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사도행전 18장 12절 – 17절 제목 : (사도행전 51) 착한 사람 한국인에게는 묘한 편견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착함과 우둔함을 같은 개념으로 여깁니다. 착한 사람은 순진한 사람이고 순진한 사람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세상 물정을 모르기 때문에 이용당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어머니들은 “아이가 참 착하게 생긴 것 같다”고 말하면 칭찬이 아니라 욕으로 듣는다고 합니다. 이 험한 세상 순진하면 못산다고 여겨서 영악?하게 키우려고 애를 씁니다. 착한 사람은 세상의 먹잇감이며 지혜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편견이 만연한 사회입니다. 착한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아가야의 총독인 갈리오는 네로 황제의 스승이면서 최고의 철학자 세네카의 형이었습니다. 당시 문헌을 통해 알려진 갈리오의 성품은 한 마디로 착함 그 자체였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었다고 합니다. 과연 착한 사람이었던 갈리오가 로마의 험난한 정치 세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아주 훌륭히 잘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착함이 어리석음과 등호가 아니다. 사도행전 18장 12절. 갈리오가 총독이었을 때 유대인이 일제히 바울을 로마 법정에 송사하였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갈리오의 착함을 단호하지 못함으로 착각하고 이용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대규모 군중이 몰려오면 민요가 날까 두려워 자신의 뜻을 수용할 것이라는 몇 수 앞을 내다본 시위였는지 모릅니다. 갈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사도행전 18장 14절,15절. “나쁜 일을 했으면 수용하겠으나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 스스로 처리하라” 로마법으로 바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은 바울에게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로마 시민이기 때문에 법적 절차 없이 형을 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총독 갈리오의 착함을 사용하여 바울 사도를 보호하셨습니다. 착함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싫다는 소리 못하고 그냥 당하기만하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착함이 아니고 소심하고 극단적인 내성 성격 그리고 겁장이라고 표현해야 맞습니다. 갈리오를 통해 ‘착함’에 대해 이렇게 재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착함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유대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법을 죽이는 쪽으로 이용하려 했다. 반면 갈리오는 사람을 사랑하였기에 살리는 쪽으로 법을 해석 적용하려 했습니다. 모질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둘째, 착함이란 원칙을 지키는 태도입니다. 갈리오는 분명히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8장 14절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법대로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칙을 지키면 냉정하고, 딱딱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주의야 말로 따뜻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법은 약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법규가 많습니다. 그 법규를 제대로 실행하고, 판사 고유 권한으로 약자 우선의 유권 해석만 제대로 내려도 백성들은 감사하고, 억울함을 풀 수 있습니다. 착하게 산다는 건 원칙을 지킨다는 말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오묘하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바울 자신은 타지에서 열린 재판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억울하게 법정에 서는 구나 생각하며 침울했을 것입니다. 반면 고린도의 유대인은 갈리오가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법정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전장이라 여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뿔싸. 복병이 있었습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고 말았습니다. 이제 유대인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까지 합니다. 살며 도움은 의외의 사람으로부터 올 때가 대부분이었습니.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자력이 아니었습니다. 고레스 왕이 마음을 착하게 먹고 이스라엘 민족을 풀어주었습니다. 고레스가 왜 마음이 착하게 바뀌었는지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그저 성경은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변화시키사" 그것이 답입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와 온 유대인이 하만의 궤계로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지십니다. 어느 날 아닥사스다 왕이 불면에 시달립니다. 하도 잠이 안와 왕의 역대 왕들의 일기 좀 가져와라 해서 밤중에 잠 안자고 일기를 봅니다. 이해가 됩니까? 심심해서 쭉 읽다가 과거 모르드개의 행적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충신이구나.’ 그래서 상황이 역전되어 모르드개가 죽어야 되는 그 자리에서 하만이 죽게 됩니다. 그날따라 왜 불면인지, 그날따라 지겨운 역대 일기를 읽으려 했는지 상식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답은 하나님이 역사하셨다입니다. 하나님의 물밑 작업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십시오. 착한 사람 만나게 하시고, 착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괜히 호의를 베풀고, 상황을 역전시키실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일시 : 2018년 10월 3일 설교 : 하천운 목사 성경 : 사도행전 18장 12절 - 17절 제목 ; (사도행전 51) 착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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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October 2, 2018 at 3:20 PM U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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