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래 편집장의 '아침마다 지혜'

김형래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

  1. 4d ago

    [아침마다 지혜 #493] 이산의 기억을 문장으로 붙든 극작가, 카롤린 기에라 응우옌

    프랑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카롤린 기에라 응우옌(Caroline Guiela Nguyen)은 올해 마흔다섯 살로, 2023년부터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9월 27일과 28일 자 주말판에 실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을 이 자리까지 이끈 원동력으로 가족 여성들의 비극을 꼽았습니다. 시니어 독자께서는 이 이야기에서 개인의 생애가 시대의 격랑과 어떻게 맞닿는지, 그리고 상처를 안고 사는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는지를 함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수용소에서 시작된 가족사 그녀의 어머니 시몬은 제2차 세계대전 말 베트남 사이공에서 태어나 9남매의 장녀로 자랐습니다. 1956년, 열한 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온 어머니는 남서부 지방의 비아스와 생트 리브라드에 마련된 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기에라 응우옌은 이 수용소를 모멸적인 곳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처음에 가족과 동행하기를 거부하고 짧은 편지 한 통만 남겼으며, 그 뒤 외할머니는 크게 무너졌다고 합니다. 가족 사이에서는 외할아버지가 베트남 독립동맹(비엣민)의 전투원이 되어 남았다고 전해졌으나, 실제로는 총을 든 적이 없고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입니다. 그녀는 '전투원'이라는 이야기가 외할머니가 겪은 굴욕을 감싸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고 해석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이 역사를 모르도록 오랫동안 애썼습니다. 딸이 2017년 연극 '사이공(Saigon)'을 준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사를 묻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침묵으로 남은 부분이 있어, 그녀는 지금도 폭력의 크기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삶의 고비마다 '이제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기에라 응우옌은 이를 세상이 뒤집히지 않도록 붙드는 일종의 허구로 이해합니다. 허구가 존엄을 지키는 동맹자였다는 표현은 그녀의 창작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문화 사이의 어린 시절 그녀는 세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프랑스 남부 바르 지역의 빌크로즈라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친가는 알제리 출신 유대계 프랑스인, 곧 피에누아르(pieds-noirs, 북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프랑스인)였고, 부모는 종신 연금(viager) 방식으로 큰 집을 구입했습니다. 집주인이 위층에 살던 그 집에서 어린 그녀는 위층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를 들었고, 훗날 그것이 자살 시도였음을 알았습니다. 폭력은 늘 곁에 있으나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감각이 이때 각인되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남부 억양이 강한 소녀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어머니를 '중국 여자'라 불렀습니다. 반면 여름이면 집은 베트남 가족의 모임 장소로 바뀌어, 하루 종일 베트남어가 오갔습니다. 그녀는 베트남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언젠가 '위대한 귀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반면 알제리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웃음과 기쁨이 이 집안에 분명 있었으나, 기쁨이 때로는 폭력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말하며, '완벽한 통합'의 신화와 '회복탄력성(résilience)'이라는 원칙에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글쓰기, 유일한 생존 방식 그녀는 거의 말이 없는 아이였고, 불안을 달래려고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여러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지어내곤 했다고 합니다. 연극과의 첫 만남도 어머니가 지역 아이들과 함께 이반 오두아르의 〈목가(La Pastorale)〉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맡기면서 우연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연극을 보고 어떤 계시를 받은 적은 없으며, 자신에게 글쓰기는 속한 집단에서 한 걸음 물러나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니스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오크어 민중 연극에 열정을 쏟던 학과장 클로드 알랑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언어와 기억을 온몸으로 지키려는 사람을 처음 본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녀의 글은 '죽은 단어'였습니다. 어머니가 정확히 발음하도록 배운 프랑스어처럼 흔들림 없이, 자신과 가족이 훌륭한 공화국 시민임을 증명하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체호프와 셰익스피어, 라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조금씩 떨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기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모든 떨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으며, 그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단점이었다고 평했습니다. 공감이 아닌 '순종'을 경계하며 그녀의 연극은 흔히 '공감의 연극'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그녀는 공감이라는 말 곁에서 순종(docilité)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며, 그렇게 표현하는 시선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집필 중인 희곡 〈비극: 방법(Tragédie : méthode)〉은 어머니가 2년 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위험하고 쓸데없다고 여길 공연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대목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또한 2027년 가을 팔레 드 도쿄에 이어 아비뇽의 콜렉시옹 랑베르에서 선보일 전시 '그녀를 빛으로 덮으소서(Couvrez-la de lumière)'를 통해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시성(canoniser)을 교황에게 청원하는 형식을 취할 계획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기적은 어머니가 살아남았다는 것,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는 것, 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극 '사이공'은 초연 10년 만에 10월 8일부터 니스 국립극장에서, 12월에는 뉴욕 세인트 앤스 웨어하우스(St. Ann's Warehouse)에서, 2027년 6월에는 파리 시립 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보수적 시각에서 되새기는 가족과 기억의 의미 이 인터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녀가 폭력이 시간을 파괴한다고 말하며, 딸을 위해 시간이 조금 더 연속적이 되도록 애쓰고 있다고 밝힌 점입니다. 상처는 세대를 건너 전해지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이름 붙이는 일이 다음 세대에게 안정된 시간을 물려주는 길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녀가 어머니를 시성해 달라는 청원의 형식으로 경의를 표하려 한다는 점도, 과거 세대의 희생에 대한 존중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균형 있는 시각도 필요합니다. 그녀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의 잘못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관점입니다.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여전히 유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통합의 신화'와 '회복탄력성'을 비판한 대목은 이민 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짚은 것이지만, 이를 곧바로 사회 전체의 통합 노력에 대한 부정으로 확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예술가의 개인적 경험이 갖는 무게와 사회 일반에 대한 평가는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시니어 세대는 전쟁과 이산, 가난을 지나오며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오신 분이 많습니다. 기에라 응우옌의 어머니가 끝내 침묵한 부분이 있었듯, 우리 가정에도 채 전하지 못한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자녀와 손주에게 조금씩 들려주는 일은 가족의 시간을 잇는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상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이 인터뷰가 시니어 독자께 건네는 조용한 제언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2. 5d ago

