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문학ㆍ언어

jennifer pai-白兆美, 손전홍, 진옥순, 노혁이, 여가영, 안우산,Rti

타이완 문학ㆍ언어

  1. Aug 18

    “공짜 점심은 없다, 지식은 세상을 바꾼다”… 출판인이자 경제학자 가오시쥔(高希均) 별세 🪽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의 문을 엽니다. 타이완이 빠진 세계지도 🗺️ 2015년 타이완 소천하(小天下) 출판사에서 출판된 손그림 세계지도책 한 권이 짧은 시간에 10만 권이 팔리면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출판업이 침체되었던 당시로서는 매우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그룹 회장이었던 가오시쥔(高希均)은 이 소식을 듣고 책을 읽던 중, 지도에 타이완이 없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사는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빠져 있다는 건 어린 독자에게 큰 충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곧바로 특별팀을 꾸려 작가가 있는 폴란드로 파견했습니다. 특별팀은 다양한 자료를 준비해 작가를 설득했는데요. 덕분에 타이완이 포함된 새로운 지도책이 2017년 다시 타이완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소천하출판사에서 출판된 세계지도책 - 사진: 보커라이 “독서는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 이처럼 출판을 통해 타이완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는 데 노력해 온 가오 회장은 지난 8월 6일, 향년 90세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 ‘원견·천하문화(遠見·天下文化)’를 설립한 인물인데요. “독서는 한 사람을 구할 수 있고, 관념은 한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경제·시사 잡지 《천하잡지(天下雜誌)》와 《원견잡지(遠見雜誌)》를 창간했습니다. 또 소천하와 같은 아동 출판사를 설립해 어린이 도서 출판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가오 회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이기도 한데요. 경제학에서 비롯된 유명한 표현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天下沒有白吃的無餐, 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바로 그를 통해 타이완 사회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는 1977년 《연합보(聯合報)》에 7일간 경제 평론을 연재하면서 복잡한 경제 개념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소개했는데요. 그 중 가장 화제를 모은 글이 ‘자유경제’와 ‘사용자 부담 원칙’을 설명한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 있겠어?(天下哪有白吃的午餐)〉였습니다. 사회 제도가 경제 성장만큼 갖춰져 있지 않았던 사회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 글이었습니다. 고 가오시쥔 원견·천하문화 회장 - 사진: 원견·천하문화 제공 그럼 오늘은 타이완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 가오시쥔 회장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승사자와 스쳐지나 가던 두 경험 💀 사실 가오 회장은 별세하기 불과 두 달 전인 6월 1일, 자신의 회고록 출간 행사에 직접 참석해, 유머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회고록의 부제목은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 있겠어?’에서 ‘평화와 행복’까지(從「天下哪有白吃午餐」到「和平幸福」)〉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경제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책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면, 인생의 마지막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평화와 행복을’ 꼽은 겁니다. 특히 전쟁과 피난을 직접 경험했던 그에게 평화는 그 어떤 것보다 절실한 가치였을 텐데요. 회고록의 첫머리에서 그는 어릴 때 가족이 두 차례나 죽음의 문턱을 가까스로 피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 번은 이사로 피했던 ‘난징 대학살’이고, 또 한 번은 일본군에 붙잡혔던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난징 대학상 🩸 1936년 중화민국령 난징에 태어난 가오 회장은 한 살을 갓 넘긴 어린 나이에 전쟁을 맞았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했고, 무차별 학살과 강간 등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가오 회장 가족은 다행히도 대학살이 벌어지기 3개월 전, 수저우(蘇州)로 이사갔는데, 덕분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 중 하나를 피할 수 있었던 거죠.  제2차 세계대전 🩸 하지만 전쟁의 위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유격대에도 참여했는데요. 결국 1945년 8월 일본군에 잡혀가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일본은 8월 15일 항복을 선언했죠. 덕분에 그의 아버지는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습니다. 저승사자와 스쳐지나 가던 이 두 경험으로 그는 생명의 무상함을 일찍부터 깨달았고, 강한 평화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번화한 상하이에서 막 정권교체를 경험한 타이완으로 🚢 전쟁이 끝난 후 가오 회장 가족은 상하이에서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갔지만, 국공내전의 격화와 함께 1949년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가오 회장에게 이 피난길은 ‘모험’처럼 느껴졌다고 하는데요. 교과서에서 보던 타이완은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풍부한 아름다운 열대의 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오슝항에 도착하자 상의를 벗은 채 소리를 지르며 과일을 팔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했습니다. 당시 상하이는 ‘동양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번화한 도시였죠. 