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김형래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

  1. 22h ago

    [아침마다 지혜 #476] 행복만 좇는 삶은 과연 행복할까

    쇼펜하우어·보부아르·니체가 건네는 경고, "안락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라"  여름이 저물어 갑니다. 바닷가의 파도 소리나 숲 그늘의 고요함을 벌써 그리워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상담가나 요가 강사들은 이런 곳을 '나만의 행복한 장소'라고 부르곤 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그런 장소 하나쯤은 품고 삽니다. 그러나 그 안락함이 인생의 최종 목적지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 사회에서 은퇴 설계라고 하면 대개 비슷한 그림이 떠오릅니다. 평생 부지런히 일해 모은 재산으로 남은 생을 편안히 누리는 삶, 여행과 맛집과 취미로 채워진 나날입니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마크 에드먼드슨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국제판 기고에서 바로 이 통념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쾌락과 안락으로서의 행복이 과연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향한 오래된 찬가 행복을 쾌락으로 이해하는 전통은 뿌리가 깊습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인간이 즐거움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향락의 삶을 산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1897년 감옥에서 쓴 긴 편지 『옥중기(De Profundis)』에서 즐거움을 위해 살았던 순간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에드먼드슨 교수는 이런 행복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되, 경계하며 절제된 분량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에 섭니다. 그 근거로 세 명의 철학자를 증인으로 불러냅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두 번째 적, 권태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두 적으로 고통과 권태를 꼽았습니다. 인간은 지성을 동원해 고통을 피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나는 순간 쉬지 못하는 마음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맵니다. 그 끝에 도박으로 재산을 잃고, 불륜으로 가정을 깨뜨리며, 공연한 다툼을 벌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에서 사교 모임, 연극, 카드놀이, 음주, 여행 같은 오락은 잠시의 처방일 뿐 곧 다시 지루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해법은 지성을 채울 대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수집, 자연 관찰, 외국어 공부, 좋은 책을 읽고 요약하는 일 등입니다. 에드먼드슨 교수는 사람들이 행복의 상징으로 여기는 금빛 해변과 폭포 풍경 상당수가 실은 권태의 덫이라고 지적합니다. 보부아르가 권한 '자신만의 프로젝트'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수동적 행복보다 능동적 활동을 옹호했습니다. 그녀는 장폴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이미 완성된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 태도인 즉자존재(être-en-soi)를 가장 위험한 유혹으로 보았습니다. 사회가 승인하는 외모와 행동의 규범에 순응해 흠 없는 모습을 보이려는 삶입니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특히 여성이 이런 압력을 강하게 받는다고 비판했지만, 남성 역시 하나의 정체성에 갇히라는 요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대안이 대자존재(être-pour-soi)입니다. 주어진 정체성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보장되지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 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 가며 삶을 빚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늘 행복하지는 않을지라도 자유를 스스로 떠맡았기에 삶이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 보부아르의 생각이었습니다. 니체가 경고한 '마지막 인간' 세 번째 증인은 프리드리히 니체입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마지막 인간(der letzte Mensch)'이라는 인간형을 그렸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소소한 즐거움만 누리고, 결코 전력을 다하지 않으며, 큰 결실을 위해 무언가를 걸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약간의 자극과 공허한 오락이 그의 기쁨입니다. 작품 속 차라투스트라가 이 인간형을 경계하라고 외치자, 군중은 도리어 자신들을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환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마지막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의 긴 시간이 던지는 질문 에드먼드슨 교수의 결론은 균형 잡혀 있습니다. 모든 만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쾌락보다 의미를 추구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좇는 사람에게도 휴식은 필요합니다. 니체조차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한동안 안락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다만 행복한 장소에 너무 오래 머물거나 평생 그곳에 눌러앉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는 한국의 시니어에게 특히 무겁게 다가옵니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퇴직 이후의 시간은 어느 세대보다 길어졌습니다. 그 긴 시간을 휴식과 오락만으로 채운다면 권태가 찾아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무료함 끝에 도박이나 과음,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에 빠지는 일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대로 배움을 이어 가고,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고, 평생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시니어들의 삶은 한결 단단합니다. 쉬되 멈추지 않는 삶 우리 선조들은 이 지혜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주역(周易)』은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듯 군자는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을 가르쳤습니다. 근면과 절제, 자기 수양을 삶의 근본으로 삼은 전통적 가치는 서구 철학자들의 결론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습니다. 은퇴는 일에서 물러나는 것이지, 삶의 책임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평생 치열하게 살아온 시니어에게 휴식은 마땅한 권리이며, 쉼을 게으름으로 몰아세울 이유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쉼과 의미의 균형입니다. 바닷가에서 한 계절을 보냈다면, 다음 계절에는 책 한 권을 읽고 정리하거나, 새 언어를 익히거나,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붙잡으려 할수록 달아나지만,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 곁에는 어느새 와 있기 마련입니다. 편안한 자리를 잠시 즐기되 그곳에 주저앉지 않는 삶, 그것이 긴 인생 후반전을 품위 있게 사는 길일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2. 1d ago