    [아침마다 지혜 #492] 자율주행차의 함정, 운전대는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조향과 제동, 차선 유지까지 소프트웨어가 대신 수행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고, 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야간 시력이 약해진 시니어 세대에게는 이 기술이 잃어버린 이동의 자유를 되찾아 줄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가 심층 보도한 내용은 역설적인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적어도 특정 순간에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자동화 안일함(automation complacency)이라 부릅니다. 운전자가 기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주의를 놓아버리는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실제로 미국 프로풋볼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수석코치 카일 섀너핸은 지난 8월, 운전 중 휴대전화를 주우려다 사고를 낸 경위를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그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차선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몸을 숙였으나, 정작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고 차량은 마주 오는 차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는 골절과 뇌진탕을 입은 뒤 “운전은 컴퓨터와의 동업이지, 운전대를 통째로 넘기는 일이 아니다”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이 기술을 반기는 목소리도 뚜렷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72세 여성 캐롤린 맥브라이드 씨는 야간 시력이 약해지고 남편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자율주행 시스템 덕분에 보행자와의 충돌을 피한 경험이 있다며 “우리 세대에게는 그야말로 판을 바꾸는 변화”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ull Self-Driving) 유료 구독은 월 90달러(약 12만 원, 2026년 9월 초 서울외환시장 기준 환율 적용)에 이르지만, 지난해보다 구독 건수가 크게 늘어 150만 건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문제는 구조적인 곳에 있습니다. 현재 시판되는 대부분의 시스템은 사람이 즉시 개입할 수 있어야 하는 부분 자동화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은 대부분 운전자 본인에게 돌아갑니다.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의 알렉산드라 뮬러 박사는 “부분 자동화 시스템은 언제나 완전한 능력을 갖춘 운전자를 필요로 하며, 신체적 제약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의 앤 칼슨 교수 역시 “기술이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좋아질수록 오히려 위험해지는 역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차량은 대체로 고가여서 구매자의 연령대와 소득 수준이 높은 경향이 있어, 사고율 통계 자체가 실제보다 안전하다는 착시를 낳을 수 있다는 점도 짚어둘 대목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질 시사점을 던집니다. 국내에서도 고령 운전자의 면허 자진반납 제도와 이동권 보장 논의가 병행되는 가운데, 자율주행 보조 기능이 탑재된 차량은 앞으로 시니어 세대의 삶에 더 깊숙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이 이동의 자유를 넓혀 준다는 이유만으로 주의 의무 자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을 믿을수록, 언제든 스스로 통제권을 되찾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방어운전의 원칙은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시니어 세대는 오랜 세월 도로 위에서 위험을 몸으로 익혀 온 경험의 축적자들입니다. 그 경험이야말로 새로운 기술을 맹신하지 않고 균형 있게 받아들이는 지혜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운전의 최종 책임은 사람에게 있으며 기술은 사람을 보조할 뿐 대신할 수 없다는 전통적인 안전 질서는 앞으로도 지켜져야 할 가치입니다. 동시에 시니어의 이동권을 넓혀 주는 합리적인 기술 활용까지 무조건 경계할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막연한 낙관도, 무조건적인 불신도 아닌, 사람이 최종 책임자라는 원칙 위에서 기술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균형 잡힌 태도일 것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3. 6d ago

