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사랑의교회 매일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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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사랑의교회에서 선포되는 매일성경-매일묵상-매일나눔 생명의 말씀들입니다. 웃는사람 라종렬 목사가 매일성경을 묵상하는 이들의 묵상을 돕기 위해 주해 또는 강해한 말씀 나눔입니다.

  1. 4D AGO

    요한복음 5:31-47 _ 증언과 믿음 _ 2026년2월15일 광양사랑의교회 주일낮에배 설교 _ 평화의길벗 라종렬 목사

    20260215_요한복음 5장 31-47절_주일낮예배 ● 설교제목 : 증언과 믿음 ● 설 교 자 :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광양사랑의교회) ● 성경본문 : 요한복음 5:31-47 ● 세례 요한의 증언 31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증언한다면, 내 증언은 참되지 못하다. 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 주시는 분은 따로 있다.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나는 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에 그는 이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사람의 증언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너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면서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잠시 동안 그의 빛 속에서 즐거워하려 하였다. ●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성경의 증언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성하라고 주신 일들, 곧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여 준다. 37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 주셨다. 너희는 그 음성을 들은 일도 없고, 그 모습을 본 일도 없다. 38 또 그 말씀이 너희 속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그것은 너희가, 그분이 보내신 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 ● 믿지 못하는 이유 40 그런데 너희는 생명을 얻으러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④너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④또는 ‘너희 안에’ 또는 ‘너희 가운데’ 43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는 나를 영접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할 것이다. 44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구하지 않으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 모세의 정죄와 증언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모세가 나를 두고 썼기 때문이다. 47 그러나 너희가 모세의 글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을 믿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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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JAN 24

    질문하는 인간, 응답하시는 하나님 _ 창세기 18:16-33 _ 광양사랑의교회 _ 평화의길벗_라종렬

    20260125_창세기 18장 16-33절_주일낮예배 ● 설교제목 : 질문하는 인간, 응답하시는 하나님 ● 설 교 자 :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광양사랑의교회) ● 성경본문 : 창세기 18:16-33 ● 아브라함을 향한 계획 16 그 사람들이 떠나려고 일어서서,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데로 갔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바래다 주려고, 함께 얼마쯤 걸었다. 17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18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9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 소돔 방문 목적 20 주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 정의를 호소하는 아브라함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떠나서 소돔으로 갔으나, ①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 ①마소라 본문을 따름. 고대 히브리의 서기관 전통에서는 ‘주님께서 아브라함 앞에 그대로 서 계셨다’ 23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 아브라함의 중재기도 24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의인이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다시 한 번 주님께 아뢰었다. “거기에서 마흔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0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서른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거기에서 서른 명만 찾아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1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감히 주님께 아룁니다. 거기에서 스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스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2 아브라함이 또 아뢰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열 명만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33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신 뒤에 곧 가시고, 아브라함도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갔다.

    17 min
  3. JAN 18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 _ 창세기 12:10-20 _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 라종렬 목사

    20260118_창세기 12장 10-20절_주일낮예배 ● 설교제목 :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 ● 설 교 자 :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광양사랑의교회) ● 성경본문 : 창세기 12:10-20 ● 위기를 자초하는 아브라함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 기근이 너무 심해서, 아브람은 이집트에서 얼마 동안 몸붙여서 살려고, 그리로 내려갔다. 11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는 아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나는 당신이 얼마나 아리따운 여인인가를 잘 알고 있소. 12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서, 당신이 나의 아내라는 것을 알면,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릴 것이오. 13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여야,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 14 아브람이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아브람의 아내를 보고, 매우 아리따운 여인임을 알았다. 15 바로의 대신들이 그 여인을 보고 나서, 바로 앞에서 그 여인을 칭찬하였다. 드디어 그 여인은 바로의 궁전으로 불려 들어갔다. 16 바로가 그 여인을 보고서, 아브람을 잘 대접하여 주었다. 아브람은 양 떼와 소 떼와 암나귀와 수나귀와 남녀 종과 낙타까지 얻었다. ● 위기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17 그러나 주님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으므로,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꾸짖었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 저 여인이 너의 아내라고,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19 어찌하여 너는 저 여인이 네 누이라고 해서 나를 속이고, 내가 저 여인을 아내로 데려오게 하였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다. 데리고 나가거라.” 20 그런 다음에 바로는 그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아브람이 모든 재산을 거두어서 그 아내와 함께 나라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15 min
  4. JAN 12