그곳에서 8년 동안 살았던 소년에게 타이완의 모습은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타이완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근대적인 사회 기반시설이 마련되었지만, 1940년대 전쟁동원과 미국의 폭격에 1945년 이후 정권 교체에 따른 혼란이 더해지면서 사회가 매우 혼란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가오 회장이 ‘한 사회가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오시쥔 회고록 - 사진: 보커라이  그의 인생 첫 번째 ‘경제수업’도 가오슝항에서 진행되었는데요. 당시 그는 아버지가 준 담배 한 갑을 현지 아이에게 건네고 바나나 두 개를 얻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자랑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너 속았다”고 말했습니다. 상하이에서는 바나나가 사치품이었지만 타이완에서는 흔한 과일이었기 때문이죠. 이 짧은 경험이 경제학의 핵심을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던 겁니다. 이어서 1940년대 번화한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노래, 저우쉬안(周璇)의 ‘상하이의 밤(夜上海)’을 함께 들어보시죠! 공부를 통한 출세길 🥇 가오슝에 상륙한 가오 회장 가족은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향했습니다. 결국 난강(南港)에 있던 외성인 마을 ‘권촌(眷村)’에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가오 회장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타이베이 상업직업학교(현 국립타이베이상업대학)를 거쳐 타이중의 타이완농학원(현 국립중흥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타이완 최고 명문 타이완대 농과대학에서 연구 조교로 일했고, 당시 동료 중에는 훗날 타이완 총통이 되는 리덩후이(李登輝)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미국 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됐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군 소령이었던 아버지의 월급은 800뉴타이완달러 정도였는데, 미국행 편도 항공권 가격은 무려 2만 4천 뉴타이완달러에 달했습니다. 아들의 진로를 위해 아버지는 결국 조기 퇴직을 선택했고, 퇴직금을 아들의 유학 비용으로 내놓았습니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가오 회장은 미국에서 학업에 매진했고, 1964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출판업에 뛰어들기 전까지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외교적 어려움 속에서 탄생한 ‘서생보국(書生報國)’의 꿈 ✨ 그리고 그를 언론과 출판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앞서 언급된 경제 평론 〈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디 있겠어?〉였습니다. 1980년대 타이완 출판업에는 “한 사람을 망하게 하려면 잡지를 만들라고 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요. 그런데 가오 회장이 만든 잡지들은 지금까지 40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당시 타이완은 유엔 탈퇴와 이에 따른 외교적 단절을 겪은 데다가 계염령 통제 아래서는 정치 이슈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도약의 시기였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오 회장은 ‘서생보국(書生報國)’, 즉 ‘지식인이 학문으로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정신을 품고 있었습니다. 결국 경제 정보를 통해 타이완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잡지를 만들고자 했죠. 출판인으로 변신! 🏬 이렇게 1981년, 그는 언론인 인윈펑(殷允芃), 왕리싱(王力行)과 함께 《천하잡지》를 창간했습니다. 창간호는 1만 부가 이틀 만에 모두 팔렸습니다. 잡지 이름 ‘천하’는 순원(孫文)의 좌우명인 ‘천하위공(天下為公)’에서 따왔습니다. ‘천하는 특정한 개인이나 소수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는 뜻인데, 동시에 ‘부와 재산 역시 모두의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1986년, 가오 회장은 인윈펑과의 이념적 차

  2. Aug 11

    [아버지날] 진정한 행복이란? 우밍이(吳明益) 《도둑맞은 자전거(單車失竊記)》🚴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의 문을 엽니다. 아버지의 모습 👨 지난 주말 타이완에서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지만, 레스토랑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8월 8일이 타이완의 아버지날이기 때문인데요. 아이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요? 가정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기둥일 수도 있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툰 남자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정을 떠나 아이의 성장 과정에 함께하지 못한 경우도 있겠죠.  과거 타이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자,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전쟁과 백색테러를 겪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역사의 무게를 짊어진 채, 말없이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지곤 하죠.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낯선 사람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부모와 자녀 사이 🧑‍🧑‍🧒 타이완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우밍이(吳明益)는 이러한 아버지의 복잡한 모습을 작품에 많이 담아냈습니다. 