    [아침마다 지혜 #491] 베르사체, 베르사체를 떠나다

    71세 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 Z세대 유통기업 리볼브 그룹과 손잡고 새 브랜드 창업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을 듯하다. 밀라노 패션 위크가 예상치 못한 소식으로 문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하우스에서 현재 글로벌 브랜드 앰버서더로 활동 중인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월요일, 디자인 현장으로 복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다만 그 무대는 정작 베르사체가 아니었다. 오빠 지안니 베르사체가 피살된 이후 그가 남긴 회사를 물려받아, 자신이 옷을 입힌 스타들 못지않은 명성을 쌓아온 이 71세의 시니어 디자이너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패션 및 뷰티 브랜드를 시작한다. 그녀가 손을 잡은 상대는 전통적인 럭셔리 산업의 노하우보다는 Z세대 특유의 감각과 디지털 유통 역량으로 이름을 알려온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통기업 리볼브 그룹(Revolve Group)이다. 새 브랜드의 명칭이나 본사 소재지, 가격 정책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도나텔라의 직함만은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로 정해졌다고 알려졌다. 이번 발표는 프라다 그룹이 소유한 베르사체 브랜드와 창업주 가문인 도나텔라 사이의 관계가 사실상 종료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르사체는 이미 한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지난해 말, 도나텔라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단 한 시즌 만에 호평받는 컬렉션을 선보였던 디자이너 다리오 비탈레를 프라다 측이 돌연 교체하고 피터 뮬리에를 새 수장으로 앉힌 결정이 업계 안팎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낳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뮬리에의 베르사체 데뷔 무대는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어, 도나텔라의 신규 사업 공개 시점과 시기적으로 겹칠 가능성이 크다. 결투라 부르기는 과하겠으나, 그에 못지않은 팽팽한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안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단순한 패션계 인사이동을 넘어선다. 71세라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그녀의 결정은, 은퇴를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례로 읽힌다. 창업주의 유지를 지키며 30여 년간 한 브랜드를 이끌어온 성실함과 책임감은 그 자체로 전통적 가치의 무게를 지닌다. 동시에 익숙한 럭셔리 문법을 고수하는 대신 젊은 세대의 감각을 지닌 파트너를 선택했다는 점은, 축적된 경험과 새로운 흐름이 반드시 대립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 역시 정년과 경력 단절을 둘러싼 논의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는 시점이다. 오랜 경력을 쌓은 시니어 세대의 전문성과 판단력을 나이라는 잣대만으로 재단하는 관행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는 무조건적인 예우가 아니라, 실제 역량과 시장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평가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이번 결단이 보여주듯, 축적된 경험이 새로운 도전과 결합할 때 비로소 온전한 가치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4. 6d ago