    무지개 언약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_ 창세기 9:1-17_평화의길벗_20260112

    2026년1월12일_창세기 9:1-17_여수애양병원직원예배 제목: 하나님의 약속 본문: 창세기 9:1-17 설교자 : 평화의길벗 라종렬 목사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들어가는 말: 폭풍이 지나간 자리 사랑하는 애양병원 가족 여러분,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함께 견디고 계신 환우와 가족 여러분. 주님의 평강이 이 시간 우리 마음을 감싸주시기를 빕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 뒤, 하늘이 개었을 때 우리는 무지개를 봅니다. 오늘 본문의 노아 역시 엄청난 홍수 심판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폭풍을 겪은 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들은 마냥 기쁘기만 했을까요? 아마 두려웠을 것입니다. “또다시 비가 오면 어떡하지? 또다시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을까?” 그 불안에 떨고 있는 인류에게 하나님은 오늘 놀라운 약속을 보여주십니다. 1. 무지개, 심판의 활을 내려놓으신 하나님 우리는 흔히 무지개를 보며 낭만적인 약속이나 희망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경의 언어로 깊이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훨씬 더 비장하고 아픈 하나님의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무지개를 뜻하는 단어 ‘케셰트(Qeshet)’는 본래 전쟁에서 쓰는 살상 무기인 ‘활’을 의미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활은 적을 정복하고 심판하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홍수 직후, 이 심판의 활을 구름 속에 걸어두셨습니다. 활이 하늘에 걸려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활시위를 당길 수 없는 상태, 즉 ‘전적인 무장해제’를 의미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활의 방향입니다. 무지개는 활의 둥근 등이 땅을 향하고, 활시위가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이것은 만약 화살이 날아간다면, 그 화살은 땅에 있는 우리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자신을 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지개 언약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심판의 무기를 거두시고 스스로 무장해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이 여전히 불완전하고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너희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휴전 선언이 아닙니다. “너희가 겪어야 할 아픔과 심판을 이제는 내가 감당하겠다”는 하나님의 뼈아픈 자기희생의 결단입니다. 2. 하나님의 형상: 정복에서 공존으로 이 은혜의 언약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꾸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왕 같은 통치권이었습니다. 하지만 폭력으로 세상이 망가진 후인 오늘 본문 창세기 9장에서는 명령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창 9:6)”입니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형상’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였다면, 창세기 9장의 ‘하나님의 형상’은 ‘보호받아야 할 존엄한 생명’이라는 뜻으로 재정의됩니다. 이제 우리 인간은 서로 정복하거나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서로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깨지기 쉬운 귀한 존재이기에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이웃’이 된 것입니다. 3. 우리를 향한 위로 사랑하는 애양병원 가족 여러분, 우리는 매일 병원이라는 현장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마주합니다. 질병이라는 폭풍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 과정에 지쳐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심판의 활을 겨누며 우리의 잘못을 감시하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활을 하늘 높이 걸어두시고, “내가 너희의 고통을 함께 지겠다”, “내가 너희를 살리겠다”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심판자가 아닌, 생명을 보존하고 지키시는 보호자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환우들의 아픈 몸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손길이 바로 창세기 9장의 삶입니다.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하게 여기며 생명을 지켜내는 여러분의 수고가 곧 무지개 언약의 증거입니다. 맺는 말: 구름 속에 있는 언약을 보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여전히 먹구름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고통의 비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름이 일어날 때, 무지개도 함께 뜹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두었나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6).” 무지개는 ‘성공의 약속’이 아니라 ‘아픔의 공유’입니다. “너희가 또다시 넘어져도, 나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겠다. 내 가슴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너희와 맺은 언약을 지키겠다.” 이것이 무지개에 담긴 하나님의 속마음입니다. 그러니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아픈 사랑 때문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낙심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먼저 그 무지개를 보시고 우리와의 약속을 기억하십니다. 심판 대신 은혜를, 죽음 대신 생명을, 두려움 대신 평강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하루도 애양병원의 모든 의료진과 환우 가족 여러분을 덮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심판의 홍수 속에서도 생명의 불씨를 보전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형상임을 망각하고 타인에게 언어와 행위의 폭력을 행사하며, 주님의 창조 세계를 탐욕의 도구로 삼았던 완악함을 회개합니다. 심판의 활을 구름 위에 걸어두시고 ‘다시는 멸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신 주님의 그 아픈 사랑과 자기 제한의 신비를 오늘 우리의 가슴에 새깁니다. 우리의 일터와 가정이 서로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거룩한 성소가 되게 하시고, 갈등과 혐오가 가득한 이 땅에 평화와 보존의 무지개를 띄우는 화해의 사절단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덮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만물을 새롭게 하실 주님의 약속 안에서 소망 중에 걷게 하옵소서. 은혜의 하나님, 심판의 활을 거두시고 우리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이미 활을 내려놓고 두 팔 벌려 우리를 안아주시는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이곳 애양병원에 머무는 모든 이들이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히 여기며, 주님이 주시는 치유와 소망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5 min
  5. JAN 11