    [아침마다 지혜 #475] 마지막 선물, 호스피스 돌봄과 사후 뇌 기증이 의학 진단과 공중보건에 갖는 의미

    죽음을 준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미리 입에 올리는 일은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수의를 미리 마련하고 묏자리를 살펴 두는 것까지는 미덕으로 여겼으나, 임종의 순간을 어떻게 맞을지 가족과 마주 앉아 의논하는 일은 불경한 짓으로 치부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서구 사회에서는 임종을 맞는 과정 자체를 미리 설계하고 곁에서 돕는 새로운 직역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임종 둘라(death doula)라 불리는 이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산모의 출산을 곁에서 돕는 둘라의 역할을 삶의 마지막 국면으로 옮겨 온 셈입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지난 8월 17일 자에 알렉산드라 슈워츠 기자가 취재한 임종 둘라와 호스피스 돌봄의 변화에 관한 장편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리고 9월 14일 자 독자편지란에는 이 기사를 읽은 한 임상 신경병리학자의 짧은 편지가 게재되었습니다. 뉴욕주 하이폴스에 거주하는 R. D. 폴커스 박사가 보낸 글입니다. 한 신경병리학자가 짚어낸 대목 폴커스 박사가 주목한 것은 기사 본문의 화려한 서사가 아니라, 많은 독자가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짧은 한 장면이었습니다. 둘라로 일하는 버지니아 창이 자신이 돌보던 엘리너 레너드에게 과학 연구를 위한 사후 뇌 기증을 권했고, 레너드가 이를 반기며 받아들였다는 대목입니다. 사후 인간의 뇌를 직접 관찰하고 연구해 온 오랜 경력의 전문가로서, 폴커스 박사는 이러한 기증이 극히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명료합니다. 임상 생체지표(biomarker)와 뇌 영상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였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해답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이나 특정 유형의 뇌졸중을 비롯한 상당수 질환은 진단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기 위해 여전히 사후 조직 분석을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의 검사 결과는 어디까지나 추정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확진의 마지막 열쇠는 세상을 떠난 뒤에야 손에 쥘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박사는 이러한 기증이 그 밖에도 수많은 공중보건상의 이점을 제공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선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편지에서 가장 실질적인 대목은 마지막 괄호 안에 담겨 있습니다. 폴커스 박사는 뇌 기증이 운전면허증이나 신분증에 장기 기증자(organ donor)라고 표시해 두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뇌 은행(brain bank)이나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통해 별도의 등록과 진행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적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장기 기증은 다른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이식이 목적이며, 연구를 위한 뇌 기증은 목적도 절차도 관리 기관도 다릅니다. 더구나 뇌 조직은 사망 이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채취되어야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인의 뜻이 아무리 굳건하여도 그 뜻이 문서로 등록되어 있지 않고 가족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선의는 임종의 혼란 속에서 그대로 흩어지고 맙니다. 뜻을 세우는 일과 절차를 밟아 두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새겨야 할 대목 우리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치매를 비롯한 뇌 질환은 이미 시니어 세대와 그 가족이 감당해야 할 가장 무거운 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럼에도 뇌 연구에 필요한 조직 자원의 확보는 여전히 넉넉하지 않은 형편입니다. 국내에서도 뇌 연구 전문기관을 중심으로 뇌 조직 기증과 보관을 담당하는 체계가 운영되고 있으나, 일반 시민에게 그 존재와 절차가 충분히 알려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경계해야 합니다. 기증을 미덕으로 권장하는 일과, 기증을 사회적 압력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자신의 몸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끝까지 본인의 결정에 속하며, 유족의 정서와 가족의 합의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죽음을 지나치게 담담한 기술적 절차로만 다루는 서구식 접근을 그대로 옮겨 오는 것도 신중할 일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알지 못해서 선택하지 못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니어 세대는 평생 가족과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남기는 일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재산을 남기고 이름을 남기고 가르침을 남겨 왔습니다. 그 오랜 습관의 연장선에서, 자신이 앓았던 병의 정체를 후손과 후학에게 밝혀 주는 일 또한 하나의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폴커스 박사의 편지가 우리에게 건네는 조언은 결국 단순합니다. 뜻이 있다면 미리 알아보고, 미리 등록하고, 미리 가족에게 말해 두시라는 것입니다. 준비된 뜻만이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독자 실용 정보 보건복지상담센터 129치매상담콜센터 1899-9988국민건강보험공단 1577-1000 연구 목적의 뇌 조직 기증 절차는 일반 장기 기증 등록과 별개이며, 국내에서는 뇌 연구 전문기관 및 관련 의료기관을 통해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등록 방법과 요건은 기관에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및 편집자 주: 원문 출처: The New Yorker 2026년 9월 14일 자 5쪽 독자편지란(THE MAIL), R. D. 폴커스(의학박사, 뉴욕주 하이폴스) 기고. 인용 대상 기사는 알렉산드라 슈워츠, 2026년 8월 17일 자 리포트. 본 칼럼은 원문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사실 관계를 재구성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국내 뇌 조직 기증 관련 기관명과 절차, 사후 조직 채취 소요 시간에 관한 서술은 확인이 필요한 사항으로, 게재 전 검토를 권고드립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3. 2d ago

