를 때, 주님께서 저를 만나 주십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던 신앙에서 조금 더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변화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여전히 세상적인 마음, 더 많이 가지고 채우려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길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고 예수로 살아나는 부활의 삶도 잘 실현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참된 모습으로 예배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배드릴 때 하느님의 은총이 저를 인도해 주시고 변화시켜 주실 줄을 믿습니다.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을 인내로 채우며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저를 도와주셔서 영적으로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18 min
  5. 4D AGO

    3월 7일 토요일 루가 15:1-3, 11하-32

    3월 7일 토요일 루가 15:1-3, 11하-32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 11 ¶ …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14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15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18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20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25 ¶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26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27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29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30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 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31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32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오늘의 묵상: 문 밖의 탕자 오늘의 복음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을 묵상할 때마다 작은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에 집중했는데, 오늘은 큰아들의 모습에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집에 남아 종처럼 일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는 모범적인 아들, 그런데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날리고 돌아온 동생을 위해 송아지까지 잡는 아버지를 보자, 원망과 분노에 차서 달래도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네요. 헌신의 보상에 대한 갈망은 넘치고 동생을 향한 사랑과 용서는 부족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큰 아들도, 효자로 불리기에는 자격이 부족한 듯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중 몇이나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이야기 속 두 아들 중 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뛰쳐나가 죄를 짓거나, 아버지 집에 남아 열심히 일하지만 관용과 사랑이 부족한 모습으로요. 자격 미달인 아들 둘 다를 아무런 조건 없이 따뜻이 안아 반기고 당신의 식탁으로 초대하는 아버지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작은아들은 회개하고 돌아와 다행인데, 큰아들은 어떻게 할지 궁금하네요.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가 동생을 껴안을지, 아니면 문 밖에서 버티며 죄인을 정죄하는 바리사이파로 남을지는 큰아들의 모습을 한 우리네 선택의 몫일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선한 몫을 선택 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13 min
  6. 5D AGO

    3월 6일 금요일 마태 21:33-43, 45-46

    3월 6일 금요일 마태 21:33-43, 45-46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포도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죽였다. 지주는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다. 소작인들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 그렇게 했으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 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강하게 움켜쥘수록 잃는 것 오늘 포도원 비유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듯합니다.(나훔 2:3).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가나안을 준비해 두시고, 그 땅에 뿌리 내리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배신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마치 도조를 주인에게 바치지 않았던 소작인들처럼 말이지요.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시며 수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외아들을 그들에게 보내셨음에도 그들은 주님을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사제와 지도자들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버려진 돌들에 주목하십니다. 당시 인정받지 못하던 세리와 여성, 죄인들이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는 새로운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무엇인가를 강하게 움켜쥔 두 손으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은총의 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손을 붙잡기 위해서는 우리가 움켜쥔 것들을 놓아야 합니다. 소작인들도, 대사제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이 빼앗기지 않기 위해 움켜쥐고 있던 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고 심판받았습니다. 대신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죄인들이 그들을 향해 뻗으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손을 잡지 못하도록 우리의 두 손을 가득 채운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 늘 우리에게 먼저 은총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움켜쥐었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소서.

    9 min
  7. 6D AGO

    3월 5일 목요일 루가 16:19-31

    3월 5일 목요일 루가 16:19-31 19 ¶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20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 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21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 22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23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24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25 아브라함은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26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27 그래도 부자는 또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28 저에게 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29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부자는 다시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31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오늘의 묵상: 이미 가진 것 아침마다 무엇을 입을지 고민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마음에 들어 산 옷들이 많지만, 막상 입으려 하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옷장과 서랍장에도 들어가지 못한 옷들을 뒤로한 채, 다시 마음에 드는 옷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을 뒤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제게 오늘 말씀이 묻습니다. “너는 부자인가, 라자로인가?” 흔히 말하는 ‘부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라자로와 비교하면 저는 너무도 잘 먹고 잘 입으며 따뜻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에 가득한 물건들이 눈에 더 또렷하게 들어옵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지, 정말 필요한 것인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아닌지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옷장 속 넘쳐 나는 옷들을 바라보며, 이미 충분히 채워져 있으면서도 더 채우려 했던 제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을 찾느라, 정작 바라보아야 할 곳에는 마음을 쓰지 못하고 못 본 척 지나온 것은 아니었는지 떠올려 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이미 제 삶에 주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헤아려 봅니다.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그리고 제 삶의 문 앞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기를 조용히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미 제 삶에 주어진 은총에 감사하며, 제 곁에 있는 사람들과 당신의 사랑을 먼저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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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R 3

    3월 4일 수요일 마태 20:17-28

    3월 4일 수요일 마태 20:17-28 17 ¶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에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18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다. 19 그리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20 ¶ 그 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왔는데 그 어머니는 무엇인가를 청할 양으로 엎드려 절을 하였다. 21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은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22 그래서 예수께서 그 형제들에게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24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다. 25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하셨다. 오늘의 묵상: 주님의 영광스러운 자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신이 당할 수난을 알려주시는 심각한 분위기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들이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자리하기를 청합니다. 이를 듣고 있던 요한과 야고보를 제외한 다른 열 명의 제자들이 화를 낸 것으로 보아, 제자들과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모두 하느님 나라를 세상의 권력과 같은 것으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이는 주님 나라에서 ‘으뜸’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는 게쎄마니 동산에서 ‘십자가’라는 피하고 싶은 ‘잔’을 제자들이 마실 수 있을지 물어보십니다. 철부지 같은 제자들은 그 잔을 마실 때 ‘으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갑니다. 주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현장은 참혹한 십자가였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숨은 역설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권력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으뜸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오히려 종처럼 섬기는 낮은 위치에 자리 잡아야 함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몸소 그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두 명의 강도들 사이에서 그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생명을 던져 내어 주면서까지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하느님 나라에서 ‘으뜸’이 되는 방법은 겸손, 사랑, 희생, 섬김의 실천이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당신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겸손의 본을 보여 주신 주님을 닮아 가게 하소서. 제 마음은 당신의 사랑을 품고, 제 손길은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손이 되게 하시고, 제가 걸어가는 그 길은 겸손의 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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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영성센터 '생활과 묵상'과 함께 하는 복음 묵상 프로젝트~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