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Everyday Morning Devotions], 요한계시록

Chi Hyun Kim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매일의 삶의 예배에서 하나님과 동해하는 삶을 이뤄냅시다. Through morning devotions each day, let’s live our daily lives as worship and walk with God. Rev. Chi Hyun Kim. (Th.M; Old Testament Theology) Full Gospel Somang Church

  1. 2d ago

    요한계시록 9.13-21 재앙의 큰 그림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재앙의 끔찍함이다.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풀려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병대가 등장한다. 그 말들의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고, 결국 불신자 삼분의 일이 죽는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이러한 재앙 자체가 아니다. 바로 그다음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 엄청난 재앙을 경험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20절과 21절에서 요한은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한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고통이 사람을 자동적으로 회개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큰 고난을 겪으면 사람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큰 일을 겪으면 정신을 차릴 것이고, 모든 것이 무너지면 하나님을 찾을 것이며, 죽음이 가까워지면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은 고난을 경험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을 수 있다. 심판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이 이전부터 붙들고 있던 것을 더욱 강하게 붙들 수도 있다. 그 모습이 20절에 나타난다.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이 죽는 재앙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절한다. 그 우상은 금, 은, 동, 나무, 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데 요한은 이 우상들이 가진 무능력을 일부러 자세히 묘사한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존재들이다. 자신들을 만들었던 인간조차 구원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대신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계속 붙들고 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모순이다.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구원자로 붙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자기파괴적이다. 또한, 우상을 계속 붙들수록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필요 자체를 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고난이 찾아올 때 내가 가장 먼저 붙드는 것이 무엇인가? 돈일 수도 있고 내 능력일 수도 있고 내 경력과 경험일 수도 있다. 또 사람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으며, 내가 세워 놓은 계획과 안전장치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이다. “이것만 있으면 나는 괜찮다.” “이 사람만 있으면 나는 안전하다.” “내 능력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의지하는 우상이 된 것이다. 이 상태가 고착화 되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붙들고 있던 우상을 내려놓지 않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도 회개하지 않았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결국 삶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삶의 방향도 함께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단순히 죄책감을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회개는 구체적인 죄에서 실제로 돌이키는 것이다. 내가 반복해서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어떤 거짓과 불의와 탐욕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그것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심판은 무질서하게 일어나는 심판도 아니다. 네 천사가 풀려나는 것부터 심판의 시점까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 즉, 모든 것이 통제 불가능하게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지만 인간의 선택 역시 실제적이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붙들며 무엇을 거부하는지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비극은 회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람이 돌이키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불과 유황도 아니고, 이만 만의 마병대도 아니며, 인류의 삼분의 일이 죽는 장면도 아니다. 그 모든 일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완악함이다. 죄를 지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상태이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서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상태이다. 말씀을 들어도 더 이상 마음이 찔리지 않는 상태이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우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놓지 않는 상태이다. 오히려 이것이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상태이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은 단순히 미래에 있을 무서운 재앙을 보여주기 위한 본문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살펴보게 만드는 말씀이다. 지금 내가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는다면 그것은 은혜이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은혜이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은혜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돌이킬 수 있는 것이 회개이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단순히 고난 없는 삶이 아니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 상황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다. 말씀을 들을 때 내 죄를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이다. 죄를 발견했을 때 변명하지 않고 돌이킬 수 있는 마음이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이다. 결국 오늘 본문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이다. 마음이 굳어지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돌이킬 수 있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는가? How? 1) 늘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기 2) 내가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던 우상이 무엇인지 돌아보기 3) 찾았다면, 그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그 자리에 모시기 [참고문헌] Beasley-Murray, G.R. Revelation.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8. Caird, G.B.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York: Harper & Row, 1966. Collins, A. Yarbro. "The History-of-Religions Approach to Apocalypticism and the "Angel of the Waters" (Rev 16:4-7)." CBQ 39 (1977): 367–81. Fanning, Buist M. Revelatio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Koester, Craig 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nchor Yale Bible 38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malley, Stephen S.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5. Tonstad, Sigve K. Revelation. Paideia Commentaries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9.