    [아침마다 지혜 #474]아트펑크 괴짜들의 자화상

    회한으로 완성된 반세기의 기록 텍사스 출신의 아방가르드 펑크 밴드 버트홀 서퍼스(Butthole Surfers)의 45년 역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홀 트루스 앤 나씽 벗(The Hole Truth and Nothing Butt)》이 최근 미국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 시네마(Alamo Drafthouse Cinema) 체인을 통해 개봉했습니다. 배급사 없는 독립 영화를 지원하는 '알라모 익스클루시브' 프로그램의 첫 작품으로 선정된 이 영화는 시작부터 파격적인 경고 문구를 내세웁니다. 섬광 조명과 약물 사용, 인형 폭력, 그리고 '회한'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문구는 이 밴드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파격의 이면에 감춰진 회한 1970년대 후반 프론트맨 기비 헤인즈(Gibby Haynes)와 기타리스트 폴 리어리(Paul Leary)의 만남으로 시작된 이 그룹은 강력한 섬광 조명과 기괴한 영상 투사, 충격적인 무대 연출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연출을 맡은 탐 스턴(Tom Stern) 감독은 이러한 충격적인 겉모습 아래에 수많은 감정의 층위가 존재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밴드는 1991년 제1회 롤라팔루자 투어 참가와 1996년 "Pepper"의 빌보드 모던 록 차트 1위 등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 동시에, 구성원 각자의 개인사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시련을 겪어 왔습니다. 성공과 중독, 그리고 이별 "Pepper"의 성공 이후 소속 레이블은 후속 히트곡을 요구했고, 당시 헤인즈는 헤로인 중독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드러머 킹 코피(King Coffey)는 이 시기를 밴드의 가장 어두운 국면으로 회고했습니다. 헤인즈는 현재 약 12년째 약물을 끊은 상태라고 밝혔으며, 밴드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편 오랫동안 밴드와 함께한 드러머 테레사 테일러(Teresa Taylor)는 2023년 6월 폐기종으로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피는 그녀가 사실상 작별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라고 전했습니다. 유년의 상처와 가족이라는 답 영화에서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장면은 헤인즈가 네 살 무렵 이웃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이 사건을 밴드 동료들에게조차 오랫동안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66세인 헤인즈는 현재 변호사인 아내, 11세 아들과 함께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극단적인 무대 연출로 사회적 존중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하던 그가, 이제는 가정을 지키며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모습은 이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또 하나의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대를 넘어 전하는 메시지 리어리는 9·11 테러 이후 무대 위 광기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며 투어 재개를 거부하고 있으나, 밴드는 2025년 9월 할리우드 상영회에서 8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방종이 결국 가족과의 화해, 정직한 자기 고백으로 귀결되는 이 서사는 이제 시니어 세대에 접어든 예술가들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어떻게 정리하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파격적인 표현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나, 그 자유에는 반드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과 가족에 대한 도리가 함께 따라야 한다는 점을 이 다큐멘터리는 우회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성공 이면의 중독과 상실을 냉정하게 되짚는 태도야말로, 질서와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가 예술적 파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전제 조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이 다큐멘터리의 국내 개봉이나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일정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해외 영화 배급 소식과 국내 OTT 서비스 편성표를 통해 개별적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4. 3d ago