    [아침마다 지혜 #493] 이산의 기억을 문장으로 붙든 극작가, 카롤린 기에라 응우옌

    프랑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카롤린 기에라 응우옌(Caroline Guiela Nguyen)은 올해 마흔다섯 살로, 2023년부터 스트라스부르 국립극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9월 27일과 28일 자 주말판에 실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을 이 자리까지 이끈 원동력으로 가족 여성들의 비극을 꼽았습니다. 시니어 독자께서는 이 이야기에서 개인의 생애가 시대의 격랑과 어떻게 맞닿는지, 그리고 상처를 안고 사는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는지를 함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수용소에서 시작된 가족사 그녀의 어머니 시몬은 제2차 세계대전 말 베트남 사이공에서 태어나 9남매의 장녀로 자랐습니다. 1956년, 열한 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온 어머니는 남서부 지방의 비아스와 생트 리브라드에 마련된 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기에라 응우옌은 이 수용소를 모멸적인 곳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처음에 가족과 동행하기를 거부하고 짧은 편지 한 통만 남겼으며, 그 뒤 외할머니는 크게 무너졌다고 합니다. 가족 사이에서는 외할아버지가 베트남 독립동맹(비엣민)의 전투원이 되어 남았다고 전해졌으나, 실제로는 총을 든 적이 없고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입니다. 그녀는 '전투원'이라는 이야기가 외할머니가 겪은 굴욕을 감싸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고 해석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이 역사를 모르도록 오랫동안 애썼습니다. 딸이 2017년 연극 '사이공(Saigon)'을 준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사를 묻기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침묵으로 남은 부분이 있어, 그녀는 지금도 폭력의 크기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삶의 고비마다 '이제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기에라 응우옌은 이를 세상이 뒤집히지 않도록 붙드는 일종의 허구로 이해합니다. 허구가 존엄을 지키는 동맹자였다는 표현은 그녀의 창작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문화 사이의 어린 시절 그녀는 세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프랑스 남부 바르 지역의 빌크로즈라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친가는 알제리 출신 유대계 프랑스인, 곧 피에누아르(pieds-noirs, 북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프랑스인)였고, 부모는 종신 연금(viager) 방식으로 큰 집을 구입했습니다. 집주인이 위층에 살던 그 집에서 어린 그녀는 위층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를 들었고, 훗날 그것이 자살 시도였음을 알았습니다. 폭력은 늘 곁에 있으나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감각이 이때 각인되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남부 억양이 강한 소녀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어머니를 '중국 여자'라 불렀습니다. 반면 여름이면 집은 베트남 가족의 모임 장소로 바뀌어, 하루 종일 베트남어가 오갔습니다. 그녀는 베트남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언젠가 '위대한 귀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반면 알제리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웃음과 기쁨이 이 집안에 분명 있었으나, 기쁨이 때로는 폭력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말하며, '완벽한 통합'의 신화와 '회복탄력성(résilience)'이라는 원칙에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글쓰기, 유일한 생존 방식 그녀는 거의 말이 없는 아이였고, 불안을 달래려고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여러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지어내곤 했다고 합니다. 연극과의 첫 만남도 어머니가 지역 아이들과 함께 이반 오두아르의 〈목가(La Pastorale)〉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맡기면서 우연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연극을 보고 어떤 계시를 받은 적은 없으며, 자신에게 글쓰기는 속한 집단에서 한 걸음 물러나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니스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오크어 민중 연극에 열정을 쏟던 학과장 클로드 알랑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언어와 기억을 온몸으로 지키려는 사람을 처음 본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녀의 글은 '죽은 단어'였습니다. 어머니가 정확히 발음하도록 배운 프랑스어처럼 흔들림 없이, 자신과 가족이 훌륭한 공화국 시민임을 증명하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체호프와 셰익스피어, 라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조금씩 떨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기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모든 떨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으며, 그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단점이었다고 평했습니다. 공감이 아닌 '순종'을 경계하며 그녀의 연극은 흔히 '공감의 연극'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그녀는 공감이라는 말 곁에서 순종(docilité)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며, 그렇게 표현하는 시선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현재 집필 중인 희곡 〈비극: 방법(Tragédie : méthode)〉은 어머니가 2년 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가 위험하고 쓸데없다고 여길 공연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대목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또한 2027년 가을 팔레 드 도쿄에 이어 아비뇽의 콜렉시옹 랑베르에서 선보일 전시 '그녀를 빛으로 덮으소서(Couvrez-la de lumière)'를 통해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의 시성(canoniser)을 교황에게 청원하는 형식을 취할 계획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기적은 어머니가 살아남았다는 것,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는 것, 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극 '사이공'은 초연 10년 만에 10월 8일부터 니스 국립극장에서, 12월에는 뉴욕 세인트 앤스 웨어하우스(St. Ann's Warehouse)에서, 2027년 6월에는 파리 시립 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보수적 시각에서 되새기는 가족과 기억의 의미 이 인터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녀가 폭력이 시간을 파괴한다고 말하며, 딸을 위해 시간이 조금 더 연속적이 되도록 애쓰고 있다고 밝힌 점입니다. 상처는 세대를 건너 전해지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이름 붙이는 일이 다음 세대에게 안정된 시간을 물려주는 길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녀가 어머니를 시성해 달라는 청원의 형식으로 경의를 표하려 한다는 점도, 과거 세대의 희생에 대한 존중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균형 있는 시각도 필요합니다. 그녀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의 잘못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관점입니다.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여전히 유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통합의 신화'와 '회복탄력성'을 비판한 대목은 이민 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짚은 것이지만, 이를 곧바로 사회 전체의 통합 노력에 대한 부정으로 확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예술가의 개인적 경험이 갖는 무게와 사회 일반에 대한 평가는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시니어 세대는 전쟁과 이산, 가난을 지나오며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오신 분이 많습니다. 기에라 응우옌의 어머니가 끝내 침묵한 부분이 있었듯, 우리 가정에도 채 전하지 못한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자녀와 손주에게 조금씩 들려주는 일은 가족의 시간을 잇는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상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이 인터뷰가 시니어 독자께 건네는 조용한 제언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5. Sep 26