  2. 3d ago

    요한계시록 9.1-12 최종결재권자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는 매우 두려운 존재들이 등장한다. 무저갱에서 귀신적인 메뚜기 떼가 올라오고, 그들은 전갈처럼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그 모습도 끔찍하다. 전쟁을 위해 준비된 말과 같고, 사자의 이빨과 철 호심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날개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가는 소리와 같다. 그들이 주는 고통은 사람들이 차라리 죽기를 바랄 정도이다. 본문이 묘사하는 귀신적 세력의 힘과 파괴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그렇게 강해 보이는 악한 세력에게도 계속해서 제한이 주어진다.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고”,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권세를 “받았다.” 그들은 누구를 공격할 것인지, 또 얼마나 해할 것인지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은 해할 수 없고 사람들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로지 괴롭게만 할 수 있다. 또한, 활동 기간조차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오로지 다섯 달이라는 제한된 기간 동안만 그 활동이 허락된다. 즉, 악한 세력은 강력하지만 자유롭지 않다. 다시 말해 스스로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권세는 받은 권세이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대상과 범위와 시간도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넘지 못한다. 본문에서 이처럼 두려운 존재들조차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면, 더더욱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지금 어떤 악한 존재도 그리스도의 왕권을 넘어 인간의 삶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 내가 살아가면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를 공격하는 귀신이나 악마의 힘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람과 상황과 미래를 마주할 때 그것들이 내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만나왔고 만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고, 나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이나 상황을 만나기도 하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럴 때 그 문제가 내 삶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문제는 더 크게 보이고 하나님은 더 작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 밖에서 독립적으로 행사되는 절대적인 권세는 없다. 내가 두려워하는 현실이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문제가 아무리 커 보여도 그 문제가 내 삶의 주인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그 사람이 내 인생의 마지막 결정권자는 아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해도 미래가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의 마지막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고 지금 왕으로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힘도 그분의 통치를 밀어내고 내 삶의 최종 결정권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보이지 않는 악한 존재가 나를 해칠까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눈앞의 사람과 상황과 미래를 하나님보다 더 큰 권세로 여기며 살아가도 안 된다.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사람의 힘이 하나님보다 더 큰 것처럼 생각하며 타협하고, 상황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나는 이미 두려움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현실의 위협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사람과 상황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두렵게 느껴져도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계시며 마지막 결정권은 여전히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문제를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이나 상황이 내 삶의 마지막 결정권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이 모든 것의 경계를 정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고 해서 그 일이 하나님의 통치 밖에서 독립적으로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거나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왕이시며 마지막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그분께 붙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악보다 크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까? How? 1) 두려운 상황 속 ‘두렵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 결재권이 있음을 고백하기 2)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다면 오늘 멈추기 3)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날 때 하나님 앞에서 내가 돌이켜야 할 것이 있는지 살피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6-16』 WBC 성경주석 52B (서울: 솔로몬, 2004).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Beasley-Murray, G.R. Revelation.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8. Caird, G.B.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York: Harper & Row, 1966. Fanning, Buist M. Revelatio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Koester, Craig 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nchor Yale Bible 38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Ladd, George Eldon.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2.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3. 4d ago