    [아침마다 지혜 #473] 고통보다 평범함, 진짜 행복은 그렇게 찾아왔다

    오지브웨 작가 데이비드 트루어가 프린스턴에서 발견한 역설 미국 미네소타주 리치 레이크(Leech Lake) 인디언 보호구역 출신의 작가 데이비드 트루어(David Treuer)가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 에디션에 기고한 개인적 회고는, 소수자에게 사회가 오랫동안 강요해 온 '고통의 서사'라는 관행을 정면으로 되짚어 보게 합니다. 오지브웨(Ojibwe) 부족 출신인 그는 1985년 봄 프린스턴 대학교 합격 통지를 받고, 그해 가을 어머니의 승합차를 타고 뉴저지로 향하면서 가난과 편견으로 얼룩진 과거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트루어는 백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정작 고향 보호구역에서조차 '진짜 인디언'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프린스턴 캠퍼스에서는 인디언이라는 사실만으로 동정 어린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전기와 수돗물이 들어오고 알코올 중독 문제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에게 쏠렸던 관심은 순식간에 식어버렸습니다. 그는 동정받을 이유가 없는 평범한 존재가 되는 순간 오히려 주변에서 소외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고백합니다. 한 백인 교수는 그에게 학자와 전통 치료사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는데, 이는 명문 대학의 지식사회조차 소수자를 정형화된 틀 안에서만 이해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트루어로 하여금 한동안 자신의 출신 배경을 실제보다 훨씬 비참하게 과장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나 자동차를 처음 본 순간의 두려움 같은 이야기를 지어낼수록,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더욱 진실로 받아들였다고 그는 전합니다. 그는 미국의 건국 문서에서 인디언이 한때 '무자비한 야만인'이라는 표현으로만 잠시 언급되었다가 본문에서 제외되었던 역사를 함께 짚으며, 이러한 법적·역사적 배제가 소수자를 결핍과 고통으로만 규정해 온 뿌리 깊은 인식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합니다. 공교롭게도 1980년대 들어 다수의 보호구역에 카지노 산업이 들어서며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리치 레이크 역시 생활 수준이 다소 개선되고 있었습니다. 트루어는 그제야 자신이 거짓 서사를 지어냈을 뿐 아니라, 그 거짓 서사를 소비하는 사회 전체의 일부였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합니다. 주목할 대목은 트루어가 결국 '고통받는 인디언'이라는 서사도, 그 반대편에 놓인 '역경을 극복한 특별한 인디언'이라는 서사도 함께 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대학원 과정을 중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사냥과 낚시, 자작나무 공예 같은 화려하지 않은 생업을 이어가며 평범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는 보호구역 사람들의 삶이 결핍과 비극이 아니라 이혼, 자동차 대출, 소소한 성취와 실패로 채워진 지극히 평범하고 복잡한 인간의 삶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일상 한가운데서, 첫 소설의 출간 제안을 전화 자동응답기로 확인했던 순간의 벅찬 기쁨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확인했다고 담담히 글을 맺습니다. 이 회고가 시사하는 바는 특정 소수민족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떤 집단이든 사회가 정해 놓은 단일한 틀, 즉 동정받아야 할 약자이거나 혹은 역경을 극복한 영웅이어야 한다는 이분법에 갇히는 순간, 그 구성원 개개인이 지닌 평범하고 온전한 삶의 존엄은 오히려 지워지기 쉽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시니어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줍니다. 시니어를 일방적인 돌봄의 대상으로만 규정하거나, 반대로 특별한 성공 사례로만 조명하는 방식 모두, 정작 대다수 시니어가 살아가는 평범하고 존엄한 일상의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회고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어떤 집단에 대한 연민이나 배려도, 그 집단을 정해진 서사 안에 가두는 순간 또 다른 형태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존중은 특정한 이야기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삶과 그 삶이 뿌리내린 공동체적 유대, 그리고 개인의 성실한 노력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감상적인 동정도, 무비판적인 영웅화도 아닌,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합리적 기준이야말로 소수자와 시니어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하는 데 있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 할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5. 4d ago