    하나님의 기억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_ 창세기 8장_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 라종렬 목사_2026년1월11일 주일 설교

    20260111_창세기 8장 1-22절_주일낮예배 ● 설교제목 : 하나님의 기억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 설 교 자 :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광양사랑의교회) ● 성경본문 : 창세기 8:1-22 ● 땅이 말라 노아 일행이 방주에서 나오다 1.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 또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던 들짐승과 집짐승을 모두 기억하셨다. 하나님은 땅 위로 바람이 불게 하셔서 물이 잦아들게 하셨다. 2.깊은 샘들과 하늘의 창문들이 닫혔고,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그쳤다. 3.물이 땅 위에서 빠지고 점점 더 빠졌다. 150일이 지나자 물이 줄어들었다. 4.방주는 일곱째 달 열일곱째 날에 아라랏산에 걸렸다. 5.물이 열째 달까지 계속 줄어들어, 열째 달 첫째 날에는 산봉우리들이 드러났다. 6.40일이 지났다.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문을 열었다. 7.그러고는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땅 위에서 물이 바싹 마를 때까지 들락날락했다. 8.또 노아는 비둘기를 내보냈다. 물이 땅 표면에서 줄어들었는지 알아볼 셈이었다. 9.비둘기는 발붙이고 쉴 곳을 찾지 못해 방주에 있는 노아에게로 돌아왔다. 물이 온 땅 표면에 아직 있었기 때문이다. 노아가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받아서 방주에 있는 자기에게로 오게 했다. 10.7일을 더 기다렸다가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비둘기는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놀랍게도 비둘기는 싱싱한 올리브 잎새를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줄어든 것을 알았다. 12.7일을 더 기다렸다가 비둘기를 내보냈다. 비둘기가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3.노아가 601세이던 해의 첫째 달 첫째 날에 이르러 땅 위에 물이 말랐다. 노아는 그 방주의 덮개를 걷고 내다보았다. 아, 땅거죽이 말라 있는 것이 아닌가! 14.둘째 달 스물일곱째 날에는 땅이 바싹 말랐다. 15.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16.“네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거라. 17.모든 생명체 가운데서 너와 함께한 생물, 곧 새와 집짐승과 땅 위에 기어다니는 온갖 짐승을 다 데리고 나오거라. 그것들이 땅에서 떼를 이루어 살고 땅 위에서 번성하고 불어날 것이다.” 18.노아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다. 19.온갖 짐승과 온갖 기는 짐승과 온갖 새와 땅 위에 움직이는 온갖 것도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다. ● 여호와께서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기로 하시다 20.노아는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만들었다. 온갖 깨끗한 집짐승과 온갖 깨끗한 새 가운데서 몇 마리를 가져다가 다태우는제물(번제물)로 제단에서 바쳤다. 21.여호와께서 그 구수한 냄새를 맡으셨다. 여호와께서는 속으로 말씀하셨다.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마음에 품게 되는 뜻이 어릴 때부터 악하니까. 다시는 내가 했던 것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22.땅이 있는 동안에는 씨뿌리기와 거두어들이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5 min
  6. JAN 9