그의 대표작 《도둑맞은 자전거(單車失竊記)》는 주인공이 아버지와 함께 사라진 자전거를 찾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이 여정에서 1940~50년대 타이완사람들이 다양한 신분으로 전쟁에 휘말렸던 역사가 드러나며, 수많은 삶이 얽힌 시대의 비극도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최근 이 소설의 한 문장이 SNS에 공유되면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爸跟媽生下了我們,想盡辦法努力工作供應我們念書,終於把我們改變成一種他完全不能理解的生物,然後我們就永遠離開他們了。」“부모님은 우리를 낳아 어떻게든 열심히 일하며 우리를 공부시켰다. 그렇게 끝내 우리를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게 했고, 우리는 결국 영영 부모님 곁을 떠났다.” 아이와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여야 하지만, 낯선 사람보다 더 멀게 느껴질 때도 있죠. 우밍이는 담담하고 냉정한 필치로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한편, 거대한 역사적 서사와 섬세한 감정 묘사의 대비로 독자들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2018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롱리스트에 오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올해 양솽즈(楊双子)의 《1938 타이완 여행기》가 수상하기 전까지, 타이완 문학이 국제 무대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였죠. 그럼 오늘은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에서 시작된 역사 글쓰기 ✍️ 《도둑맞은 자전거》라는 제목을 들으면, 1948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이 생각날 수도 있죠.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자전거를 도둑맞은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치려다 현장에서 붙잡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후 사회의 현실을 담아낸 뛰어난 연출과 깊은 울림으로,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밍이는 바로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자전거’라는 매개체를 통해 타이완이 겪은 전쟁의 상처를 풀어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바탕에는 우밍이 자신의 삶과 가족 이야기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요한데요. 1971년 타이베이의 주상복합건물 ‘중화상장(中華商場)’에서 태어난 그는 구두가게의 막내아들입니다. 엄격했던 아버지의 교육 방식 아래, 일곱 남매는 대부분 강한 반항심을 품었죠. 우밍이 역시 중학교 때 앵무새를 키우고 몰래 친구들에게 팔리거나 자신의 진로 문제를 두고 아버지와 싸우는 등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낯선 사람처럼 지내게 되었고, 이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관련 프로그램:'글을 다루는 마술사' 우밍이(吳明益) 하지만 우밍이는 아버지의 유물을 정리하던 중, 아버지가 식민지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전투기 제작에 참여했던 사진을 보고, 역사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밍이는 청핀서점(誠品書店)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작업을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힘으로 ‘지적 호기심’을 꼽았는데요. 그는 “내 인생은 이미 다 써 버렸고, 앞으로도 다른 대단한 일이 없을 것 같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유한한 삶의 경험과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이 세계의 모습을 하나씩 세워 나가는 것이다. 소설가는 역사학자와 달리 인간의 심리와 감정, 그리고 개인의 선택을 탐구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역사학자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는 직업이라면, 소설가는 그 사건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우밍이 작가 - 사진: 우밍이 제공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들... 💔 그리고 전쟁에 초점을 맞춘 이유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전쟁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우리 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가르쳤던 것이 결국 그들이 전쟁을 직접 겪은 경험과 관련되어 있었다. 전쟁의 참화를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기에 삶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이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우리의 미래를 걱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아버지에게 바치는 노래, 타이완 밴드 소다그룬(蘇打綠)의 ‘어릴 때(小時候)’를 함께 들어보시죠. 어릴 때 아버지와 가까웠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게 된 부자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보컬 칭펑(青峰)이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자신에게 건넸던 “힘내라”라는 한마디를 듣고 만든 노래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서 👣 자전거는 20세기 초 타이완에 들어온 후, 현대화의 상징이자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떠올랐습니다. 1950~60년에는 소설에 등장한 ‘행복’ 브랜드 자전거 한 대의 가격이 공무원 월급 4~5개월 치에 달할 정도로 고가의 물건이었는데요. 그래서 자전거를 도둑맞는다는 것은 매우 큰 일이었죠. 이야기 속 주인공은 우밍이처럼 타이베이 중화상장에서 태어난 작가입니다. 재봉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중화상장이 철거되었던 1992년, ‘행복’ 브랜드 자전거와 함께 집을 떠나 행방불명되었습니다. 