    [아침마다 지혜 #472] 로봇이 넘어질 때, 인간이 웃는 까닭

    넘어지는 로봇, 새로운 오락이 되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에, 오히려 인간을 가장 크게 웃게 만드는 영상은 따로 있습니다. 두 발로 걷고 뛰도록 설계된 로봇이 벽에 정면으로 부딪히거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다 쓰러지는 장면입니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로봇 실패 영상'은 순수한 신체적 희극과 더불어 죄책감 없는 고소해함(Schadenfreude), 그리고 '아직은 인간이 낫다'는 은근한 우월감을 동시에 안겨주며 새로운 오락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베이징 로봇대회가 보여준 두 얼굴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대회는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두 다리로 달리는 로봇들의 트랙 경기에서 일부는 우사인 볼트의 100미터 기록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로봇들은 장벽에 그대로 돌진해 무너지거나, 만화처럼 불꽃을 튀기며 뒤로 자빠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역도 종목에서는 바벨을 놓친 로봇이 얼굴부터 바닥에 넘어지자, 무표정한 진행 요원들이 이를 들것에 실어 나르는 장면이 관중의 폭소를 자아냈다고 전해집니다. 높이뛰기와 권투, 치어리딩까지 선보이며 로봇공학의 비약적 발전을 과시하려던 이 대회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가장 즐겨 찾는 '실패 로봇' 콘텐츠의 산실이 된 셈입니다. 웃음 뒤에 숨어 있는 불안 미국 UCLA의 로봇공학 교수이자 로봇 메카트로닉스 연구소(RoMeLa) 소장인 데니스 홍은, 세탁기가 고장 나는 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지만 배달 로봇이 부두 아래로 떨어지거나 휴머노이드가 춤 동작 중 고꾸라지는 모습에는 사람들이 단순한 슬랩스틱 이상의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로봇을 개선하는 데 매진하는 그 자신조차 남의 로봇이 실패하는 영상을 보며 즐거움을 느낀다고 인정했습니다. 카네기멜론 대학교의 류창류 교수 역시 학생들에게 로봇 실패 영상 모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실제 환경에서 벌어질 수 있는 더 큰 위험을 점검하는 교육 자료로 활용됩니다. 그는 로봇이 무대를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인파 속으로 들어갈 때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고 지적하며, 인증 기준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무대를 벗어난 로봇, 커지는 우려 문제는 이러한 실패가 통제된 무대를 벗어나 실제 대중 앞에서 벌어질 때입니다. 로봇을 비교적 저렴하게 제작해 곳곳에 배치하는 일부 국가에서는, 회전 동작을 자랑하던 로봇이 실수로 어린아이를 가격하거나, 사무용 로봇이 갑자기 위협적인 동작을 취해 동료들이 놀라 도망치는 사례까지 보고되고 있습니다. 홍 교수는 과거 로봇이 호기심의 대상이자 미래의 집사로 기대를 모았다면, 이제는 일자리를 빼앗거나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는 재난 대응처럼 유익한 로봇 기술을 개발하는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변화라는 것입니다.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하다 로봇의 실패를 보며 웃는 인간의 심리에는, 거대 언어 모델(LLM)과 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가는 데 대한 깊은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웃음은 그 불안을 잠시 잊게 해주는 위안일 뿐, 근본적인 해법은 아닙니다. 따라서 로봇 기술의 발전을 무조건 예찬하거나 반대로 막연히 경계하는 태도 모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혁신을 지원하되,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로봇을 배치할 때는 엄격한 안전 인증과 책임 기준을 함께 요구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합니다. 기술은 결국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 원칙이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로봇의 발전도 시니어를 포함한 모든 세대에게 신뢰받는 진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6. 5d ago