    용서받은 나, 사랑받는 우리 _ 이사야 55:7, 에베소서 4:31-32 _2026 신년교사세미나_대한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통합)

    [2026 신년교사강습회 주제강의] 주제 : 용서받은 나, 사랑하는 우리 성경 : 이사야 55:7, 에베소서 4:31-32 일시 : 2026년1월 9일 순천동부교회회 강사 : 평화의길벗_라종렬목사(순천노회 교육훈련부 상임총무, 광양사랑의교회) [도입] 회색 점표가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선생님 여러분, 반갑습니다. 2026년 새해를 맞아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소명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맥스 루카도의 『너는 특별하단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나무 사람 '웸믹'들은 서로에게 늘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재주가 뛰어나거나 칠이 잘된 웸믹에게는 번쩍이는 '금별'을, 실수를 하거나 칠이 벗겨진 웸믹에게는 칙칙한 '회색 점표'를 붙입니다. 주인공 펀치넬로는 늘 회색 점표만 받는 친구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이 '웸믹들의 마을' 같지 않습니까? 숨 가쁜 경쟁과 차가운 개인주의로 가득 찬 ‘거친 광야’와 같습니다. 아이들은 성적과 외모, 가정 환경이라는 보이지 않는 줄 세우기 속에서 서로에게 '금별'과 '회색 점표'를 붙입니다.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작은 상처에도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깊은 ‘단절’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온몸에 회색 점표를 붙인 우리 아이들의 영혼은 어디에서 쉴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영적 가뭄의 위기 앞에 제110회기 총회는 “용서, 사랑의 시작입니다”라는 준엄하고도 자비로운 요청을 우리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교육부의 주제는 “용서받은 나, 사랑하는 우리’입니다. 용서는 단순히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심리적 기술이나 매끄러운 처세술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죽어가는 영혼을 다시 숨 쉬게 하는 ‘창조적 사랑’의 극치이며, 죄로 인해 얼어붙은 관계를 녹여내는 하나님의 ‘가장 뜨거운 심장 박동’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붙들 두 말씀은 이 용서의 여정을 위한 완벽한 지도가 되어 줍니다. 이사야 55장 7절은 용서의 수직적 시작을 선포합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 말씀은 용서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복의 귀환’에서 시작됨을 가르칩니다. 모든 치유는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그 한 걸음에서 출발합니다. 에베소서 4장 31-32절은 그 용서의 수평적 확장을 명령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가 서로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용서를 받은 ‘수혜자’이기 때문입니다. 교사 여러분, 우리는 지식 기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먼저 베푸신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아이들의 깨어진 마음 조각을 주님의 손길로 이어 붙이는 ‘화해의 사신’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먼저 ‘용서받은 존재’라는 감격을 회복하고, 성경이 보여주는 용서의 풍경 3가지 속으로 함께 깊이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화폭에 담긴 하나님의 심장, 그 압도적인 은혜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장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성경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세 폭의 그림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첫 번째 풍경: 탕자를 향해 달려가는 아버지 (누가복음 15장) 렘브란트 탕자의 귀환 최병성 목사님의 『복음에 안기다』는 복음을 "세상이 이해하기 힘든 경이로운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가 바로 그 경이로움의 절정입니다.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방황하던 아들이 아니라, ‘언덕 위에서 기다리던 아버지’입니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아들은 돌을 맞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죄'가 아니라 아들의 '없음'을 더 아파했습니다. 돼지 우리 냄새가 밴 채 돌아온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체면을 모두 내던지고 맨발로 달려가 목을 어긋맞겨 안았습니다. 제일 좋은 옷은 과거의 수치를 덮는 은혜의 덮개였습니다. 손의 가락지는 깨어진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는 ‘전적인 수용’의 증표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셔서 당신의 품에 우리를 안으시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시는 주님의 품에 안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빕니다. 두 번째 풍경: 갈릴리 해변의 아침 식사 (요한복음 21장) 지거쾨더 부활 소망의 아침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의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의 현장인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오셔서 조반을 차려놓고 그를 기다리셨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당신은 바다에 많은 길을 내시어도에서 주님의 사랑을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시는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베드로에게는 다시 시작할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숯불 앞에서의 아픈 기억을 따뜻한 아침 식사의 ‘치유의 기억’으로 덮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세 번의 질문은 추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사랑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어, 그를 사명자로 다시 세우시는 ‘부드러운 재창조’의 과정이었습니다. 주님의 치유와 배부르게 하심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빕니다. 세 번째 풍경: 십자가의 기도 (누가복음 23장)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멜리데 성당 용서의 십자고상, 후렐로스의 글스도도 인간의 가장 추악한 증오가 쏟아지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침묵 대신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기도는 진정한 용서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용서는 가해자의 자격이나 반성에 따른 보상이 아닙니다. 용서는 자격 없는 자를 향해 먼저 생명을 내어주는 ‘고귀한 희생’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거대한 용서의 바다에 잠긴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타인을 정죄할 권리를 포기하게 하고, 대신 사랑할 용기를 주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본론 2] 용서로 정의된 우리의 새 이름 이 놀라운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가(Doing)’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Being)’를 새롭게 정의하는 존재론적 사건입니다. 우리의 권위와 사역의 근원은 바로 이 새로운 이름에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Homo Dimissus,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자비라는 산소로만 숨 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교사의 진정한 권위는 지식이나 기술이 아닙니다. “나 또한 가망 없는 죄인이었으나 오직 은혜로 용서받았다”는 처절하고도 감격스러운 겸손의 고백, 바로 그것이 우리를 교사 되게 하는 힘입니다. 저와 선생님들의 강단과 교실에서의 모든 권위는 바로 이 고백 위에 서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빛을 발합니다. 이 은혜는 우리를 두 번째 이름으로 이끌어갑니다. 바로 Homo Dimittens,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은 그 사랑을 자신에게만 가둘 수 없습니다. 마치 댐의 물이 넘쳐흐르듯, 우리가 받은 용서가 너무나 크기에 그것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미움을 사랑으로 정화하는 ‘영적 필터’이며, 하나님과 세상을 잇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용서의 사명은 우리에게 세 번째 이름을 부여합니다. 바로 Homo Exspectans,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곱 번씩 일흔 번’의 용서는 숫자의 계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의미합니다. 아이들의 즉각적인 변화가 없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용서는 내 시간표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 아이의 영적 성숙을 묵묵히 지켜주는 ‘거룩한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용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본론 3] 교실, '회복'의 숲을 가꾸는 법 이처럼 우리가 ‘용서받고, 용서하며,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면, 우리의 교실은 더 이상 죄를 심판하는 법정, 정죄와 배제와 혐오의 법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교실은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숲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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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2/31/2025