    요한계시록 8.6-13 마지막 찬스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에서 나팔이 울릴 때마다 창조세계가 흔들린다. 땅과 식물이 타고, 바다가 피로 변하며, 물이 써지고, 해와 달과 별의 빛까지 어두워진다. 마치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가 하나씩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한꺼번에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삼분의 일”이라고 말한다. 땅의 삼분의 일, 바다의 삼분의 일, 물의 삼분의 일, 하늘의 빛의 삼분의 일만 타격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로 시작되었지만 아직 최종적인 심판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줌과 동시에 아직 돌이킬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13절에서 독수리는 “화, 화, 화”라고 외친다. 이 ‘화’는 구약 예언자들의 ‘화 외침’을 떠올리게 한다. 즉,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먼 미래에만 일어날 일로 미뤄 둘 수 없다. 성경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를 이미 마지막 때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단지 먼 미래의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지막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오늘 일어나는 모든 재난과 고난을 어떤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본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악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시고, 자신의 나라를 완성해 가신다. 그러므로 세상이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관심이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어떤 사건일까?”, “이제 정말 종말이 가까운 것일까?”를 계산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있는가?”이다. 마지막 때를 산다는 것은 종말의 날짜를 계산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를 오늘 듣고,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돌이키며 사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삼분의 일”은 바로 그 사실을 보여 준다. 심판은 이미 현실 속에서 나타나지만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회개할 수 있고, 아직 방향을 바꿀 수 있으며, 아직 하나님께 돌아갈 시간이 남아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중에 바꾸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깨닫게 하셔도 조금 더 미루며, 삶이 다시 편안해지면 경고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13절의 “화, 화, 화”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심판이 남아 있음을 알려 준다. 기회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단지 나를 겁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지금 돌이키게 하기 위한 은혜이다. 최종 심판 전에 경고하시는 것은 아직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번 깨닫게 하셨는데도 계속 미루고 있는 일이 없는지,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붙잡고 있는 죄는 없는지, 세상의 혼란을 보며 다른 사람과 시대만 판단하고 정작 나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마지막 때를 살아간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삶은 하나님 없이 계속될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결국 오늘 본문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이미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래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며, 하나님은 지금도 악을 심판하시고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그러나 아직 최종 심판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두려움 속에서 마지막 날을 계산할 때가 아니라 회개할 때이다. 아직 “삼분의 일”일 때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 듣고, 아직 기회를 주실 때 죄에서 돌이키며, 오늘 내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답게 오늘 어떻게 돌이켜야 할까? How? 1) 하나님이 반복해서 깨닫게 하시는 한 가지를 오늘 바로 순종하기 2)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나의’ 죄를 오늘 바로 회개하기 3) 그 죄를 반복하게 만드는 한 가지 행동이나 환경을 오늘 끊기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I)』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1). 브라운, 레이몬드 E. 『요한복음 I: 표적의 책』 최흥진 역. 앵커바이블 (서울: CLC, 2013). 슈미트, W. H. 『구약성서 입문』 차준희, 채홍식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6-16』 WBC 성경주석 52B (서울: 솔로몬, 2004).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Bultmann, Rudolf. The Gospel of John: A Commentary. Translated by G.R. Beasley-Murray. Edited by R.W.N. Hoare, J.K. Riches. Philadelphia, PA: Westminster Press, 1971. Koester, Craig 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nchor Yale Bible 38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Prigent, Pierre. L'Apocalypse de Saint Jean. Commentaire du Nouveau Testament ⅩⅣ; 3rd ed. Genève: Labor et Fides, 2000.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4. 5d ago

    요한계시록 8.1-5 기도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하늘의 침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침묵은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시간이 아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기 직전의 폭풍전야이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향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받으신다. 이후 천사는 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땅에 쏟고,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난다. 즉, 성도들의 기도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시는 일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자신의 심판과 정의,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역사와 연결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기도를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처럼 생각한다.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으면 행동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에야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특히 세상의 악과 불의, 내가 바꿀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하면 기도가 실제로 소용이 있는 것인지 의심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성도의 기도를 허공으로 사라지는 말로 보도하지 않는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자신의 나라를 이루는 역사와 연결하신다. 그렇다면 기도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행동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자신의 뜻을 이루시도록 구하며 그분의 역사에 참여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는 추상적인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당하고, 악이 힘을 얻고, 불의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주세요.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해 주세요. 주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 라고 선포하는 기도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심판을 구하는 기도라고 해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망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의를 회복하고 악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며, 나팔은 동시에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나의 분노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다. 악이 멈추고, 잘못된 것이 바로잡히며,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나는 기도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기도의 능력을 너무 작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뜻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만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악과 불의를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실제로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결국 성도의 기도는 작지 않다. 내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올라가며, 하나님은 그 기도를 자신의 나라를 이루시는 역사와 연결하신다. 그러므로 악과 불의 앞에서 무력하다고 생각하며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역사에 기도로 참여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How? 1) 자기 전 주기도문 하고 자기 2) 악과 불의를 볼 때 비난으로 끝내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와 회개를 위해 기도하기 3) 내가 바꿀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 “먼저 기도”하기 [참고문헌] 라이트, N.T., and M.F. 버드. 『신약성경과 그 세계: 첫 그리스도인들의 역사, 그들이 남긴 문헌, 그리고 그들의 신학』 박규태 역. (서울: 비아토르, 2024).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6-16』 WBC 성경주석 52B (서울: 솔로몬, 2004). Bauckham, Richard.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New Testament The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de Villiers, Pieter G.R. "The Eschatological celebration of salvation and the prophetic announcement of judgment : the message of Revelation 8:1-6 in the light of its composition." Neotestamentica 41, no. 1 (2007): 67–96. Koester, Craig 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nchor Yale Bible 38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Ladd, George Eldon.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2. Maston, J. "The Testament of Adam and Revelation 8:1-13: Heavenly Silence." In Reading Revelation in Context: John's Apocalypse and Second Temple Judaism, 80–6. Grand Rapids, MI: Zondervan Academic, 2019. Mathewson, David L. Revelation: A Handbook on the Greek Text. Baylor Handbook on the Greek New Testament. Waco, TX: Baylor University Press, 2016.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Prigent, Pierre. L'Apocalypse de Saint Jean. Commentaire du Nouveau Testament ⅩⅣ; 3rd ed. Genève: Labor et Fides, 2000.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malley, Stephen S.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5.