    [아침마다 지혜 #471] 경험은 자를 수 있는 비용인가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남긴 질문  최근 미국 사회에서는 정부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대대적인 공공 부문 인력 감축이 추진되면서, 정작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 인력까지 감축 대상에 오르는 사례가 잇달아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미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저출생·고령화 속에서 공공서비스 효율화를 고민해야 하는 한국 사회 역시, 숙련된 경력자의 경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우할 것인가라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가 심층 취재한 미국 산불 진화 특수부대 '스모크점퍼(Smokejumper)'의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87년 역사, 낙하산으로 산불에 뛰어드는 사람들 스모크점퍼는 도로가 없는 험준한 오지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 수송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대원을 말합니다. 미국 알래스카를 비롯해 서부 지역 아홉 곳의 기지에 소속되어 있으며, 1939년 워싱턴주에서 하나의 실험으로 시작된 이래 87년 동안 약 6,000명이 이 직업을 거쳐 갔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훗날 외교관, 대학교수, 우주비행 관계자로 성장한 이들도 있을 만큼, 혹독한 훈련과 실전 경험이 만들어 내는 인재의 폭은 넓습니다. 신참 대원은 오십 킬로그램에 가까운 배낭을 메고 장거리를 주파하는 등 5~6주에 걸친 극한 훈련을 거치며, 그중 3분의 1가량이 중도에 탈락합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현장 판단력을 쌓아 갑니다. 32년의 경력을 지닌 78세의 시니어 베테랑 로드 다우(Rod Dow)는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알래스카 기지를 찾아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37년 차 베테랑이자 정년퇴직을 앞둔 빌 크레이머(Bill Cramer) 대장은 산불 현장에서 신참들에게 지휘권을 넘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조직은 경력에 따른 서열이 아니라, 그날 가장 준비된 사람이 지휘를 맡는 구조를 87년째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효율화의 이름 아래 흔들린 안전망 그런데 2025년, 미국의 정부효율성부(DOGE)가 예산 절감을 이유로 연방 인력 감축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화재 감시원과 스모크점퍼를 포함하는 '산림 기술자' 범주 전체가 한때 감축 명단에 오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무부 산하 토지관리국의 소방 지도부가 공공안전 인력은 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한 끝에 스모크점퍼들은 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웃한 몬태나주에서는 산림청 소속 산림 기술자 약 360명에 대한 해고 지시가 그대로 집행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화재 진화 대원으로도 근무하는 인력으로, 스모크점퍼의 초임 시급은 약 25달러(약 3만5,000원), 초과 근무 수당은 시간당 약 38달러(약 5만3,000원) 수준에 그친다는 사실이 함께 알려지며 논란을 키웠습니다. 이 감축에 항의했던 4년 차 대원 샘 포스태그는 결국 소속 기관으로부터 사실상의 인사 보복을 겪었고, 이후 정치에 투신해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경험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입니다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구조적 문제는 명확합니다. 효율화 정책이 인력을 단순한 숫자와 직급명으로만 분류할 때,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위기 대응 판단력이라는, 결코 예산 항목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놓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스모크점퍼 조직이 87년간 유지해 온 힘은 다름 아닌 베테랑에서 신참으로 이어지는 경험의 전수 체계였습니다. 이 체계를 정교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채 일률적인 잣대로 인력을 재단한다면, 정작 위기의 순간 그 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를 향한 시사점 이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교훈입니다. 시니어 세대를 단순한 복지 수혜자나 인건비 부담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정작 이들이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위기 대응 능력과 조직 운영의 지혜라는 자산을 사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독일 사회정책에서 강조되어 온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의 균형 원리는 여기서도 유효합니다. 정부는 숙련된 인력에게 정당한 지원과 예우를 제공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성과 기준과 책임을 요구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만을 앞세운 정책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습니다. 전통과 안전을 지키는 합리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산불 앞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한 사회가 안전과 질서를 어떻게 지켜 낼 것인가에 관한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무분별한 감정적 감축도, 무비판적인 조직 존속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검증되어 온 경험과 질서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걸맞은 합리적 기준으로 공공서비스를 재정비하는 균형 잡힌 개혁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시니어 세대의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내릴 때, 우리 사회의 안전망 역시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7. 6d ago