    [아침마다 지혜 #490] 벨트에 뚫린 구멍, 시대의 변화를 말하다

    사소해 보이는 통계 하나 영국 정부의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흔히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비유로 긴축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에서는 이 표현이 말 그대로 현실이 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열쇠 복사와 구두·가방 수선을 전문으로 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생활서비스 체인 팀슨(Timpson)에서, 벨트에 구멍을 새로 뚫어 달라는 고객 요청이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언뜻 보면 사소한 생활 통계에 불과하지만, 이 숫자 하나가 사회 전반의 큰 흐름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합니다. 벨트에 새겨진 숫자들 전직 교도소 담당 장관을 지내고 다시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 팀슨 그룹 최고경영자(CEO) 팀슨 경(Lord Timpson, 55세)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매장에서 벨트에 새 구멍을 뚫어 달라는 요청이 지난해보다 여섯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 번에 예닐곱 개의 벨트를 들고 오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하니, 체감할 수 있는 변화의 폭이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마운자로(Mounjaro)와 위고비(Wegovy) 등 이른바 비만 치료제(체중 감량 주사제) 복용 확산을 지목했습니다.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직원들에게 자신의 줄어든 허리둘레가 바로 이 약물 덕분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팀슨 그룹은 벨트 구멍 수선 서비스 자체에는 비용을 청구하지 않되, 1파운드(약 1,900원, 2026년 9월 하순 기준 편집자 추정치) 수준의 자율 기부를 요청해 왔습니다. 정확한 건수 공개는 없었지만, 이렇게 모인 기부금 규모의 증가폭을 근거로 회사 측은 서비스 이용이 큰 폭으로 늘었다고 추정한 것입니다. 실제로 런던대학교(UCL) 연구진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올해 초 사이 영국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 세 지역에서만 16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체중 감량을 위해 이 계열의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향후 1년 안에 사용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인구도 33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팀슨 그룹의 살림살이도 함께 커졌습니다. 지난해 9월 마감된 회계연도 기준으로 이 회사는 영업이익의 6%가 넘는 약 280만 파운드(약 53억 2천만 원)를 자선 및 사회공헌 활동에 지출했으며, 상당 부분은 전과자와 보호 종료 청소년 등 취업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는 팀슨 재단으로 흘러갔습니다. 1865년 제화공이 세운 이 가족기업은 같은 기간 매출 3억 6,700만 파운드(약 6,973억 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5.6% 성장했고, 자동차 열쇠 관련 사업 호조에 힘입어 열쇠 복사 부문 매출만 1억 100만 파운드(약 1,919억 원)에 달했습니다. 약이 바꾼 소비의 풍경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의약품 하나가 의료계를 넘어 소매업·서비스업의 일상적 풍경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 비만 치료제는 이제 일부 부유층의 미용 목적을 넘어, 당뇨병·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 예방과 관리를 위한 처방 영역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보험 체계가 처방 문턱을 낮추고, 의료진 역시 비만을 단순한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복용 인구 자체가 구조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의류 수선, 재단, 세탁 같은 전혀 다른 업종의 매출과 서비스 수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의료적 변화가 사회 전반의 소비 구조를 얼마나 폭넓게 재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에도 다가온 변화 이러한 흐름은 이미 한국에도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 계열의 비만 치료제는 국내에서도 도입과 처방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 이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체중 감량이 만성질환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급격한 체중 변화는 근육량 감소와 골밀도 저하로 이어져 낙상이나 기력 저하의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약물은 반드시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을 거쳐,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여건을 함께 고려한 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입니다.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할 때 기자는 이번 영국 사례에서 두 가지를 함께 읽어내고자 합니다. 하나는 의학과 산업의 발전이 만들어내는 순기능입니다. 건강 관리에 대한 의지를 실천에 옮긴 이들이 늘었다는 사실 자체는 반가운 변화이며, 이를 일회성 유행으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지켜야 할 절제와 원칙입니다. 새로운 약물이나 시술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과도한 상업적 마케팅이나 검증되지 않은 오남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언론과 의료계, 그리고 우리 시니어 세대 스스로도 냉철한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눈여겨볼 대목은, 팀슨 그룹이 이 뜻밖의 호황을 사익으로만 거두지 않고 취업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재원으로 돌렸다는 사실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빠르게 바뀌어도, 얻은 것을 나누고 공동체의 약한 고리를 함께 살피는 태도야말로 변하지 않아야 할 미덕입니다. 이는 세대와 국경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새겨야 할 지혜이기도 합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6. Sep 25

