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 [Everyday Morning Devotions], 요한복음

Chi Hyun Kim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매일의 삶의 예배에서 하나님과 동해하는 삶을 이뤄냅시다. Through morning devotions each day, let’s live our daily lives as worship and walk with God. Rev. Chi Hyun Kim. (Th.M; Old Testament Theology) Full Gospel Somang Church

  1. 9h ago

    요한복음 19.12-16 누가 나의 왕인가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나에게 아주 단순하지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누가 나의 왕인가?” 입으로 누구를 왕이라고 고백하는지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누구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누구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지를 묻는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고 그를 놓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 사람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라는 말 앞에서 흔들렸다. 예수님이 무죄라는 사실보다 자신의 자리와 정치적 안전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빌라도의 결정적인 왕은 진리가 아니라 카이사르였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것을 끝까지 지킬 만큼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그렇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공동체에서 미움받을까 봐,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내가 가진 자리와 평판을 잃을까 봐 예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생각한다. 입으로는 예수님이 왕이라고 말하지만, 내 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사람의 인정과 나의 안전이라면 실제 나의 왕은 다른 존재일 수 있다. 대제사장들의 모습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결국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선언한다. 예수님을 거부하려다가 자신들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까지 포기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보내신 왕을 버리고 카이사르를 왕으로 선택한다.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이 너무 중요해진 나머지, 자신들이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지조차 보지 못한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너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혹은 너무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의 왕권을 밀어낼 수 있다. 돈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타협하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숨기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용서하지 않고, 내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뒤로 미룰 수 있다. 그 순간 내가 실제로 왕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특히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빌라도와 대제사장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결국 같은 곳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빌라도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를 두려워하고,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없애기 위해 카이사르를 왕이라고 고백한다. 서로 다른 욕망이지만 결국 둘 다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선택한다. 그래서 신앙은 “예수님은 나의 왕입니다”라는 고백만으로 끝날 수 없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면 그 사실은 선택의 순간에 드러나야 한다. 내 자리와 예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사람들의 인정과 예수님께 대한 충성이 충돌할 때, 내가 원하는 결과와 예수님의 뜻이 충돌할 때 누구를 선택하는지가 내가 실제로 섬기는 왕을 보여준다. 오늘 본문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사람들의 인정인가, 돈인가, 자리인가, 관계인가, 자존심인가? 나에게 카이사르가 있는가? 예수님은 빌라도의 재판석 앞에 서 계시지만, 역설적으로 진짜 왕은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넘겨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 삶의 왕좌에는 카이사르도, 사람들의 평가도, 나의 성공도, 나 자신도 아니라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 “누가 나의 왕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것보다 예수님을 선택하고, 내 뜻보다 왕이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는 삶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How?  1) 오늘 내가 잃을까 봐 가장 두려워하는 것 하나를 적기   1)-1 그것이 나의 카이사르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으로 대체하기  2) 화가 나거나 손해를 볼 때 즉시 행동하지 말고 “지금 내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가?”를 먼저 묻기   2)-1 우리는 자존심이 아닌 진리를 지켜야 함 3) 사람의 평가와 예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말씀 편에 서기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Ⅱ)』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폽케스, 엔노 에드자르트. "요한복음."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

  2. 1d ago

    요한복음 19.6-11 ‘권한’ 논쟁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을 보면 겉으로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은 빌라도처럼 보인다. 예수님은 붙잡혀 있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줄 수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내가 가진 권한을 모르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권한의 진짜 출처를 말씀하신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이 말씀은 내가 세상의 권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사람의 권력, 돈, 지위, 평가가 내 삶을 결정하는 최종 권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직장의 상사, 조직의 책임자, 나를 평가하는 사람, 내 앞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크게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며,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을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빌라도에게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권한조차 궁극적으로는 “위에서” 허락된 제한된 권한이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버지의 주권 밖에 있지 않음을 알고 계셨다. 이것은 나에게 큰 자유를 준다. 세상의 권한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권한을 사람의 권한만큼만 두라는 것이다. 사람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내 삶의 최종 주권자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사람들의 평가와 결정 때문에 두려워질 때마다 “이 권한도 위에서 허락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반대로 나에게 어떤 권한이 주어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로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공동체에서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판단하라고 받은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권한이다. 빌라도의 문제는 자신에게 권한이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 권한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지 못했다는 데 있다. 나 역시 내가 가진 지위와 영향력을 내 소유처럼 사용한다면 빌라도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 빌라도의 권한이 위에서 주어졌다고 해서 빌라도에게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고 말씀하신다. 더 큰 죄가 있다는 것은 빌라도에게도 죄와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 결국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가지고 내가 한 잘못을 합리화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겠지”라고 말하면서 내가 해야 할 옳은 선택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오늘 본문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의 권한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가? 사람의 평가와 결정이 하나님의 주권보다 더 크게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반대로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권한을 내 권리처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핑계 삼아 내가 져야 할 책임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은 세상의 권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권한 위에 하나님의 권한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빌라도가 자신이 예수님을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누가 진정한 권한의 주인인지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나도 사람을 하나님처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나에게 맡겨진 권한을 내 것처럼 휘두르지도 말아야 한다. 모든 권한은 위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며 사람 앞에서는 담대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How? 1)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하거나 신앙적 기준을 포기하지 않기 2) 내게 맡겨진 권한을 ‘내 것’처럼 휘두르지 않기 3) 하나님이 모든 일 위에 있음을 인지하기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Ⅱ)』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