20년 후, 주인공은 가족사진을 보면서 아버지와 자전거가 함께 찍힌 모습을 보고 그 자전건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1950년대 ‘행복’ 브랜드 자전거의 광고 사진 - 사진: 국가문화기억뱅크 / 신베이시정부문화국 일본군 자전거 부대 ‘은륜부대’에 가입한 타이완 원주민 🚲  이 과정에서 원주민 사진가 아바스(阿巴斯)를 만나게 되고, 아바스의 아버지 역시 자전거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각자의 아버지가 남긴 흔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바스의 아버지는 일본군의 자전거 부대 ‘은륜부대(銀輪部隊)’의 일원이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영국이 지배하던 말레이 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정글에서 가동력이 뛰어난 자전거 부대를 조직했습니다. 특히 산간지역에 익숙한 타이완 원주민을 모집해 작전에 투입했죠. 결국 일본군은 자전거 부대를 활용해 말레이 반도 전선에서 빠른 진격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최전선에 있었던 병세들에게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는데요. 아바스의 아버지는 전쟁 기간에 정글에 갇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는지를 목격했습니다. 힘들게 고향에 돌아온 후에는 새로운 중화민국 정권 아래에서 과거 일본군 병사였다는 사실이 문제가 될까 두려워 관련 물품들을 모두 태웠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1941~42년 필리핀 전역에서 투입된 일본군의 자전거 부대 ‘은륜부대’ - 사진: 위키백과 행복한 결말이란... ❓ 주인공의 아버지 역시 전쟁과 연결된 세대였습니다. 우밍이의 아버지처럼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전투기 제작에 참여했고, 일본식 교육 아래 침묵과 규율을 중시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또 두 아들과 계속 갈등을 겪고, 결국 자신이 키운 아이가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집을 떠났죠. 이야기 말미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행복’ 자전거를 찾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행복한 결말일까요? 전쟁을 경험하고, 또 그 상처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받은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거죠. 지난 시대에 대한 존경 🫡 우밍이는 후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 소설을 쓴 것

  3. Jul 28

    [중정기념당 ‘자유의 꽃’ 대담①] 양솽즈와 주유쉰, ‘그들이 글을 쓰지 않을 때’ 🌺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의 문을 엽니다. 중정기념당에서 펼쳐진 역사 대담 💬  타이베이를 여행한다면 장제스 총통을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은 많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꼭 찾는 명소 중 하나죠. 그런데 민주화 이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장제스 총통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졌는데요. 특히 계염령이 시행되었던 38년 동안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소중한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고, 심지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때문에 중정기념당의 전환 사업은 현재 타이완 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타이베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정기념당’ - 사진: 안우산 그리고 지난해 연말 개봉한 백색테러 영화 과 올해 초 큰 논란을 일으킨 영화 을 계기로, 자융제(賈永婕) 타이베이101 회장이 타이완 역사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촉구하면서 관련 논의가 다시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정기념당은 지난 3월부터 ‘자유의 꽃 강연 시리즈(自由花蕊名家綻放講堂)’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문학, 영화, 음식, 여행 등 주제로 타이완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관련 프로그램:타이베이101 회장 자융제(賈永婕) 신드롬빛나는 타이완어 시집, 원뤄차오(温若喬) 《빛이 꽃처럼 반짝일 때(日花閃爍)》 중정기념당은 지난 3월부터 개최하고 있는‘자유의 꽃 강연 시리즈(自由花蕊名家綻放講堂)’ - 사진: 중정기념당 이 가운데,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로 인터네셜너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양솽즈(楊双子)와 번역가 진링(金翎)도 강연자로 참여했습니다. 양솽즈는 작가 주유쉰(朱宥勳)과 함께 사회운동에 참여한 과정을 공유했고요. 진링은 팟케스트 진행자 우이츠(吳怡慈)와 같이 영어권에서 타이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처럼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에서, 타이완의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죠. 오늘은 먼저 양솽즈와 주유쉰 작가의 대담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글을 쓰지 않을 때 ✏️ 지난 6월 27일, 양솽즈와 주유쉰은 ‘그들이 글을 쓰지 않을 때(他們沒在寫作的時候)’라는 주제로 작가의 사회적 실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 제목은 백색테러 시대 타이완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주유쉰의 저서 《그들이 소설을 쓰지 않을 때(他們沒在寫小說的時候)》에서 따온 건데요. 작가들의 인생 경험이 작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한다는 취지죠. 우선, 주유쉰은 역사를 돌아보며 문학이 단순히 미학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체계에 맞서는 역할도 해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920년대에는 문학이 뉴미디어로 등장해 식민주의와 사회현상을 비판하는 수단으로 떠올랐으며, 특히 타이완 최초의 문화단체인 ‘타이완문화협회(臺灣文化協會)’가 결성된 후에는 보다 조직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분석입니다. 