    [아침마다 지혜 #489] 결혼도 오래 가는 시대, 한국의 황혼이혼과는 다른 길

    최근 영국에서 발표된 통계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이혼율이 줄어들고 결혼 생활이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유지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흔히 "결혼은 옛말이 되었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어서, 시니어 독자 여러분께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되어 이번 지면에서 소개해 드립니다. 영국 통계청(ONS)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성 부부의 평균 결혼 유지 기간은 13년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63년 이후 최장 기록이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던 1985년의 8.9년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를 보입니다. 동성 커플의 시민 동반자 관계(civil partnerships) 역시 남성 커플 평균 13.7년, 여성 커플 평균 13.6년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혼율 자체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연간 약 15만 건에 달했던 정점에 비해 안정적으로 낮아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통계청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몇 가지 구조적 원인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먼저 초혼 연령의 상승입니다. 2023년 기준 이성 간 첫 결혼의 평균 연령은 남성 34.8세, 여성 33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는데, 가족법 전문가들은 결혼을 늦게 결심하는 만큼 그 관계에 대한 정서적 투자와 확신의 정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최근 이혼을 고려하는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부부들의 사례를 보면, 결혼 전 동거 기간이 이전 세대보다 훨씬 길고 결혼 시점 자체가 늦은 경우가 많아, 결혼 관계에 대한 안정감과 확신의 수준이 더 높다는 법조계의 관찰도 함께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혼에 수반되는 재정적 부담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꼽힙니다. 가족법 전문 변호사들은 이혼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산 분할과 생활 기반의 재편이 상당한 경제적 충격을 동반하기 때문에, 부부들이 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현실적 배경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기대 수명의 연장도 하나의 변수로 언급됩니다. 과거에는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함이 상대적으로 컸다면, 평균 수명이 늘어난 오늘날에는 설령 만년에 관계를 정리하더라도 이후 새로운 반려자를 만나 제2, 제3의 인생을 설계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50대, 60대 이상 연령층의 이혼율만은 오히려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전체적인 흐름과는 대조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이혼 소송을 미루는 가정이 늘어난 점도 결혼 기간을 길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구의 흐름을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보면 흥미로운 대비가 드러납니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결혼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 이른바 황혼이혼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는 현상이 사회적 관심사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자녀 양육이라는 공동의 책무를 마친 이후 부부 각자가 남은 삶의 방향을 재점검하면서 결별을 선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영국의 50대 이상 이혼율 상승 현상과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영국의 사례가 시사하듯, 결혼을 늦게 시작하고 더 신중하게 임하는 젊은 세대의 변화가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가정 문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은 한국 사회에도 참고할 만한 시사점입니다. 시니어 세대가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유념해야 할 지점은 분명합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단순한 개인 간의 계약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길러내고 사회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안전망이라는 사실입니다. 이혼율의 등락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 생활을 오래 지속시키는 힘이 경제적 압박이나 소극적 인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서로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책임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분하는 안목입니다. 전통적인 가정의 가치와 질서를 존중하되, 불행한 결합을 무조건 지속시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합리적 균형 감각이야말로, 오랜 세월 가정을 꾸려온 시니어 세대가 후속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가정의 안정이 결국 사회 전체의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시점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https://www.careyou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11673