  5. 6d ago

    요한계시록 7.9-17 하나님의 마지막 장면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의 큰 무리는 환난을 피한 사람들이 아니라 큰 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아플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고, 견디기 힘든 시간을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환난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고, 어린양의 피로 씻긴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장막을 쳐서 보호해 주시고, 어린양은 그들의 목자가 되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지금의 상황을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가 오래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 같고, 눈물이 반복되면 이 아픔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현재의 고난으로 하나님까지 판단하게 된다. “왜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까?”, “왜 나를 그냥 두실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지금의 현실만 보고 결론을 내리지 말라고 말한다. 성도의 마지막은 환난이 아니다. 굶주림도 목마름도 뜨거운 고통도 마지막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마지막 장면은 하나님이 손수 그들을 보호하고 위로하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고난이 빨리 끝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언제 끝날지 몰라도 이것이 나의 마지막은 아니라는 사실을 붙드는 것이다. 지금 이해되지 않아도 어린양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고, 결국 자신의 백성을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힘든 순간일수록 지금의 상황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마지막을 바라봐야 한다. 오늘 눈물을 흘리고 있어도 그 눈물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환난을 지나고 있어도 마지막에는 어린양의 품 안에서 모든 고통이 끝날 것을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일이 오래될 때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재의 상황만 보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난이 빨리 끝나는 것만 바라기보다 그 가운데서도 어린양을 따라가고 있는지, 지금의 눈물 너머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결국 지금의 고난은 나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다. 어린양은 끝까지 나의 목자가 되어 나를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은 마침내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이 힘들어도 지금의 상황으로 내 인생의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마지막을 알고 있는 사람답게 오늘을 견디며 어린양을 따라가야 한다. 한마디로 낙심은 내가 보는 현재를 마지막 장면으로 착각할 때 깊어지고, 믿음은 하나님이 보시는 마지막 장면으로 현재를 다시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는 마지막 장면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How? 1) 낙심될 때 하나님이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심을 기억하기 2) 힘든 순간에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다”라고 고백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기 3) 늘 하나님을 입으로, 삶으로 예배하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6-16』 WBC 성경주석 52B (서울: 솔로몬, 2004). 차준희. 『6개의 키워드로 읽는 이사야서』 LTC 주제강연 시리즈 06 (서울: 성서유니온, 2020).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Beasley-Murray, G.R. Revelation.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8. Fanning, Buist M. Revelatio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Koester, Craig 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nchor Yale Bible 38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Satake, Akira.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ritisch-exegetischer Kommentar über das Neue Testament 16.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08.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malley, Stephen S.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5. Wolff, H.W. Anthropologie des Alten Testaments: Mit zwei Anhängen neu herausgegeben von Bernd Janowski. 2nd ed.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2018. Zeller, Dieter. "Zum Tempusgebrauch in der Offenbarung des Johannes." In Poetik und Intertextualität der Johannesapokalypse. Wissenschaftliche Untersuchungen zum Neuen Testament 346, 27–44. Tübingen: Mohr Siebeck, 2015.

