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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매월 발행하고 있는 '매일미사' 중 신부님(매월 필자 변경)의 소중한 말씀인 '오늘의 묵상'을 전해드립니다.

천주교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한재호 루카 신부 / 광주 가톨릭 대학교 성서 신학 교수

    • Christianity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매월 발행하고 있는 '매일미사' 중 신부님(매월 필자 변경)의 소중한 말씀인 '오늘의 묵상'을 전해드립니다.

    (02/17/월) 선입견의 틀 속에 갇힌 것은 아닌지요 (성가 - 3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02/17/월) 선입견의 틀 속에 갇힌 것은 아닌지요 (성가 - 3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2020년 2월 17일 (월요일)

    / 성가 - 3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 선입견의 틀 속에 갇힌 것은 아닌지요 ]

    ●예수님께서 일곱 개의 빵으로 사천 명을 배 불리신 그 자리에 바리사이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누가 보아도 하늘에서 온 표징이었음에도 그것을 보고도, 그것에 관해서 듣고도 표징이라 여기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삶 속에서도 이런 일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내 배우자가 가족들을 아끼는지 잘 모르겠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이렇듯 우리도 살아가면서 가족들과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표현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정녕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나의 배우자가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징이 정말 없었습니까?

    ●어쩌면 우리도 바리사이들처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 채 편견과 선입견의 틀 속에 갇힌 것은 아닌지요?

    (한재호 루카 신부)

    • 5 min
    (02/16/일) ◎주보: 주님이 주신 선물-아내 (조한철 안토니오 / 배우 / 2월16일 서울주보)

    (02/16/일) ◎주보: 주님이 주신 선물-아내 (조한철 안토니오 / 배우 / 2월16일 서울주보)

    (02/16/일) ◎주보: 주님이 주신 선물-아내 (조한철 안토니오 / 배우 / 2월16일 서울주보)

    /성가 – 229 죽음에서 생명에로

    2000년, 스물여덟 살의 저는 열정적이지만 가난한 연극배우였습니다. 평생 연극을 할 수 있다면 가난 따윈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결혼도 꿈꾸지 않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처럼 저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흔한 말로 사랑의 불꽃이 튀어 눈이 멀어버려서 감히 제가 결혼을 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사실 아내와 저는 성당 주일학교 초·중·고등부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졸업 후 8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났지만, 저희에게 서로를 알아가야 하는 시간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만난 지 3일 만에 지금의 아내에게 프러포즈했고 3개월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3일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3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저희의 결혼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미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어떤 의심이나 불안도 없었습니다. 서로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저희 둘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을 수 있을까?’
    ‘아무 수입도 없는 가난한 연극배우를 사위로 받아들여 주실까?’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살지? 어떻게 살지? 무얼 하며 살지?’
    아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일단 퇴짜 맞을 각오를 하고 여자친구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저 ‘많이 사랑합니다’라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예상외의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너희가 사랑해서 결혼한다는데 그거면 됐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너희 둘이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약간의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쉽게 허락해 주실까?’
    ‘이 귀한 딸을 이렇게 쉽게 내어주신단 말인가?’

    아버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배우자는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야. 주님이 주신 선물이니 내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이야”라고요···.

    저의 장인·장모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에 M.E. 한국 대표 부부로 활동하시던 분들이었습니다. 부부의 사랑과 갈등, 소통과 대화법 등을 공부하고 교육하고 실천하며 사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결혼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들이셨습니다. 그저 우리가 서로 많이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주님의 선물이 되어 결혼을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한철 안토니오 배우 / 2020.02.16. 서울주보)

    • 4 min
    (02/15/토) ‘사흘’이라는 숫자로 상징되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성가 - 402 세상은 아름다워라)

    (02/15/토) ‘사흘’이라는 숫자로 상징되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성가 - 402 세상은 아름다워라)

    2020년 2월 15일 (토요일)

    / 성가 - 402 세상은 아름다워라

    [ ‘사흘’이라는 숫자로 상징되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

    ●오늘 복음에서 눈여겨볼 단어가 있습니다. “사흘”입니다.

    ●성경에서 사흘이 가장 중요하게 쓰인 대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에 부활하시기까지의 기간일 것입니다.

    ●군중은 사흘 동안 먹을 것도 없이 예수님 곁에 있다가 예수님의 기적으로 배부르게 되었습니다.

    ●길에 쓰러져 죽을 곤경에 놓였던 이들이 다시 살아나게 된 셈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닮은 군중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다음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어떤 면에서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미리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이들에게 내리는 부스러기 은총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빵의 은총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되새겼습니다.