  7. Sep 24

    [아침마다 지혜 #488] 경도 비만도 겨냥한 체중 감량 주사제 마케팅, 시니어 건강권 위협하나

    최근 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일부 온라인 민간 약국들이 소셜미디어 광고를 통해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 25 수준의 경도 비만자, 즉 의학적으로는 '과체중' 단계에 불과한 이들에게까지 마운자로(Mounjaro)와 위고비(Wegovy) 등 체중 감량 주사제를 처방·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 약물의 공식 승인 기준은 BMI 30 이상, 즉 명백한 비만 상태를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업자들이 이보다 훨씬 낮은 문턱에서 처방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해외 토픽이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비대면 진료와 온라인 약 배송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시니어 세대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시사점을 담고 있기에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온라인 약국, 결제가 먼저인 구조적 허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문제가 된 서비스 구조는 이러합니다. 이용자가 온라인으로 신체 정보를 입력하고 우선 결제를 진행하면, 그 이후에야 약사 또는 처방권자가 서면 상담 내용만을 검토하여 처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대면 진찰을 거쳐 체성분, 기저질환, 복용 중인 약물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전통적인 진료 절차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특히 마운자로와 위고비는 본래 지피원원(GLP-1, Glucagon-Like Peptide-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약물로, 제2형 당뇨병 치료 또는 고도 비만 관리를 목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승인 기준을 벗어난 오프라벨 처방(Off-label Prescription) 자체는 의료 현장에서 드문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러한 처방이 충분한 의학적 판단 없이 마케팅 인센티브에 의해 이루어질 때 발생합니다. 영국의 의약품 규제 당국은 최근 몇 년간 일부 온라인 약국을 대상으로 체질량지수 검증 절차의 미비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과도한 추천 코드 광고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린 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세부 사항이므로, 정확한 기관명과 제재 내용은 독자 여러분께서 추가로 확인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시장 경쟁이 낳은 부작용 이러한 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명확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체중 감량 주사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온라인 약국들 사이의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해외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준 월 약 1,000달러(약 148만 원, 2026년 7월 기준 환율 1달러당 약 1,480원 적용) 수준에 이르는 고가의 약값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사업자 입장에서는 승인 기준을 완화해서라도 처방 건수를 늘리려는 유인이 존재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작 약물이 필요 없거나 위험성이 더 큰 이용자까지 처방 대상에 포함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체질량지수라는 지표 자체의 한계입니다. 체질량지수는 신장과 체중만으로 산출되는 단순 지표이기에, 근육량과 체지방률의 차이, 내장지방 분포 등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특히 동양인의 경우 서구인과 비교해 낮은 체질량지수에서도 대사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하는 만큼, 획일적인 기준 적용의 위험성은 국내 상황에서도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비대면 진료 제도화 논의가 진행 중이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의약품 정보 유통이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니어 세대가 특히 취약할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수의 기저질환을 갖고 여러 약물을 함께 복용하는 다약제 복용(Polypharmacy) 상태에 있는 시니어의 경우, 체중 감량 주사제와 기존 약물 간의 상호작용, 근감소증 악화, 영양 결핍 등의 위험이 젊은 세대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살을 빼고 싶다'는 욕구가 소셜미디어 광고를 통해 손쉬운 처방으로 이어질 경우,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진정으로 비만 관리가 필요한 시니어에게 치료 접근성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원(Fördern)과 요구(Fordern)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핵심은 '접근을 막는 것'이 아니라 '엄정한 기준에 따른 안전한 접근'을 보장하는 데 있습니다. 전통적 진료 원칙과 합리적 접근성의 균형 이번 사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의료는 상업적 편의성보다 안전이 앞서야 한다는 전통적 질서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결제를 먼저 요구하고 심사를 나중에 하는 구조, 소셜미디어 광고를 통한 손쉬운 접근성은 단기적 편의를 제공할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국민 건강 안전망을 훼손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시니어 세대를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풍부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정보를 검증하고, 검증되지 않은 온라인 서비스의 유혹에 앞장서서 거리를 둘 수 있는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정부와 의료계는 엄격한 처방 기준을 유지하되, 진정으로 치료가 필요한 시니어에게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접근성을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제도 설계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