  6. Oct 22

    요한계시7.1-8 흔들리는 것, 흔들리지 않는 것

    2. 내 삶에 적용 요한계시록 6장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 앞에서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 준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신다. 인침은 그 사람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누구인지 알고 계시며 그들에게 자신의 소유라는 표를 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이다. 그리고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치시고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고 말하며, 성도들이 “구원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앞으로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내가 잘될 때만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갈 때만 하나님께 속한 것도 아니다. 상황이 흔들려도 나의 소속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불안할 때 자꾸 미래를 알려고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지금 하는 일이 잘될지,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오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보다 먼저 “너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묻는다. 세상에 심판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먼저 인치신다. 세상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누구인지 아시고 인정하신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다는 것이 앞으로 고난을 겪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요한계시록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서도 박해와 고난을 겪는다. 그러나 어떤 고난도 그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바꾸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환난이나 박해나 위험조차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진짜 안전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상황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그의 명령을 삶에서 실천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간다. 그렇다면 불안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미래를 통제하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나의 소속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내 계획이 흔들려도 이 사실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져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서 나를 자신의 사람으로 아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식도 분명하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선택하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불안한 일이 생길 때 무엇으로 나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돈과 계획과 사람들의 인정이 있어야 안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상황이 어려워질 때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의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미 하나님의 사람이면서도 세상이 나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다.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미래가 불확실해도 두려움에 나의 정체성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상황이 흔들릴수록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기억하고, 오늘도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불안할 때 ‘나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고백하기 2) 하나님이 나의 보증인임을 기억하기 3) 하루를 마칠 때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답게 살았는지 돌아보기 표는 다음을 참조하라. ⁠https://drive.google.com/file/d/12UHBP7VEDBNKBjons2lWDVNOkwJIHNaf/view?usp=sharing⁠

  7. Oct 21

    요한계시록 6.9-17 끝이 안 보여도 하나님 신뢰하기

    2. 내 삶에 적용 하나님의 자녀로 신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행복 보증 수표는 아니다. 오늘 본문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지켰지만, 그 결과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했는데도 고난을 받았고, 결국 “어느 때까지입니까?”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했는데 오히려 손해를 볼 때가 있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다. 기도했는데 상황이 달라지지 않고, 하나님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지 답답할 때도 있다(cf. 시편 7편).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직접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직접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자신들이 당한 불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판단해 주시기를 구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그들이 기대했을지도 모르는 즉각적인 심판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고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모르고 계신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신 것도 아니었다. 그들을 인정하시고 받아 주셨지만, 하나님의 때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바로 해결되지 않을 수 있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이 하나님의 무관심을 의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섯째 인이 떼어지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세상의 왕들과 권력자들, 부자들과 강한 자들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자신을 지킬 수 없다. 세상에서는 힘과 돈과 지위가 사람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서 피난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직접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상대방에게 똑같이 갚아 주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솔직하게 부르짖고, 판단과 보응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순교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옳게 판단하실 것을 믿으면서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정의를 잊으신 것은 아니다. 나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는지 돌아봐야 한다. 내가 직접 상대방에게 갚아 주려고 하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질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성도들의 “어느 때까지입니까?”라는 기도는 외면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셨고 그들을 인정하셨으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정의를 세우신다. 그러므로 억울함과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도 내가 직접 심판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나보다 더 정확하고 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응답이 늦어 보여도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며 오늘 맡겨진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렇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복수마저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How? 1) 억울한 일이 생기면 사람에게 먼저 말하기보다 하나님께 먼저 말하기 2)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바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멈추기 3)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이 붙여준 내 옆의 동역자에게 가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6-16』 WBC 성경주석 52B (서울: 솔로몬, 2004).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Beckwith, Isbon T. The Apocalypse of John: Studies in Introduction with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79. Berges, Ulrich. Jesaja 55-66. Herders Theologischer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Freiburg, Basel, Wien: Herder, 2022. Caird, G.B.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New York: Harper & Row, 1966. Fanning, Buist M. Revelatio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Koester, Craig R. Revelation: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The Anchor Yale Bible 38A.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14.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Satake, Akira.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ritisch-exegetischer Kommentar über das Neue Testament 16.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08.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malley, Stephen S.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5. Sweet, J.P.M. Revelation. Westminster Pelican Commentaries. Philadelphia, PA: The Westminster Press, 1979.