    [아침마다 지혜 #470] 75세에 다시 피어난 붓끝, 침묵이 그려낸 세계

    말을 잃은 손이 세상과 나눈 대화 뉴질랜드 출신의 화가 수잔 테 카후랑기 킹(Susan Te Kahurangi King)은 올해 일흔다섯을 맞은 시니어 예술가입니다. 그녀는 세 살 무렵 갑자기 언어를 잃고 자폐 스펙트럼(Autism Spectrum) 특유의 세계 속으로 침잠했지만, 연필을 쥔 손끝만큼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습니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그녀의 드로잉을 영구 소장품으로 등재했고, 뉴욕의 저명한 미술평론가는 그녀를 20세기 거장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에 견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고국 뉴질랜드에서조차 그녀를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 2026년 9월 7일 자)가 그녀의 삶을 심층 보도하면서, 한 시니어의 늦은 재능이 세상에 다시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마흔 살의 절필, 그리고 열여섯 해의 침묵 킹은 1950년대부터 30여 년간 쉼 없이 그림을 그렸으나, 마흔 살 무렵 돌연 붓을 놓았습니다.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이후 16년 동안 그녀는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1973년, 지적장애 아동을 돕기 위한 한 자선 전시에 그녀의 드로잉 두 점이 출품되어 단 3파운드(현재 환율 기준 약 5,900원, 2026년 9월 5일 서울 외환시장 기준)에 팔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재능이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던 시절의 단면입니다. 그러다 2008년, 가족들이 다시 그림 도구를 손에 쥐여준 것을 계기로 창작이 재개되었고, 이듬해 58세의 나이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한 점당 수천 달러에 이르는 수표를 받는 작가로 거듭났습니다. 2013년 파리에서 열린 아웃사이더 아트 페어(Outsider Art Fair)에서는 출품작 전량이 팔려나가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가족이 지켜낸 70년의 기록 킹의 재기를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의 헌신이었습니다. 그녀의 외조모는 손녀가 말 대신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평생 딸의 상태를 세세히 기록했습니다. 여동생은 지난 20년간 언니가 남긴 약 2만 장의 드로잉을 손수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왔습니다. 반면 1965년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을 당시에는, 스스로 의사를 말로 표현하도록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목욕과 식사는 물론 그림 도구까지 박탈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녀를 지켜낸 것은 제도가 아니라 가족의 곁이었다는 사실이 이 보도의 핵심입니다.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의 두 얼굴 미술계는 킹과 같이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의 작품을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라 부릅니다. 이는 1940년대 프랑스 작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가 창안한 아르 브뤼(art brut, 가공되지 않은 예술)라는 개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큐레이터들 사이에서조차 이 명칭이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제작자의 사회적 지위만을 지칭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킹을 대변하는 갤러리스트 역시 그녀의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 작품 평가의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재능은 재능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이 원칙은, 시니어의 능력을 나이나 질환이라는 틀로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 역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시니어와 발달장애를 지닌 가족 구성원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킹의 사례는 국가·시설의 역할과 가족의 역할이 상호 보완적이어야 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지원(Fördern)이라는 이름 아래 제도가 개입하더라도, 그 방식이 인격을 무시한 획일적 통제로 흐를 경우 오히려 당사자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례가 증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부담을 가족의 헌신에만 지우는 것 또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가족의 곁을 국가가 합리적으로 뒷받침하는 기준, 즉 요구(Fordern)와 지원의 균형입니다. 전통적인 가족 질서를 존중하되,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합리적인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늦게 핀 꽃이 전하는 메시지 킹의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서도 인생의 절정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녀는 58세에 첫 전시를 열었고, 64세에 정식 진단을 받았으며, 지금 75세에도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신작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시니어를 은퇴 이후 소진된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성장하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전통적인 가족의 유대와 합리적인 사회적 지원이 함께할 때, 시니어의 잠재력은 나이와 무관하게 다시 꽃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노년의 화가는 붓으로, 그리고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8. Sep 5