    말씀을 향하다_창세기 1:1-13_광양사랑의교회 송구영신예배_평화의길벗_라종렬목사

    20251231_창세기 1장 1-13절_송구영신예배 ● 설교제목 : 말씀을 향하다 ● 설 교 자 :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광양사랑의교회) ● 성경본문 : 창세기 1:1-13 ● 하나님이 온 누리를 지으시다 1. 처음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거칠고 비어 있었다. 어둠이 깊은 물 위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3.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빛이 생기기를!” 그러자 빛이 생겼다. 4. 하나님이 그 빛을 보셨다.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첫날이었다. 6.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둥근지붕(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나누어지기를!” 7. 하나님이 둥근지붕(궁창)을 만들어 둥근지붕(궁창) 아래의 물과 둥근지붕(궁창) 위의 물을 나누셨다.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8. 하나님이 둥근지붕(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둘째 날이었다. 9.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늘 아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마른 데가 드러나기를!”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10. 하나님이 마른 데를 땅이라 부르시고, 물 모인 데를 바다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이 보셨다. 좋았다. 11.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땅이 푸른 것을 싹 트게 하기를! 씨 있는 푸성귀, 열매 맺고 씨 있는 갖가지 과실나무를 땅이 싹 트게 하기를!”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12. 땅이 푸른 것을 나오게 했다. 씨 있는 갖가지 푸성귀와 열매 맺고 씨 있는 갖가지 나무를 나오게 했다. 하나님이 보셨다.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셋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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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사랑의교회에서 선포되는 매일성경-매일묵상-매일나눔 생명의 말씀들입니다. 웃는사람 라종렬 목사가 매일성경을 묵상하는 이들의 묵상을 돕기 위해 주해 또는 강해한 말씀 나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