  8. Oct 20

    요한계시록 6.1-8 통제할 수 없어도 어린양 신뢰하기

    2. 내 삶에 적용 우리의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전쟁과 재난, 경제적인 어려움과 질병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런 일을 마주하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정말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세상도 평안하지 않다. 붉은 말이 등장하면서 평화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인다. 검은 말이 등장하면서 먹을 것이 부족해지고 생존에 필요한 것들의 가격이 치솟는다. 청황색 말 뒤에는 사망과 음부가 따라온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전쟁과 기근과 죽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말들이 마음대로 뛰어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먼저 어린양이 인을 떼고, 생물들이 “오라”고 명령하며, 기수들에게는 권세가 주어진다. 심지어 사망과 음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세도 땅의 사분의 일로 제한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눈에는 통제 불가능한 혼란처럼 보여도, 본문은 그 모든 것이 어린양의 주권 밖에서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첫째 말이 보여 주는 복음의 전진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이 있고 기근이 있으며 죽음이 존재해도 복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교회가 박해를 받고 세상이 불안정해져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복음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는다. 결국 세상의 혼란보다 더 확실한 현실은 어린양이 여전히 역사를 다스리고 계시며 복음을 전진시키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불안한 현실만 바라보며 두려움에 끌려가는 것도 아니다. 먼저 지금도 어린양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통치를 잃으신 것은 아니다. 이 믿음은 현실을 가볍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아프고, 경제적 어려움은 실제이며, 질병과 죽음도 두렵다. 그러나 그 현실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두려운 상황에서도 어린양이 주권자이심을 믿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계속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복음은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전진한다. 그렇다면 세상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나까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세상이 흔들릴수록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를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불안한 사람에게 소망을 전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린양의 통치를 믿는 사람의 모습이다. 우리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붙들고 있는지, 세상의 불안한 소식을 하나님의 주권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계속 전진하는 복음을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쟁과 기근과 죽음처럼 두려운 현실도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이 통제 불가능해 보인다고 해서 어린양의 통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린양은 여전히 인을 떼시며 역사를 다스리고 계시고, 그 가운데에서도 복음은 계속 전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에 붙잡히기보다 어린양을 신뢰하며 오늘 내게 맡겨진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어린양의 주권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불안할 때 예수님이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며 기도하기 2)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한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 맡겨진 한 가지를 신실하게 하기 3) 두려움이 몰려올 때 최악을 상상하기보다 어린양의 주권을 신뢰하기 [참고문헌] 아우내, 데이비드 E. 『요한계시록 6-16』 WBC 성경주석 52B (서울: 솔로몬, 2004). 펫졸리-올지아티, 다리아. "요한계시록."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Beale, G.K.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Beasley-Murray, G.R. Revelation.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8. Chilton, David. The Days of Vengeance: An Exposition of the Book of Revelation. Fort Worth, TX: Dominion Press, 1987. Fanning, Buist M. Revelation.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20. García Ureña, Lourdes. "Colour Adjectives in the New Testament." New Testament Studies 61, no. 2 (2015): 219–38. ———. Narrative and Drama in the Book of Revelation: A Literary Approach. Translated by Donald Murphy. 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 Monograph Series 175.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9. Ladd, George Eldon.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2. Osborne, Grant R. Revelation: An Exeget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Poirier, John C. "The First Rider: A Response to Michael Bachmann." New Testament Studies 45 (1999): 257–62. Schreiner, Thomas R.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3. Smalley, Stephen S.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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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매일의 삶의 예배에서 하나님과 동해하는 삶을 이뤄냅시다. Through morning devotions each day, let’s live our daily lives as worship and walk with God. Rev. Chi Hyun Kim. (Th.M; Old Testament Theology) Full Gospel Somang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