타이완신문화운동기념관에서 전시된 타이완문화협회 제1차 이사회 기념사진 - 사진: 안우산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재체제 아래 작가들은 서구 모더니즘의 미학을 받아들여, 우회적인 표현으로 사회를 비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 린헝타이(林亨泰)의 세 작품을 예로 들어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는 문학의 특징을 설명했는데요. 먼저 1947년 2·28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녹은 풍경(溶化的風景)〉에서는 눈물로 슬픔을 표현했고요. 또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군중(群眾)〉에서는 성문을 가득 뒤덮은 이끼의 이미지를 통해 대중의 저항의지를 암시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 계염령 해제 후 발표된 〈안전(安全)〉은 훨씬 더 직설적인 언어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털어놓았죠. 지난 2023년 향년 100세로 별세한 시인 린헝타이 - 사진: 국립타이완사범대학교 천 한 겹 뒤집어쓰고 있는 유령 👻 40년에 가까운 계염체제 속에서 작가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많은 타이완사람들에게 문학은 반드시 어려워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요. 하지만 린헝타이의 작품을 통해 문학이 시대 변화와 함께 더욱 직설적인 방향으로 전환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죠. 이에 주유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在台灣,文學能開始不晦澀、直白,是一件重要的里程碑,直白的同時仍能保持美學的質地,是我們要去追求的。如果看到直白的文字就覺得不是文學,這代表某種程度上,戒嚴的幽靈還沒有完全散去,仍在默默控制你。」 “타이완에서 문학이 더 이상 난해하지 않고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점은 중요한 이정표라고 생각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미학적 완성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만약 직설적인 글을 보고 ‘이건 문학이 아니다’라고 느낀다면, 어느 정도는 계엄령의 유령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통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양솽즈는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요.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이완문학의 경우 내용 면에서는 민주화를 거치며 타이완의 주체의식을 중심으로 전환해 왔으나, 형식 면에서는 여전히 문학이 어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문학을 뒤덮은 천”에 비유해 설명했는데요. 「我們的文學像幽靈一樣,披上一塊布,布底下有作家們真正想談的事情,可是懂得人才懂,不懂的人只看到那塊布,就會使得我們的文學越來越困難與不可理解,你也不會被觸動。」 “타이완문학은 천을 한 겹 뒤집어쓰고 있는 유령과 같다. 그 천 아래에는 작가들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저 천만 보게 된다. 그 결과, 타이완문학은 점점 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가고, 독자 역시 작품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 중정기념당이 전환의 필요성에 직면한 것처럼, 타이완문학에도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게 바로 지금 양솽즈와 주유쉰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이 노력하고 있는 방향이죠. ‘자중자애’ 하지 않는 작가 ⚡️ 이처럼 지금 사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문학의 정신을 실천하듯, 작가들 역시 구체적 행동으로 자신이 사는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양솽즈는 2024년 《1938 타이완 여행기》로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한 후, 발기인으로서 입법위원을 대상으로 한 파면운동을 추진했는데요. 결국 천 명이 넘는 타이완 작가들이 파면 연서장에 서명했습니다. 이에 주유쉰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如果今年時間倒回50年前,如果一個作家拿到國際獎項,這時候會出現四個字,叫做愛惜羽毛,但楊双子2024年一得獎,兩個月後就把籌碼砸到桌上說我們來連署,這是台灣文學的第一次」 “만약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한 작가가 국제적인 상을 받았을 때 아마 ‘자중자애’라는 네 글자가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솽쯔는 상을 받은 지 불과 두 달 만에 자신이 가진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던지듯 “우리 함께 연대 서명을 합시다”라고 말했다. 이는 타이완 문학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록 모든 파면 안건이 부결로 끝났지만, 양솽즈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我們就是在這一場場不管是成還是敗的投票之中成為台灣人。讀歷史對我們最大的幫助是,看到前人們無數次的失敗,而那些失敗比我們付出的代價還要大很多,而我們現在有很失敗嗎?突然覺得還好了。」 “이겼든 졌든 우리는 수많은 투표를 거치며 타이완인이 되어 왔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도움은, 앞선 세대들이 수없이 실패해 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우리보다 훨씬 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렇게 크게 실패하고 있는 걸까?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 강연 후 열린 작가 사인회 - 사진: 안우산  “문학인은 실패하는 편에 서는 것에 익숙했다” ✨ 두 작가는 타이완문학과 타이완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주유쉰은 “문학인은 실패하는 편에 서는 것에 익숙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사실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에서 이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죠. 앞으로 중정기

  4. Jun 23