  3. 2d ago

    요한복음 18.33-40 진리의 증언자, 예수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떤 왕이신지를 보여 준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이 생각하는 방식의 왕이 아니셨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나라가 세상과 아무 상관없는 나라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른 기원, 다른 질서, 다른 방식으로 온다는 뜻이다. 세상의 왕권은 힘으로 자신을 지키고,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정치적 계산으로 자기 자리를 보존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왕권은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종들을 싸우게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무력으로 왕권을 증명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통해 자신이 어떤 왕이신지를 드러내신다. 이 말씀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왕을 원하는가? 나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방식으로 나를 지켜 주는 왕을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문제를 힘으로 해결해 주고, 내 편을 들어 주고, 내 억울함을 즉시 풀어 주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겨 주는 왕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방식의 왕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진리의 증언자로 오셨고, 십자가를 통해 왕이심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의 사명은 진리를 증언하는 것이다(37절). 그리고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내가 진리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다. 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이 드러내시는 진리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빌라도처럼 “진리가 무엇이냐”고 말하면서도, 정작 예수님의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오늘 본문은 내가 빌라도의 자리에 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진리를 앞에 두고도 진리를 외면할 수 있다. 예수님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 편에 서지 않을 수 있다. 아무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선택에서는 예수님을 내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단지 예수님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진리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진리 편에 서는 것이다. 또한 무리는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선택했다. 바라바는 단순한 약자가 아니라 폭력적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인물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진리를 증언하시는 예수님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힘을 행사하는 바라바를 원했다. 이것도 나의 모습이다. 나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더 빠르고 강하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십자가의 길보다 바라바의 방식을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도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힘으로 이기려 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서려고 한다. 억울해도 거짓으로 자신을 지키지 않고, 손해가 있어도 예수님의 방식으로 반응하려 한다. 세상이 바라바를 선택해도, 제자는 진리의 증언자이신 예수님께 속해야 한다. 오늘 본문은 나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진리에 속한 사람인가? 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이 왕이심을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바라바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진리를 알면서도 빌라도처럼 정치적 계산과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은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르는 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예수님의 왕권 방식에 나를 맞추는 삶이다. 예수님은 진리의 증언자로 오셨고, 십자가를 통해 왕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진리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방식으로 선택하며, 세상의 힘과 폭력과 타협이 아니라 진리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진리의 증언자이신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라면, 나의 삶도 그 진리 편에 서는 증언이 되어야 한다. 진리를 증언하는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은 어떤 것인가? How? 1) 중요한 선택을 하기 전, 먼저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실까?”를 묻기 2)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핑계를 버리기 3)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 대신 진실하고 온유한 말을 선택하기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Ⅱ)』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Dodd, C.H. Historical Tradition in the Fourth Gospel.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3.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