  8. Sep 24

    [아침마다 지혜 #487] 800개 언어를 하나로 묶는 흙구장의 럭비공

    호주, 파푸아뉴기니 프로 럭비팀 창단에 6억 호주달러 지원… 태평양에서 스포츠가 곧 안보가 되는 시대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모르즈비 한복판에는 잔디보다 흙이 더 많은 경기장이 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은 시든 풀 사이에서 병뚜껑과 쓰레기, 뾰족한 자갈을 손으로 주워 냅니다. 흘러내리는 바지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유니폼, 발보다 큰 축구화를 신은 10세 이하 선수들이지만 준결승전에 임하는 표정은 진지합니다. 한 팀 선수의 테이핑한 손등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이 마커로 적혀 있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 국제판이 최근 전한 파푸아뉴기니 럭비 리그(Rugby League) 현장의 모습입니다. 파푸아뉴기니는 800개가 넘는 언어와 그보다 많은 부족으로 나뉜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하나로 묶는 몇 안 되는 끈이 럭비 리그입니다. 럭비 리그는 1890년대 럭비 유니온에서 갈라져 나온, 보다 격렬한 형태의 경기로 1930년대 호주 금광 광부들을 통해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럭비는 부족의 경계를 넘는 국민적 열정이 되었습니다. 현지에서는 럭비를 종교에 빗대어 말할 정도이며, 한 선수의 어머니는 "파푸아뉴기니의 심장은 럭비"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이들은 공이 없으면 풀을 채운 플라스틱 병이나 신문지를 넣은 쌀자루로 경기를 하고, 정전으로 중계 화면이 꺼지면 텔레비전 앞의 군중이 함께 탄식합니다. 호주는 바로 이 열정에 주목했습니다. 호주는 파푸아뉴기니가 호주 최상위 프로 리그인 국립 럭비 리그(NRL)에 자국 팀을 창단할 수 있도록 6억 호주달러, 미화로 약 4억 3천만 달러(약 6,000억 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새 팀 '파푸아뉴기니 치프스'는 2028년 리그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호주 당국자들에 따르면 파푸아뉴기니가 중국과 안보 협정을 맺을 경우 지원금이 회수되고 팀이 해체될 수 있다는 조항이 계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호주 당국자는 계약이 제안될 무렵 파푸아뉴기니가 중국과의 치안 협정 체결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파푸아뉴기니는 호주에서 북쪽으로 약 160km 거리에 있는 이웃 나라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은 이 지역에서 인프라 사업에 투자하고, 치안 지원을 제공하며, 새 학교를 지어 주었습니다. 호주의 선택은 총이나 차관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얻는 방식, 곧 소프트 파워(Soft Power) 전략입니다. 한 호주 당국자는 어떤 파푸아뉴기니 정치인도 이 계약을 위태롭게 만들지 못할 것이라며, 이를 뉴욕 시장이 뉴욕 양키스를 없애 버리는 일에 비유했습니다. 국민이 사랑하는 팀을 볼모로 삼은 셈이니 냉정한 계산이라 할 수 있지만, 동맹과 영향권을 지키는 일이 원래 그러한 것입니다. 제임스 마라페 총리는 팀 창단을 부족 간 폭력을 줄이고 민족 갈등을 완화하는 국가 통합 전략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인종차별 정책이 끝난 뒤 1995년 럭비 월드컵 우승으로 흑인과 백인 국민이 하나가 되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반면 야당은 도로와 상수도, 보건 의료 같은 기본 시설이 부족한 형편에서 스포츠팀에 돈을 쓰는 것은 '빵과 서커스'식 정책이라고 비판합니다. 두 아들을 럭비팀에 보낸 한 어머니도 정부가 교육과 보건에 투자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럭비가 범죄와 폭력에 빠지기 쉬운 청소년들을 붙잡아 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비판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파푸아뉴기니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약 3,000달러(약 420만 원)에 불과하고, 국민의 40%가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인구의 3분의 1이 15세 이하입니다. 21세 청년 알렉스 엔디는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기계공이 되는 공부를 그만두었고, 지금은 친구와 함께 길가에서 개당 약 25센트(약 350원)짜리 소시지와 빈랑 열매, 약 1.50달러(약 2,100원)짜리 양고기를 팔며 하루를 보냅니다. 억대 연봉을 받게 될 프로 선수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투자가 단순한 구경거리에 그치지 않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지원금의 일부는 유망주를 발굴하는 아카데미에 쓰입니다. 3년째 청소년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호주인 코치 조이 그리마는 수백 명 가운데 프로 무대에 서는 아이는 소수이겠지만, 모두가 규율과 생활 기술을 배우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 등록을 참가 조건으로 삼고 있으며, 학업을 중단했던 선수 18명이 지난해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파푸아뉴기니는 역내에서 학업 유지율이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풀뿌리 리그를 만든 전직 프로 선수 스탠리 올로의 말처럼 이 아이들에게는 속도와 힘이 있으며, 부족한 것은 규율과 기술입니다. 여성들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여자 국가대표 출신 안젤리카 나네게는 10대 시절 고원 지대에서 럭비를 시작했다가 남성들로부터 돌과 물병 세례를 받으며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조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이제는 같은 남성들이 경기장에서 그들을 응원합니다. 우리 시니어 세대는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가난하던 시절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공을 차던 기억,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에서 온 국민이 하나 되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가 도로와 병원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흩어진 공동체에 소속감과 질서를 심어 주고, 청소년에게 땀의 가치를 가르친다면 그것은 결코 헛된 투자가 아닙니다. 동시에 이 사례는 오늘날 안보가 군함과 협정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웃의 마음을 얻는 나라가 결국 이웃을 지킵니다. 그날 펑키 샤크스는 8대 6으로 졌고,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정착촌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그날 오후에도 다시 럭비공을 들고 뛰었을 것입니다. 한 나라의 미래는 거창한 계약서보다 그 흙길 위의 끈기에서 자라나는 법입니다. 캐어유뉴스 편집장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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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깨달은 교훈, 나이 들어 알게 된 진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힘까지—짧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로 하루의 방향을 잡아드립니다. 시니어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아침 인사. 커피 한 잔과 함께 듣는 ‘아침마다 지혜’로 오늘도 마음을 단단히, 부드럽게 채워보세요. 37년간의 1막을 이겨내고 인터넷 신문사 편집장으로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형래 편집장이 매일 아침을 열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