    타이완 국민가수 우바이(伍佰) 시가집 《움직이는 나무들은 모두 내 등 뒤로 돌아섰다》🕰️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의 문을 엽니다. 타이완의 국민가수 🎤 타이완의 국민가수를 꼽자면, 록 가수 우바이(伍佰, 본명 吳俊霖 우쥔린)가 많이 언급될 텐데요. 자유분방한 멜러디에 타이완어 원어민 특유의 발음과 시적인 가사가 더해진 이른바 ‘우바이 미학’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타이완사람들의 마음을 울려 왔습니다. 명곡이 워낙 많다 보니 콘서트 현장의 떼창으로도 유명하죠. 지금 듣고 계신 곡은 우바이의 뮤직비디오 중 조회수가 가장 높은 ‘노르웨이의 숲(挪威的森林)’입니다. 방송일 기준으로는 이미 1억 뷰를 넘어섰습니다. 우방이의 음악은 요즘 유행하는 중독적인 형식과는 달리, 들으면 들을수록 감정이 스며드는 장르입니다. 빠른 곡에서는 폭풍 같은 록 사운드로 에너지를 터뜨리며, 느린 곡에서는 섬세하고 진솔한 감정을 담아냅니다. 무엇보다 로컬적인 타이완 정서가 짙게 배어 있어,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죠.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활동도 눈에 띄는데요. 타이완 서점에 가면 우바이의 책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평소 사진 작업을 좋아하는 그는 여러 권의 사진집을 출간했고, 최근에는 1990년부터 2026년까지 직접 쓴 노랫말을 모은 시가집 《움직이는 나무들은 모두 내 등 뒤로 돌아섰다(移動的樹都轉到我的背面)》를 출간했습니다. 우바이의 노랫말을 모은 시가집 《움직이는 나무들은 모두 내 등 뒤로 돌아섰다(移動的樹都轉到我的背面)》 - 사진: 보커라이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과연 노랫말도 시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요. 하지만 10년 전 노벨문학상이 미국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Bob Dylan)에게 수여되었던 일을 떠올려 보면,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니죠.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문학과 노래가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우바이의 시가집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투명한 글귀들 🎶 타이완 문학지 《연합문학(聯合文學)》은 창간 500호를 맞아, 이름이 ‘오백’인 우바이를 주제로 한 내용을 마련했습니다. 음악, 타이완어 창작, 영화, 뮤지컬, 사진 등 우바이와 연결된 키워드들로 이 레전드 아티스트를 입체적으로 탐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문화지 《보스(Verse)》 역시 특집을 통해, 우바이 음악의 시적 미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했습니다. 우바이 특집을 선보인 《연합문학》과 《보스》 - 사진: 안우산  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바이는 이번 시가집을 ‘투명함’이라는 단어로 여러 차례 설명했습니다. 이 투명함은 어떤 결론이나 해석이 고정되지 않고 마치 공중에 떠 있는 상태를 뜻하는데, 때문에 독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거죠. 우바이의 가사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흥어거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가집을 읽을 때 역시 이 충동을 참기 어렵지만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가사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번 시가집의 출발점도 그 지점에 있는데요. 우바이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콘서트’라는 개념이 떠올랐고, 결국 시가집을 3일 동안 이어지는 콘서트의 구조로 편집했다고 합니다. 우바이 인생을 담은 6개 챕터 🎵 시가집은 총 6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챕터의 제목도 우바이가 직접 붙였습니다. 첫 챕터 〈천천히 흘러가라, 나의 꿈(慢慢流啊我的夢)〉은 ‘투명함’이라는 핵심 개념에 맞춰, 천천히 흐르는 물처럼 꿈의 형태를 그려냅니다. 여기에 담긴 가사들은 색을 덜어낸 감정의 결정체로 읽힙니다. 이어지는 〈남겨진 영상(殘留的影像)〉은 투명함 위에 미세한 흔적들을 담으며, 보다 짙은 분위기입니다. 세 번째 챕터는 타이완어 노래를 위주로 한〈끊어진 다리(斷橋)〉입니다. 초기 제목은 ‘축축한 흙냄새(潮濕的泥土味)’였지만, 결국 고향의 다리에서 영감을 받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바이의 고향 남부 자이(嘉義) 솬터우(蒜頭)는 옛 설탕공장을 중심으로 발전한 지역인데, 마을과 공장을 잇던 다리는 과거 지역 사람들에게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우바이가 고향을 떠난 후에는 태풍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목에는 우바이의 상실과 기억이 담겨 있죠. 우바이 고향에 있는 솬터우 설탕공장 - 사진: 타이완설탕공사 그리고 후반부 〈타오르는 돌(燃燒的石頭)〉에서는 분노의 에너지, 〈아름답구나〉에서는 초기의 순수한 감성, 〈이것이 인생(是人生)〉에서는 히트곡들이 수록됩니다. 총 200여 편의 가사들로 독자에게 우바이의 음악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시가집과 함께 증정된 카드에는 우바이의 솔글씨가 있다. - 사진: 청핀서점 이어서 마지막 챕터 〈이것이 인생〉에 수룩된 ‘노르웨이의 숲’을 조금 더 들어보시죠. 이 노래는 우바이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누구에게나 침범할 수 없는 마음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시간이 가져간 것들과 남은 것들 ⏱️ 그렇다면 시가집 제목 《움직이는 나무들은 모두 내 등 뒤로 돌아섰다》 는 또 어떤 의미일까요? 이 문장은 우바이가 2006년 발표한 ‘무지개(彩虹)’의 가사로,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구절입니다. 나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배경이 변하는 거죠.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시간만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는 겁니다. 30년이 넘는 창작이 응축되는 만큼, 시간이 가져간 것들과 남은 것들이 모두 이 책에 있습니다. 수많은 것이 변했지만, 우바이는 ‘노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음악이든 창작이든 사진이든, 그것들을 놀이처럼 대할 때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태도죠. 그리고 책표지에 적힌 제목 역시 우바이가 직접 작성한 겁니다. 다지인어가 여러 샘플을 보여줬지만, 마음에 드는 글씨체가 없어 스스로 썼다고 합니다. 챕터 제목 역시 그가 가장 아끼는 연필로 쓴 건데요. AI 창작이 보편화되는 지금에는 매우 소중한 마이드죠. 우바이는 창작이 가진 이런 ‘모호함은 AI가 영원히 대체할 수 없는 거라 강조했습니다. 