  4. 3d ago

    요한복음 17.20-26 나를 향한 예수님의 기도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 기도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은 눈앞에 있는 11제자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20절).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가 그 시대 제자들에게만 머물지 않고,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될 모든 사람에게까지 확장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단지 과거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다. 이 기도는 나를 향한 예수님의 기도이다. 이 사실은 큰 위로가 된다. 나는 내가 예수님을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예수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 내가 예수님을 알기도 전에,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믿게 될 사람들 안에 나까지 포함시키셨다. 신앙은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애쓰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아버지께 데려가시기 위해 기도하신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구하신 것은 단순히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이 하나 됨은 단순히 싸우지 않고 지내는 정도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신 것처럼,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 됨은 인간적인 친분이나 취향의 일치가 아니라, 예수님과 아버지에 대한 헌신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이다. 이 말씀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예수님의 기도에 맞게 살고 있는가? 예수님은 내가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기를 기도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내 감정과 자존심과 판단으로 공동체를 나누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붙들기보다, 나와 맞는 사람만 가까이하고 불편한 사람은 마음속에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하나 됨을 통해 세상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을 믿고 알게 되기를 원하셨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영적 연합 자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믿는 자들이 서로에게 보이는 사랑을 볼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품고, 용서하고, 세워 주고,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하나 됨은 단지 교회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증언이다. 이것은 무겁게 다가온다. 내가 공동체 안에서 사랑 없이 말하고 행동할 때, 그것은 단지 한 사람과의 관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나누어 주신 영광, 곧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명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품고, 내 자존심보다 예수님의 명령을 앞세우고,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나를 낮출 때, 그 삶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증거가 된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있는 곳에 믿는 자들도 함께 있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신앙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의 영광을 보는 자리로 부름받은 삶이다. 오늘 본문은 나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나를 향한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하나 됨을 깨뜨리는 사람인가, 이루어 가는 사람인가? 내 삶은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보게 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을 흐리게 하는가? 나는 아버지의 사랑이 내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신앙은 나 혼자 예수님을 잘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고,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나를 향한 예수님의 기도 앞에서 살아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하나 됨을 깨뜨리는 말과 태도를 내려놓고,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셨다면, 나의 삶도 그 기도에 응답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기도에 응답하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How? 1) 예수님이 나를 위해 직접 기도하신 사실을 기억하기 2)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됨을 깨뜨리는 말과 태도 내려놓기 2)-1 맞는 말보다 부드러운 말하기 3) 교회 밖 사람 앞에서도 예수님 믿는 사람답게 반응하기 3)-1 불평 대신 감사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Ⅱ)』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폽케스, 엔노 에드자르트. "요한복음."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Schnackenburg, R.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Translated by David Smith, G.A. Kon. Herder's Theolog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3 vols. New York, NY: Crossroad, 1987.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

  5. 4d ago

    요한복음 16.25-33 세상 별거 없노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떠나심 앞에서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위로의 말씀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을 들으며 근심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 떠나심 이후에 더 분명한 계시와 더 직접적인 기도의 길이 열릴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직접 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친히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요 16:25-27). 이 말씀은 당시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우리도 기도할 때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내 기도가 부족해서, 내 믿음이 약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친히 제자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믿는다면,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 기도는 멀리 계신 하나님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나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제자들은 “이제야 믿습니다”라고 고백했지만(요 16:30), 예수님은 곧 그들이 흩어지고 자신을 혼자 둘 것을 아셨다(요 16:32). 그들의 믿음에는 고백은 있었지만 위기를 버틸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다. 예배 자리에서는 믿는다고 말하지만, 막상 두려움과 손해와 위기가 오면 쉽게 흩어진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지만, 현실 앞에서는 제각기 내 자리로 도망가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혼자 둘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에게 평안을 주기 원하셨다. 그들이 나중에 자신들의 실패를 떠올리며 무너질 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말씀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예수님은 내가 강해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흩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사랑하시고, 다시 붙드시며, 사명을 맡기신다. 예수님 안에서 보면 “세상 별거 없노”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세상의 환난이 가볍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은 실제로 제자들을 흔들고, 두렵게 만들고, 흩어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마지막 말을 가지고 우리를 정의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를 불안하게 할 수는 있어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평안을 빼앗을 수는 없다. 세상은 나를 흔들 수는 있어도, 예수님의 승리를 무효로 만들 수는 없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도하고 있는가? 나는 내 믿음을 과신하고 있지는 않은가? 위기 앞에서 흩어질 만큼 연약한 나를 아시면서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나는 붙들고 있는가? 나는 세상의 환난을 예수님의 승리보다 더 크게 보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은 세상에 환난이 없다고 말하는 삶이 아니다. 세상에서 환난은 있다. 그러나 신앙은 그 환난보다 크신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삶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내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아버지께 나아가야 한다. 흩어질 만큼 약한 믿음이라도 예수님께 다시 붙들려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흔들 때마다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 그리고 앞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에서의 환난은 우리를 정의하는 마지막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 우리를 정의하는 마지막 말이다. 예수님 안에서 세상, 별거 없다. How? 1) 나의 모습이 어떻든 하나님은 ‘친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붙들고 기도하기 1)-1 기도하기 전, 일어나서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사랑하신다’고 고백하기 2) 내 믿음 과신하지 말고 나의 연약함 솔직하게 인정하며 회개하기 3) 세상의 환난보다 예수님의 승리를 더욱 크게 보기 3)-1 불안이 올 때 세상이 마지막 말을 던지는가? 예수님이 던지는가? 생각하기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Ⅱ)』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폽케스, 엔노 에드자르트. "요한복음."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