    [아침마다 지혜 #469] 79세, 범고래와 그루브를 타다

    79세 사운드 아티스트가 들려준 범고래와의 13년 협연, '평생 현역'을 증명하다 지난 8월 어느 저녁, 미국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한 호텔 옥상에는 200여 명의 문화 애호가가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새 음반 '범고래의 최대 히트곡(Orcas' Greatest Hits)'의 발매를 축하하고, 그 음반을 만든 79세의 사운드 아티스트 짐 놀먼(Jim Nollman)의 오랜만의 뉴욕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백발에 흰 수염을 기른 그는 범고래가 그려진 티셔츠 차림으로 행사에 등장해 함께 소리를 나눈 범고래들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날 발매된 음반에는 놀먼과 동료들이 수중 마이크와 신중하게 배치한 보트를 이용해 야생 범고래와 즉흥 합주를 펼친 13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놀먼의 이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매사추세츠에서 성장해 터프츠 대학교(Tufts University)에 다니던 시절부터 실험적 무대 연출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이후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점토 피리로 이웃집 칠면조를 울게 하거나, 샌프란시스코 인근 농장에서 300마리의 칠면조와 함께 민요를 녹음하는 등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동물과의 음악적 교감을 시도해 왔습니다. 이후 그의 실험은 캥거루쥐와 늑대를 거쳐 하와이의 돌고래로 확장되었으나, 정작 바다에서 돌고래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대중과 후원자들의 관심은 계속 이어졌고, 그는 마침내 직접 큰 배 위에 세계 최초의 수중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어 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도전이 어떤 거대한 제도적 지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오르카난다(Orcananda)'라 이름 붙인 이 작은 만의 스튜디오는, 범고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이 스스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전기기타 연주로 범고래의 호기심을 유도하고, 노래가 시작될 때만 녹음 버튼을 눌렀다는 그의 방식에는 카디시(유대교 기도문)를 읊는 한 시니어부터 티베트 라마승, 신시사이저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동참했습니다. 놀먼은 범고래가 인간의 기교보다 강한 리듬, 즉 그루브(groove)에 반응한다는 점을 일찍이 깨달았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제임스 브라운 풍의 리프를 연주하자 범고래 무리가 함께 춤을 추듯 반응했고, 인도 음악 양식인 라가(raga)를 바탕으로 47마리의 범고래 한가운데서 즉흥 연주를 펼친 사례, 12마디 블루스 진행에서 범고래가 코드 변화를 함께 만들어 낸 사례 등은 그의 예술적 통찰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13년간 쌓인 약 60시간 분량의 테이프는 오랫동안 창고에 잠들어 있다가, 최근 미국의 저명한 음반 아카이브인 스미소니언 포크웨이스(Smithsonian Folkways)와 연이 닿으면서 비로소 정식 음반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곤충과 혹등고래의 소리와도 협연해 온 재즈 음악가 데이비드 로텐버그(David Rothenberg)가 향유고래와 혹등고래의 녹음에 맞춰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가 시니어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79세라는 나이는 흔히 은퇴 이후의 정적인 삶을 떠올리게 하지만, 놀먼의 사례는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이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먼저 제도적 지원을 요구하기보다 스스로 도구를 만들고 방법을 개척한 뒤에야 비로소 스미소니언과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 노력과 검증된 성과에 상응하는 합리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금 확인시켜 줍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 사회에서도 시니어를 복지의 수동적 수혜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오랜 경험과 축적된 통찰을 지닌 사회적 자산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재평가가 막연한 이상화에 그치지 않으려면, 개인의 자립적 도전 정신을 존중하는 전통적 가치와 더불어 객관적 성과에 기반한 합리적 지원 기준이 함께 자리 잡아야 할 것입니다. 평생을 실험과 도전으로 채운 한 시니어 예술가의 이야기는, 나이가 창조와 기여의 한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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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