모국어로 창작하고 싶다!! ✍️ 또한 이번 시가집에 타이완어 노래 챕터가 있는 것처럼, 모국어 창작도 우바이 음악의 중요한 축입니다. 특히 1998년 발표한 타이완어 앨범   《가지 끝의 외로운 새(樹枝孤鳥)》는 타이완 음악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이전까지 타이완어 노래가 종종 비극적인 정서에 머물렀다면, 이 앨범은 전위적인 록 사운드로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에 우바이는 어릴 때 설탕공장에서 들었던 소리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중국어 중심이 아닌 타이완의 생명력을 되찾고 싶다며, 특히 부모의 모국어가 창작의 언어가 된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2022 우바이 ‘Rock Star’ 타이베이 콘서트 현장 - 사진: 안우산 우바이와 함께하는 시간들 ✨ 우바이의 음악은 1990년대 경제 성장과 민주화 시기를 거치며, “나는 누구인지”라는 질문을 던졌고, 2000년대 글로벌화와 인터넷 시대에는 젊은 세대의 불안과 허무를 감싸 안았습니다. 또 2010년대 레트로 열풍 속에서는 ‘진짜 타이완 음악’으로 재평가되며 새로운 세대에게 닿았고, AI 시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읽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유로우면서도 섬세한 음악이야말로 우바이 노래가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이유죠. 엔딩곡으로 실연으로 타이완의 외교적 현실을 은유하는 ‘가지 끝의 외로운 새’를 띄어드리며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1. 伍佰,《移動的樹都轉到我的背面》。2. 蕭詒徽,「【當月精選】時間把我們都移動了—— 專訪伍佰談 《移動的樹都轉到我的背面》」,聯合文學。3. 張鐵志,「伍佰的詩學——當電吉他與歌聲靜音,文字如何成詩?」,Verse。

  5. Jun 9

    분노의 필치에서 삶의 성찰로… 논쟁의 작가 룽잉타이(龍應台) 🔥

    타이완 문학의 향기를 담아, 지금 의 문을 엽니다. 《1938 타이완 여행기》의 중국 출판❓︎ 타이완 작가 양솽즈(楊双子)가 집필, 진링(金翎)이 번역한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가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타이완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현재까지 이미 24개국에 판권이 판매되었고, 만화와 뮤지컬, 드라마 제작도 확정되었습니다. 양솽즈는 지난 20일 AF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출판에 대한 기대도 언급했는데요. 그는 이 작품이 어떤 형태로든 중국 시장에 들어가 중국 독자들에게 읽힌다면 양안 교류를 촉진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타이완인이 원하는 미래가 중국인이 상상하는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측의 반응은 다소 온도 차를 보였습니다. 중국 국무원 타이완사무판공실 대변인은 지난 27일, 양안 작가들은 민족적 입장을 견지하고 역사적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며, 일본이 중국과 세계에 남긴 상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양안 국민의 마음을 잇는 책임 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작품에 담은 강한 타이완 주체 의식과 양솽즈 본인의 타이완독립 성향 등을 고려하면, 중국 내 출판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2026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타이완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 사진: CNA 《대강대해 1949》간체자 버전 출간❗︎ 한편, 중국 정부가 금서로 규정하는 한 타이완 작품이 최근 간체자 버전으로 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바로 작가 룽잉타이(龍應台)의 《대강대해 1949(一九四九大江大海)》인데요. 이 작품은 중화민국 정부의 타이완 이전 60주년이던 2009년 출판되었으며, 국공내전에서 떠돌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문학적 기법으로 기록한 논픽션입니다. 전쟁이 가져온 상처와 개인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시각이 중국 정부가 강조해 온 ‘혁명 승리’ 중심의 서사와 충돌하면서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금서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이번 간체자판 출간은 일본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중국 출신 출판인 장스즈(張適之)가 추진한 건데요. 그는 중앙사와의 인터뷰에서 “패전자의 시선으로 국공내전을 바라보고 전쟁을 반성하는 관점은 중국 독자들에게 매우 새로운 시각”이라며, “비록 해외 출판이지만 해외 중국인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닿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4월 일본에서 출판된  《대강대해 1949》 간체자 버전 - 사진: CNA 사실 작가 룽잉타이도 이 책의 중국 출판 바람을 여러 차례 밝혀 왔는데요. 1949년 타이완으로 이주한 외성인(外省人) 2세인 그는 부모의 이야기는 물론, 국민당 군인과 타이완 일본병 등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대강대해 1949》를 집필했습니다. 특히 거대한 역사를 일반인의 삶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다만 2010년대에 들어서는 룽잉타이를 둘러싼 평가도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는 양안 평화와 상호 이해를 강조해 왔지만, 일각에서는 타이완과 중국 사이의 극도로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중국의 위협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본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자유와 인권, 개인의 존엄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성향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거죠. 오늘은 바로 중화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늘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 룽잉타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신화를 믿지 않게 된 젊은이 💥 룽잉타이라는 이름에는 그의 가족사와 타이완 역사가 담겨 있는데요. 