  6. Aug 13

    요한복음 16.7-15 책망 or 인도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두 방향으로 보여 준다. 하나는 세상을 책망하시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일이다. 성령님은 세상의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폭로하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이끄신다. 그래서 성령님의 사역은 “책망 or 인도”로 정리할 수 있다 여태까지 나온 성령님의 사역을 정리하면 성령님은 새 가족을 창조하시고(3:3, 5), 참된 예배를 가능하게 하시며(4:24), 교회의 실천들, 곧 정결과 선포의 실천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그것들이 열매 맺게 하시고(6:63; 14:17), 육신이 되신 말씀으로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신다(요 15:26). 그리고 성령님은 세상의 불신앙, 하나님이 예수님을 자신의 우편에 앉히신 것, 예수님이 심판의 주인이라는 것을 폭로하신다(요 16:8-11).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모든 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신다(요 14:26; 16:14). 그러므로 성령님은 단지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님은 내가 무엇을 잘못 보고 있는지 드러내시는 분이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선택의 자리에서는 예수님보다 내 생각과 감정과 세상의 기준을 더 신뢰할 때가 많다. 예수님의 길이 옳다고 말하면서도 손해를 보면 피하고, 십자가가 영광이라고 말하면서도 편안함과 인정받는 길을 더 좋아한다. 성령님은 바로 이런 내 안의 불신앙과 잘못된 판단을 책망하신다. 그러나 성령님의 책망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정죄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거짓된 판단에서 깨우는 은혜이다. 내가 죄를 죄로 보지 못하고, 의를 의로 보지 못하고, 심판을 심판으로 보지 못할 때, 성령님은 내 눈을 열어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책망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변명하거나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또한 성령님은 나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여기서 진리는 내가 알고 싶은 모든 정보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계시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떠나심의 의미를 처음부터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들어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면서도 현실 앞에서는 흔들릴 때가 많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런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알게 하신다. 성령님의 인도는 결국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왜 실패가 아니라 영광인지, 예수님의 떠나심이 왜 상실이 아니라 유익인지, 예수님의 길이 왜 참된 길인지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기 뜻을 더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더 바르게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성령의 일을 인식하려면 성령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실하게 그에게 매달리고 그를 따를 때, 그들의 공동체적 실천과 선포는 성령의 임재를 증언한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은 혼자 감동받고 끝나지 않는다. 그의 삶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실천이 나타나고, 그의 입술에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선포가 나타난다. 오늘 본문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성령님의 책망 앞에서 회개하는가, 아니면 방어하는가? 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님의 진리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는가? 내 삶과 공동체의 실천과 선포는 성령님의 임재를 증언하고 있는가? 신앙은 성령님을 내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다. 참된 신앙은 성령님께 책망받고, 성령님께 인도받는 삶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성령님의 책망을 피하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성령님의 책망 앞에서 돌이키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드러내는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제자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How? 1) 양심을 통해 말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무시하지 않기 2) 성령님이 책망하실 때 분노가 아닌 회개로 반응하기 3) 나의 모든 행동이 예수님을 드러낸다는 것을 기억하기 [참고문헌]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폽케스, 엔노 에드자르트. "요한복음."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 “ἐλέγχω”. Gerhard Kittel.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Geoffrey W. Bromiley (Grand Rapids, MI: Eerdmans Publishing, 1964): 473–76.

