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열 아일랜드 조난 사건, 준비된 시니어를 살린 것과 위험에 빠뜨린 것 늪에 빠뜨린 것은 휴대전화 하나였습니다 지난 8월 말, 미국 미시간주 슈피리어호 한가운데에 있는 로열 아일랜드 국립공원에 70세의 크레이그 버그(Craig Berg) 씨가 홀로 들어섰습니다.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한 그는 전년에도 같은 주의 피처드 록스 국립해안을 혼자 종주했던 경험 많은 등산객이었습니다. 이번 일주일 일정을 위해 그는 꼬박 1년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성능 좋은 헤드램프를 새로 장만했고, 아내는 캠핑용 매트리스를 바꿔 주었으며, 휴대전화에는 등산 지도 앱을 내려받았습니다. 위성 통신이 가능한 휴대전화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준비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실제로 처음 사흘은 순조로웠습니다. 하루 평균 11킬로미터가량을 걸으며 예정한 야영지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나흘째 되던 날, 표지가 뚜렷하지 않은 구간에서 길을 벗어난 그는 늪지대에 빠졌습니다. 옷과 배낭과 식량이 모두 젖었고, 벗겨진 등산화는 간신히 찾아냈습니다. 다만 휴대전화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약 536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섬에서, 그는 그 순간 외부와 이어진 유일한 끈을 잃었습니다. 그 뒤 11일은 생존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틀에 한 끼꼴로 동결건조 식품을 아껴 먹었고, 버너 연료가 떨어진 뒤에는 연못 물과 빗물을 소독약으로 처리해 마셨습니다. 늪을 파서 고인 흙탕물을 받아 마신 날도 있었습니다. 지대가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를 찾아 눈에 잘 띄도록 주황색 텐트를 치고 주변 풀을 밟아 눕혔으며, 오래된 음악 재생기의 이어폰 선을 풀어 라디오 안테나를 만들어 인근 도시의 방송과 일기예보를 들었습니다. 체력을 아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이틀을 꼬박 쉬기도 했습니다. 열하루째 아침, 인근 호수에서 카약을 타던 두 사람이 그의 외침을 들었고, 곧 해안경비대 헬기가 그를 끌어올렸습니다. 병원에서는 저체온증 소견 외에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했습니다. 준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가 미숙했기 때문에 조난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1년을 공부했고, 장비를 갖추었으며, 공원 관리자의 경고까지 새겨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의 실족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이유는 안전 장치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와 위치 확인과 통신이 모두 휴대전화 한 대에 얹혀 있었으니, 그 한 대가 사라지자 남은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 자신도 구조된 뒤 예비 단말기나 별도의 위치 발신 장치를 챙기지 않은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가족의 역할입니다. 연락이 끊긴 뒤 아내는 수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당국에 더 넓은 수색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그곳에서 끌어낸 불씨는 아내의 집요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아내는 온라인에 떠돌던 억측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 혼자 산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판단력을 의심하는 시선이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도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시니어의 모험은 곧잘 무모함으로 번역되지만, 준비된 도전과 무모함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가을 산,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소방청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산악사고 구조 건수는 모두 3만 2,210건으로 연평균 1만 736건에 이르렀고, 월별로는 단풍철인 10월이 4,416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원인으로는 일반 조난이 8,021건으로 가장 많고 실족과 추락이 7,575건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길을 잃는 것이 곧 사고의 첫 번째 얼굴인 셈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쓸 만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2023년 3월부터 주소정보누리집을 통해 자신이 선 자리의 국가지점번호를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가지점번호는 국토를 가로세로 10미터 간격으로 나누어 부여한 위치 표시 번호로, 주소가 없는 산지에서도 정확한 좌표 역할을 합니다. 등산로 곳곳에 세워진 국가지점번호판이나 다목적 위치표지판의 번호를 119에 알리면 구조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요체는 하나입니다. 산을 멀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안전 장치를 겹으로 두라는 것입니다.첫째, 산행 계획과 예상 하산 시각을 반드시 가족에게 남기고 연락이 끊겼을 때의 기준 시각을 미리 정해 두어야 합니다.둘째, 통신 수단을 하나에만 의존하지 말고 보조 배터리와 종이 지도, 호루라기와 비상용 보온 장비를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셋째, 정규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값싼 보험입니다. 경험과 판단력은 시니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입니다. 그 자산을 지키는 방법은 도전을 접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준비하고, 알리고, 겹으로 대비하는 일 말입니다. 열하루를 버텨 낸 한 시니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도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의 안전은 지금 몇 겹입니까.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