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사도행전 18장 24절 – 19장 7절 제목 : (사도행전 53) 기독교만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 사도행전 18장 24절, 25절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사도행전 19장 3절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아볼로도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고 하고,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도 요한의 세례만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아볼로가 살던 알렉산드리아는 당시에 제2의 도시였고, 60만 권 이상의 도서를 소장한 도서관이 있을 정도로 철학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도시였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전체 인구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흩어진 유대인에게 매우 너그러운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은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경을 제작하여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할 정도로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이었고, 필로와 같은 종교철학자의 효시를 배출할 정도로 철학의 깊이도 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는 성경을 관통하는 메시야 사상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사람을 통해 세례 요한이 메시야의 출현을 예언하고 있고, 그가 예언한 사람이 바로 예수라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통해 확신을 얻고 예수가 메시야임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성경이 각국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화되면서 전도 없이도 예수를 아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볼로처럼 학문적으로 예수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대 문헌을 추적하면서 예수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다는 책을 출판한 사람도 있습니다. 현대의 유대인중에는 예수를 배교자로 보기보다는 훌륭한 랍비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르크시즘은 예수를 공산주의자의 창시자로 보기도 합니다. ‘슈퍼스타 크라이스트’라는 뮤지컬에서는 예수는 인기인으로 그려집니다. 신앙인이 아닌 이에게 예수는 연구 대상이고, 윤리 교사이며, 모델이 됩니다. 성경은 독학으로 얻는 아볼로의 예수 지식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사도행전 18장 26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대체 아볼로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답은 사도행전 18장 27절에 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예수 십자가의 은혜의 사건을 몰랐던 아볼로의 가르침은 감탄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에 담긴 은혜를 깨달은 뒤에는 그가 누린 은혜를 끼칠 수 있었습니다. 은혜가 빠진 예수에 대한 지식은 절대 무지와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대가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시고, 나는 예수님 안에서 용서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 이것이 은혜 복음의 핵심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요구합니다. 거기까지만 알면 결국 인간의 공로가 개입되게 되고, 예수가 메시야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구원을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늘의 크리스천을 보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깊이를 자신의 삶을 통해 평가하려고 합니다. 기도 많이 한 주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떳떳합니다. 선행을 하기라도 했으면 하나님이 나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고 기도 응답도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로주의적 접근입니다. 은혜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삶의 질과 관계없이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이 곧 은혜의 역사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 말씀처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죄에 대해 예수님의 죽으심은 곧 나의 죽음이요, 의에 대해 예수님의 살아남은 곧 나의 살아남으로 믿어지는 것.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결국 아볼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학문의 대상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8절을 보면 유대인 앞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힘있게 증언”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그리스도라는 단어 앞에 관사를 붙이고 있다.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메시야)이다”라는 뜻입니다. 은혜는 사람을 학자에서 신자로 변화시킵니다. 영국에서 비교 종교학 회의가 열렸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성육신인가? 인간으로의 현현 타 종교에도 있다. 부활인가? 죽은 자의 환생 기사 타 종교에도 있다. 토론이 길어지고 있는데 C.S.루이스가 방을 잘못 찾아 들어왔습니다. “토론의 주제가 뭡니까?” “전 세계 종교 중 기독교만의 기여가 무엇인지 찾고 있었소” 루이스가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쉽죠. 은혜 아닙니까?”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일시 : 2018년 10월 9일 자유 설교 : 하천운 목사
Información
- Programa
- Publicado8 de octubre de 2018, 3:00 p.m. UTC
- Duración9 min
- ClasificaciónAp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