  7. Aug 12

    요한복음 15.22-27 예수님을 증언하는 성령 그리고 우리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셨고, 이미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다. 문제는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내 어둠을 내려놓기 싫어하는 데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 죄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 드러남은 나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둠에서 나오게 하기 위한 은혜이다. 그런데 나는 말씀 앞에서 회개하기보다 불편해하고, 피하고, 합리화할 때가 많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욕망과 교만과 불순종을 건드릴 때, 나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다시 어둠 속으로 숨으려 하는가?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가 드러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막연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피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도 충돌한다. 또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으로 나를 부른다. 세상은 예수님을 불편해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미워한다. 그래서 나도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을 부담스러워한다.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예수님의 이름을 숨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은 내 힘과 말솜씨로 예수님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나는 그 증언에 내 삶과 입술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님께서 내 삶과 입술을 통해 예수님을 증언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오늘 본문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말씀 앞에서 핑계하고 있는가,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있는가, 증언하고 있는가? 나는 세상이 불편해할까 봐 예수님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은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아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말씀 앞에서 내 죄를 숨기지 않고, 진리의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말씀 앞에서 핑계를 내려놓고, 내 삶과 입술을 성령님께 내어 드려야 한다. 세상이 불편해해도, 예수님을 증언하는 성령 안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성령님과 함께하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가? How? 1) 예수님이 나를 정죄한다고 생각하지 말기 1)-1 예수님의 말과 사역은 정죄가 아닌 우리로 하여금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 2) 예수님의 말씀이 이미 내게 분명히 보여 준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보기 ex) 용서해야 할 사람, 끊어야 할 습관, 정직하게 말해야 할 일, 회복해야 할 예배 3) 성령님이 내 입을 통해 증언하는 예수님을 말로만 증언하지 않고 삶으로도 증언하기 ex) 불평대신 감사 [참고문헌] 비슬리-머리. 『요한복음』 이덕신 역. Word Biblical Commentary 36 (서울: 솔로몬, 2001).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폽케스, 엔노 에드자르트. "요한복음."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

  8. Aug 11

    요한복음 15.18-21 Like Father Like Son (부전자전)

    2. 내 삶에 적용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 속한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을 말씀한다.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미움받는 이유는 단순히 성격이 이상하거나 세상과 어울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속한 자들이며, 예수님의 이름을 대표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은 자기에게 속한 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더 이상 세상의 소속과 가치관 안에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택하셨고, 그들의 정체성과 충성의 대상은 예수님께로 옮겨졌다. 그러므로 세상이 제자들을 낯설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마디처럼 이것은 “Like Father Like Son”, 곧 부전자전의 삶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속하셨고, 아버지를 드러내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속했고, 예수님의 이름을 대표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의 일을 행하셨듯이, 제자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길을 걷는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했다면, 예수님께 속한 제자들도 같은 미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제자들을 겁주기 위한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뒤 세상에 남아 있을 제자들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신다. 세상의 미움은 제자들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께 속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비난이 복음 때문은 아니다. 나의 교만, 무례함, 지혜 없음 때문에 받는 비난을 박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내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표시이다. 예수님은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는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박해했다면 제자들도 박해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보다 더 편한 길, 더 좋은 대우, 더 안전한 신앙을 기대할 수 없다. 예수님이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셨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 세상의 인정을 최종 목표로 삼을 수 없다. 신앙은 세상에게 사랑받기 위해 예수님을 적당히 숨기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자로 분명히 서는 삶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박해만 말씀하지 않으신다.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고 하신다.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듯이,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두 가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사람들은 박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지킨다. 제자는 박해 때문에 증언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세상의 미움의 근본 이유도 밝혀 준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제자들에게 이 모든 일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했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속한 제자들도 미워한다. 반대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자에서 예수님께 속한 자로 정체성이 바뀐다. 그는 예수님의 친구이며,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오늘 본문은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가? 나는 세상의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속한 정체성을 흐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는 불편함과 손해를 부끄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세상이 싫어할까 봐 예수님의 말씀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은 세상에게 미움받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사는 것이 아니다. 참된 신앙은 예수님께 속한 자로서 예수님의 이름을 대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셨듯이, 제자는 예수님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세상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 속한 자답게,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박해와 거절 속에서도 말씀을 지킬 사람들을 기대하며 증언하는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을 닮는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How? 1)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1)-1 예수님을 믿는 사람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ex) 식사 기도하기, 신앙적 가치관 말하기, 예배와 공동체를 우선순위에 두기 2) 세상의 억까 앞에서 “예수님도 먼저 이 길을 걸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견디기 3) 오늘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는 작은 기회를 찾기 ex) 힘든 사람에게 말씀으로 위로하기, 복음적 가치관 나누기 [참고문헌] 바레트, 찰스 K. 『요한복음 (Ⅱ)』 국제성서주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크루즈, 콜린 G. 『요한복음』 배용덕 역.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4 (서울: CLC, 2013). 폽케스, 엔노 에드자르트. "요한복음." In 취리히성경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21. Michaels, J. Ramsey. The Gospel of Joh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0. Thompson, Marianne Meye. John: A Commentary. The New Testament Library 1 e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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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매일의 삶의 예배에서 하나님과 동해하는 삶을 이뤄냅시다. Through morning devotions each day, let’s live our daily lives as worship and walk with God. Rev. Chi Hyun Kim. (Th.M; Old Testament Theology) Full Gospel Somang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