아버지의 성인 ‘룽(龍)’과 어머니의 성인 ‘잉(應)’,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타이완을 합쳐 만든 겁니다. 그는 부모가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지 3년 뒤인 1952년 가오슝에서 태어났습니다. 보수적인 남부 지역에서 외성인 신분으로 인해 그는 어릴 때부터 어딘가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는 중국고전과 철학, 문학에 깊이 빠져들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성공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해, 더 넓은 세계를 만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성공대는 이공계 중심이었기 때문에 인문학 자원이 풍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교사 출신 외국인 교수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영어 실력을 키웠고, 타이완 북부 지역 출신 동창들과 어울리면서 지역 격차를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더 큰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타이베이로 올라가며 미국 유학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그는 훗날 미국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남겼는데요. “국민당이 만든 신화 속에서 자란 나는 1975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다른 언어와 다른 시선으로 그 신화가 해석되는 모습을 봤고, 그 순간 신화는 무너졌고 나는 더 이상 신화를 믿지 않게 되었다.” 타이완 사회에 불을 지른 그 평론집... 《야화집》🔥 이렇게 서구식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접한 후 그는 타이완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기게 되었는데요. 1984년 발표한 평론 〈중국인, 너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中國人,你為什麼不生氣)〉를 시작으로, 이듬해 사회문화 평론집 《야화집(野火集)》을 출간하며 중화권 전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야화집》 출판 30주년 버전 - 사진: 보커라이 《야화집》은 1980년대 타이완 사회의 환경 문제와 관료주의, 정치 구조의 모순 등을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인데요. 룽잉타이는 타이완인들이 더 이상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부조리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아직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이었던 당시, 공개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일 자체가 매우 드물고 상당한 리스크도 동반하고 있었죠. 그럼에도 《야화집》은 출간 21일 만에 무려 24쇄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어서 《야화집》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노래, 뤄다여우(羅大佑)의 ‘아시아의 고아(亞細亞的孤兒)’를 함께 들어보시죠. 1979년 타이완-미국 단교 후 타이완의 외교적 처지를 표현한 곡입니다. 치유와 위로의 소설《다우산 아래》⛰️ ‘룽잉타이 돌풍’을 일으킨 후, 그는 독일인 남편과 함께 스웨스와 독일에서 생활하며, 가정과 창작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99년 초대 타이베이시 문화국장 제의를 받으며 다시 귀국했고, 2012년에는 문화부 장관에도 취임했습니다. 또 2014년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타이완 최남단 핑둥(屏東)으로 이주했고, 첫 장편소설 《다우산 아래(大武山下)》를 발표했습니다. 룽잉타이의 첫 장편소설 《다우산 아래》 - 사진: 보커라이 날카로운 사회평론이나 가족 관계를 다룬 에세이와 달리, 이 작품은 보다 내면적이고 성찰적인 소설입니다. 삶에 지친 한 작가가 스승의 권유로 고향인 핑둥 차오저우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처음에는 세상 모든 것이 못마땅한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과 자연의 생명력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신비로운 14살 소녀의 영혼을 만나게 되는데, 소녀를 따라가던 끝에 결국 50년 전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도 드러나게 됩니다. 룽잉타이는 소설 후기에서 “차오저우가 이 책을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차오저우는 인구 5만 명 규모의 마을로, 원주민 파이완족(排灣族), 루카이족(魯凱族), 베이난족(卑南族)의 성산으로 여겨지는 ‘다우산(大武山)’ 아래에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민간신앙이 깊게 뿌리내린 지역으로, 외지인들에게는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일들도 현지인들에게 단지 일상의 일부죠. 소설 주인공 역시 이곳에서 땅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음속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내게 됩니다.  핑둥 다우산 - 사진: 위키백과 룽잉타이 자신의 경험이 짙게 반영된 작품인 만큼, 전반부는 에세이처럼 읽히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이 더해지며,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그래서인지 앞길이 막막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소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관련 프로그램:신과 경찰의 만남, 차오저우(潮州) 경찰서에 숨은 사찰을 찾아서 분노의 필치에서 삶의 성찰로... ✍️ 30대에 발표한 《야화집》이 분노와 비판의 언어였다면, 50대 발표한 《대강대해 1949》는 역사와 국가의 상처를 응시한 작품이었고, 70대에 가까워서 발표한 《다우산 아래》는 결국 삶과 시간, 그리고 인간 자신을 바라보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젊은 지식인이 세월이 흐르며 점차 자신을 돌아보게 된 건데요. 비록 작가이자 정치인으로서의 룽잉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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