    ●진정으로 빵의 은총을 얻고 참생명을 누리려면 ‘사흘’이라는 숫자로 상징되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정신이 없으면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신다 하여도 참생명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해야 비로소 빵의 은총에 더하여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찬 은총 또한 누릴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일곱 광주리의 은총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 4 min
    (02/14/금) 기도란 ‘말함’보다도 ‘들음’이 핵심입니다 (성가 - 439 부드러운 주의 손이)

    (02/14/금) 기도란 ‘말함’보다도 ‘들음’이 핵심입니다 (성가 - 439 부드러운 주의 손이)

    2020년 2월 14일 (금요일)

    / 성가 - 439 부드러운 주의 손이

    [ 기도란 ‘말함’보다도 ‘들음’이 핵심입니다 ]

    ●오늘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단 한 번이 아니라 여섯 가지 행위를 통하여 고쳐 주십니다.

    ●이를 살펴볼 때 우리도 영적으로 더욱 잘 듣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소음이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침묵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신 이유는, 침묵이 더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십니다.

    ○이는 귀를 열려는 행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을 귀를 열고 들어야 합니다.

    ○기도는 그저 기도서에 나온 기도문을 줄줄 읽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기도란 ‘말함’보다도 ‘들음’이 핵심입니다.

    ●셋째, 침을 발라서 혀에 손을 넣으십니다.

    ○이 행위는 마치 어린아이를 위하여 엄마가 먹을 것을 잘게 씹어서 먹여 주는 행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알아듣고, 이를 마음에 새기도록 영적인 힘 곧 성령을 집어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의 마음은 정화되고 우리는 새 힘을 가질 자세를 갖춥니다.

    ●넷째, 하늘을 우러러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단둘이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다섯째, 한숨을 내쉬십니다.

    ○우리의 처지를 깊이 공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린 다음, 우리의 처지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파타!”라는 말씀을 통하여 비로소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리게 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가 말을 제대로 하도록 치유하시고서는 말을 하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쓸데없는 이야기, 예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말은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처럼 여겨지더라도 소리 내지 말고 침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을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귀와 입과 마음이 열린 사람이 지녀야 할 자세입니다.

    ●그러한 자세를 갖추기 위하여 위의 여섯 단계를 다시금 되새깁시다.

    (한재호 루카 신부)

    • 6 min
    (02/13/목) 부스러기가 생존을 결정, 도대체 빵의 은총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성가 - 49 옹기장이)

    (02/13/목) 부스러기가 생존을 결정, 도대체 빵의 은총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성가 - 49 옹기장이)

    2020년 2월 13일 (목요일)

    / 성가 - 49 옹기장이

    [ 부스러기가 생존을 결정, 도대체 빵의 은총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

    ●대형 마트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에 관한 텔레비전 뉴스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유통 기한이 많이 남아 있는 유제품을 선호하여서 대형 마트는 가장 신선한 상품을 앞에 진열한다고 합니다.

    ●항상 신선한 것을 판매한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려는 것입니다.

    ●반면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들은 어차피 팔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뒤로 밀려났다가 버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쓰레기로 처리되는 빵, 야채, 가공식품들이 엄청납니다.

    ●이렇게 버려지는 것들이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너무나 절실한 생존의 음식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부스러기”라는 표현은 배고픈 이들에게는 정녕 간절한 단어입니다.

    ●그 부스러기가 생존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빵을 먹는 이들은 정작 그 빵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이 예수님께 청하였던 “부스러기”에도 이러한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에 응답하시어 그녀의 딸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어 주십니다.

    ●부스러기의 은총이 이렇게 크다면, 도대체 빵의 은총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는 몸소 생명의 빵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빵이 되어 오시는 그분 안에서 우리는 어떤 간절함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 3 min
    (02/12/수) 하느님의 깨끗한 마음을 먼저 맛보도록 합시다 (성가 - 446 우리는 주의 사랑을)

    (02/12/수) 하느님의 깨끗한 마음을 먼저 맛보도록 합시다 (성가 - 446 우리는 주의 사랑을)

    2020년 2월 12일 (수요일)

    / 성가 - 446 우리는 주의 사랑을

    [ 하느님의 깨끗한 마음을 먼저 맛보도록 합시다 ]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곱씹어 보면 우리의 내면이 얼마나 죄로 얼룩져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날마다 우리 내면을 정화한다고 하여도 더러움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것들 외에, 세상 그 어떤 것도 영적인 면에서 우리를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더럽고, 정결하지 못한 것을 이토록 잘 알고 계심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깨끗하여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러움에 찌들어 있어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영적 결벽증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소 죄를 짓고 깨끗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죄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시는 그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더러운 모습 그대로 그분께 한 걸음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 깨끗함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깨끗한 마음을 먼저 맛보도록 합시다.

    (한재호 루카 신부)

    • 5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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